은혜의 강단 893

강하여 가는 집 약하여 가는 집(삼하 03:01~11)

기독교 한국 침례회 소속 이윤호 목사가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 1999년 베다니 출판사」라는 책을 시중에 내어놓았습니다. 가계(家系)에 흐르는 저주란 예수님을 믿어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저주가 가계(핏줄)를 통해 흐른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을 요약하면 현재의 질병이나 잘 풀리지 않는 어떤 일의 유전자가 가계를 통해 흐른다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나 조상들 죄까지 회개하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나라는 조상과 후손 사이에 연대성이 매우 강한 사회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으라는 주장은 일시적으로 상당한 호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가계 저주론은 성경과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가계 저주론을 주장한 이윤호 목사는 이단으로 규정되었고 본인도 가계 저주론이 ..

여호와의 말씀대로 먹고 남았더라(왕하 04:42~44).

신약성경에서 복음서가 다 취급한(마 14:13~21, 막 06:30~44, 눅 09:10~17, 요 06:01~15) 예수님의 기적 한 가지가 있습니다. 벳새다 광야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장정 오천 명 이상이 먹은 사건입니다. 열두 바구니에 차도록 넘치고 남은 일명 오병이어 기적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일곱 개의 떡과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장정 사천 명 이상이 먹은 사건입니다. 일곱 광주리에 차도록 남은 일명 칠병이어 기적입니다(마 15:29~39). 이런 메시지 앞에서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 분은 오병이어 기적을 사람의 이성으로 판단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놓고 축사하실 때 각자 가지고 온 식사를 양보해서 내어놓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먹을 수 있는 국이 되었습니다(왕하 04:38~41).

구약성경에서 모세 이후 가장 많은 기적을 행한 선지자가 엘리사(אֱלִישָׁע‎)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여러 선지 학교를 운영하였습니다. 길갈 신학교, 벧엘 신학교, 여리고 신학교 세 곳입니다. 이 가운데 길갈 신학교에는 백여 명의 신학생이 수학하고 있었습니다(43). 엘리사 선지자는 세 곳을 정기 순회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신학생이 죽은 사건(01~07) 이후 다시 길갈 신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그곳에 흉년이 들어 있었습니다. 흉년이 든 것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비가 가끔 오지 않는 지역입니다. 연평균 강우량도 매우 적습니다.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저장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됩니다. 따라서 농사는 자주 멈추게 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과 인근 ..

엘리사를 섬기는 수넴 여자(왕하 04:08~37)

엘리사 선지자는 이스라엘 전국을 다니며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을 만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을 했습니다. 당시는 차나 비행기가 없습니다. 선지자 사역을 위하여 신학교마다 순행하는 일이나 왕궁을 출입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이라는 마을에 갔습니다. 수넴은 굴곡(屈曲)의 땅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지역 이름부터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굴곡이 많은 땅, 그만큼 그 지역 사람의 삶이 힘들 것이라 예상됩니다. 열왕기하 04장에는 수넴에 사는 한 여자가 수넴에 들린 엘리사를 정성으로 대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수넴은 술람이라는 곳과 같은 지역입니다. 엘리사가 갈멜산에서 길갈을 순방할 때 꼭 들러서 가는 곳이 수넴 마을입니다. 갈멜에서 수넴을 지나 갈릴리에 있는 여러 성읍을 방문하..

우리도 빈 그릇을 빌려 채웁시다(왕하 04:01~07).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구약성경에서 모세 이후 가장 많은 기적을 행한 선지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엘리사(אֱלִישָׁע‎)입니다. 엘리사는 B.C. 9세기경 북이스라엘 아벨므홀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름은 사밧으로 열두 겨리 소를 부릴 정도의 재산가입니다. 이 엘리사가 평범한 농부로 지내고 있는데 누군가가 자기에게 겉옷을 던집니다. 돌아보니 당대의 그 유명한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엘리사를 선지자로 불렀고 엘리사는 즉각 순응하였습니다(왕상 19:16~21). 이때부터 유다의 제9대 왕 여호람, 예후, 여호아하스를 거쳐 제12대 요아스 왕까지 무려 50여 년간 신령한 지도자로 봉사하였습니다(왕상 19:16, 21).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의 승천 후부터 특별히 ..

우리는 하나 된 가족입니다(엡 04:01~06).

미국 남북전쟁 때의 일입니다. 한 번은 워싱턴시를 흐르는 포토맥(Potomac, 665km)강을 사이에 두고 남군과 북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으면 서로 간에 치열한 전투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달빛이 흐르는 고요한 시간 양쪽 진영 모두가 깊은 적막감에 쌓여 있습니다.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지경입니다. 그때 한 병사가 적막감을 깨뜨리고자 나직한 목소리로 노래를 한 곡 부릅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남군과 북군 사이에서는 서로 군가와 애국가가 달랐습니다. 이쪽에서 군가를 부르면 저쪽에서는 또 다른 군가로 응수하곤 했는데 그 군인은 모두가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도 잘 아는 노래입니다. Home, sweet home입니다. 옆..

우리 모두 진한 사랑을 합시다(요 13:34~35).

만일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①네 원수를 친구처럼 사랑하라. 그러면 너는 하나님의 친구가 될 것이다. ②네게 무관하고 낯선 사람일지라도 사랑하라. 그러면 하나님 가까이에 있게 될 것이다. ③네 마음에 끌리지 않는 사람도 사랑하고 네 마음에 받아들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를 영접하실 것이다. ④너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을 네게 넘치도록 부어 주실 것이다. ⑤너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을 초청하라. 하나님께서 네게 영광의 문을 넓게 열어 주실 것이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없고 사랑을 받을 사람이 없으면 두 달을 넘지 못해서 조현병에 걸린다..

실패는 반드시 회복해야 합니다(요 21:15~19).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Ann Arbor)에는 1990년 설립된 특별 박물관이 하나 있습니다. 소비자의 외면으로 시장에서 사라진 13만여 점의 실패 상품을 전시해 놓은 실패 박물관입니다. 정식 명칭은 신제품 작업소(New Product Works)입니다. 이 박물관 전시품은 마케팅 전문가이자 실패 연구의 권위자인 로버트 맥매스(Robert McMath)가 1960년대 말부터 매년 나오는 신제품을 취미 삼아 수집한 물품입니다. 그런데 40년 넘게 수집한 신제품 가운데 80% 이상이 망한 제품이라고 합니다. 결국은 신제품을 진열해놓은 것이 아니라 망해버린 제품 집합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박물관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여러 기업 경영인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왜 찾아오는지 아십니까? 이곳은 실패 박물관인 동시..

나는 열심히 일하는 청년입니다(전 11:09~12:02).

오늘 말씀이 들어있는 성경은 전도서(傳道書)입니다. 이 전도서 이름만 보아서는 오해하기 쉽습니다. 전도에 관한 책이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오해는 번역 과정에서 생겼습니다. 이 성경의 히브리어 원문은 코헬렛(קֹהֶלֶת. 전 01:01)입니다. 이 말은 모으는 사람 혹은 모인 사람이란 뜻입니다. 무엇을 모았습니까? 인생의 지혜를 모았습니다. 왜 모였습니까? 인생의 지혜를 듣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전도서는 인생의 지혜와 관련된 책입니다. 이것을 헬라어로 번역하면서 제목을 에클레시아스테스(Ἐκκλησιαστής)라는 단어로 번역했습니다. 사람을 모아 집회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중국어 성경에서 傳道書라 번역했고 우리 성경도 이를 그대로 옮겨 전도서라 했습니다. 공동 번역이나 다른 번역서는 집회서라 ..

하나님은 우리 편입니다(시 124:01~08).

시편 150편 가운데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가 붙은 시가 열다섯 편 있습니다. 120편부터 134편까지 열다섯 편입니다. 이 열다섯 편 가운데 다윗이 네 편(122, 124, 131, 133)을 기록했고 솔로몬이 한 편(127)을 기록했습니다. 나머지 열 편은 저자를 알 수 없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의미는 이스라엘 국내외를 비롯한 여러 곳의 성도들이 예루살렘을 순례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사용했다는 뜻입니다. 주로 유월절, 칠칠절, 장막절에 불렀습니다. 오늘 시편 124편 말씀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는 매우 적합한 시입니다. 성전에 올라갈 때 부르는 찬양으로는 아주 제격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기까지는 더러는 힘든 여정을 거쳐서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외국에서 왔다면 대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