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4년 말씀

믿음으로 세상을 이깁니다(요일 05:01~0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4. 7. 20. 19:30
728x90

지금은 단종이 되었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쌍용 자동차에서 생산한 코란도라는 지프차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이 코란도라는 차 이름이 Korean Can Do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한국인은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적극 사고방식 즉 승리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은 승리를 의미하는 어떤 말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각자가 한번 생각하면서 좋은 이름을 구상해 보시면 어떨까요?

 

우리는 국내 스포츠팀이 외국에 나가서 이기면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일종의 애국심일 것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승승장구하자 T. V로 시청하던 한 분이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으면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여 심장마비로 죽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도 가끔 건강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가끔 운동하러 가지 않습니까?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승부에 너무 열을 올리지는 마십시오.

이기면 내가 기분이 좋고, 지면 상대방이 기분이 좋은 정도의 운동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 승리욕만 앞세워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 혈압 올라오면 혹 가는 수가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가서 오히려 건강에 손해를 입고 오는 일은 좀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승부의 욕망이 강한 스포츠는 잘 보지 않습니다.

시간이 없어 못 보는 때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공연히 남이 하는 게임에 내가 긴장되어 손에 땀을 쥐는 일이 좀 싫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이런 세상에 대한 승리보다 신령한 일에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깁니다.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1.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을 알고 있습니까?

 

0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세상을 이기는 비결은 오직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마귀와 싸워서 이기는 것이 세상 지식이 아닙니다. 세상 어떤 권력이나 힘도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지식이나 물질 힘과 권세 이런 것들이 사탄의 도구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세상 것들 때문에 가족 간에도 어려움이 생깁니다. 유산 문제 때문에 싸우고 형제간에 싸우고 남이 되어 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유산에 관한 것은 정말 지혜로워야 합니다. 어느 신문에 보니 이런 글 내용이 나와 있더라고요. 요즘 부모들 참 힘들다.

 

왜냐고요. 부모가 자식에게 미리 안 물려주면 맞아 죽는 일이 있답니다. 그래서 다 물려 줘버린다고 해요. 물려주면 굶어 죽고, 안 물려주면 맞아 죽고, 적당하게 남기고 물려주면 시달려 죽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먼저 자녀와 싸워 이겨야 하는 세상입니다.

세상에는 온갖 질병과 가난 핍절이 생산됩니다. 이런 것과도 싸워 이겨야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죄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승리하여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경건한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가 기록될 때는 주후 90년 경입니다. 당시는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가(Titus Flavius Domitianus. 51.10.24~96.9.18. 열한 번째) 교회를 최고로 박해하던 때입니다. 로마에서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될 때까지 무려 3백 년간의 박해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또 하나의 혼란이 내부에 스며들었습니다. 구세주인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이단이 침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가? 그러면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악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실 수 있느냐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사상입니다.

 

이를 우리는 영지주의라고(γνωστικός, 靈智主義. 헬레니즘 문화에서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 사상이 조화되어 나타난 이원론적 사상) 합니다.

성도에게 내적으로는 이런 이단 사상 때문에 위기가 왔고 외부로는 엄청난 박해로 인해 믿음이 무너져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도 요한은 성도들이 믿음을 잘 지키고 승리하는 자가 되기 위한 처방전을 제시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안내합니다.

 

오늘 본문이나 사도 바울이 기록한 엡 06:12 절을 보면 믿음의 사람이 싸워야 할 실제 대상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밝힙니다.

우리에게 주적이 누구이며 또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만 신령한 전투에 대한 승리를 보장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에베소서 0612절을 찾아서 같이 읽도록 합시다.

 

엡 0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이 누구입니까? 악의 영들이 누구입니까? 사탄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십 일간 금식하신 후에 찾아와서 시험한 자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는 세력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어 편당심(偏黨心)을 일으키게 하며 교회를 흔드는 일을 사주하는 영의 실존입니다.

이 사탄은 빛과는 상관이 없이 어둠의 세계를 계속 조종합니다. 이 사탄에 대하여 성경은 미혹하게 하는 자(요일 02:26, 03:07)라고 정의합니다.

우리가 대적하여 싸워야 할 주적은 바로 사탄입니다. 이 사탄이 자기를 아름답고 화려한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우리를 찾아옵니다(고후 11:24).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일 04:0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2. 구원받은 성도는 믿음으로 신령한 싸움을 싸웁니다.

 

0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가 정복한다, 이긴다는 말을 쓰면 먼저 무력 행위를 떠 올립니다. 근대 역사를 보더라도 승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무력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긴다는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어떤 물리력보다 지적 능력이나 기술, 경제의 능력 등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보이지 않는 힘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소리 없는 전쟁이라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끊임없는 경쟁 관계에서 서로가 열렬히 투쟁합니다. 만일 이런 경쟁에서 밀리면 실패자 혹은 낙오자가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살이 자체가 긴장 속에서 치르는 전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이기고 봐야 합니다.

지는 것은 곧 불행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때문에 이기고 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현상은 가히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신약성경에 이긴다는 단어가 27번 나옵니다. 그 가운데 24번이 요한이 기록한 문서에 집중해서 나옵니다.

04. 세상을 이기느니라(νικᾷ). 현재 직설법(진행형)으로 계속해서 이기고 있음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면 세상을 이기는 근본 열쇠가 무엇입니까?

오직 믿음입니다. 그러면 이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생명력이 있는 믿음입니다. 즉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살아 있는 힘 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마 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으리라.

 

신앙인이 세상과의 투쟁 속에서 계속된 승리의 삶을 유지하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긴 이김 즉 그 힘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나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자신감이 있습니까?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고 담대히 고백하여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적대하는 그 어떤 세력도 이길 수 있습니다. 나는 신령한 생활을 가로막는 어떤 것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확신으로 나아갑시다.

패배 의식을 극복하자는 말입니다. 내 힘으로는 어떤 일 하나도 할 수 없습니다. 이길 수도 없습니다. 반면 주님의 능력을 배경으로 나아갈 때는 어떤 일이든지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막 0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롬 0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 나는 하나님 말씀으로 신령한 싸움을 합니까?

 

0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믿지 아니하면 세상을 이길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오심을 내가 믿어야 합니다.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은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메시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문구는 01절의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 나의 구세주이다. 즉 예수님을 영접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자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요 0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예수님의 생명이 임합니다. 0512절을 보십시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음을 전합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 있는 이 생명을 통해서 일합니다.

요일 02:12 자녀들아, 아비들아(13), 청년들아(13), 14절에 아이들아, 아비들아, 청년들아. 너희가 강하고. 라는 말이 중복되어 나옵니다.

이는 육신이 어리고 젊고 나이가 많음을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 왕성하고 성숙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누구든지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에 유엔에서 나이 세대를 이렇게 구분해서 발표했습니다. 5단계로 구분했는데 간단히 안내하겠습니다. 미성년자는 0~17세로 구분하였습니다.

청년의 시대는 18~65세까지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온 세계가 65세까지 청년의 때로 구분하니까요? 연세가 좀 들었다고 여기는 분도 노년의 때 아닙니다.

65세 이전은 다 청년이죠. 그리고 중년은 65세 이상 79세까지입니다. 80세부터 99세까지가 노년의 시기입니다. 이때는 마음뿐이지 원만하게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행진곡조로 부르는 찬송가가 하나 있지요. 02절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받아 가진 평화의 복음 거룩하신 말씀이로다. (함께 불러 봅시다)

393장 우리들의 싸울 것은 혈기 아니요.

우리들의 싸울 것은 혈기 아니요. 우리들의 싸울 것은 육체 아니요. 마귀 권세 힘써 싸워 깨쳐버리고 죽을 영혼 살릴 것일세. 일심으로써 힘써 나가세. 일심으로써 힘써 싸우세. 마귀들의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우리들의 입은 갑옷 쇠가 아니요. 우리들의 가진 검은 강철 아니요. 하나님께 받아 가진 평화의 복음 거룩하신 말씀이로다. 일심으로써 힘써 나가세. 일심으로써 힘써 싸우세. 마귀들의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믿음의 가족 여러분, 무엇과 싸웁니까? 사탄의 권세와 싸웁니까? 무엇을 가지고 싸웁니까?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입니까? 아멘입니까?

언제까지 싸워야 합니까? 승전고를 울릴 때까지입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속삭임이 있습니까? 의심을 일으켜 믿음이 무너지게 하려는 속삭임이 있습니까?

세상 가치관과 사고(思考)로 나를 이끌어 가려는 세력은 바로 사탄의 계략입니다. 이 사탄의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참소(讒訴)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참소합니까?

너는 형편없는 놈이야, 너는 할 수 없어, 하나님은 너 같은 존재는 기억하지도 않아, 또 아무개는 형편없는 놈이야,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지 않아 하고 참소합니다. 이거 꼭 이겨내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페르시아의 유명한 대왕이요 장군이던 다리우스 1(Darius 1) 황제가 있었습니다. 유럽을 침략하면서 첫 번째 치른 전쟁이 알렉산더 대제와의 일전이었습니다.

그때 다리우스는 알렉산더 대제에게 병사 한 명을 시켜 선물 하나를 보냈습니다. 선전포고하면서 보낸 것은 참깨가 가득 들어있는 부대였습니다.

그 부대에 깨알이 얼마나 많이 들어있겠습니까? 그것은 다리우스가 우리의 군대는 이렇게 많으니 손들고 항복하라. 너희들은 승산이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참깨가 가득 들어있는 부대를 받은 알렉산더 대제는 답장으로 작은 봉투에다 씨 하나를 넣어서 다리우스에게 보냈습니다. 무슨 씨앗일까요?

 

겨자씨입니다. 이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작다고 무시하지 말라. 우리는 무섭다. 우리는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거칠다. 우리는 너희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결국, 생명력을 가진 알렉산더 대제가 승리했습니다.

생명의 힘, 살아 있는 힘은 대단히 귀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기독교를 겨자씨에 비유하는 생명의 종교라 함도 이런 살아 있는 생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섬도 여러분, 때로는 나의 환경이 불우하고, 병들어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사업이 힘들고 부진하여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의 삶이 침체의 늪에 빠져 절망이 밀려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으로 용기를 내십시오.

분명히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능히 이길 힘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그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믿음의 인생은 달라질 것입니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04:13). 하나님께서 주시면 힘을 받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