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외국 잡지에 실려있는 이야기입니다. 한 부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해수욕장으로 여름휴가를 떠났습니다. 모처럼 바닷가에 온 아들이 수영하면서 파도 타는 것이 재미있으니까 계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이에 불안을 느낀 엄마가 아들을 향해 막 꾸중합니다. 그곳은 위험하니 더 이상 깊은 곳으로 가지 마. 이렇게 강하게 말렸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면서 항변합니다. 엄마, 아빠는 깊은 곳에 들어가도 말리지 않으면서 왜 나만 가지고 그래. 그 소리를 들은 엄마가 말합니다. 얘야, 아빠는 생명보험에 들어 있지만 너는 생명보험에 들어 있지 않단다.
성도 여러분,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지요? 아빠가 사고로 죽으면 보험회사에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황금만능주의 속에서 사는 현대인의 스타일을 대변하는 말로 들려지죠? 진정한 삶의 가치성이 어느 곳에 있느냐? 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죽어가는 영혼에 관하여 집중해야니다. 나아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에 전념하여야 합니다.
한 사람의 심령에 주님의 영원한 생명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한 여자가 드라크마 한 개를 잃었다 찾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죽어가는 영혼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라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잃은 영혼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로 정했습니다.
1. 열 드라크마의 상징성을 보겠습니다. |
0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드라크마(δραχμή)는 헬라 화폐 단위로 은전(銀錢)을 말합니다. 당시 로마의 문화권에서 데나리온(δηνάριον)에 해당합니다.
그 무게가 4.3g쯤 됩니다. 우리나라의 구형 10원짜리 동전 정도의 무게(?)입니다. 그렇게 크지 않은 주화(鑄貨)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 가치는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겠지만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합니다. 08절을 보면 열 드라크마로 나옵니다. 노동자의 열흘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일종의 비상금입니다.
그러나 열 드라크마는 이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이 드라크마가 특별한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결혼식에서 남편이 아내를 맞아들일 때 사랑의 증표로 장식하는 줄에 드라크마 열 개를 꿰어 선물하던 용도로 쓰였습니다. 여자들은 이것을 주로 머리띠로 사용하였습니다. 때로는 팔찌나 목걸이 등으로 착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세메디(semedi)라 불렀습니다. 이 세메디는 잠을 잘 때도 잘 풀어놓지 않는데 이는 남편에 대한 사랑과 신뢰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남자가 도둑과 강도도 세메디만은 훔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부채가 있어서 모든 재산을 압류당하여 빼앗긴다고 해도 이 세메디만은 제외하였다고 합니다. 여자에게는 사랑과 생명을 상징하는 물품입니다.
그러므로 세메디는 자기가 잃어버리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장신구입니다.
아내는 세메디를 아침마다 만지면서 남편을 사모하는 마음을 더욱 강하게 했을 겁니다. 얼마나 좋은지 정말 감격스러운 장신구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분명히 열 개여야 할 드라크마가 오늘따라 아홉 개밖에 없습니다. 세메디로 엮어진 열 개의 드라크마 중 하나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세메디 꾸러미에서 한 개가 집안 어느 구석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여자에게 있어서는 절망에 가깝도록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을 것입니다. 도저히 일손도 잡히지 않습니다. 실망할 남편을 생각하니 밥맛도 없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2. 이 여자는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일에 전념합니다. |
0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켜고(ἅπτω), 쓸며(σαρόω), 찾는다(εὑρίσκω)는 세 동사가 나옵니다. 문장 구조가 모두 반복과 계속을 나타내는 현재 직설법입니다.
반드시 찾고야 말겠다는 여자의 집념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집념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여자는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를 찾기 위하여 최고의 노력을 하였습니다. 마치 잃은 양을 찾는 목자처럼 쉬지 않고 집을 쓸고 또 쓸었습니다. 힘든 것도, 피곤한 것도 모른 채 말입니다.
모든 일을 제쳐두고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았습니다.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가옥의 구조를 생각하면 얼마나 어려운가를 다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집 안에는 거의 빛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출입문 외는 작은 18인치 정도 되는 작은 창문 하나 정도가 있습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서는 대낮에도 등불을 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집안이 어두웠습니다.
바닥은 진흙 바닥에다 마른 갈대나 풀을 집안 구석마다 깔아 놓습니다. 작은 드라크마 하나가 어디에 떨어졌는지 찾기가 매우 힘들 것입니다.
이런 일을 만나면 대부분 사람은 드라크마가 방안 어느 구석에 있을 거야, 언젠가는 찾게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찾는 일을 포기합니다.
사실 드라크마 하나를 찾기 위하여 온 집을 뒤집어 놓을 필요가 있습니까? 처음부터 찾는 일을 포기하고 하루 일을 하여 드라크마 하나를 버는 것이 더 편합니다.
그런데도 이 여자가 소란을 떨며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를 찾아야 합니까? 예, 당연히 찾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은 것일지라도 가난한 이 여자에게는 생명처럼 귀합니다. 무엇보다 처음 사랑의 표적입니다. 만일 찾지 못하면 결혼의 증표로 준 남편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면목 없는 겁니다.
하나가 없는 아홉 개의 드라크마라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그저 노동자의 9일 치 품삯일 뿐입니다. 정성이 담긴 사랑의 상징물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여자는 남편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꼭 찾아야 합니다. 열 개의 드라크마로 이루어지는 세메디를 맞추어야 합니다.
집안 온 바닥을 뒤집어 놓고 구석구석을 쓸며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잃은 드라크마가 안 보입니다.
한 시간, 두 시간, 한나절 흘러갔음에도 찾지를 못했습니다. 얼마나 긴장됩니까? 정신 줄이 왔다가 갔다가 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쓸고 닦는 집요한 일 끝에 그토록 찾던 드라크마를 찾았습니다. 기쁨으로 드라크마를 손에 잡는 순간 행복을 회복합니다.
3. 이 여자는 드라크마를 찾은 후 잔치를 벌입니다. |
0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함께 즐기자. 여기 벗과 이웃은 모두 여성명사 복수입니다. 이 잔치는 여자들만의 잔치입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은 여자는 기쁨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잔치 비용이 이미 찾은 드라크마보다 훨씬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 경제면에서 손익을 한 번 계산해 볼까요? 벗과 이웃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푸는 일보다 잃은 드라크마를 찾지 않는 것이 차라리 더 났습니다.
경제 논리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주님께서 특별한 의미로 들려주셨기에 영적 가치가 중요합니다. 잃은 영혼을 찾은 기쁨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 줍니다.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누구나 생명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세상에는 돈, 명예, 부귀, 인기 등의 소중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으로는 세상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으나 세상 것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살 수도 없습니다.
주님은 온 천하를 얻는다고 할지라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하시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얼마나 강조하셨습니까?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사람은 자기 생명이 소중한 것을 잘 압니다. 그러면서도 세상 것을 생명으로 바꾸는 일을 예사롭게 합니다.
여러분은 생명이 살아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사십니까? 살아 있는 자체를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삽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와 교인은 어떤 교회이고 어떤 교인입니까? 잃은 양을 찾아다니는 목자의 심정으로 영혼 구원을 위해서 애쓰는 교회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 소중함을 알고 그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힘쓰는 교회입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이 주님께로 왔을 때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잔치하는 교회가 됩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됩시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안타까워하는 마음 말입니다. 그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마음 말입니다. 방황하는 영혼들에 대해서 하나님만 안타까워하십니까? 우리도 안타까워하여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공동체는 잃어버린 영혼에 대하여 목자의 심정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감동이 오고 아멘으로 화답하시면 좋겠습니다.
온 교회 성도가 잃은 양을 찾아다니는 목자의 심정으로 전도에 나섭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믿음의 가족 여러분, 오늘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여자의 이야기는 우리 하나님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 들으면서 자기를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도 흑암 속으로 떨어져 내린 적이 있었는지 먼저 생각하십시오.
나는 하나님과 친밀하여 그 사랑을 누리고 그분께 전심으로 예배하며 섬겨야 할 그 자리로부터 추락하여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산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행복이 세상 소유에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 가치와 신령한 신분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는 가격표를 붙여서 팔아치우는 상품 같은 물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귀한 자녀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가난하고 비천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아무리 아프고 힘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잃어버려진 영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하나님께는 지극히 소중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이웃이 있습니까? 참으로 소중한 영혼입니다. 하나님께는 더욱 소중합니다.
딤전 02:0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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