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 37

[맥추감사주일] 다윗왕의 감사를 본받읍시다(대상 29:10~19).

저는 목회하는 동안 특별히 감사하는 조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조건을 지난 5월 중국 쓰촨성 대 지진 때 일어난 하나의 이야기를 들어 저의 마음을 대신하겠습니다.중국 쓰촨성 대지진 발생 8일째를(2008-05-19) 맞아 백일쯤 된 아기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던진 한 부인의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두장옌(都江堰)시의 한 무너진 주택에서 20대 부인이 무릎과 두 팔로 땅을 짚고 몸을 웅크려 공간을 만들고 죽었습니다. 숨을 거둔 여자의 시신을 구조대가 발견하였습니다. 시신을 들어내자 놀랍게도 아기는 별 상처 없이 엄마가 온몸으로 만든 공간 아래서 젖꼭지를 물고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습니다.아기가 무너진 건물에서도 다치지 않은 것은 엄마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쏟아지는 콘크리트 더미와 흙이 흘러내리..

[어린이주일] 자녀의 신앙교육 제대로 합시다(삿 02:01~15).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현재 교육은 죽었다고 말합니다. 교육학(敎育學)은 있지만, 교육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가르치는 것을 교(敎)라 하고 길러지는 것을 육(育)이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교육 현실은 그렇지를 못합니다.가르침은 많지만, 육성은 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왜냐면 현재 교육 방법이 돈벌이 기술자(?) 만드는 교육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고액 과외 문제가 심각한 수준까지 온 것 아닙니까? 믿음의 가족 여러분, 사회교육을 보십시오. 부실하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러면 가정교육은 어떻습니까? 대다수가 실패합니다. 이혼, 개인주의, 물질 만능주의 등으로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러니 무슨 좋은 교육이 제대로 나오겠습니까?다는 아니지만, 일부 부모는 자녀를 경마용 말처럼 무엇이든지 일 등을 ..

[부활주일] 예수님께서 사망을 깨뜨렸습니다(고전 15:50~58)

한 신실한 기독 신앙인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해 있는 한 건설 회사와 용역계약을 맺고 끝없는 모래사장이 펼쳐진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갔습니다.섭씨 40도가 넘는 작열하는 뜨거운 햇볕 아래 일하였습니다. 그러다 같은 직장에 있는 이슬람교도 무슬림을 사귀게 되었습니다.하루는 무슬림 교도가 자기가 믿는 교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으로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하루 다섯 번씩 기도한다. 엄한 규율대로 살아야 하고 반드시 메카를 순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큰 자랑은 우리나라 메카에 있는 모하메드의 무덤이다. 기독교의 교주인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지만 우리 교주의 무덤은 웅장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모하메드의 이름다운 분묘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야. 이 말을 들은 크리스천이 대답합니다. 그래 ..

[종려주일] 가상칠언의 의미를 아십니까? (성경 눅 23:32~49)

한국전쟁 참전 16개국의 일원으로 6천여 명의 군대를 우리나라에 파견한 에티오피아(Ethiopia)라는 아주 고마운 나라가 있습니다.이 나라는 아프리카 동부 중심에 위치하며 현재는 세계 최빈국(最貧國)의 하나입니다. 주 후 3세기부터 기독교를 신봉하는 나라로 지금도 전 인구의 약 3분의 2가 기독교인이며 매년 세례식 때면 공동으로 세례를 받는다고 합니다.이 나라에는 최고 명절로 「마스칼」이란 절기가 있습니다. 이 마스칼은 에티오피아 말로 십자가의 재발견이란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의미를 발견한 날이라 해서 명절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을 보십시오.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많이 세워져 있습니다. 또 우리 교회가 있는 지역만 하더라도 십자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이 많은 십자가..

[성탄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눅 01:26~48)

우리가 가끔 이웃의 생일 축하회에 초대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마음껏 축하합니다. 흔히 갖는 생일 축하란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서 한해 한해 무사히 건강하게 성장하였음을 기뻐하면서 축하하는 일입니다.또 위대한 성인의 생일을 기리고 기념하는 것도 한 생명이 태어나서 위대한 업적을 남겨 놓았기에 그의 생애가 시작된 날을 의미 있게 기억하는 겁니다.그러나 오늘 우리가 기쁨으로 맞이하는 성탄은 예수님의 단순한 생일 축하가 아닙니다. 탄생이기보다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들어오심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Christ)와 매스의(mass) 두 말이 합하여 된 말로서 매스란 예배라는 말과 ..

[추수감사주일] 나는 초막절 감사를 드립니다(레 23:33~44)

미국은 여러 나라가 모인 합중국(合衆國) 형태입니다. 종교도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신학 사상 가운데 종교 다원주의(多元主義)가 있습니다.종교 다원주의는 사람마다 각각의 종교로 구원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교리는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그들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불교, 힌두교 등 어떤 종교도 구원이 있다. 꼭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이런 식입니다.종교 다원주의는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나 진리를 무시합니다. 이 사상은 무신론보다 더 무서운 적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다른 복음이요 저주받을 복음입니다(갈 01:09). 행 0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

[어버이주일] 영적 권위로 효도를 받읍시다(창 47:01~31).

회사에 다니는 한 아버지가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니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느닷없이 포옹하면서 아버지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는 겁니다. 왠지 안겨드는 자세가 서투르고 어색했지만 처음 아들한테 안겨보는 포옹이라 기분이 좋았습니다.다음날도 기대하면서 집에 들어서니 아들이 전과 같이 역시 본체만체합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아 오늘은 왜 안기지 않니?아들이 하는 말이 어제는 선생님이 엄마 아빠를 포옹해드리라는 숙제를 내렸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렇게 했어요. 숙제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조금 더 자세하게 나누면 부자(父子), 부녀(父女), 모자(母子), 모녀(母女)로 나누어집니다. 이 네 가지 관계에서 제일 어려운 관계는 무엇일 것 같습니까?아버지와 딸,..

[어린이주일] 우리도 테필린을 교육합시다(신 11:18~25).

오늘은 2023년 5월 첫 주일 어린이주일입니다. 그러나 이 주일은 성경이 명확하게 규정한 절기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미 교회의 절기로 보편화되었습니다.어린이주일이 교회에 자리를 잡은 것은 167년 전인 1856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첼시에 있는 유니버설리스트 제일교회 목사 찰스 레오나르도가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주일로 지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린이주일을 한 때는 꽃 주일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1870년 미국의 한 조합 교회에서 어린이주일을 맞아 예배당을 꽃으로 장식하고 샤론의 꽃 어린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 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우리나라도 초창기에는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주일로 지켰습니다, 일 년 중 꽃이 만발한 시기가 푸르고 아름다운 어린이의 이미지와 잘 연결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다 195..

[부활주일} 내 믿음이 부활해야 합니다(고전 15:20~28).

동양선교회의 창립자인(미국 일리노이주 툴론 1868.3.13.~1924.9.24.) 찰스 카우만(C.E.Cowman) 선교사가 미국 시카고의 한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소년이 미술품이 전시된 상점 앞에 서서 무엇인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넋을 잃고 쳐다보는 소년의 모습이 너무도 진지해서 카우만은 그 소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물었습니다. 얘야, 저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니? 그러자 그 소년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예, 선생님, 저분은 저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구세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인 병사들이고요. 울고 있는 분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이십니다. 카우만은 참으로 기특하다며 아이..

[종려주일] 구레네 시몬의 십자가(막 15:16~23)

주님께서 두 제자를 데리고 한 길에 들어서서 꼭 같은 십자가 하나를 주셨습니다. 나는 이 길 끝에 가 있을 테니 그곳까지 각자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 제자는 가볍게 십자가를 메고 갑니다. 반면 두 번째 제자는 매우 힘들어하면서 뒤처져 겨우 앞의 제자를 따라갑니다. 십자가를 진 지 하루 만에 첫 번째 제자는 길 끝에 당도하여 십자가를 주님께 넘겨 드렸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첫 번째 제자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씀하십니다. 아들아, 잘했다. 반면 두 번째 제자는 이튿날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했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를 주님의 발아래 내동댕이치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주님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저한테는 다른 제자보다 훨씬 무거운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제가 이제야 온 것도 그 때문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