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5년 말씀

신령한 행복의 삼대 조건이 있습니다(살전 05:16~1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5. 3. 1. 18:19
728x90

UN의 산하 SDSN에서(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매년 320일 발표하는 세계 행복 지수 보고서가 있습니다. 이 발표에 의하면 2024년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GDP)2024년 세계 14위입니다. 그런데 세계 행복 지수는 52위입니다.

1위는 핀란드, 2위 덴마크, 3위 아이슬란드, 4위 스웨덴, 5위 이스라엘, 6위 네덜란드, 7위 노르웨이, 8, 9위 스위스, 10위 호주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2024년 발표처럼 52위를 유지하고 있을 것 같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2024123일 대통령의 계엄령 발표로 상당히 추락했을 것 같습니다.

 

167개국을 대상으로 2024년 민주주의 지수를 발표했습니다. 노르웨이가 16년 연속 1위이고 한국은 32위입니다. 한국은 완전한 민주주의서 탈락했습니다. 전례 없는 경제위기와 불안 속에서 현재 분위기는 매우 무겁고 우울합니다.

이제는 경제 후진국들보다 행복 지수가 매우 낮아졌습니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긴 터널 입구에서 고단한 2025년을 예감합니다.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을 먹은 만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링컨). 그러나 행복한 삶은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행복은 일상의 삶에서 누리기 위하여 부단히도 노력해야 합니다. 저절로 굴러오는 열매가 아닙니다.

행복 지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인가를 놓고 인구통계학적인 변인과 여러 심리적, 행동적 변인을 포함해 회귀분석을 하여 나온 결론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나이, 성별, 교육 수준, 결혼 여부, 종교 등은 행복 수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따라 행복 지수는 편차가 2배나 됩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오늘 말씀은 바로 행복으로 가는 통로입니다. 행복의 비결입니다. 세상의 행복이 아니라 신령한 행복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일 것 같습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행복 선언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신령한 행복의 삼대 조건이 있습니다.로 정하고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은혜의 시간 되기를 원합니다.

 

 

1. 신령한 행복의 첫째 조건은 항상 기뻐하는 삶에 있습니다.

 

16 항상(πάντοτε) 기뻐하라(χαίρω 카이로).

 

행복의 삼대 조건 가운데 제일 먼저 주신 말씀이 기뻐하라 입니다. 만일 기도하라. 가 먼저라면 이 말씀을 받는 우리 마음이 무거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기쁩니까? 행복합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명령을 주시는 이유는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내 안에 감정이 기쁘거나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환경이 우리에게 기쁜 감정을 막 허락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세상 사람이나 느끼는 감정은 같습니다. 조금 더 즐겁거나 조금 더 슬픈 정도의 차이입니다.

 

사람의 하는 일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실수가 따르고 불만족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쁨을 유지하는 것은 요즘 같은 환경에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잘 이해하는 사도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먼저 기뻐하라는 문장 구조를 보십시오. 현재 명령어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쾌락으로 인한 현재 기쁨을 말합니까? 그건 전혀 아닙니다.

기뻐할 수 없는 환경에서 기뻐할 수 있는 환경으로 전환하라는 뜻입니다. 나는 기쁘다. 라는 생각을 마음에 항상 품고 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행복이 보이고 미래가 보입니다.

 

빌 04:0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기쁘고 즐거운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성경은 주 안에서 찾으라고 명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기쁘고 즐거워하라고 말합니다. 기쁨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 안에서 생각할 때 찾아오는 행복 요소입니다.

기쁨의 의미는 유쾌하다, 은은히 행복하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쁨을 유지하는 비결은 주님 안에서 지낼 때 가능합니다.

주님 안에서 은은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원리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해하고 깨닫습니다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을 따라 예수님 안에서, 기뻐해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만 해서는 안 됩니다. 기뻐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우리의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입은 내 안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반대로 우리의 입은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따라서 내 감정을 운전해 가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이 찾는 기쁨은 주님 밖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출세의 기쁨, 성공의 기쁨, 인기 누리는 기쁨, 돈 벌고 잘 사는 기쁨, 향락의 기쁨은, 그렇게 오래 가지 못합니다. 속성이 극히 제한적인 잠깐입니다.

 

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그러면 이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 가운데 더러는 아니 목사님, 환경이 별로 좋지도 않은데 어떻게 기뻐하며 산다는 말입니까 라는 반문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 옳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잘 적용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성도의 기쁨은 세상의 환경에서 찾는 것이 아닙니다. 소유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물질 차원에서 누리는 향락적 기쁨이 아니라 오직 주님과의 만남에서 오는 신령한 기쁨입니다. 사도 바울이 무슨 좋은 환경에 처했습니까? 무슨 좋은 것을 소유했습니까?

오히려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의 삶이 비난과 배척과 매 맞음과 감옥에 갇혔습니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힘든 환경을 만났습니다.

우리의 기쁨도 환경이나 소유물에서 오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 안에 거할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해. 라는 복음송을 부르게 됩니다.

 

 

2. 신령한 행복의 둘째 조건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에 있습니다.

 

17 쉬지 말고(ἀδιαλείπτως 아디알레이프토스) 기도하라.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성도치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쉬지 말고라는 단서가 하나 붙어있는 게 문제(?)입니다.

간혹 새가족 중에 이 말을 오해하여 사람이 어떻게 24시간을 계속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하고 반문하는 일도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 항상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일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숨을 쉬지 못하면 죽습니다.

 

우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바울의 의도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단어가 신약성경에서 바울만이 사용한 단어로 바울 서신에 4번 나옵니다.

살전 05:17 오늘 본문에서 사용했고, 01:09에서 로마인 기독교인을 위한 바울의 중보 기도에서 사용했고, 살전 01:03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를 위한 중보 기도에서 사용했고, 살전 02:13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반응에 대하여 사용하였습니다.

 

바울은 기도에 항상 힘쓰며(12:12),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06:18) 하였고 예수님도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18:01) 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따라서 쉬지 말고라는 부사는 끊임없이, 중단 없이, 계속 이런 의미입니다.

바울이 4번 사용한 문맥을 보면 타인을 위해 끊임없는 관심을 가질 때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면 쉬지 말고라는 부분은 일상생활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뜻이 됩니다. 우리 모두의 삶을 기도화 하라는 말씀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엡 0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우리 믿음의 가족 모두가 하나님과 꾸준한 교제를 토대로 신앙이 여물어 갑니다. 우리의 매사 생활이 기도화 될 때 신령한 자리에 들어갑니다. 성경은 그 어떤 일이라도 기도를 통해서 풀고 열 수 있음을 안내합니다. 기도는 삶의 마스터키입니다.

문제를 풀고 열어나가는 방법이 기도이고 신령한 은혜를 받는 가장 큰 통로가 기도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기도를 통해서 응답을 체험하고 기뻐하는 삶을 누립니다. 반면 기도를 게을리하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에도 지장을 초래함을 기억하십시오.

 

삼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이화여대 초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 박사가 어린 시절 선교사의 집에서 지낼 때입니다. 많은 신앙훈련을 받았는데 김활란에게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할 것을 명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잠자기 전 선교사는 김활란에게 하루에 세 번 기도했는가 확인하려고 물었습니다. 그때 김활란은 한 번밖에 안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교사가 왜 한 번밖에 안 했느냐고 책망하자 김활란은 대답하기를,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기 시작해서 오늘 종일토록 기도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답했습니다.

 

 

3. 신령한 행복의 셋째 조건은 범사에 감사하는 삶에 있습니다.

 

18 범사에 감사하라(εὐχαριστέω 유카리스테오).

 

범사(凡事)는 모든 일 이런 뜻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할 때의 의미는 감사가 끊어지지 않는 삶을 말합니다. 당연히 불평 뚝, 원망 뚝입니다.

성도가 범사에 감사하는 방법은 구체적으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반복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아멘으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아멘으로 고백하면 복잡한 마음이 조용하게 정리되어 평안이 옴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아멘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담긴 단어입니다.

 

감사를 생활화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평강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범사란 모든 상황과 환경 즉 우리의 생활 전부를 말합니다.

따라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무슨 일이 있든지,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지 간에 하나님 중심으로 풀어나가겠다는 고백입니다.

 

엡 0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고 또 해서는 안 될 일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반드시 꼭 해야 할 일은 감사하는 일에 속하는 일입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주로 불평 영역에 속하는 일입니다.

지난 생활을 돌아보면 이 불평이 감사를 깨뜨리는 주범 아니었습니까?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불평의 요소들을 제거하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많아지고, 불평하면 불평할 일이 더 많아지고 원망하면 원망할 일이 더 많아지는 것을 아시지요?

감사는 긍정의 눈으로 볼 때 가능합니다. 감사는 자기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듭니다. 나아가 이웃이나 다른 사람의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골 0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머리가 하얗게 된 노인 한 분이 찌그러진 빵 하나를 식탁 위에 놓고 두 손을 모은 채 하나님께 머리 숙여 기도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감사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미국의 사진작가 에릭 엔스트롬이(Eric Ekstrom 1875~1968) 1918년에 찍은 흑백 사진입니다.

미네소타의 보베이(Bovey) 탄광촌에 있는 자기의 작업실에 신발 흙 떨 개를 팔러 온 찰스 윌덴(Charles Wilden)의 실제 사진입니다.

엔스트롬은 식사하는 노인을 처음 보았을 때 비록 세상 것을 많이 갖지는 못했지만,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으니 그 어떤 사람보다 많은 것을 가진 분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림의 원작인 사진 작품은 흑백과 세피아톤 사진으로만 현상되었으나 훗날 Enstrom의 딸인 로다 나이 버그(Rhoda Nyberg)가 유화로 그려 남긴 것이 지금 우리가 보는 작품입니다.

 

그 밑에 독일 시인 괴테의 글귀가 하나 적혀 있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못한 자는 인생의 맛을 모른다. 라는 글입니다.

저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찐해 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것을 소유하고도 불평과 원망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 젖은 빵 하나를 놓고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위에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세계사 가운데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불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독일의 괴테일 것입니다(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다 행운아라고 했고 불행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평생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한 적은 하루도 없습니다.

그는 좋은 교육을 받았고 국가의 재상까지 지냈으며 작가로도 명성을 떨쳤습니다. 또 노년인 82세에 쓴 파우스트는 세계적인 걸작이 되었습니다.

가장 존경받던 최고의 인물 괴테, 당대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불리었던 그도 자기 스스로는 행복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행복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그때부터 행복한 삶은 더욱 가까이 있습니다. 아주 가까이 바로 우리 속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작은 문장들이 신령한 행복의 삼대 조건입니다. 행복을 여는 열쇠입니다. 우리 모두 잘 활용하여 복된 삶을 누립시다.

우리 모두 가장 중요한 순간은 지금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입니다.

 

E. M. 바운즈(Edward McKendree Bounds, 1835-1913). 미국의 변호사이자 남북전쟁 당시 남군에서 군목으로 섬긴 감리교 목회자입니다. 이분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로 세상을 이끌어가신다. 세상은 기도로 형성돼 있고 기도가 많은 세상일수록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기도가 많을수록 사탄을 이기는 힘도 많아질 것이다. 성도들의 기도는 세상에서 일하는 하나님의 보급창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