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5년 말씀

나도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눅 19:01~1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5. 2. 1.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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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인터넷 2009210일 한 인터넷 사이트에 이런 내용을 올렸습니다. 궁합 좀 봐주세요. ㅠㅠ 급해요. ㅠㅠ 7년 만난 남자친구가 있어요.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남자친구 엄마가 궁합(宮合)을 보고 반대해요. (ㅠㅠ)
궁합 보실 줄 아는 분 있으시면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너무 답답하네요. ㅠㅠ. 남자 198315일 오전 11, 여자 1982322일 오전 0715. 그러자 좀 본다는 사람이 이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올렸습니다.

두 사람의 궁합은 성격 심리 코드에서는 무난하나 사주(四柱)의 조화에서는 흠이 크다. 남자 쪽에서 궁합이 나쁘다고 했다면 어이없다. 오히려 남자의 사주가 여자를 힘들게 하는 사주고 이혼이나 사별이 있는 사주로 보기도 한다.

두 사람은 지금 사귀는 처지라 서로의 장단점을 상세히 알 수는 없어 궁합이 나쁘다고 결혼을 반대하니 기분이 매우 불쾌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두 사람이 결혼하고 한 울타리에 들면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궁합이다. 한 번뿐인 인생 서로 잘못 만나 불행하게 사는 것보다 좋은 사람 만나 한평생을 알콩달콩 잘 살라고 반대하는 것이다. 지안명인 미담. 즉 헤어짐을 받아들이라는 그런 내용입니다.

 

과연 이런 사주팔자 궁합 같은 것에 의해 정든 사람과 헤어져야 할까요? 아무래도 아니죠? 물론 서로가 잘 만나야만 행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만 사주팔자와의 만남은 불행한 인생길의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행복한 인생은 복된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자녀는 좋은 부모를 만나야 하고 아내(남편)는 좋은 남편(아내)을 만나야 하며 제자는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더 중요한 만남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입니다.

 

어부 시몬이 주님을 만난 후 변하여 수제자가 되었고 핍박자 사울이 변하여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 삭개오도 죄인 취급을 받던 사람이었으나 예수님을 만난 후 새로운 삶,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시간 우리 성도 여러분도 삭개오처럼 주님을 만나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래서 말씀 제목을 나도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로 정했습니다.

 

 

1. 삭개오의 인생 이력서

 

0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삭개오(Ζακχαος) 유대인의 전통 이름으로서 본래의 뜻은 청결한 사람 또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여리고에서 직장은 세리장(稅吏長)입니다.

삭개오가 일하는 여리고는 베뢰아 지방으로부터 요단강을 건너가는 통상인들의 길목에 있는 국경도시입니다. 따라서 세관이 있는 곳입니다.
이 세관은 주로 길르앗 지방으로부터 유입되는 향유와 여러 상품에 대한 통관세를 매기고 지방 특산물에 대하여 세금을 징수하였습니다.

삭개오는 로마의 공권력을 이용하여 자기 의도에 따라 세금을 징수하면서 부를 축적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를 소개할 때 부자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닙니다. 그래서 당시 세리에게는 허가 낸 도둑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따라서 세리를 향한 동족 시선도 매우 싸늘했습니다. 특히 세리가 지나가면 뒤에서 저기 세리가 지나간다. 하면서 욕을 하고 침을 뱉는 일도 하였다고 합니다.

 

딸 가진 사람들은 사위로 삼지 않는다는 정서도 배어 있었습니다. 세리라는 직업이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큰 불쾌감과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직업인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정황이니 사람들이 삭개오를 얼마나 미워하였겠습니까? 아마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도 꺼릴 정도로 싫어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세리장 삭개오의 교육 수준을 간단하게 추적해 보겠습니다. 세리장은 당시의 로마의 공권력을 등에 업은 사람으로서 사회생활 면에서 상당한 식견과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국경도시의 한 세관장으로 근무하려면 상당한 언어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3, 4개국 정도의 외국어를 무난히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정도의 언어 능력을 갖추려면 일찍부터 부모의 교육열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침묵하고 일절 침묵합니다. 그런데도 짐작한다면 삭개오는 회당교육에서 상당한 지식을 쌓은 것 같습니다.

 

 

2.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는 일에 걸림돌 되는 요소를 극복했습니다.

 

0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 이러라.

 

앞서 03절 말씀을 보시면 삭개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일찍부터 듣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몇 가지 들어 보겠습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기적과 나병환자가 치료받고 못 걷게 된 사람이 일어난 일과 맹인이 눈을 뜬 사건 등 예수님이 들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소문 말입니다. 이런 일 속에서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일 것입니다.

 

삭개오는 여리고 경내에서 조금 전에 일어난 일 중에 맹인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통하여 눈을 뜬 기적과 이에 따라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군중(18:35~43; 10:46~52)의 열렬한 지지를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삭개오는 자기와 같은 세리의 직업을 가진 레위 마태를 예수님께서 불러 제자로 삼으신 일입니다. 많은 사람이 세리를 죄인 취급하고 손가락질하는 데도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과 외면하지 않으시는 일이 삭개오를 진하게 감동을 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예수님을 꼭 만나보아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자기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정이 가게 마련입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인지상정(인지상정) 때문에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주는 그분이라면 세상이 답해주지 못한 문제, 자기의 가슴에 도사리고 있는 답답한 인생 문제를 능히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으로 믿어졌습니다.

 

잠 0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08:01~04절을 보면 산상수훈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는 예수님을 허다한 무리가 따랐으나 그 가운데서 오직 나병환자 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만나 고침을 받았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만나 병 고침을 받아야겠다는 그 간절한 마음이 통했습니다. 감히 군중 사이를 뚫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 나병을 치료받았습니다.

 

마 08:0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0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03절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간절히 만나기를 원하나 안타깝게도 예수님을 만나는 일에 걸림돌이 되는 두 가지 난점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는 일에 자기의 키가 작다는 걸림돌이 등장합니다. 또 사람이 많다는 외부 걸림돌 요소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걸림돌로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특별 방법을 찾아내었습니다. 바로 04절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행이 지나는 방향으로 미리 앞질러 가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는 말씀입니다. 앞 절에서 삭개오의 한계 즉 예수님을 만날 수 없게 하는 두 가지 걸림돌을 극복하려는 삭개오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물론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게 됨으로써 세리장의 외적 근엄한 모습이 구겨졌습니다. 좀 점잖은 모습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꼭 만나기 위해서 자기 단점의 한계성을 극복해 내는 놀라운 지혜는 칭찬할 만합니다.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서 할 수 없다는 03절 말씀을 신령한 면에서 우리 믿음의 가족 모두의 생활에 적용해 보면 어떨 것 같습니까? 적용하는 것이 말씀을 듣는 가치입니다.

 

믿음으로 살기 원합니까? 예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는 성도입니까? 그러면 예수님을 만나는 일의 영적 장애 요소를 극복해야 합니다.

삭개오는 생활 환경이 좀 불리하다고 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좀 앞에 있는 돌무화과나무를 활용하여 예수님을 만나려는 계획을 이루었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믿음의 결심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있습니까?

뛰어넘어야 합니다. 결단을 막는 장애물이 있습니까? 뛰어넘어야 합니다. 모든 방해물의 요소들은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02장에 나오는 중풍 병자를 침상째로 매고 온 네 명의 친구도 눈앞의 환경만을 보았을 때는 도저히 집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중풍 병자를 침상째로 메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어내고 달아 내림으로서 예수님으로부터 치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막 02:0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3.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가정을 심방(尋訪)하십니다.

 

0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예수님을 꼭 만나야겠다는 열정과 열망과 간절함 때문에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세리장의 이름을 주님께서 직접 부르십니다. 얼마나 다정하게 들립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 삭개오라는 이름을 어떻게 아셨을까요?

주님의 신적(神的) 전지로 아셨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삭개오의 이름이 이미 여리고 땅에 널리 알려져 있었으므로 무리 중에서, 야 저 돌무화과나무 위에 삭개오가 올라가 있다고 소리를 치는 바람에 알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이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믿음의 가족 여러분도 오늘 이 자리에서 체험해 보지 않으렵니까?

이 놀라우신 주님의 자비를 여러분은 오늘 이 시간 맛보지 않으렵니까? 이 놀라우신 주님의 긍휼하심을 바로 이 순간에 느껴보지 않으렵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우리가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옴을 영안(靈眼)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고후 06:0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오늘 삭개오의 가정을 찾아와 주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가정도 방문해 주시는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심령을 찾아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여러분의 사업장도, 일터도 직장도 찾아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때 비로소 모든 문제가 풀리고 열리고 확장되는 복이 임할 것입니다. 물 댄 동산과 같은 신령한 은혜가 넘친다는 말입니다. 이 시간 삭개오와 같이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집시다. 나 같은 사람도 찾아주시는 은혜를 체험합시다.

 

계 03: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0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직접 부르시고 삭개오는 내려와서 예수님을 즐거움으로 가정에 모셨습니다. 이런 신령한 즐거움 얼마나 복 된 즐거움입니까?

삭개오에게는 세상 권력과 물질로는 채울 수 없는 진정한 행복입니다. 그렇게도 간절히 원한 행복입니다. 이제 삭개오가 찾아오신 예수님을 가정에 모실 때 그 생활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0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서서 주께 여짜오되. 삭개오가 서서 말하고 있는 곳은 자기 집입니다. 아마 식탁이나 탁자 주위에 앉았다가 일어서서 말하는 모습입니다. 여기 일어서서 말한다는 것은 그 말하는 사람의 진지함과 진실성을 나타내는 모습입니다.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예수님에 대한 호칭을 주님이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주님이란 의미입니다. 또 삭개오는 보시옵소서라는 말로서 자기 의지의 단호함과 실천 가능성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당시 랍비들에 의해 제시된 구제비(사회 환원)는 소유 재산이나 혹은 수입 부분에 있어서 20% 정도입니다. 그에 비해 삭개오는 절반을 내어놓겠다고 했습니다. 대단히 파격적 액수입니다.

만일 누구인지는 몰라도 속여서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다는 것은 당시 세리의 환경과 자기의 생활상이 도둑과 같은 모습임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사실 인생의 변화가 여기까지 이를 때 비로소 신앙의 열매 맺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0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공동체에서 소외된 삭개오 배타적 대접을 받아온 삭개오를 공동체로 복귀시켜 이제부터는 누구든지 한 형제로 맞아들이라는 선언입니다.

당시 종교의 복권은 곧 정치와 사회적 복권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서 전인적 인간 구원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도 삭개오처럼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 모두가 삭개오와 같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