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1년 말씀

동상동으로 인도하신 하나님(행 16:06~1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1. 12. 1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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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남부의 건조하고 돌이 많은 지역에서 서식하는 미어캣(meerkat)이라는 작은 동물이 있습니다. 몽구스과에 속하는 포유동물로서 사막의 파수꾼이란 별명으로 불립니다.

대부분 30여 마리 정도가 무리를 지어 굴속에서 삽니다. 이 미어캣은 천적 맹금류를 경계하기 위해 순번을 정해서 감시합니다. 보초를 설 때는 내리쬐는 땡볕에도 나무 꼭대기나 바위 위로 올라가 주위를 살핍니다. 그러다 적이 공격해오면 때로는 몸으로 동굴 입구를 막아 죽음으로 동료를 지킵니다.

혹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있는 보초를 설 때는 우두머리 미어캣을 포함해서 그 어떤 미어캣도 예외 없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리고 무리 중 암컷이 새끼를 낳으면 임신하지 않은 다른 암컷도 젖을 만들어 먹입니다. 미어캣의 삶은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새 성전으로 옮겨와서 첫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에 참여한 여러분 주님의 공동체를 위해 미어캣과 같은 정신으로 섬기기를 바랍니다. 복을받는교회의 전신인 김해삼일교회의 예배 장소 발자취를 돌아보겠습니다. 첫 예배 장소가 김해시 삼방동 656-5 상가 2층이었습니다. 둘째 예배 장소는 김해시 삼방동 692 상가 3층이었습니다. 셋째 예배 장소는 김해시 구산동 701-11 신축 건물입니다.

넷째 예배 장소는 김해시 동상동 현재 건물로서 대지 181평에 옥상 주방 다락까지 포함하여 연건평 350평입니다. 이곳에서 우리 모두 영육 간의 복을 넉넉하게 받기를 소망합니다.

 

이곳 가야로 479번지에 복을받는교회가 세워짐은 하나님의 뜻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예배 장소를 마련하기까지 많은 곳을 다니는 과정에서 이곳을 소개받았을 때 처음에 여기는 아니라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오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복을받는교회 공동체 회원으로 참여하여 믿음 생활을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그 주권을 따라 살아갑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복음의 무대를 옮기는 과정에서 성령님이 역사하신 일을 우리 교회와 비교하여 준비하였습니다. 따라서 제목을 「동상동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으로 정하고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1. 성령님의 인도는 사람의 계획과 다릅니다.

 

0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은 실라와 함께 제1차 사역 현장을 돌아보는 일이었습니다. 특별히 루스드라로 가서는 디모데를 선교에 합류시켰습니다. 디모데의 합류로 인해 바울 선교팀은 더욱 힘을 받아서 복음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바울 선교팀의 사역을 중지시킵니다.

성령님은 성도가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감동과 능력을 주시는 분 아닙니까? 그 성령님께서 복음 사역을 권장이 아니라 막아서다니요? 어찌 된 일입니까?

성령님의 사역 단면만 보면 이 말씀은 분명히 오해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앞뒤 문장 흐름을 연결하여 보면 성령님께서 바울의 복음 사역 막으시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자기의 복음 전파 일정을 따라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거쳐 무시아 앞까지 밀고 나갔습니다. 아시아의 동쪽 경계선에서 소아시아의 북서쪽까지 바울의 제1차 선교지 보다 더 확장하여 밀고 나간 셈입니다. 07절을 보면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려고 할 때 예수님의 영이 완전히 막아버립니다.

비두니아는 소아시아의 북서쪽 흑해를 끼고 있는 해안 도시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바울 선교팀의 진로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 교회가 동상동에 세워지는 과정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나아가는 믿음의 길에 성령님의 뜻과 사람의 계획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바울 선교팀도 아시아에서 전도사역을 막으시는 성령님의 뜻을 미세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저도 우리 복을받는교회가 동상동에 세워지기까지에는 마음고생을 좀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뜻을 내려놓고 보니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한때는 사람의 생각을 따라 장유 S 교회를 매입하려 할 때 마음이 무척 들떴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좋은 교회를 우리에게 주신다고 여기니 잠시나마 행복했습니다. 또 장유 율하 2지구 대지 매입 계획을 할 때도 마음이 매우 들떴습니다. 그 외에도 두 곳 괜찮은 건물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두 막으셨습니다. 왜 막으셨습니까? 이곳 동상동에서부터 복음의 터전을 넓혀 가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상동에 자리 잡은 우리 교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찾았습니다.

 

행 18: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는 메시지는 주님께서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 때 고린도에서 복음 전하는 바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정해진 사람이 고린도에 많이 있으니 힘을 내어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에 대한 하나님 예정과 선택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엡 01:04, 05) 따라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이 개인에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니라. 이 말씀은 복을받는교회에 주신 줄로 믿습니다. 동상동에 내 백성이 많음이니라. 이렇게 받으시고 하나님께 영혼을 올려 드리는 일에 힘쓰시면 됩니다.

 

 

 2. 복을받는 교회에 선교의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0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지금 바울이 머무는 곳은 아시아의 서쪽 끝 드로아입니다(08). 이곳에 일하는 바울에게 환상이 보입니다. 09절 보시면 바울이 환상을 본 것이 아니라 바울에게 보였습니다(ὁράω 호라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비전(환상)은 한 마게도냐(μακεδονιαν) 사람이 바울에게 이곳으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청입니다. 마게도냐가 어디입니까?

유럽에 속한 그리스 북부 지역으로서 이곳 수도가 데살로니가입니다. 세계사에서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B.C. 356~323, 재위 B.C. 336~323)의 고향도 마게도냐입니다.

 

우리를 도우라(βοηθησον). 신속히 와서 도와달라는 간청입니다. 이 말의 배경에는 복음 전파의 긴급성과 절박성이 묻어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이 부분을 기록한 상황을 보면 바울은 마게도냐로 달려가서 구해주어야 할 정도의 절박한 상황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 아시아 지역의 전도를 막으신 이유가 잘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복음의 무대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옮겨야 할 신호탄입니다.  바울은 이 비전을 하나님 뜻으로 받고 즉시 마게도냐로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바로 실천하였습니다. 선교의 비전을 우선순위로 삼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복을받는교회 여러분, 삶의 가치관이 무엇입니까? 선교의 비전을 가슴에 품었습니까? 이 비전을 감당하는 일에 꽃길만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사막을 건너는 일처럼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탐험자에게 사막을 건너는 일이 최고의 시련입니다. 산악지대는 아무리 어려운 코스라도 지도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사막지대는 지도가 필요 없습니다. 바람에 의해 수시로 지형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사막을 건너는 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지도가 아니라 동서남북을 표시하는 나침반입니다.

나침반이 목적지까지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지난 주간 말씀 준비하는 가운데 저의 뇌리를 강하게 때린 말씀이 있습니다. 고정관념을 떨쳐 버리는 메시지인데 제가 소개하겠습니다.

 

사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저는 우리 교회에 주시는 말씀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우리 교회 역사가 오래되었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즐겁고 행복했던 때, 슬프고 힘들었던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중요합니다.  복을받는교회에 적을 두고 살아가는 여러분, 남은 세월 어떻게 살기를 원합니까? 지금부터 다시 힘을 내어 선교의 비전으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는 말씀을 가슴에 품고 믿음으로 나가면 됩니다. 바울의 가슴에 심겨 있던 선교의 비전을 이제 나의 비전으로 전환하여야 할 때입니다. 선교의 비전을 우리 교회 주변에 펼치기 위해서, 선교의 비전을 해외 선교지에 펼치기 위해서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없다는 패배 의식과 모험을 두려워하는 부정(否定)의 생각에서 탈출하여야 합니다. 선교의 사명으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 미래를 개척하는 자는 부정의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선교에 도전하여야 합니다.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복을받는교회 참된 일꾼은 선교를 귀하게 여깁니다. 복을받는교회 일꾼은 인생길이 좀 힘들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복을받는교회 일꾼은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심을 믿고 살아갑니다.

복을받는교회 일꾼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선교에 동참합니다. 사람은 목적지를 정하고 출발할 때 가장 가까운 길, 가장 빨리 가는 길, 가장 좋은 길, 가장 안전한 길로 갑니다.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롬 08:28) 길입니다.

그 길이 때로는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원망이 터져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제일 평안한 길, 제일 안전한 길이 아니라 복 중의 복을 받는 길입니다.

 

지금 우리는 바울 선교팀이 사역하던 시대에 살지 않습니다. 21세기 2021년 말에 살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말씀 원리는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주님께서 바울에게 선교의 비전을 보여주실 때 바울은 그대로 인정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대로 동의하였습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향해 복음 전하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이 해야 할 일은 말씀에 감동하고 선교의 일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만큼 순종하면 됩니다. 신령한 일에 대한 순종은 믿음으로 하면 됩니다. 어려운 것처럼 보여도 감사와 기도로 순종하면 됩니다. 바울은 주님의 뜻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딤전 02:0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오늘 예배를 통해 은혜받고 선교의 비전을 품은 성도에게 복을 주십니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복된 곳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기업이라 하셨습니다(시 16:06).

기업들은 매년 연말이나 연초가 되면 특별 행사를 합니다. 각 부분에서 최고의 판매 실적을 올린 사원에게 판매왕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행사입니다. 자동차 판매왕, 보험 판매왕, 가전제품 판매왕 등입니다. 그런데 판매왕 타이틀을 딸 수 있는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 모두가 제품과 함께 감동도 팔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제품을 팔기 위해 고객 입장에서 감동도 동시에 팔았습니다. 고객은 제품을 산 것과 가슴 뿌듯한 감동까지 산 셈입니다. 이 모두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생생한 역사가 일어나고 생생한 진리가 비전으로 제시되기를 원합니다.

 

독일의 앨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14.~1965.9.4 독일계의 프랑스 의사, 신학자, 철학자, 오르간 연주자] 박사는 누가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냐는 질문에 섬기는 법을 배운 사람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행복은 이웃을 섬기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뜻입니다. 이웃에게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대접만 받겠다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섬기기를 원하는 마음이 복을받는교회에 자리 잡으면 좋겠습니다. 선교의 비전을 품고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는 성도의 마음에 자리 잡으면 좋겠습니다. 소외된 곳과 해외 영혼을 섬기는 일에 감동을 받읍시다. 범사에 감동하는 분이 진정한 일꾼입니다. 주님은 이런 선교의 열정을 죽어가는 영혼에게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물의 끓는 온도가 몇 도인지 아십니까? 100도입니다. 그런데 99도까지는 끊지 않다가 100도가 되면 물을 수증기로 바꿉니다. 끓고 안 끓고 차이는 1도입니다.

모든 물질은 구조와 성질이 바뀌는 임계점(臨界點)이 있습니다. 이 임계점 원리가 우리 교회에 적용되면 좋겠습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선교의 열정은 품었지만, 열매를 맺는 일에 항상 1도가 모자랐습니다.

마지막에 결실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2%가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복을받는 교회 가족 여러분,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 나는 선교의 비전을 품은 일꾼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 일꾼이다. 나로 인해 우리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된다. 이렇게 자기 선언을 합시다. 그러면 모자라는 2%가 선교의 현장에, 전도의 열정에, 사랑의 공동체에 회복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이탈합니까? 왜 요즘 삶에 기쁨이 없습니까? 왜 무기력하고 삶의 의욕도 사라져 갑니까? 왜 하는 일마다 막히고 자꾸만 꼬여간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왜 이렇습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서 범사에 선교의 1도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현장을 내가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선언을 해야 합니다. 나는 선교의 비전을 품은 일꾼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쓰임 받는 일꾼이다. 나 때문에 우리 교회는 선교의 사명을 감당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목적은 우리 믿음의 가족이 선교의 열정으로 무장하기 위함입니다.

이곳에서부터 세상 끝으로 선교의 영역이 확장되어가기 위함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개척 정신, 야인 정신을 품고 나아가기를 축원합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