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1년 말씀

나는 사랑 나눔을 실천합니다(요일 04:10~21).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1. 12. 1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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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받는교회 성도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생각해 보시고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일 가운데 제일 쉬운 일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어렵지요.

반대로 제일 어려운 일은 무엇일 것 같습니까? 이 역시 어렵지요. 제일 쉬운 일이나 제일 어려운 일을 시험을 치듯 묻고 답을 하려면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으로 답을 하겠습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요일 0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제일 쉬운 일이 무엇입니까? 말로 하는 일입니다. 제일 어려운 일은 무엇입니까?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일입니다. 행함과 진실함은 사랑의 실천을 말합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사랑에 목마른 분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반복해 나오는 단어 두 개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반복해서 나오는 단어 두 개를 찾아봅시다. 힌트는 명사입니다. 사랑과 하나님.

 

예 맞습니다. 사랑은 22번 나오고 하나님은 직접 15번 간접 3번(주님, 아버지) 합해서 18번 나옵니다. 원문이나 번역본에 따라 사랑과 하나님 햇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 메시지는 사랑, 하나님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다가가라는 권면입니다. 지치고 힘들어하는 자에게 말만이 아닌 따뜻한 사랑으로 다가가라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나는 사랑 나눔을 실천합니다.로 정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울림 되기를 바랍니다.

 

 

 1. 복을받는교회 가족은 당연히 서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기독교인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인간의 사랑은 순간마다 잘 변합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은 순수하여 변질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받고 온전히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도 사랑을 잘 나눕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가족이 나누는 사랑은 세상 사람의 수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왜 다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그 사랑을 깨달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안내합니다.

 

롬 05:0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독생자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능가할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그 최고의 사랑은 세상 어떤 사람에게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도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반복합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요 15:12). 요한복음과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는 요한이 전하는 사랑의 교과서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속죄를 이루신 사실을 믿습니까? 아멘입니까?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요 친구입니다. 믿음으로 이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➌사랑하는 주님 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한 몸같이 친밀하고 마음으로 하나 되어 우리 주님 크신 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찬 220장).

 

지난 시간 돌아보면 저의 마음은 그렇지 않으나 외형으로는 성도를 살갑게 대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특정한 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도 역시 차별한다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저는 변명하지 않고 맞다고 인정합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우리 믿음의 가족을 품에 안고 기도하며 잘 보살피기를 다짐합니다. 저는 이미 사선을 건넜다가 돌아왔습니다.

앞으로의 살아갈 일에 큰 욕심 없습니다. 배의 흉터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웁니다. 그 누구보다도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준비한 이유는 지금까지의 허물진 모습 형제 사랑을 제대로 나누지 못한 모습을 오늘 주일로 청산하겠다는 뜻입니다. 다음 주일 새 성전에서는 새롭게 사랑으로 출발하겠다는 각오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는 마음을 나단 선지자에게 전했을 때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성전 건축 열정을 막으셨습니다. 이유는 군인으로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 평화의 성전을 건축할 수 없다는 거절입니다(대상 28:03). 그러자 다윗은 성소로 가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삼하 07: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저의 마음이 이렇습니다. 여러분에게 사랑의 빚을 많이 졌습니다. 기도의 빚을 많이 졌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자를 하나님께서 사역의 현장으로 불러 성전 건축을 네 번이나 하게 하신 복은 은혜중의 은혜입니다. 이제 남은 시간 자신을 살피며 여러분께 감동되는 삶 되기를 원합니다.

 

 

 2. 복을받는교회 가족은 하나님의 시랑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 안에 거하고(θεω μενει). 떠난다는 말의 반대 용어로서 하나님의 영역에 머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안에 머문다는 용어가 13절에 나오고(그 안에 거하고), 15절에 나오고(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절에 세 번째 나옵니다(하나님 안에 거하고). 문장 형태가 현재형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가 하나님 안에서 경험하는 신령한 은혜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안에 거하고라는 문구를 요한이 세 번이나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특별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이 요한일서를 보낸 교회는 에베소교회로 짐작합니다. 이 에베소교회에 두 세력 간 알력과 충돌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알력의 한 그룹은 예수님의 인성은 인정하지만, 신성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유대교 출신 에비온파입니다(Ebionism).

 

또 한 그룹은 예수님의 신성은 인정하지만, 인성을 완전히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신약성경이 기록될 무렵 이미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자들이 들어왔습니다.

이들을 우리는 영지주의자(Gnosticism)라 부릅니다. 이들의 사상은 이원론입니다. 육체나 물질은 악한 것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악한 물질인 육체를 입을 수 있느냐며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합니다.

자기들만이 이런 신비한 영의 지식을 깨달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성 부인 그룹과 신성 부인 그룹은 늘 알력 속에서 지냈습니다. 요한은 두 그룹 모두에게 참 복음을 가르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두 그룹 사이에서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사람이신 신인양성(神人兩性)을 강조합니다.

 

13절, 15절 16절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신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는 이들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흔히 말하는 영지주의자로서 이들이 바로 이단의 모체입니다. 요한은 오늘 말씀을 통해 사랑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실천하는 자라고 밝힙니다.

 

이단은 어떤 일을 합니까? 모이면 따지는 일을 합니다. 정죄하는 일을 합니다. 자기들만 잘 난체 하면서 고립되어 살아갑니다. 요한일서 곳곳에 그런 이단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참된 믿음을 가진 자가 누구냐?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이 누구냐?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이 참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라고 밝힙니다.

요한은 예수님이야말로 참 하나님이요 하나님께서 속죄의 제물로 보내신 구세주임을 밝힙니다. 성령님의 존재를 믿는 자는 내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나도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께서 내주하시는 일은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참 아들이심을 고백할 때 이루어집니다(15).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이루어 가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며 성도의 사랑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루는 증거입니다. 동시에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영지주의를 분별하는 구절이 09절 10절입니다.

 

09….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3. 복을받는교회 가족은 사랑의 계명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한은 04장에서 줄기차게 진술한 사랑을 십계명보다 더 우월한 계명으로 선언합니다. 요한은 이 계명을 주님으로부터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받은 그때가 언제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 트집 잡는 바리새인들이 찾아왔을 때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이(막 12:13~32) 찾아왔을 때입니다.

그때 한 서기관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속 보이는 질문, 올무에 걸리기를 시험하는 질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을 하셨습니다.

 

막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사랑은 꼭 실천해야 하는 계명입니다(03:23, 요이 01:05~06). 주님께서 주신 계명은 듣고 이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실천하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말만 앞세우며 살아가는 곳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합시다. 예 하여야지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뒷받침하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힘들어합니다. 고독에 몸부림을 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닫힌 마음이 이웃 사랑을 향해 열리기를 바랍니다. 열려있으면 닫히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증거, 생명을 얻은 증거, 영생을 얻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 증거를 어떻게 나타내 보일 수 있습니까? 사랑으로 나타내 보이면 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구원을 받은 선한 증거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합니까? 구원을 받지 못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은 구원받은 성도입니까? 믿어집니까? 아멘입니까? 그러면 이웃 사랑을 신실히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요한은 영생의 세계에 들어간 증거가 형제 사랑이라고 밝힙니다.

이웃 사랑은 다가가서 마음을 전해주므로 확증이 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하면서 형제를 미워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계명임을 기억합시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복을받는교회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고, 베풀며 삽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입니다. 내 욕심만 채우고, 나만 생각하고, 나만 더 많이 배려한다면 그 삶은 사랑의 가치를 잃은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의 특징은 이웃 사랑을 실천합니다.

봉사하는 삶, 구제하는 삶, 베푸는 삶을 실천합니다. 이웃을 위한 스타일로 바뀝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랑이 식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12).

베드로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질수록 기도하라고 권면한 다음 무엇보다도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고 명했습니다(벧전 04:07~08). 이웃을 보살피고 돌아보는 사랑은 내가 먼저입니다.

 

사랑이 살아서 숨을 쉬도록 내 마음과 몸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내 손과 발이 멈춘 사랑은 입술의 소리입니다. 입술의 소리는 형식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집에 가서 밥 먹으라고 하기 전에 밥을 먼저 주어야 합니다(약 02:15~17).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이(Napoleon Bonaparte I, 1769.8.15.~1821.5.5.) 전쟁 중에 병사들 막사를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한 막사 앞을 지나는데 그 안에서 병사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발을 멈추고 병사들의 하는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막사에서 들리는 그 소리는 보나파르트, 이 녀석,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 마구 욕을 하는 소리였습니다.

나폴레옹의 성이 보나파르트입니다. 그러자 나폴레옹 황제가 이 녀석들 황제 앞에서 입도 벙긋 못하더니 돌아서서는 이렇게 욕을 하는구나 싶어 막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녀석들, 지금 뭐라고 말했나? 하면서 노발대발하니 한 병사가 하는 말이 황제 각하, 고정하시옵소서. 우리 가운데 보나파르트가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개망나니인지 그 보나파르트 일병을 욕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자 황제 나폴레옹이 보나파르트 일병을 즉각 불러 놓고 말합니다. 너 오늘부터 성을 바꾸든지 아니면 행동을 바꾸든지 해. 성도는 사랑을 실천함으로 하나님 자녀의 가치를 나타냅니다.

만일 사랑을 말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성도의 자격을 상실한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회심하는데 3가지를 회심해야 온전한 회심이라고 합니다. 첫째 머리의 회심입니다. 자기중심의 생각이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둘째 가슴의 회심입니다.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셋째 지갑의 회심입니다. 진실로 그의 씀씀이가 달라지거나 가진 재물을 가치 있게 사용할 때 거듭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전 13:0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0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0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