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1년 말씀

[성탄절]성탄절과 예수님의 5대 사역(사 09:01~0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1. 12. 25.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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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성탄절, 코로나19로 인해 온 세상이 근심으로 가득 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유럽의 산타클로스들은 대부분이 실직했다고 합니다. 코로나19의 3차 대유행이 현실화하였기 때문입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곳 중 하나로 16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년 째 취소되었습니다. 거기다 영국과 이탈리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오스트리아 빈과 잘츠부르크 등의 크리스마스 마켓도 취소되거나 규모가 축소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산타클로스의 대량 실직입니다. 실직한 산타클로스들은 대부분 해당 업체에 고용된 배우로서 실직을 면했어도 투명 안면 보호대를 착용하고 거리 두기를 준수하여야 합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오늘 무슨 날입니까?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일이 나와 무슨 상관있습니까?

예수님의 탄생 날짜에 대해서는 수차례 자세히 말씀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생략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날짜보다 탄생이 중요한 것은 그 사역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우리와 직접 관계가 있음을 이사야 선지자가 소개합니다. 이사야는 예수님 탄생 680년 전까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60년간 선지자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의 사역 내역이 이사야에 나옵니다. 

 

구약성경 가운데 이사야는 그 어느 성경보다 중요합니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메시아로 오셔서 행할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일입니다.

그 사역 내용이 예수님의 5대 별칭에 들어있습니다. 메시아의 속성이 어떠하며 무슨 일을 하실 것인가를 내포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말씀 제목을 「성탄절과 예수님의 5대 사역」으로 정했습니다.

 

 

 1. 그의 이름은 기묘자입니다.

 

0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사 07:14) 말씀과 더불어 메시아로 오실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를 소개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잘 듣지 못한 단어가 나옵니다. 기묘자인데 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פֶּלֶא 펠레, 奇妙者, Wonderful). 한글로 보면 좀 어려운 단어입니다.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기이한 것을 기획하는 자입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일을 이루실 분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세상을 마치는 날까지 놀라운 사실 아닌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잉태될 때 그 일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처녀의 몸에 성령님으로 인해 잉태되었습니다.

태어날 때 상황을 보십시오. 전쟁 중에 태어나는 경우 아니고는 아무리 가난해도 집에서 산파의 도움을 받으며 태어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십시오. 예수님의 행하신 여러 일과 권세 있는 교훈은 정말 기묘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사람들은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마 07: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은 죽은 자를 네 명이나 살리셨고 인류를 파멸하는 죄와 형벌을 홀로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습니다. 기묘자로서 최고 정점은 사흘 후에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일입니다.

 

 

 2. 그의 이름은 모사입니다.

 

0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모사라….

 

그의 이름은 모사(יָעַץ 야아츠, 謀士). 모사라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가끔 듣습니다. 주로 모사꾼이라 표현 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원문과 비교하면 거리가 멉니다.

원문의 의미는 충고하다, 조언하다, 권면하다, 이런 뜻입니다. 또 영어 단어로 Counsellor 즉 상담자라는 말도 씁니다. 이보다는 경영자 통치자라는 의미가 더 맞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현재 우리의 주변 환경을 보십시오. 진정한 상담자를 만나야 할 필요도 있지만 이보다는 경영자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짧지만 짧은 삶에 비해 고달픈 문제는 더 많이 안고 살아갑니다. 그럴수록 탁월한 경영자 예수님께 우리의 삶 전부를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경영해 주셔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의 삶 전반을 구조 조정해서 이끌어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열심히 해 봤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모든 실패를 회복하여야 할 때입니다. 기묘자로 오신 예수님이 우리의 사업을 경영하도록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을 가진 예수님, 우리의 고통을 가장 잘 이해하시고 공감하시는 예수님, 우리의 상처를 속히 아물게 하시는 예수님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 상담학의 큰 고민은 상담의 효과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상담학은 발달하였지만, 그 고민은 더욱 깊어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상담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특별히 모사라 번역하였습니다. 자기 백성이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그 지혜로 해결해 주시겠다는 암시입니다. 예수님은 전략가이기 때문입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3. 그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0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그의 이름은 전능하신(גִּבֹּר 깁보르) 하나님이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할 때 엘 샤다이(אֵלי אֵל 창 28:03, 43:14, 48:03)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06절에는 깁보르(גִּבֹּר)라는 단어로 나옵니다. 한글 표기로 보면 같지만, 원문의 의미는 대적자들과 싸우시는 능력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대적들과 싸우시는 예수님의 모습뿐만 아니라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린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승리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삶으로 전환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의 백성이 된 것은 은혜중의 은혜입니다. 반면 이사야가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해 선포할 때 사람들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받는다고 여겼습니다(사 53:04).

예수님이 말 구유에 나실 때도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오셨음에도 그 시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습니다(요 01:10, 11).

신령한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아기는 평범한 아기가 아니라 본질에서는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고 동시에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이 땅에 오실 때 낮고 천한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빌 02:0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0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하나님께서 세상에 오심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 중의 사건입니다. 대부분 사람이 이 엄청난 역설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오신 이 예수님을 신령한 눈만 뜨기만 하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도 예수님을 찾아보고 경배를 드렸고 목자뿐만 아니라 동방에서 온 박사도 예수님을 만났습니다(마 02:11; 눅 02:15~148). 지금도 아이 어른 가난한 사람 부자 할 것 없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4. 그의 이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

 

0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그의 이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라(אָב 아브).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근거는 신성(神性)에서 유래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점은 아버지입니다. 히브리인의 사고(思考)에서 아버지는 아들과 상관되는 육신의 개념이 아니라 부양하는 사람을 돌보는 후원자, 보호자 등의 개념입니다(사 22:21; 욥 29:16; 시 103:13).

당시 근동 지역에서 아버지의 의미는 보호자 외에 왕에게도 적용하던 호칭입니다. 이사야가 장차 태어날 한 아기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칭한 것은 메시아께서 자기 백성을 새롭게 조성하실 창조자이기 때문입니다(요 01:03; 고후 05:17).

이제 예수님은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 백성인 우리 복을받는 가족에 대해 영원한 보호자이십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주인이심을 확인해 줍니다.

 

따라서 아버지는 자기의 백성에 대하여 깊은 사랑을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는 모두 육신의 아버지를 통해서 세상에 왔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아버지는 영원할 수는 없는 잠깐의 아버지입니다.

반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영원히 책임져 주시는 아버지입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 근본이 같기에 영존하신 아버지가 됩니다.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들이 믿는 신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습니다. 이슬람교는 알라에 대한 이름이 99개나 있어도 아버지라 부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5. 그의 이름은 평강의 왕입니다.

 

0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의 이름은 평강(שָׁלֹם 살롬)의 왕이라. 메시아에 대한 마지막 호칭은 평강의 왕입니다. 자기 백성을 책임지는 왕임과 동시에 평강을 약속합니다. 세상에는 전쟁이 끊임없습니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갈등과 다툼이 쉬지 않습니다. 평강은 개인이나 국가에 있어서 항상 유지되어야 할 평화입니다. 평강은 평화를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강을 잘 누려야 함에도 오히려 더 많은 괴로움을 안고 사는 분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살아가면 평강이 그 마음을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평강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를 맺어주시고 인간관계의 갈등을 끝내기 위해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은 평강이 아니다(요 14:27). 예 그렇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란하여도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평강을 누립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이 평강을 모르지만, 메시아 왕국에 참여한 사람은 이 평강을 누립니다(슥 09:10).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날 밤에 천사들이 하늘에서 노래한 것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이 어떤 목적을 품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눅 0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오늘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그러면 마음에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초조함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란할지라도 예수님을 영접한 그 심령에는 평강이 채워집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평화의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평화가 임하고, 여러분의 가정에 평화가 임하고, 우리 교회에 평화가 임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06절 말씀을 잘 보십시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이렇게 나옵니다. 어깨에 정사를 메었다는 말은 통치자(מִשׂרָה 미쉬라, government)를 말합니다. 이사야서에 메시아와 관련하여 두 번 사용되었습니다(06, 07).

통치자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납니까? 어떤 방법으로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까? 한 아기를 태어나게 하심으로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기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특별한 아기를 주시겠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기이한 이름을 하나님이 붙여주셨습니다.

 

그 이름을 오늘 5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호칭이 평강의 왕 예수님입니다. 이 호칭이 오늘 설교의 핵심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다른 말씀은 잊어도 이 말씀만은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세상의 군왕들이 무력을 통하여 가져다주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1세기 말 세상의 평화가 한때는 Pax Romana로(96~161) 불렸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로마의 권력이 군대를 동원하여 이룬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다른 군사 대국이 나타나면 쉽게 허물어지는 상대성의 평화입니다. 불안전한 평화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요구되었던 것이 전쟁이 없는 평화입니다. 우리나라도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은 민족으로서 지금도 평화를 구하나 만만치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평강을 약속하셨지만, 그분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성탄절을 맞아 거듭난 삶으로 살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평강이 자리 잡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생업 터전에 형통함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평화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