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을 기록한 사람 가운데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외국인이 한 사람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의사 출신 누가입니다(골 04:14). 이 누가가 두 권의 성경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관계되는 일에 있어서 누가복음에는 나오는데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에는 나오지 않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누가만의 특유한 세밀함으로 기록한 일의 결과입니다.
의사 출신답게 깊이 살피고 판단하여 기록한 성경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그야말로 세밀한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복음서 중 누가만의 기록입니다.
예수님의 천국 복음 전파에 열두 제자가 참여하였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으로부터 병 고침을 받은 여자들도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들 이름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안내 요안나.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입니다. 열두 제자는 예수님의 직접 부름을 받았지만 다른 여자들은 직접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은혜를 받고 자원하였습니다.오늘 말씀은 누가가 아니면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여자들 행적입니다. 세 여자는 특별히 이름까지 나옵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자주 들어본 이름 막달라 마리아는 2016년 3월 27일 주일에 자세히 설교하였으니 오늘은 다루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유의 하여야 알 수 있는 한 여자 요안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을 다독으로 읽으면 그냥 넘어갈 인물이나 누가가 조금이라도 밝혀줌으로 알 수 있는 인물입니다. 의사 출신 누가가 있었기 때문에 세밀한 관찰로 요안나의 행적이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섬기는 일을 계속 감당한 요안나」로 정했습니다.
1. 요안나가 누구입니까? |
0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요안나를 수식하는 말이 있습니다.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입니다. 요안나의 남편은 헤롯 왕의 청지기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런 뜻입니다. 청지기(ἐπίτροπος) 뜻이 무엇입니까?
넘겨준다는 의미입니다. 재산을 넘겨받아 관리하는 재정 담당관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왕의 재산 관리자입니다. 신약성경에는 6명의 헤롯이 나옵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오는 헤롯왕이 어떤 사람인지 혼동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헤롯왕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구분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구분하여 말씀드렸기 때문입니다.
다만 오늘 말씀에 나오는 헤롯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헤롯은(Ἡρώδης B.C. 4~A.D. 39) 이스라엘 사회에서 세력을 막 휘두른 왕으로서 역사에서는 헤롯 안티파스로 부릅니다(마 14:01, 09).
세계사에서 보면 이 헤롯은 예수님 당시 갈릴리와 베뢰아(동요르단의 페르시아)를 다스렸습니다. 정치가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건설 분야에도 상당한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22년에 갈릴리 호수 서해안에 도시를 건립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도시 이름을 로마 황제 디베료(Τιβέριος)의 환심을 사려고 디베랴로 명하였습니다.
정치 지향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딸 헤로디아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려고 세례요한을 죽이는 일까지 했습니다(막 06:22~28). 이런 왕의 청지기라면 왕의 상당한 신임을 받는 자입니다.
고대(古代)의 왕들은 특별히 세 부류의 직책에는 반드시 신임하는 사람을 기용하였습니다. 첫째 경호책임자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죽일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가장 신임하는 사람에게 경호책임을 맡겼습니다. 둘째 음식 책임자입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음식에 독약을 넣을 줄 모르기 때문에 절대 신임하는 자에게 책임을 맡겼습니다.
셋째 재정 책임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통해서도 절대 신임을 받는 사람이 관리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눅 16:01~08). 구사가 이런 세 가지 중 청지기 직책을 가지고 있으니 그의 아내 요안나도 경제면과 관료 사회에서 소위 잘나가는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위 사람으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요안나(Ἰωάννα). 남편 구사(χουζα)에 대해서는 특별한 소개가 없습니다. 구사(물병)라는 이름에 이스라엘식 의미가 없음을 보아 이방인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그러면 요안나가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섬기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 과연 가능합니까? 가정을 떠나서 장시간 이동하는 일이기에 말입니다. 당시의 문화권과 정황으로 보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을 하였다는 것은 나름 특별한 헌신의 동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 02, 03절에서 그 동기를 찾아보려 합니다. 먼저 02절 해석이 중요합니다.
문맥 흐름을 잘 보십시오.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γυνή)이라는 문구를 보면 막달라 마리아만 아니라 요안나와 수산나도 치료를 받았다는 뜻이 됩니다. 왜냐하면 막달라 마리아 다음에 접속사 그리고(και)가 이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해석하는 방법이 갈립니다.
막달라 마리아만 치료받았다. 요안나 수산나를 포함해서 치료받았다. 문장 구조가 어느 쪽이든 가능합니다. 저는 요안나가 병을 치료받은 것으로 해석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요안나가 제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섬기는 합숙 현장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이해하였기에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시의 사회 시선으로 보아 남녀 합숙에 가까운 요안나의 긴 일정은 불가능입니다.
2. 요안나는 자기의 장점으로 복음 전파에 동참하였습니다. |
0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믿음의 사람은 주님께서 주신 은혜만큼 섬길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섬긴다는 것은 자기의 장점입니다. 그러면 요안나가 받은 은혜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그 은혜가 무엇인지 자세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짐작할 수 있는 작은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조금 전 말씀 드린 대로 요안나가 중병으로 신음을 하다 예수님으로부터 치료를 받은 일입니다.
요안나(Ἰωάννα) 이름 뜻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은혜를 주신다. 입니다. 요안나가 중병에서 주님의 은혜로 해방되었다면 이름처럼 된 삶입니다. 요안나의 장점을 보십시오.
무엇보다 관료 사회에서 주위의 부러움을 받는 고관 부인입니다. 거기다 물질도 넉넉합니다. 그러나 누가는 요안나가 그런 배경과 물질의 넉넉함을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그 시대의 정치 환경을 볼 때 그 정도가 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안나는 예수님의 은혜를 입고 그 고마움을 자기의 장점으로 봉사하였습니다. 김해삼일 가족 여러분, 믿음의 사람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그 받은 은혜를 자기의 장점으로 섬기는 삶입니다. 요안나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추측하자면 요안나가 심한 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주님을 만났고, 병도 고침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입으면 할 일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장점으로 이웃을 섬기는 일입니다.
섬기더라(διακονέω 디아코네오). 병 고침을 받은 후 계속해서 주님을 따라다니며 섬겼습니다. 그 은혜에 감격하여 복음 사역에 헌신하였습니다. 요안나는 명예를 자랑하기 위해 주님의 나라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복음 전하는 일에 그저 섬기는 마음 하나로 참여하였습니다.
헤롯왕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라는 수식은 섬기는 일에 어쩌면 지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 직책 위상에 금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수님에 대한 사회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았습니다. 요안나가 예수님을 섬기는 일에 참여할 때 어쩌면 상류 사회의 비난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안나는 자원해서 물질로 섬기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즐겁게 여겼습니다. 은혜가 무엇인지를 아는 자는 주변 시선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롬 0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는 부분을 보십시오.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 외 여러 명 여자가 나오는데 이들이 함께 섬김의 자리에 동참하였습니다.
요안나는 세상 자랑거리보다 예수님 따르는 일을 최고의 가치로 알았습니다. 요안나와 막달라 마리아의 신분에 대한 사회 평가를 짐작해 보십시오. 상류층과 하류층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안나는 이런 일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섬기는 일은 자기를 비우는 자세가 꼭 필요합니다. 시간과 물질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놓고 섬기는 자를 주님은 이렇게 평가하십니다.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3. 요안나는 섬기는 일을 계속 감당하였습니다. |
눅 24: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받고 돌아가시자 따르던 제자들 모두가 흩어졌습니다. 자신들의 기대와 꿈이 무너졌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예수님의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제자들을 대신하여 믿음으로 참여한 사람이 있습니다.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한 아리마대 출신 요셉입니다.
이 사람은 공회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드러나게 믿지는 않았지만, 주님의 제자였습니다(마 27:57). 또 한 사람의 공회원이 있습니다. 밤에 예수님께 나아와 신앙상담을 한 니고데모입니다(요 19:39)
예수님의 임시 장례식을 치를 때 마지막까지 그 자리를 지킨 몇 사람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외 무명의 여자들입니다. 마태와 마가는 부활의 증인 이름을 소개할 때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등 세 명의 여자로 밝힙니다(마 27:56, 막 16:01).
마 27:56 그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요안나가 제외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세밀하게 판단하는 누가에 의해 그 현장에 요안나와 다른 여자들도 함께 있었다고 밝힙니다. 이들은 대부분 갈릴리에서 왔습니다(눅 23:55, 24:01). 이제 예수님의 무덤 현장은 모두가 떠나고 적막함만 감도는 어두운 새벽입니다.
이곳에 예수님의 장례를 마무리하려고 여자들 다수가 장례 물품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거기 또 다른 여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 임시 장례식 후 제자들처럼 숙소로 돌아가서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이제 안식일이 지나고 한 주간이 시작되는 첫날 이른 새벽 예수님의 무덤으로 왔습니다(막 16:02). 그런데 무덤 앞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보았습니다. 무덤가에는 지진이 일어났고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옮겨졌기 때문입니다(마 28:02). 이곳에서 요안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마 28: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이때부터 요안나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 부활의 증인으로 새롭게 출발하였습니다. 부활의 최초 증인은 열두 제자가 아니라 여자들입니다.
심지어는 인구 계수에도 포함되지 못하던 여자들이 예수님 부활의 최초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으로 인해 누구보다 처절한 절망을 맛보았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소식을 전하는 일을 더욱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엄청난 부활의 소식을 안일하게 여기면 안 되는 줄 알았기에 달렸습니다. 예수님 부활을 전하기 위해 한시라도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 28:0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 새.
요안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전하고 섬기는 삶을 믿음으로 감당하였습니다. 병 고침을 받은 은혜,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믿는 은혜가 겹치니 더욱 기쁨으로 감당하였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요즘은 비가 오면 길거리 곳곳에서 형형색색 우산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아주 큰 비가 아니면 우산을 잘 쓰지 않습니다. 유럽 대부분 국가가 우산을 쓰지 않습니다.
비가 오는 날 프랑스 길거리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아무렇지 않게 비를 맞고 다닙니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손이 자유롭지 못해 넘어졌을 때 다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혹 어린아이가 우산을 쓰고 걸어가면 시야가 좁아져서 교통사고의 위험이 더욱 커집니다.
그래서 우산 대신 레인코트를 입도록 교육합니다. 우리의 우산 문화로 보면 이해하기가 좀 어색합니다. 이렇게 우산에 관한 생각 차이는 머릿속에 굳어진 고정 관념 때문입니다.
교회에 속한 일을 합니까? 그러면 우리의 고정 관념을 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경험으로 굳어진 좁은 생각보다 좀 더 넓은 생각으로 넓게 양보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공동체의 일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는 함께라는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요안나는 복음 전하는 일에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혼자서 하는 일보다 함께 힘을 모으면 더욱 능률이 오르기 때문입니다.
요안나와 함께 수고한 자들 이름을 보십시오. 당시의 상황에서 보면 신분의 격차와 물질의 격차가 분명히 느껴집니다. 그런데도 요안나는 자기를 낮추고 비워서 함께라는 방법으로 일했습니다.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의 일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모든 은사는 함께라는 통로를 통해서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은 우리 믿음의 가족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임을 기억하십시오. 공동체의 원리는 자신이 좀 손해를 보면 됩니다.
비록 지식은 부족해도 손해를 감수하고 남의 말도 들으면 얼마든지 공동체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요안나가 열심히 섬긴 일은 남편 구사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가정을 장기간 떠나서 생활할 수 있습니까? 요안나의 믿음 행적은 교회 역사에서 더는 보이지 않으나 주님께서는 귀하게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쓰임 받는 일꾼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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