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8년 말씀

벧엘로 올라가야 살길이 열립니다.(창 35:01~0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8. 12. 2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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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누구나 고난 없는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고난이 없이 지내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래서 욥은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태어났다고 하였습니다(05:07). 또 시편 기자는 고난당한 일이 자기에게 유익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119:71). 고난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세입니다.

오늘 메시지는 야곱이 밧단 아람의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겪는 환난입니다. 30년 전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한 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당하는 고난입니다. 딸 디나의 강간 사건에서 출발한 고난을 계기로 야곱은 자신을 돌아봅니다

하나님 앞에 서원한 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일어난 일이라고 판단합니다.그러면 이 모든 일을 해결하는 일은 벧엘로 올라가서 서원을 갚은 일 외에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가족들에게 자기의 결단을 전달합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이 말씀을 우리가 받을 때는 신령한 뜻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큰일이나 특별한 결단을 원하실 때 올라가라고(구약 11회)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지형의 위치에서 올라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신령한 면에서 거룩한 곳 또는 구별된 곳으로 나아가라는 의미입니다(삼상 01:21, 22). 하나님께 약속한 것이 있으면 지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벧엘로 올라가야 살길이 열립니다. 로 정했습니다. 함께 은혜받는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에서 단을 쌓으라 하십니다.

 

 

0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 지라.

 

야곱이 올라가야 할 벧엘이 어떤 곳입니까? 야곱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왜 올라가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말씀의 길라잡이입니다. 벧엘은 앞서 28장을 설교할 때 자세히 살펴보았기에 오늘은 간단히 보겠습니다

벧엘은 야곱이 도망자의 처지로 밧단 아람으로 가는 여정 속에서 들린 곳입니다. 이곳은 브엘세바에서 약 85km쯤 됩니다. 그 옛날이니 제법 먼 거리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잠을 자다 꿈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습니다.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지라.

 

 

다음날 야곱이 잠을 깨고 베개 삼은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웁니다. 그리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는 벧엘이라 칭하며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내가 평안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면 지금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의 십일조를 반드시 드리겠습니다(28:21~22). 라는 서원입니다. 이때로부터 20년 세월이 흘러 야곱은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밧단 아람의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일정에 들어섰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고향 브엘세바로 바로 오지 않고 세겜에 머물고 맙니다. 그곳 추장이 편리를 제공해 주자 10년이나 세상 재미로 눌러살았습니다(33:17). 이 과정에서 야곱의 딸, 디나가 불신 지역 여자들과 어울리다 그만 그 땅의 권력자 하몰의 아들 추장 세겜의 유혹에 넘어가 강간을 당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야곱의 아들들은 분노하는 데 비해 상대 쪽에서는 사돈 맺자는 제안을 해 옵니다. 이에 야곱의 아들 중 시므온과 레위가 주도하여 할례를 빙자로 사돈 맺겠다는 속임수를 씁니다

반면 세겜 사람들은 이 속임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할례받는 일에 동의합니다. 세겜 족 남자들 모두가 할례를 받았고 사흘째 최고의 통증에 시달릴 때 급습하여  남자들은 칼로 다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아이와 여자와 모든 재산을 탈취해 왔습니다. 한 마디로 세겜성 모두가 초토화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야곱은 주변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으로부터 공격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이에 야곱이 두려워하면서 시므온과 레위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내게 큰 화를 끼치는구나. 이제 이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이 알고 우리를 급습해 올 것인데 어찌해야 할꼬? 우리는 수가 적지 않느냐? 그들이 우리를 멸망시키고 말 것이다(34:30).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야곱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자신을 돌아봅니다. 지금의 모든 일이 30년 전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지 않아서 된 일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아라. 영적으로 후퇴한 야곱을 은혜의 자리로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때의 서원을 지키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2. 벧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우상의 요소를 버려야 합니다.

 

 

0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창세기에는 여러 사람의 단을 쌓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가운데 하나님이 단을 쌓으라고 직접 명령하시는 구절은 01절이 처음입니다. 야곱이 세겜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용기가 없어서 망설이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직접 명령하십니다

왜 올라가라고 하십니까? 이스라엘의 지리를 보면 요단강 서쪽으로 벧엘이 있고 벧엘에서 북쪽으로 45km 지점에 세겜이 있습니다. 그리고 벧엘에서 남쪽으로 20km 지점에 예루살렘이 있고 거기서 또 30km 남쪽에 헤브론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벧엘은 위치상 세겜보다 남쪽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벧엘로 올라가라 하십니까? 예루살렘이 고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멀어질수록 낮은 지역이고 세겜에서 벧엘로 올라가는 길은 약 300m 정도 고도차가 납니다.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야곱 외의 모든 가족은 밧단 아람 사람입니다. 그들의 삶에서 함께한 특별 우상 하나가 있습니다. 드라빔입니다. 드라빔은 가정의 수호신이며 훗날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아버지의 유산과 바꿀 수 있는 증빙물건입니다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사람만 한 크기를 지닌 것까지 다양합니다. 상당한 보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드라빔이 얼마나 귀한 물건이었으면 라반이 그것을 찾기 위하여 가병(家兵)을 이끌고 야곱을 추격해 왔겠습니까? 라헬도 그것이 매우 귀한 줄 알고 목숨을 걸고 감추며 지켰습니다(31:19~35).

 

또 드라빔 외에 귀고리도 빼어냈습니다. 귀고리는 신상이나 주문을 새긴 물건으로서 착용하면 악귀를 쫓고 행운을 불러들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세겜에서 크게 마음의 고통을 당한 후 이런 것들이 아무 소용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가족들로부터 모든 우상 요소들을 거두어 상수리나무 아래 묻어 버립니다(04). 여기서 왜 여러 나무 중에서 굳이 세겜 땅 상수리 나무 아래 이런 우상을 묻었습니까? 

당시 상수리나무 아래는 시신 매장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상수리나무 아래 묻은 것은 우상과 완전한 단절을 의미합니다. 또한, 우상의 요소들과 디나의 가슴 아픈 일도 다 묻어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마지막 하나 더, 가족들에게 의복을 바꾸어 입도록 명합니다.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행위와 함께 이방 풍속에 물든 삶을 청산하겠다는 각오입니다. 신약시대에 와서 사도 바울은 이를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의미로 이해하였습니다.

 

0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늘의 우리는 신상이나 주문을 새긴 귀고리는 착용 안 하지만 마음으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습니까?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세상의 요소가 있습니까? 과감하게 던져 버리십시오. 던져 버렸으면 다시 찾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제대로 신앙생활 하기를 원합니까? 오늘 우리의 가장 큰 문제, 신앙생활의 걸림돌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우상의 요소를 버리기로 작정했습니까? 그러면 나중에 시간 내어서 정리하려고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우상의 요소를 십자가 아래 묻어 버리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무엇이 하나님 앞에서 나를 그렇게도 답답하게 하였고, 무엇이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그렇게도 차단하게 하였는지 돌아보십시오. 불신앙의 요소와 습관과 취미도 묻어 버리십시오. 하나님은 버린 만큼 신령한 은혜로 채워주십니다.

 

 

 

 3. 믿음으로 나아가는 야곱을 하나님은 지켜주십니다.

 

 

0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의 가장 큰 두려움은 세겜 사람들을 멸한 일에 대한 주변 족속들의 보복입니다. 이번에 멸문지화를 당한 세겜 사람들은 히위 족속 소속입니다. 히위 족속은 전 가나안에 퍼져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이 사건으로 히위 족속 사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실제 야곱의 아들들이 행한 일이 그냥 넘어갈 일입니까? 그러므로 벧엘로 올라가는 야곱의 일정은 엄청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이 믿음으로 출발하자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셔서 야곱의 일행을 추격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간섭으로 사방의 고을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의 공포에 숨을 죽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성도의 길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때를 따라 보호하십니다.

 

23:27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네가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물리치고 네 모든 원수들이 네게 등을 돌려 도망하게 할 것이며 28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이 믿음으로 나아갈 때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을 대신 막아주시겠다는 안내문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그 사자를 미리 보내어서 일하시며(23:23) 모든 대적이 꼼짝 못 하도록 그 발목을 붙들어 놓습니다.

예를 성경에서 보겠습니다. 야곱이 에서의 손길을 피해 도망갈 때 벧엘에서 사닥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던 존재들이 천사들이었고(28:12), 마하나임에서 야곱을 보호해 주던 하나님의 군대도 역시 천사들이었습니다(32:02).

하나님은 야곱이 은혜의 자리 벧엘로 나아갈 때, 세겜 주변의 가나안 족속들에게 공포의 천사를 보내어 아무도 감히 추격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떠났으나(נָסַע 나사). 여기 떠났다는 동사를 보십시오. 그저 어딘가로 즐겁게 여행을 갈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개역판에서는 발행하였으나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기쁘게 날아간다는 의미로서 실감 나는 출발입니다.

도무지 일어날 수 없고 회복할 수 없을 것 같던 야곱의 가정이 마치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이(40:31) 힘찬 모습으로 세겜을 벗어납니다. 더 중요한 일은 야곱이 그렇게도 두려워했던 가나안 원주민들이 오히려 야곱의 가족을 두려워합니다. 놀라운 반전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벧엘로 발걸음을 옮기는 야곱에게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먼저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가서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릅니다(35:29). 또한, 열두 아들 가운데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야곱의 가문 70명을 구원하는 역할을 하고 나머지 아들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수장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복보다 더 크고 놀라운 복이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28:13)는 말씀 다음에 야곱의 하나님으로 세움을 받는 3대 족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계보를 이어가는 신령한 복을 받았습니다.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김삼일 가족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현장에도 방해하는 세력이 수없이 있습니다. 너는 죄인이다. 오늘도 죄를 많이 지었지 않았느냐며 우리의 심령을 찢어놓습니다. 예 맞습니다. 죄와 허물로 인해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음을 충분히 압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보배로운 피로 용서해 주셨음을 믿고 믿음으로 힘차게 나가면 됩니다. 사탄의 세력이 아무리 흔들어도 흥하면 흥하는 것이고 망하면 망하는 것으로 알고 그저 믿음으로 전진하면 됩니다. 주일 지키다 손해 본다면 손해 보리라. 십일조 드리다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이면 손해 보리라. 믿음의 양심을 지키다 손해 본다면 손해 보리라. 죽으면 죽으리이다. 이 각오로 전진합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0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거기서 제단을 쌓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던 벧엘로 가는 길, 마침내 야곱이 도착하여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을 다시 만났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셨다는 09절 말씀을 오늘 나의 말씀으로 삼으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복을 받습니다. 영권(靈權)과 물권(物權) 등 온갖 좋은 것이 다 옵니다. 야곱은 30년 전에는 벧엘이라 칭했다가 이제는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는 엘벧엘이라 부릅니다.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이 고백은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간증하는 현장입니다.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첫째 땅의 약속과 둘째 자손의 약속과 셋째 신령한 복의 약속입니다. 단순히 자손의 숫자가 많아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숫자를 넘어서서 네 자손 가운데 대대로 왕이 나올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벧엘로 올라온 야곱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겠다는 이 약속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받아야 할 신령한 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