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8년 말씀

밤 사경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마 14:22~33)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8. 12. 2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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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이 교회에서 오늘 본문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특별히 베드로가 잠시 물 위를 걸었던 말씀에 필(feel)이 강하게 왔습니다. 베드로가 주님,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라는 말씀처럼(28) 자신도 이렇게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하여 청년은 서울 한강으로 가서 물 위를 한 발 내디디며 주여 믿습니다. 아멘 하고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청년이 큰 실망을 하고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다 하셨고 베드로도 갈릴리 바다 위를 걸었습니다. 저도 기도하고 믿음으로 도전하였는데 왜 물에 빠졌습니까? 이에 목사님은 청년의 물음에 답하십니다. 예수님이 청년을 물 위로 걸어오라 하셨나요? 아닙니다. 그러니까 빠지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기적 후에 제자들을 배에 태워서 먼저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은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에 있던 무리를 해산하여 집으로 돌려보내고 따로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이 탄 배는 오후 늦게 갈릴리 바다 북서쪽 게네사렛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타고 가던 배가 풍랑을 만나 파선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난의 현장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송년주일 말씀을 밤 사경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로 정했습니다.

 

 

 1. 제자들이 먼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된 이유입니다.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배에 태워 먼저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왜 먼저 떠나게 하셨습니까? 이에 대한 예수님의 의중을 알기 위해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오병이어 기적 후의 일을 살펴야 이해가 됩니다. 사 복음서가 함께 다룬 예수님의 기적은 오병이어가 유일합니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나오는 반응이 어떠한지 요 06:14~15절을 보겠습니다.

 

06:14.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느라.

 

제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타고 먼저 건너편으로 가게 하신 이유를 밝힙니다. 떡을 배불리 먹은 무리가 예수님을 경제 문제를 해결해 줄 지도자로 생각하고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는 했다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 정치와 경제와 국방에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독립시킬 왕으로 알고 추대하려 하였습니다

이럴 때 무리를 그냥 두면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는 행동으로 나설 것이고, 거기에 제자들도 휩쓸려 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바로 예수님은 내란음모 죄로 지목이 되어 복음전파에 지장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통해서 왕이 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육신의 양식을 해결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십자가에서 속량하기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 사람들이 원하는 왕 됨을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동시에 제자들도 그들의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도 그들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공짜 떡 하나 더 얻어먹는 일에 목적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집으로 가라고 해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분만 잘 붙잡으면 육신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데 잘 돌아가려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현장을 떠나시자 오히려 배를 타고 예수님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습니다. 무리가 바다 건너편 제자들 있는 곳까지 찾아와서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님, 언제 여기 오셨습니까? 이에 저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오병이어의 참뜻을 깨달은 것이 아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하라(06:24~27). 그런데도 계속 예수님을 따르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자 무리가 말씀이 어렵구나. 누가 듣고 이해할 수 있겠느냐며(06:50~60)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세상 사람에게 제자들이 동화되지 않도록 먼저 현장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2. 밤 사경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예수님은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에 있던 사람을 다 해산시키고 혼자 기도하러 산에 오르셨습니다(23).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이 거세집니다. 갈릴리 바다 저 멀리 제자들이 탄 배가 파도에 휩싸여 침몰 위기에 놓인 것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이 탄 배를 그냥 두었다가는 큰일 날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바닷가로 달려가셨습니다. 이어서 바다 가운데로 걸어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제자들의 고난의 현장에 도착하셨습니다. 이때 시간이 밤 사경입니다.

 

밤 사경이란 이스라엘의 시간을 이해하면 됩니다. 그들은 밤을 4경으로 구분하고 1경을 3시간으로 잡습니다. 저녁 6시경부터 밤이 시작되므로 1경은 오후 6~9, 2경은 9~12, 3경은 12~새벽 3, 4경은 3시부터 6시 사이입니다. 밤 사경 즉 새벽 3시경이니 예수님이 산에서 기도하신 지가 여러 시간이 지난 때요,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 한가운데서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 현장을 마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예수님은 보셨다(06:48). 예수님은 산기도 하시면서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으로 인하여 괴롭게 노 젓는 것을 보셨습니다

처음 바람이 불 때부터 밤 사경에 이르기까지 고난에 처해 있는 모습을 다 보셨습니다. 문맥의 앞뒤 흐름을 보면 예수님은 풍랑 때문에 힘들어하는 제자들을 보시고도 바로 구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고난이 극에 달하여 죽음에 직면할 때까지 기다리신 것 같습니다. 캄캄한 밤 새벽녘에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유령이다. 하면서 그만 패닉[panic] 상태에 빠집니다.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유령(幽靈)이다. 아무리 새벽이라도 그렇지 어제까지 같이 지낸 예수님을 몰라보고, 유령이라 합니까? 무서움에 사로잡히면 순간의 두려움이 유령을 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도 그렇다고 하였습니다(24:37).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소리를 질렀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단한 것 같이 행동해도 실은 작은 두려움에도 움츠러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로 믿고 바로 만나기만 하면 그때는 두려움에서 해방을 받습니다.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의 인생살이도 때로는 고난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이 즉시 문제를 해결해주시면 좋겠는데 우리의 시간표와 맞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시간, 우리의 시간표에 오시지 않고 한참 지나서, 문제가 악화하여 파선을 당한 후에 오실 때가 있습니다.

사업이 부도가 나고 온 가족의 살아갈 길이 막막할 때 하나님이 즉시 오셔서 그 고난의 현장을 수습해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육신의 병으로 고통당할 때 하나님께서 즉시 그 병을 고쳐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즉각 매출이 많게 해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럴 때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55:0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09.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3. 베드로가 왜 물 위를 걷다가 빠져 갑니까?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풍랑으로 인해 제자들이 탄 배는 파선의 위기, 제자들은 죽음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때 갈릴리 바다 위를 걸어오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27). 이 음성을 들은 제자들 죽음의 현장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항상 그랬듯이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여, 제가 선생님께로 가기를 원합니다. 물 위로 오라고 명령만 해주시옵소서. 복음서에 나타난 베드로의 최고의 열정, 최고의 믿음을 보는 순간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라(ἔρχομαι). 믿고 오기만 하면 보호와 안전을 담보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미지의 세계로 나가는 모험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75세에 미지(未知)의 세계 가나안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11:08), 이스라엘도 그저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습니다(11:29). 

드디어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갈릴리 바다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물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간다는 게 어디 상상이나 됩니까? 예수님께로 한발 한발 옮기는 베드로, 배에서는 열한 제자가 아슬아슬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초긴장의 순간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베드로가 물속으로 단번에 쏙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들어갑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겼지만 이내 바람이 물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다 불신앙의 결과, 의심의 결과입니다. 이왕 주님을 바라보고 출발했으면 끝까지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흩트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님을 바라보던 시선을 바람 때문에 흩트리고 말았습니다. 바람은 주님 오시기 전부터 이미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한 것은 주님의 능력보다 바람의 힘이 더 무섭게 보여서 일어난 일입니다. 베드로가 놀라 소리칩니다. 주님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인간 한계를 깨닫고 주님께 부르짖는 소리입니다.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아 주십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지 않고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라는 말씀만 하십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요구하신 것은 의심하는 믿음이 아니라 큰 믿음입니다. 큰 믿음이 있어야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세상은 두려움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시험의 지뢰밭입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걸림돌이 즐비한 곳입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이런 찬양 하면서 주님을 바라보시고, 모든 두려움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얼마 전 인터넷 뉴스에 웃지 못할 동영상이 보도되었습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일본에서는 한 마라톤 대회가 열립니다. 12~3일 이틀간 도쿄와 하코네를 왕복해서 이어 달리는 시합으로 일본의 유명 대학 선수들이 출전하는 권위 있는 대회입니다.

올해 이 대회에서 1등으로 달리던 선수가 결승점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코스를 이탈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선수는 아무 생각 없이 방송중계차를 따라 달렸는데 결승점 부근에서 이 방송중계차가 마라톤 코스를 이탈하여 우회전했습니다.

그러자 이 선수도 그 방송중계차를 따라 코스를 이탈해서 우회전하고 말았습니다. 한 번의 실수로 이틀 동안 경기를 잘하다 마지막 순간에 1등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못하여 1등을 놓친 일을 생각하며 얼마나 후회하였겠습니까?

 

이 기사를 읽으면서 주님을 바라보며 물 위를 걷던 베드로, 바람을 보고 두려워 물로 빠져들어 간 베드로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믿음의 경주는 그 무엇보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초점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금방 무너집니다. 흔들리지 않는 푯대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고난의 현장에서 주님을 찾기만 하면 잊지 않고 찾아오십니다. 밤 사경에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주님을 만난 것처럼 우리도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시간상의 밤 사경보다 영의 밤 사경은 나는 더 할 수 없습니다. 라며 자포자기한 순간 아닙니까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 내 힘으로는 이제 더는 안 됩니다. 도와주십시오. 라며 은혜를 구하는 때가 영의 밤 사경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때부터 일하십니다.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빨리 깨닫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때가 다시 복을 회복하는 출발점입니다.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32). 주님께서 우리의 교회에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사업장에 우리의 심령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고난과 슬픔의 현장을 오늘 송년주일로 다 끝내고 이제 새해를 믿음으로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