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8년 말씀

믿음의 사람은 결국 승리합니다. (단 03:01~27 )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8. 12. 1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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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17세 경 유럽에서 매우 열악한 후진국이었습니다. 그러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날 당시 통치자 윌리엄 4(William IV 1766.8.21.~1837.6.20.)가 죽습니다. 그런데 그의 뒤를 이을 자녀가 없자 논란을 거쳐서 왕으로 즉위 한 사람이 빅토리아(Victoria 1819.5.24.~1901.1.21.) 여왕입니다. 이때 나이 18세로서 세상 물정도 잘 모르는 처지입니다. 그러니 정치, 경제, 교육, 군사 분야를 어찌 제대로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그 어린 소녀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모든 주권이 아버지께 있사옵니다. 나의 연약함을 자비와 긍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선한 다스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기도의 손은 약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강했습니다. 1837년부터 64년 동안 그녀가 다스린 영국은 최고의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에 식민지를 가진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의 기초도 빅토리아 여왕 때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삼는 믿음이 세계 최고를 만들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 보다 앞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 세 사람 몰락한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 온 자들입니다

그러나 포로의 신세지만 믿음 하나만은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세상 그 어느 권세보다 믿음을 더 앞세웠기에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43:0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이 말씀은 믿음의 창문을 여는 자에게 임하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06:06). 사도 바울의 메시지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일입니다. 위기의 자리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믿음의 사람은 결국 승리합니다. 로 정했습니다.

 

 

 1. 믿음의 세 청년이 시련을 만났습니다.

 

05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다니엘의 설교 첫 시간에 믿음의 세 청년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은 유다 왕국 18대 왕 여호야김 때 다니엘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자들입니다. 포로의 신분이다 보니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로 강제 개명을 당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국가 정책에 의해 바벨론 사람들과 함께 왕립학교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고 지방관리로 배치를 받았으니 포로 출신으로서는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에 인재가 없어서 이런 포로 출신들을 등용시킵니까? 포로로 잡아 온 많은 이스라엘 사람의 불만과 요동을 다독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 나라들은 국가가 부강할 때쯤이면 으레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왕의 우상화 작업을 벌입니다


정복자의 특징입니다. 이런 정책을 따라 느부갓네살도 인도에서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자신의 세력 확장과 정복을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합니다. 바로 금으로 비유된(02:38) 자기 왕국의 영원함을 위한 왕권 강화 정책입니다.

그 첫 출발점으로 바벨론 경내의 두라 평지에 거대한 금 신상을 세웠습니다(01). 그 형상[거대한 남근(男根?)]의 높이가 60규빗인데(1규빗 45cm 27m) 이 신상의 낙성식에 바벨론의 모든 관리가 참여하여 절을 하는 의식을 진행합니다.

이로 인해 포로 출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믿음의 시련을 만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용사로서 어떤 우상이라도 섬기지 않는 자들입니다. 드디어 금 신상 낙성식에 참여한 모든 관리를 향하여 호령관이 엄숙히 선포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엎드려 절하라(05). 만일 엎드려 절을 하지 아니하는 자가 있으면 누구든지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06). 그러자 바벨론의 모든 귀족과 관리와 초청을 받은 자들이 각종 악기의 주악에 따라 거대한 금 신상 앞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07). 어떤 사람도 예외가 없는 이 현장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금 신상에 절을 하느냐 아니면 절을 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느냐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이들 세 사람은 보이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야말로 신앙의 인격과 목숨을 걸고 증언해야 할 대상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 신상에 엎드려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꼿꼿이 서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은 바로 노출이 되어 느부갓네살에게 즉각 보고되었습니다.

 

12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세 사람을 악의를 품고 참소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라 했으니(08) 이들은 평소에 포로 출신 이들을 시기하며 업신여겼던 자들입니다. 고소의 내용을 보십시오. 포로 출신 주제에 왕에 대한 은혜를 모르고 국가에 대한 이적 행위를 한 국가 반역자라며 참소합니다.

그런데 여기 12절에 다니엘이 보이지 않습니다. 혹 다니엘은 믿음의 변절을 한 것입니까? 이 참소의 현장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가 공무상 출장을 갔거나 아니면 심한 병(08:27)을 앓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Thomson).

 

 

 2. 믿음의 사람은 왕의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스라엘의 포로 출신 세 젊은이가 느부갓네살 앞에 끌려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이 직접 회유를 합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각종 악기의 주악에 맞추어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용서해 주겠다는 회유입니다.

만일 절하지 않으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다. 그때는 너희가 섬기는 신이라도 내 손에서 건져낼 수 없을 것이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불신앙 문화 속에서 살고 있지만 이미 믿음의 뜻을 정하였습니다. 하나님만 온전히 믿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에게 말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도 아니할 줄을 아십시오. 극렬히 타는 풀무불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이 세 사람은 죽으면 죽을지언정 왕의 뜻을 따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정으로 보면 포로 출신 자기들을 왕이 특별한 은혜를 내려 관리의 직책을 내렸으니 백골이 난망한 은혜입니다. 어떻게 왕의 은혜를 배반한다는 말입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왕의 호의를 거절합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 절하지 않겠습니다. 그리 아십시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풀무불의 죽음도 감당하겠다는 선언입니다. 불 속에 던져지면 그것으로 끝이고 후일을 도모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믿기로 뜻을 정한 이상 믿음의 길을 떠나지 않겠다는 각오를 표현합니다. 어떤 손해가 올지라도 신앙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 용광로에 던져도 살려주실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참된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는 시련의 골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우리도 바로 믿기 위해서 시련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육신의 손해를 가져올지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이상 양보할 수 없습니다.

 

벧전 0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지켜주실 줄 믿지만 혹 죽음을 맞이할지라도 그 길을 택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을 굳게 지키기만 하면 살려주시겠다는 특별한 음성이 이들 세 사람에게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믿고 이런 담대하게 고집을 부립니까? 이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죽음을 통해서 일하시기 원한다면 그 죽음을 택하겠다는 뜻입니다. 이런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며 바로 내가 본받아야 할 믿음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도 감당하지 못합니다(11:38).

 

 

 3. 믿음의 사람은 결국 승리합니다.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세 사람을 풀무불에 던졌는데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는 현장입니다. 이방 나라의 왕이 보기에도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신들의 아들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여기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라는 견해와(장 칼뱅) 구약시대 성자의 나타나심이라는 견해입니다(크리소스톰). 어느 쪽으로 해석을 해도 별 무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비상한 때에 비상한 방법으로 믿음을 지키는 자기의 종들을 도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4의 인물을 천사로 해석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세 청년이 풀무불에 던져지는 그 순간부터 일하시기 시작했습니다. 풀무불 속에는 분명히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이 보니 제4의 인물이 그 풀무불 속에서 세 사람과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24절을 보면 느부갓네살이 눈앞에 벌어진 일을 보고 간담이 서늘하도록 놀랍니다.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누가 한 말입니까?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이 하는 말입니다. 왕이 제4의 인물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서 하는 말입니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비명입니다. 두려움과 충격의 정도를 짐작하는 말입니다. 자기의 모든 계획과 정책이 무너지기 때문에 나오는 외마디 비명입니다.

 

하나님은 꼭 필요할 때는 자기의 천사들을 보내어서 역사하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자, 하나님의 천사가 종종 나옵니다. 천사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를 위하여 섬기는 영입니다(01:14). 구원받은 백성이 위기에 처할 때 도우미 역할을 하는 영입니다

사도행전 12장을 보면 헤롯 왕이 기독교를 박해할 때 먼저 사도 야고보를 참수하였습니다. 이 일에 대해 유대인들이 기뻐하자 베드로도 참수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무교절 기간이라 유월절 후에 많은 사람 앞에서 참수하려고 일단 옥에 가두었습니다

죽이려는 날짜가 하루 밖에 안 남았습니다. 이 일을 놓고 성도들은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천사가 옥에 등장하였습니다. 급히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우며 말합니다. 빨리 일어나라. 그러자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집니다. 천사의 인도를 받아 무사히 3중으로 지키는 옥을 나와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2: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하나님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믿음을 위하여 장애물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동시에 느부갓네살 왕의 마음도 변화를 시키셨습니다. 이에 느부갓네살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섬기는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인정하고 전국에 특별 조서(詔書)를 내립니다. 바벨론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경솔히 여기지 말라. 만일 경솔히 여기면 그 몸을 쪼갤 것이다. 하나님이야말로 신 중의 최고의 신이다. 라는 뜻입니다(29).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 세 사람은 다른 것은 다 양보를 해도 믿음만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절대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만은 양보할 수 없는 절대 가치로 알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절대 가치와 상대 가치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가 양보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덜 중요한 것은 믿음을 위해 양보하십시오. 그것이 자존심이나 체면이라도 괜찮습니다. 반면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키는 굳건한 믿음의 자세를 가지십시오.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믿음을 사수하는 데 있습니다.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는 일임에도 기질을 누르지 못하여 자신의 인격을 깨뜨리는 일은 알고 보면 더 귀한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의 믿음에 대해서는 예민하여야 합니다. 영의 감각을 잘 유지하여야 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절대 가치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목숨을 걸고서 믿음을 지킨 이들 세 사람의 장래가 어떠합니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믿음의 클라이맥스가 마지막 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