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8년 말씀

사도 바울의 심부름꾼 두기고(골 04:07~0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8. 2. 1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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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선교사역에 중요한 역할로 쓰임 받은 인물이 많이 있습니다. 디모데, 디도, 실라, 누가,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 등입니다.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면 무명의 일꾼 같으면서도 지금 거론한 이들 못지않게 쓰임 받은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두기고라는 인물입니다.

두기고는 행 20:4절을 보면 아시아 출신입니다. 이 사람이 사도 바울을 만나 믿음의 훈련을 받고 아주 큰 일꾼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바울이 제3차 선교여행을 마칠 때쯤 여러 교회로부터 구제헌금을 모금하였습니다. 어려움을 당한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한 헌금입니다. 바울이 헌금을 가지고 갈 때 두기고가 동행하였습니다.

 

바울이 기록한 옥중서신의 한 권인 골로새서 마지막을 보면 바울은 자기의 사역을 도운 여러 인물을 나열합니다. 그 가운데 제일 먼저 나오는 인물이 두기고입니다. 바울은 이 두기고를 골로새교회에 특별히 파송하였습니다바울은 예수님 복음 전하다 로마 감옥에 수감 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골로새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근황을 놓고 심히 염려합니다. 이에 바울은 자기의 모든 상황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 두기고를 사망자로서 보내었습니다.

바울의 특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의 특사 역할을 하는 두기고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그래서 제목을사도 바울의 심부름꾼 두기고이렇게 정했습니다.

 

 

1. 바울의 특사 두기고의 인물 됨됨이입니다.

 

07…. 그는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에 품은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뜻으로 품은 사람도 있고 혹 안 좋은 뜻으로 품은 사람도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고마운 사람, 눈물 나고 그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각만 해도 마음이 상하고 안 좋은 감정이 생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게 상처와 아픔을 준 사람, 내 입에서 한숨 나게 한 사람, 내 눈에서 눈물 나게 한 사람, 어쩌면 다시 만나게 될까 걱정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다른 사람에게 편지로 소개한다면 뭐라고 쓸 것 같습니까? 김해삼일교회의 귀한 일꾼, 이런 소개 글이 되겠습니까?

아직 그런 생각을 안 해 보았습니까? 그러면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특별 사명을 맡은 두기고를 3가지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사랑(ἀγαπητὸς)받는 형제요. 바울은 두기고를 소개할 때 우선으로 사랑받는 형제라고 소개합니다. NIV에는 dear brother로 나오는데 누구를 소개할 때 내가 아주 친하게 지내는 사람입니다. 라는 말은 상대에 대한 최고 예우입니다

바울은 곁에 있는 두기고를 에베소교회에 같은 말로 소개합니다(06:21). 두기고가 주님 안에서 모든 성도에게 사랑받는 증거요 바울과의 사이에도 매우 친하게 지내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을 놓고 형제라는 단어를 자주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두기고를 형제라고 소개한 것을 보면 그만큼 두기고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신실한(πιστὸς) 일꾼이요. 사실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 믿을 만한 사람 찾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내 마음과 같은 사람을 찾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교회에서 사람 앞에 거룩하게 예배드리는 모습으로 보이기는 쉽습니다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인정되고 어떻게 불리는가가 중요합니다.

얼마나 신실한 일꾼인가? 얼마나 신실한 마음으로 예배드리느냐? 얼마나 신실하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그 중심의 신실함을 보시기 때문입니다(51:06).

 

그런데 교회에서 일꾼과는 반대로 구경꾼으로 인식되면 곤란합니다. 자기와 가족 모두에게 명예롭지 못합니다. 혹 그렇게 비친다면 바로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는 속이지 않습니다. 눈가림으로 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합니다. 변덕도 부리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이 볼 때 인정될 만큼 신뢰를 줍니다.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σύνδουλος). 바울과 두기고는 하는 일은 달랐지만, 주님 안에서 함께 종의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함께 종이 되었다는(σύνδουλος)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바울과 두기고가 주님을 섬기는 일에 함께하는 그 자세 정말 귀합니다. 종에게는 오직 충성만 있고 오직 주인만을 위해서 존재합니다종은 자기의 것이라고 열 올리지 않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처럼 주안에서 함께 종이 되어 살아가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겼습니다. 바울과 두기고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기를 기뻐하였습니다.

 

 

2. 두기고는 바울의 심부름꾼 역할을 하였습니다.

 

0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현재 대한민국의 통신제도는 말할 수 없을 만큼 발달하였습니다. 휴대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울리고, WIFI만 연결되면 외국도 무료로 화상 전화를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e-mail로 온갖 자료를 다 보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세계는 하나요 지구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편제도가 열악한 시절의 편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는 물품이나 편지를 외국 간에 주고받을 때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분실률도 높았기 때문에 중요한 편지는 믿을 만한 사람 편에 보내어야 했습니다.

 

또 개인 편지를 사람 편에 보낼 때는 아무에게나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선정하여 보냈습니다.

심부름 측면에서 보면 믿을 만한 사람, 실수하지 않을 사람을 택하여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자기의 근황을 전하려 합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하여 두기고는 바울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직접 들고 골로새교회로 가는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우편배달부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옥중에서 골로새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기록하여 두기고 편으로 보냅니다. 긴급하고 중요한 교리는 편지에 기록했습니다.

 

모든 소식을 어떻게 글로 쓸 수 있습니까? 두기고가 바울의 편지는 그대로 전하면 됩니다. 그러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은 직접 설명해야 합니다.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신임받는 사람이라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두기고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의 사역을 돕는 귀한 동역자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04:15~16절을 보면 라오디게아교회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안부하고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교회에서도 읽게 하라는 부탁입니다.

골로새서를 골로새교회에서 읽게 하고 이 편지를 다시 라오디게아교회로 가지고 가서 읽게 하는 중복 된 수고를 하여야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편지도 두기고의 손길을 통해서 전달됩니다. 골로새서 내용과 거의 비슷한데 엡 06:21, 22절을 읽겠습니다.

 

엡 06: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22 우리 사정을 알리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김삼일 가족 여러분, 바울의 형편과 소식을 알리는 사명자 두기고는 골로새교회, 라오디게아교회, 에베소교회를 돌면서 바울의 마음을 시원하게 전합니다.

이런 일은 직접 발로 뛰지 않으면 못 합니다. 만약 두기고의 손길을 통해서 골로새서와 에베소서 두 편지가 전달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여러 교회가 바울의 적절한 지도와 위로와 가르침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기고가 바울을 대신하여 편지 전하는 일은 초대 교회 시절 큰 사명자 역할이었습니다.

 

 

3. 두기고는 바울의 사역을 끝까지 뒷받침하였습니다.

 

딤후 04: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처음 갇혀 옥중서신을 기록한 때로부터 약 5년이 지난 후의 서신입니다. 그런데 옥중서신에 등장한 두기고가 또 등장합니다.

두기고는 바울과 연관되어 자주 등장하는 인물입니다(20:04, 6:21, 22, 04:07, 03:12) 바울의 충실한 동역자입니다.

두기고는 바울의 마지막 사역을 가까이서 잘 보필하였습니다. 믿음의 아들 디모데와 디도처럼, 바울의 주치의 누가처럼 바울을 잘 섬겼습니다.

두기고는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를 로마 감옥으로 부르기 위해 두기고를 대신 에베소로 파송하였을 때도 변함없는 일꾼으로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두기고가 바울의 편지를 들고 골로새교회, 에베소교회, 라오디게아교회 등 여러 지역을 다닐 때의 환경이 어떠했습니까? 교통이 매우 불편할 때입니다.

낯선 지역을 다니는 동안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수없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바울과 두기고에 관한 이야기는 딛 03:12 절에도 나옵니다.

바울은 위험천만한 오지 그레데 섬에서 일하던 디도를 부르기 위해 두기고를 보냈습니다. 이때도 두기고는 잘 순종하여 오지로 가서 디도를 대신하여 복음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자기를 고소한 자를 가이사 황제에게 상소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로마에 와서 재판받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바울을 고소한 자들이 피고로 전락하자 소환에 응하지 않음으로 재판은 기각되고 바울은 석방되었습니다.

이렇게 석방 받은 바울은 계속 복음 전하는 일을 하다 다시 잡혀 로마 감옥에 갇혔는데 이때도 두기고는 바울을 떠나지 않고 곁을 지켰습니다.

두기고의 일관된 섬김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변하지 않는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끝까지 일하는 자리는 내가 먼저 차지해야 합니다.

 

바울이 순교를 내다보고 디모데를 부르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 04:01).

데마가 누구입니까? 바울의 동역자 소리를 들은 인물입니다. 두기고가 옥중서신을 여러 교회에 전할 때만 해도 함께 믿음의 자리를 지킨 인물입니다.

그런 데마가 그만 세상을 사랑하여 고향 데살로니가로 돌아갔습니다. 낙심하였다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이 든든하다고 장담하지 마십시오. 믿음은 끝까지 관리하여야 합니다.

 

약 0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김삼일 가족 여러분, 믿음은 항상 진행형이어야 합니다. 전에 잘했으면 지금도 계속 잘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영접했을 그때보다, 세례를 받았을 때보다, 사명 받았을 때보다 오늘 말씀을 듣는 이 시간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가장 까칠한 사람, 가장 부담스러운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과거 완료 형입니다.

내가 한때는 열심히 했고, 전에는 찬양대도 했고, 교사도 했다고 말하는 사람 보십시오. 교회에 분명 부담을 주는 사람입니다. 전보다 지금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 잘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Benjamin franklin(1785~1790)이 어느 날, 아름다운 유리 등잔 하나를 사서 잘 닦아 불을 켜고 집 앞 거리에 걸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해만 지면 무척 어둡던 길거리가 작은 등불 하나로 밝은 길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 사람들은 그의 집 앞을 지났지만 더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가다가 그의 집 앞 등불 아래서 발걸음을 멈추고 이야기까지 합니다.

만남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어느새 그의 집 앞 등불은 동네 명물이 되면서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자기 집 앞에 등불을 내 걸었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 한 사람 집 앞에 등불을 거는 사람이 늘면서 필라델피아는 길거리를 가로등으로 만든 미국의 첫 도시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도 안 만나도 그만인 사람,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바울이 두기고를 사랑하는 사람, 신실한 사람, 나와 함께 주님의 일을 같이 섬기는 종입니다. 라고 추천한 것처럼 우리고 그런 일꾼 됩시다두기고에 대한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두기고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그렇게 되도록 결단합시다두기고는 그렇게 화려하게 활동한 것 같지 않지만, 후일의 결과는 대단히 귀하게 쓰임 받은 일꾼이 되었습니다우리 모두 교회에서, 직장에서, 생업의 터전에서 사랑받고, 신실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영혼의 중매자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