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8년 말씀

사르밧 과부는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왕상 17:08~1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8. 2. 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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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성도들은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기적, 특별한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특별한 믿음 구하는 일에는 등한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기를 원한다면 그것을 받을 만한 특별한 믿음도 있어야 함을 아셔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환경들이 좋아야 특별한 사람이 된다고 여깁니까?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사르밧의 한 과부는 세상의 조건으로는 죽음을 계획할 정도의 최악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삶을 최고의 삶으로 바꾸었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특별한 믿음 가지기를 소망하십시오.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이 임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무리 기도해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는 순서가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먼저 하나님께 드림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쓰고, 남은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려고 합니다.

복을 받는 믿음은 반드시 선택과 순종이라는 조건이 따릅니다.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영으로 살 것인가 육으로 살 것인가? 이럴 때 선택의 기준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오늘은 사르밧 과부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믿음으로 도전하여 복을 받을 수 있는 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사르밧 과부는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로 정했습니다

 

 

  1.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사르밧으로 가라하십니다.

 

0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에게 시돈의 사르밧 과부(אַלְמָנָ֖ה 알마나)에게 가서 의존하라고 명하십니다. 하필이면 이방나라의 과부입니까?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왜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그 시대의 정치와 종교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당시 북 이스라엘 왕국은 7대 왕 아합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이 아합 왕은 당연히 하나님을 섬겨야 함에도 오히려 이방신을 섬기는 일에 빠졌습니다. 아합 왕이 왜 이렇게까지 우상에 빠졌습니까? 지중해 연안의 도시국가 시돈에서 이세벨을 왕비로 데려왔기 때문입니다.

국가 간 정치차원의 결혼을 한 셈입니다. 이 이세벨이 시집오면서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가져와 퍼뜨림으로 북이스라엘 전체가 우상에 뒤덮였고, 하나님의 선지자들도 큰 수난과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36개월 동안 극심한 가뭄에 처했습니다. 동시에 이 가뭄은 이웃 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가뭄이 얼마나 심했는지 하늘에서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았으며, 모든 산천초목은 말랐고, 짐승은 물론 사람까지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쯤 되면 아합 왕은 가뭄의 원인이 자신의 허물로 인함 인줄 알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아합 왕은 자기 탓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엘리야를 죽이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리하여 아합 왕은 엘리야를 잡기 위해 이스라엘 전 지역에 현상수배까지 내걸었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하나님의 지시로 아합 왕의 낯을 피해 그릿 시냇가로 가서 숨어 지냅니다. 이곳도 이내 그 근원이 마르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다시 식물 공급처를 정해주십니다. 시돈에 속한 사르밧의 한 과부의 집으로 가라는 명령입니다.

가뭄이 끌날 때까지 사르밧에 머물면서 이세벨의 치하에서 득세하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 숭배자들과의 신령한 싸움을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엘리야가 가야 할 시돈의 사르밧 지역은 어떤 곳입니까? 사르밧(צָרְפַ֙תָה֙)의 지명 뜻은 염색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로보아 사르밧은 두로처럼 베니게의 주요 염료 생산지인 셈입니다.

 

이 성읍을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설교하실 때 한 번 인용하셨습니다. 그때는 사르밧의 헬라의 음역을 따라 사렙다(04:26)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여러 지역들 중 하필이면 사르밧으로 가라고 하십니까?

이 사르밧보다 더 크고 환경이 좋은 도시들이 얼마든지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거기다 엘리야에게 식물을 접대 할 사람은 오히려 불쌍히 여김을 받고 구제의 대상이 되는 과부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이방 나라의 이렇게 초라한 과부에게 의존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이처럼 약한 자를 엘리야와 맺어주는 것은 현재 이스라엘에는 이만한 믿음의 사람이 없다는 증거이고, 비록 이방인일지라도 믿음만 있으면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2.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를 만나는 과정을 보겠습니다.

 

10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엘리야가 사르밧의 한 과부를 만날 때의 모습입니다. 이 과부는 거리에 흩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주워 땔감을 삼는 정도의 극빈자입니다. 만일 과부에게 경제의 여유가 있다면 종을 부려 땔감을 해오게 하거나, 아니면 시장에서 땔감을 사 왔을 것인데 그런 형편이 전혀 안 됩니다. 엘리야가 이런 형편에 놓인 과부에게 요청합니다.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아합 왕 당시의 가뭄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여러 주변국들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조금 전 말씀을 드렸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식수 대접이 거의 신성한 의무처럼 여겨졌을지라도 물이 매우 귀한 상황에서 낮선 나그네의 물 요구는 여간한 부담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엘리야의 식수를 요구하는 일은 사르밧 과부가 넘어야 할 첫 번째 시험(test)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과부는 물을 가지러 갑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그를 다시 불러서 말합니다.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처음 엘리야가 과부에게 물을 달라고 할 때 부탁을 들어주자 이제 더 염치없는 부탁을 합니다. 현재 사르밧 과부에게는 겨우 길거리에서 주운 땔 나무 조금 있고, 먹을 양식이라고는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붙어 있을 뿐입니다. 이 부탁을 보면 엘리야가 하나님께서 지정한 사르밧의 과부가 누구인지 시험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09). 두 번째 시험을 만난 과부가 엘리야에게 말합니다.

 

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에게 대답하는 장면을 보십시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믿음의 말로 들립니까? 전혀 아닙니다. 이 과부가 나의 하나님이 아닌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교류가 있었던 시돈(베니게)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과부는 엘리야의 모습에서 이스라엘 사람임을 알아보고 이스라엘의 민족 신인 여호와를 호칭합니다. 나는 떡이 없고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있는데 이것으로 아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고 죽을 것이라는 계획을 밝힙니다.


이런 과부에게 엘리야가 떡 하나를 달라고 하는 것은 과부에게 자신의 전부를 요구하는 요청과도 같습니다. 과부에게는 극도의 어려운 시험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르밧의 과부와 엘리야의 대화를 보십시오.

사이좋게 주고받는 대화로 보입니까? 대화가 아니라 일방 명령입니다. 그럼에도 이 과부가 넋두리 타령은 하면서도 엘리야에게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냐? 당신 입장만 생각하느냐? 남의 심정을 그렇게도 모르느냐? 라고 쏘아붙이지 않습니다

아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죽으려는 그 음식을 먼저 자기가 먹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말도 안 되는 제의를 받고도 욕하고 쫓아 보내지 않았습니다.

 

 

  3. 엘리야의 말에 과부가 순종함으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는데 만일 엘리야의 말을 좀 부정으로 생각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이 가뭄에 양식을 뺏어 먹으려는 농간꾼으로 의심하였을 것입니다. 좀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이 가난한 과부에게 요청하느냐며 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부가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의 한 끼 식사도 채 되지 않는 것이지만 엘리야의 말에 불평을 않고 기꺼이 대접하였습니다.

사르밧의 과부 입장에서 엘리야는 얼굴로는 처음이지만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주변의 모든 나라가 엘리야의 영성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소문만 듣던 그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이 과부가 일대 일로 만나면서 순종하는 쪽으로 선택을 하였습니다.


순종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신약시대의 오병이어 같은 기적이 일어나서(06:05~13) 가루와 기름이 적어도 3년 가까이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하시고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나갈 때 기적을 체험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를 통하여 날마다 음식을 날라 먹게 하셨던 그 능력을 사르밧에서도 얼마든지 재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까마귀를 통한 도움보다는 사람을 통해서 도움을 받는 쪽으로 방법을 바꾼 것은 사르밧 과부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공개하기 위함입니다. 이 사건을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에 인용하셨고, 이제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믿기는 하겠습니다. 다만 먼저 보여 주시옵소서. 라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에 조건이 붙을 때가 많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은 믿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11:0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實像)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성도 여러분, 이것 하나는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 시험하실 때 때로는 하나밖에 없는 것, 최후의 것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 말입니다(22:01,02).하나님은 나에 대해서도 시험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아끼는 것, 정말 내 놓기가 싫은 것을 내 놓으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불순종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갈림길을 만난다면그 답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받으면 됩니다.

 

1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님은 이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 인생의 마지막 남은 시간을 나에게 쓸 것이냐? 마지막 남은 건강을 나를 위해 사용 할 것이냐? 마지막 남은 사랑을 나에게 줄 것이냐에 대해 물으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오늘 하여야 합니다.

내일은 보장이 없습니다. 혹 친절한 말 한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지어주고 싶은 분이 있으면 지금 웃어 주십시오.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 있으면 지금 하십시오. 내일 이라는 시간은 아무도 보장하지 못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에게 행한 대접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표현이며, 이 섬김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순수한 예물입니다.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고, 마지못해 한 일도 아닌 오직 순수하게 믿음으로 드린 예물입니다.

자기의 생명과 같은 마지막 양식을 드리는 것은 큰 시험입니다. 사르밧 과부와 이스라엘 당대 최고 신령한 지도자 엘리야의 만남, 그것도 종교 면에서 원수의 나라인 시돈 땅 사르밧에서 만남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시험 앞에서 과부는 믿음으로 판단하고, 믿음으로 도전하여 가뭄이 풀려서 양식을 구할 때까지 아들과 함께 먹는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부유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유식한 자도, 무식한 자도 다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물질 문제 앞에서 믿음으로 도전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주십니다.

 

0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의식주의 일보다 믿음의 일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환경이 좋아야 교회 다닐 수 있고, 충성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르밧의 과부에게 찾아 온 엘리야는 이스라엘 전역에 현상금이 붙은 지명수배자입니다. 사르밧에까지 이 소문이 났는지는 모릅니다.

당시의 아합 왕의 왕비 이세벨의 성격을 보아 시돈 지역에도 지명수배 전단지가 배포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런 사람을 영접하거나 식사를 제공하는 일은 위험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난한 과부는 엘리야를 영접하여 식사를 대접하였고, 그 결과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믿음으로 도전하여 이룬 결과입니다. 우리에게 다가 온 모든 환경들, 앞으로 다가 올 환경들을 믿음으로 판단하고 믿음으로 선택하십시오. 그리하여 놀라운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