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8년 말씀

[제8대 사사 입다] 입다는 불행을 믿음으로 극복했습니다(삿 11:01~4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8. 1. 27.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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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사람을 평가 할 때 그 사람의 직업으로 평가하였습니다. 직업이 천하면 천한 사람으로, 좀 괜찮으면 귀한 사람으로 대우하였습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본 강점기 시절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 사고 깊숙이 직업에 대한 귀천의식이 박혀 있습니다. 그러나 한 세대가 바뀌자 이런 사고들은 많이 지워졌습니다. 이제는 돈 잘 버는 사람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의식이 바뀌어졌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그 사람의 직업이 어떠하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성경은 행실이 좀 불순하게(?) 여겨진 다말이나,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이나, 모압 여자 룻, 밧세바 등이 예수님의 조상으로 쓰임 받았음을 전합니다.

 

사사시대의 사사들 가운데 사람의 관점으로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왼손잡이 에훗이나 정욕에 불탔던 삼손도 잘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람의 직업을 가지고 평가하지 맙시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쑥 한 그릇 놓고 파는 할머니도 사장님이라고 불러 줍니다.

우리 모두 밖에 나가면 사장님, 회장님 소리 듣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다 귀한 분들이니 알아서 귀하게 모십시다. 따라 합시다. 귀하신 분을 만나게 되어 감사합니다. 귀하신 분과 함께 예배드리니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알아서 잘 모시겠습니다. 저와 꼭 친하게 지내 주십시오. 잘 부탁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8대 사사 입다는 어떤 사람입니까? 출신성분으로 보면 기생의 아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씀을 통해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입다처럼 쓰임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입다는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1. 입다가 사사로 부름받기 전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10:0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사사가 등장할 때는 그 시대의 어두운 모습들, 신령한 일에 대한 암흑의 현장들이 나옵니다. 고난과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8대 사사 입다가 등장하기 전 이스라엘의 처한 사회 분위기나 신령한 면의 상태를 보면 완전 절망의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과연 이스라엘이 회복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듭니다. 지금 읽은 말씀을 잘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의 모습으로 보입니까? 성경 어느 곳을 보아도 이스라엘이 이방신을 이만큼 섬기던 때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섬기고 있는 우상의 목록을 같이 헤아려 보겠습니다.


바알들, 아스다롯, 아람의 신들, 시돈의 신들, 모압의 신들, 암몬 자손의 신들,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로서 일곱 신들 모두가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무슨 우상 박람회 같은 느낌이 안 듭니까?


바알과 아스다롯.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는 신 가운데 가장 높은 신이 모든 신들의 아버지 격인 엘(El)이고, 엘의 아내가 아세라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아들 신이 바알이며, 아스다롯은 바알의 아내로서 기후에 변화를 일으켜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주는 농경신(農耕神)입니다.


아람의 신들. 아람(Aram)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의 영토 전역에 걸쳐 살고 있던 셈족의 한 부류인 아람족과 그들의 영토를 가리키며, 좁은 의미로는 시리아(Syria)입니다. 이들이 섬기는 신은 가나안 헷족속이 섬기던 신들로서 그 대표 신들로 폭풍신 아닷과 테슛 그리고 태양여신 아린나 등이 있습니다

 

시돈의 신들. 시돈(Sidon)은 두로의 북쪽 36km 지점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국가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에쉬문(Eshmun)을 섬겼는데 이 에쉬문은 두로의 멜카르트(Melqart)와 더불어 근동 지방에서 많이 숭배되던 풍요의 신입니다.


모압의 신들. 모압의 신으로는 전쟁의 신인 그모스가 유명한데(21:29), 암몬의 몰록(몰렉) 신과 그모스 신은 한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암몬 사람이 믿으면 몰록, 모압 사람이 믿으면 그모스 신으로 불립니다. 정결 의식의 일환으로 자식을 제물로 드려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인신제사입니다

 

암몬 자손의 신들. 암몬의 국가신은 몰록(왕상 11:05,07,33)입니다. 철로 만든 거대한 마귀처럼 생긴 형상에다 황소 뿔 같은 것을 달고, 가슴팍에는 불을 때는 아궁이를 만들어 그 안에 어린아이를 던져서 태우는 희생제사입니다.


블레셋 사람의 신들. 블레셋의 국가신으로는 다곤(Dagon)을 들 수 있습니다(16:23; 삼상 05:02~07). 이 다곤은 메소포타미아 북서부에 살던 셈족 다산의 신으로 쟁기를 발명한 전설상의 신이며 물, 생선, 어업을 주관하는 신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살면서 가까이 있는 바알과 아스다롯 우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동서남북 모든 나라의 우상들을 들여와 숭배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아예 타락하기로 작정한 사람들 같이 행동합니다.

왜 이렇게 까지 되었습니까? 풍요와 쾌락이라는 달콤한 이방문화 때문입니다. 물질의 풍요와 육체의 쾌락은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이스라엘도 여지없이 무너뜨렸는데, 이 모습이 혹 오늘의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런 상황에 이르렀으니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가 광야시절 마지막 즈음에 이스라엘에게 특별 부탁을 한 일이 있습니다.

 

08: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2. 입다가 사사로 부름 받는 과정을 보겠습니다.

 

0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앞서 살펴 본 대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7대 사사 야일이 죽자마자 이내 하나님을 떠나 여러 우상과 이방 신을 7가지나 섬겼습니다. 우상 박람회를 하듯 동서남북 사방 국가의 우상을 도입하였는데 이로 인해 어떤 결과가 왔습니까? 우상을 섬긴 만큼 복을 받았습니까?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진노의 결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블레셋과 암몬 두 나라에 파셨습니다(10:07). 파셨다는 말은 블레셋과 암몬 이 두 나라가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국가 신 다곤과, 암몬의 국가 신 몰록을 섬겼는데도 서쪽에서 블레셋이 쳐들어왔고 동쪽에서 암몬이 쳐 들어왔으니 날벼락을 맞은 셈입니다.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 우상은 아무리 섬겨도 그것들이 사람에게 복과 구원을 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들 나라의 우상을 섬겼음에도 그 우상이 이스라엘을 도와 준 것이 아니라 도리어 침략을 해 왔습니다.

암몬이 먼저 요단강 동쪽 길르앗을 쳐서 억압한 세월이 무려 18년입니다. 이어서 요단강을 건너 서쪽으로 넘어와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블레셋과 연합하여 학대함으로 이스라엘은 심히도 곤고한 처지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거룩한 선민이라도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면 이런 결과를 맞이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견디다 못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은 후 길르앗의 실력자 입다를 찾아갑니다.

 

입다가 누구입니까?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서 이복형제들로부터 괄시와 천대를 받다 결국은 집에서 쫓겨나고 만 서자(庶子) 출신입니다. 이렇게 소외당한 입다가 특별히 갈 곳이 있습니까? 그저 요단강 동쪽 돕으로 가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 지내는 고달픈 처지였습니다. 그럼에도 입다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 줄을 든든히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곁으로 신분의 차별과 서러움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경제면에서 상처 입은 자, 가방 끈 짧아 거절 받은 자, 출신이 천하여 버림 받은 자, 온갖 잡류 인생들, 상처 입은 인생들입니다. 입다는 어느날 길르앗의 실력자로 우뚝 서게 되었는데 이런 입다에게 길르앗 장로들이 찾아와서 구원을 요청합니다. 자기들의 통치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입니다.

 

그러자 입다는 과거에 자기가 아버지 집에서 쫓겨 날 때의 일을 거론합니다. 내가 형제들에게 내어쫓김을 당할 때의 불의한 알고 있느냐? 그런 불의한 일을 당할 때 알면서도 방임하며 동의하였느냐? 쫓아낼 때는 언제고 이제 어려움 있다고 찾아와서 도움을 청하느냐? 라는 질책입니다. 이에 길르앗의 장로들이 파격 제안을 합니다. 함께 전쟁에 동참하면 자기들뿐만 아니라 길르앗 지역 모든 사람들의 머리로 삼겠다는 제안입니다(08).

 

이에 입다가 다시 확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여 암몬의 군대를 물리치면 그때는 변덕부리지 않고 나를 통치자로 인정하겠느냐는 다짐입니다. 입다는 자신의 힘으로 암몬 군대를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물리쳐야 할 것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다짐합니다.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는 확고한 다짐입니다(10). 이에 길르앗의 모든 지도자들이 미스바에서 입다를 최고의 지도자로 모시는 취임을 하였습니다.

 

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3. 입다가 사사로 부름을 받은 후의 활동상황입니다.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입다가 사사로 등장하는 과정과 다른 사사들이 등장하는 과정을 비교하면 좀 다른 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사사들에겐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그를 사사로 세웁니다(03:10, 06:34, 13:25).

그런데 입다에게는 여호와의 영이 임하는 과정이 없습니다. 대신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입다를 미스바로 모셔와 통치자로 세웁니다. 그래서 더러는 입다를 정말 하나님께서 사사로 세우셨는가? 라는 의문점을 가집니다.

이 문제에 대해 삿11장은 여호와께서 입다에게 암몬을 넘겨주시고,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고, 여호와 앞에 아뢴다고 하면서 여호와의 이름이 반복됩니다. 성경은 이런 관점에서 입다를 사사로 공인합니다. 동시에 입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사사에 대한 증명을 히브리서도 공인합니다(11:32).

 

이제 요단 동쪽 길르앗에 길르앗이란 사람이 한 기생에게서 낳은 아들 입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습니다. 입다는 지도자로 세움을 입은 후 먼저 이스라엘의 요단 동쪽 길르앗을 침략한 암몬 왕에게 사신을 보냅니다(12~17).

외교로 문제를 풀기 위함입니다. 요즘처럼 전통문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신이 오고가고 하면서 서로의 입장을 주고받습니다. 입다의 외교 문서를 놓고 암몬 왕은 과거사를 거론하면서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의 영토를 이스라엘이 빼앗았으니 그 땅을 반환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13).

이에 입다는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이지 이스라엘 자체가 무슨 욕심이 있어서 침략한 것이 아니라고 맞섭니다(16~18). 서로 간에 일치 될 수 없는 일로 팽팽하게 논쟁을 하다(28) 결국은 전쟁으로 돌입하였습니다. 한판 벌어졌는데 어떻게 결론이 납니까? 32,33절이 말해줍니다.. 

 

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시매, 33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입다와 주변 사람들이 다 변변찮은 사람들인데 어떻게 전쟁에 승리를 할 수 있습니까? 풀도 잡초가 있고, 나무도 잡목이 있고, 개도 잡종이 있고, 사람도 잡류가 있습니다. 잡류란 잡념을 가지고 잡담이나 하는 부류로서 한 마디로 주류에서 밀려난 사람을 말합니다. 불량하고 무가치한 부류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속에도 행복이 있고 거기에도 사람 키우는 공간은 있습니다. 잡류들의 장점은 야성입니다.

거리에 굴러다니며 자란 사람은 잡초 같이 억세고 강합니다. 입다는 겉으로 보기에는 잡류들과 어울리며 지낸 한심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는 기생인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형제들로부터 아버지의 유산이 혹 돌아갈까 봐 일찍 쫓겨남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입다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것을 다 잃어도 믿음 줄 하나만은 든든히 붙잡았습니다. 하나님과 교통의 끈을 늘 유지하였습니다. 입다가 미스바에서 사사로 취임할 때 한 말과, 암몬과의 전쟁을 앞두고 믿음으로 고백한 말을 보면 그의 믿음의 수준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주시면(09),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11).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29). 입다는 과거의 불행한 처지의 생활에서도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을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에 조국을 구하는 사사의 자리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8대 사사로 부름을 받은 입다의 믿음의 장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것이 혹 큰 부담일지라도 감당한 믿음의 결단력입니다.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에 앞서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시면 집에 돌아가서 가장 먼저 영접 나온 자를 하나님께 번제(עוֹלָֽה)로 드리겠다는 서원기도입니다.

그런데 입다가 승리를 하고 돌아 올 때 제일 먼저 영접을 나온 사람은 바로 자기의 무남독녀입니다. 그러자 입다는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35). 하면서 탄식을 합니다.

입다의 서원기도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번제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이 단어의 문자만 놓고 보면 사람을 태워 하나님께 제사를 지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율법에서 이미 금지하였습니다(18:21; 12:31).


그러면 이 번제의 의미와 36절부터 이어지는 말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히브리어 원문을 한글성경으로 보면 어휘상 조금 과장되게 번역 된 부분 때문에 더 오해가 된 것 같습니다.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라. 35절 번역이 아무래도 조금 과하다는 말입니다.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를 너는 나를 당황하게 하는 구나 정도로 했으면 좋았을 건데 너무 심각한 불행으로 표현하였습니다.

35절의 흐름을 보면 입다는 딸이 죽음을 당하는 불행을 예상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입다의 관점은 무남독녀 딸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성전 봉사에 평생 바침(번제)이 되는 일과, 기업을 계승하지 못함에 대한 탄식입니다. 이어서 입다의 딸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입다의 딸은 아버지께서 하나님 앞에서 서원기도를 하셨으니 변경하지 말고 그대로 행하라고 독려를 합니다. 딸이 아버지에게 믿음의 인격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께서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하셨으니 그대로 행하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딸, 아버지께 순종함으로 효도하는 딸, 사람 앞에서 아버지의 의리(義理)를 위해 자신이 희생되는 일도 하나님의 일이니 상관없다고 말하는 딸입니다. 이후 서원기도를 한 일에 대하여 믿음으로 행하는 부분들을 재해석하겠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입다의 딸이 죽어 번제물이 되었는가? 입니다. 37절 하반과 38절 하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이 부분을 온전히 해석하면 됩니다. 처녀로 죽음을 이 부분을 나의 처녀 됨을 인하여 로 번역하면 의문점들이 다 풀립니다.

그러면 딸이 하나님께 올려 바침이 된 번제의 의미도 풀립니다. 결국 입다가 딸을 번제로 드리는 사건은 그녀가 평생 결혼하지 못하고 성막에서 수종을 드는 여자로서의 삶이 된 것을 가리킵니다. 이 해석이 옳다고 여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입다의 믿음의 수준으로 보아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서원할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를 등용하려고 찾아 온 길르앗의 장로들 청원도 신중히 검토한 후에 받아 들였습니다(07,09).

입다가 암몬 왕에게 전한 말(15~26)을 보아 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적(事蹟)도 자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구약 율법에 자녀를 불로 태워 바치는 것은 극악한 죄로 규정되어 있음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18:21, 20:02~05).

입다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신뢰하는 인물이었던 만큼(09,11), 하나님이 금하시는 죄악을 행하리라고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만일 입다가 하나님이 엄금하시는 인신제사를 하였다면 그 후에도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6년의 사역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12:07). 무엇보다 신약성경이 입다를 신앙의 인물로 칭찬하기 때문입니다(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