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6년 말씀

대 속죄일에 내어보낸 아사셀 염소(레 16:06~1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6. 9. 1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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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죄인이다. 라는 전제에서 기독교가 출발합니다. 인간의 뿌리 깊은 죄성을 표현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원죄입니다. 이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인류의 첫 사람 아담(하와)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을 우리가 그대로 물려받아야 하느냐? 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인류의 대표자의 위치에서 죄를 지은 이상 피할 길은 없습니다. 구약성경 레위기 16장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속죄의 길을 안내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의 죄를 어떻게 속죄하시는가를 보여주는 영적 구원의 안내도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하나님과 이웃에게 죄를 짓는 일이 많습니다.

 

죄인 줄 모르고 행하였는데 그것이 죄일 때도 있고, 죄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된 죄가 있고, 잘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결과는 죄가 되는 것도 있고, 죄를 안 지으려고 애썼지만 부득이하게 짓게 되는 죄도 있습니다. 때로는 죄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어쩐지 마음에 꺼림칙한 일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부정한 일들을 한꺼번에 정리하는 날이 바로 대 속죄일입니다.

5대 제사보다 더 순서가 엄격하고 장엄한 대 속죄일 제사, 모든 백성이 지은 죄를 한꺼번에 사하여 주는 날은 대제사장이 일 년 중 710일에 거행을 합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금식하고, 회개하면서 죄를 용서 받는 이 대 속죄일 행사가 어떻게 치러지는 지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대 속죄일에 피 뿌리는 예식을 합니다.

 

06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대제사장은 아론입니다. 이 아론이 일 년 중 710일에 대 속죄일 예식을 거행하기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가는데 그 절차가 복잡하면서도 장엄합니다. 우선 이 제사를 집례 할 대제사장과 대제사장을 도울 9명의 예식 위원인 일반 제사장은 일주일 전에 집을 떠나 제사를 지낼 성소로 이동을 합니다. 그리고 대 속죄일 전날은 대제사장과 예식 위원들은 잠을 자지 않고 철야를 합니다.

이때 혹시나 거룩한 일에 책임을 맡은 대제사장이 밤중에 졸지는 않을까 하여 9명의 젊은 제사장들이 옆에서 번갈아가며 책을 읽어줍니다. 그래도 혹 졸기라도 하면 옆에서 소리를 내어 울어주는데 어떻게든 졸지 않도록 합니다. 드디어 대 속죄일 아침이 되면 목욕을 하고 세마포 흰 옷으로 갈아입고 속죄의 예식을 시작합니다.

 

첫 번째 지성소에 들어감. 대제사장이 행하는 대 속죄일의 첫 업무는 자기와, 예식위원과, 집안사람들의 죄를 위해 수송아지 위에 두 손을 얹고 사죄의 기도를 드립니다. 이어서 향로를 들고 번제단으로 가지고 갈 불씨를 담는 동안 예식위원들은 수송아지를 잡고 받아 놓은 피가 응고되지 않도록 그릇을 계속 흔들어 줍니다. 이내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서 향로를 기초석 위에 놓고 향을 얹어 그 향연(香煙)이 지성소를 채우게 합니다.

그리고 휘장 밖 성소로 나와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 여호와 하나님, 나는 불의를 저지르고, 죄를 지었습니다. 나를 도우는 예식 위원들과 나의 집이 그리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구하오니 나와, 예식위원과, 나의 집이 지은 모든 불의와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정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두 번째 지성소에 들어감. 대제사장은 수송아지의 피가 응고되지 않도록 그릇을 계속 흔들고 있는 위원으로부터 그릇을 받아서 다시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수송아지의 피를 뿌리기 위함입니다.

대제사장은 손가락으로 피를 찍어 속죄소 동쪽인 성소의 입구에 뿌리고, 속죄소 위에 일곱 번 뿌리고(14), 제단 귀퉁이 뿔들에 바릅니다(18). 속죄소 위와 앞쪽에 피를 뿌리는 것은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하여 반드시 속죄의 피를 요구하신다는 사실과, 오직 피로써만 죄인의 속죄가 가능함을 상징합니다(09:22).

 

0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세 번째 지성소에 들어감. 두 번째 지성소에 들어갔다 나온 대제사장은 이제 백성들의 속죄를 위한 예식을 위해 두 마리의 염소를 성소의 문 앞에 놓고 제비뽑기를 합니다.

항아리 속의 제비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라는 글과 아사셀을 위하여 라는 글이 새겨진 돌이 두 개 들어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백성들 앞에서 항아리를 흔든 뒤, 두 손을 넣고 한 손에 하나씩 제비를 집어 두 마리의 염소 머리 위에 놓습니다. 이때 여호와를 위하여 라는 제비가 뽑힌 염소는 그 목에 붉은 천을 매고, 아사셀을 위하여 라는 제비가 뽑힌 염소는 그 뿔에 붉은 천을 매어줍니다.

그러면 위원들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힌 염소를 잡아서 그 피를 그릇에 받아 지성소에 들어가서 수송아지의 피를 뿌렸던 것처럼 동일하게 피를 뿌립니다(15). 이렇게 피를 뿌리는 이유를 16~20절에서 자세히 설명을 합니다.

 

16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2. 대 속죄일에 아사셀 염소를 광야로 내 보냅니다.

 

10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 지니라.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아사셀은 염소라는 말과, 내어 보내다는 말의 합성어로서 내어 보내는 숫염소라는 뜻입니다. 10절을 좀 더 보충하는 내용이 21절입니다. 여기에 보면 대제사장 아론은 아사셀 숫염소의 머리에 두 손으로 안수를 합니다.

일반적으로 안수는 복을 빌기 위해서(48:14), 병을 고치기 위해서(1:41), 성별의 표시로(08:10) 합니다. 그러나 제물에 대한 안수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곧 대제사장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염소에게 전가시키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광야로 보낼 지니라.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대제사장은 광야로 내어 보낼 그 염소의 머리 위에 양손을 얹고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 여호와 하나님, 이스라엘 집이 잘못을 범하고, 배반함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간절히 비옵나니 여호와의 종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 기록된 바, 속죄의 날에 너희가 내 앞에 지은 모든 죄를 깨끗이 사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이제 이 백성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이 시간 용서하소서.

 

대제사장의 안수 기도가 끝났으니 이제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가 아사셀 염소의 머리에 뒤집어써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이 염소는 상징적으로 백성들의 죄를 다 뒤집어썼으므로 죄가 많아지고 아주 더러워졌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아사셀 염소에게 침을 뱉고, 더럽다고 욕을 하고, 고함을 지르면서 발길로 찹니다. 더러워졌기 때문에 막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후에 미리 지정이 된 사람이 아사셀 염소를 광야로 끌고 나가 놓아줍니다. 목자도 없이 방목을 하는 이유는 큰 짐승에게 빨리 잡아먹히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에 의해 발길로 차이고 침 뱉음을 당하면서 고통을 당하였던 아사셀 염소는 놓아주자 말자 그 뿔에 붉은 천이 매인 채로 살기 위하여 쏜살같이 도망을 갑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의 죄는 저렇게 멀리멀리 사라졌도다. 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이때 쏜살같이 도망을 간 아사셀 염소 정말 안전하게 살겠습니까?

이내 사나운 짐승에게 잡아먹힙니다.

다 잡아 먹히고 난 후에 피 묻은 털과, 붉은 천이 매여 있는 뿔과, 작은 흔적들만이 여기 저기 흩여져 있습니다. 이때 대제사장은 오늘의 선택은 여호와에게서 로다. 하고 노래를 부르면 모여 있는 모든 백성들이 화답송을 부릅니다. 그의 나라와 영광의 이름이 영원할 지어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고 아사셀 염소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저렇게 죽었도다.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하여졌도다. 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대 속죄일은 복중의 복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길이 열려서 은혜생활의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염소의 머리에 죄를 전가하는 것은 자기들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 죄에 대해 통회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도 할 수 있으니 복이 됩니다. 지금도 710일이 되면 이스라엘은 대 속죄일(욤 키푸르, יום כיפור)을 선포하여 최고의 명절로 지킵니다. 일 년 중 이 날 만큼은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고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기 때문에 당연히 복이 되는 것입니다.

 

23:28이 날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29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3. 아사셀 염소의 영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0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한 말입니다.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표현 한 것은 예수님이 아사셀 제물로 오셨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광야와 같은 세상에 오신 예수님, 마지막에는 아무도 갈 수 없는 갈보리 언덕, 죽음의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다 지고 가셨습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십자가로 내 몰았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맞아들일 수 없는 유대의 교권자들이 죄를 숫염소에게 전가한 아사셀 염소처럼 예수님을 죽음의 길로 내 몰았습니다우리의 죄를 아사셀 염소처럼 예수님께서 담당 하신 후에 우리가 죄에서 떠난 생활, 경건의 생활을 잘 지켜나간다면 이보다 복된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주님께서 다 짊어지셨다, 해결해 주셨다 하면서도 계속 옛 사람의 생활에서 머무는 이상 그 사죄의 은총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나의 죄를 아사셀 염소로 오신 예수님께서 담당하셨다고 소리를 높일지라도 생활에서 믿음의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아직도 죄악 가운데 거하는 삶일 것입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아사셀 염소를 통하여 장차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사람들은 2천년 이스라엘에 오신 예수님, 이제 곧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지도 못할 만큼 영적으로 어두워졌습니다.

믿음생활이 잘 유지 되지 않는 게 누구 때문입니까? 영안이 어두워질수록 남에게 탓을 돌리고, 남의 허물을 비판하는 일은 건강한 신앙인이 아닙니다. 불신 세계에 속한 사람은 자기의 슬럼프를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돌리는데 익숙합니다.

 

김해삼일 가족 여러분, 믿음의 자리를 찾읍시다. 내 마음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지 못하여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나의 모든 허물을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아사셀 염소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됩니다. 이 일은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280). 라는 고백만 하면 됩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아사셀 염소를 떠 올렸던 것처럼 우리도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나의 죄를 담당하신 속죄의 양으로 믿어져야 합니다. 아사셀로 지정을 받은 염소는 광야로 추방을 당하여 사나운 짐승들에게 잡아먹힐 때까지 돌아다니다 결국은 잡아먹힘을 당하고 맙니다.

아사셀이 찢기어서 그 가죽에 붉은 피가 물들어 있음을 보고 백성들이 속죄의 즐거움을 가졌듯이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나라의 영광의 자리를 떠나 광야 같은 세상으로 왔습니다. 맹수 같은 유대의 교권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보혈 때문에 우리는 구원의 기쁨을 누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일어난 가장 큰 역사가 무엇입니까? 일 년에 한 번 대 속죄일에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된(15:38) 영적 의미는 이제는 짐승을 잡아 드리는 제사 제도가 폐지되었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대제사장의 자격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어떤 문제라도 직접 해결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벧전 02:0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대 속죄일 제사의 마무리 부분이 또 있습니다. 수송아지와 숫염소를 잡아 속죄제와 번제로 드리고 난 후의 더러운 똥과 내장, 찌꺼기, 가죽 등을 처리하는 일입니다. 이런 쓰레기에 해당하는 것들을 다 모아서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불에 태웁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마지막 선언을 합니다. 여러분, 이 대 속죄일 행사로 인하여 이제 여러분의 모든 죄는 다 용서를 받았습니다. 기쁨으로 돌아가십시오.

오늘 말씀을 들으니 뭐가 이리도 복잡한가? 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조심스런 예식의 각 부분들이 사람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제사장의 몸짓과 말 하나하나야말로 사람들이 거룩함에 얼마나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지,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깨우쳐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지막 선언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23:46). 하시고 끝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우리는 쓰레기와 같고 똥과 같은 더러운 모든 죄를 다 소각해서 용서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용서해주신 죄는 다시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죄의 은혜를 누리기만 하면 되는 기쁨, 이것이 우리 기독교의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