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6년 말씀

가인의 길, 발람의 길, 고라의 길(유 01:11~13)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6. 8. 2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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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518친박계의 집단 반발로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직에서 물러난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 북에 시 01:01~06절을 올렸습니다. 친박계를 향한 자신의 심경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인데 핵심이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친박계는 망하리로다. 제가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인용한다면 이런 말씀을 인용하겠습니다.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할 때 사용하신 표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23:13,15,16,23,25,27,29) 입니다. 무려 7번이나 선언을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열어가는 키워드가 무엇입니까? 화 있을 진저 이 사람들이여. 좀 더 피부에 닿게 번역하자면 저주가 있을 지어다. 라는 뜻입니다.

본서의 저자 유다는 특별히 구약시대의 불신앙적이며, 물욕적이며, 지도자에 대한 도전적인 세 사람을 예로 들어 우리에게 신앙의 경종을 울립니다. 세상적이며, 물질적이며, 권위적인 거짓 교사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저는 이미 심판을 받은 세 사람을 들면서 가인의 길, 발람의 길, 고라의 길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은혜 받는 귀한 시간되기를 축원합니다.

 

 

  1. 가인의 길(04:01~17)

 

11 화 있을 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라는 말씀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창 04:01~17절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가인은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하였습니까? 가인은 아담과 하와가 낳은 첫 아들입니다. 다음으로 아벨인데 창세기 04장을 보면 가인과 아벨 형제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04,05). 왜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형제간의 의를 끊기 위해서 차별을 하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가인은 아벨과 달리 제사를 드릴 때 믿음의 정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로서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 즉 제사를 받지 않자 가인이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색까지 변하면서 불만을 표현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제물이 하나님께 합격되지 못할 때 진심으로 믿음 없음을 뉘우치며 회개를 하여야 함에도 오히려 하나님께 거친 불만을 토로합니다. 전형적인 죄인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가인에게 당장 묻습니다.

 

04:06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가인아, 너의 인격이 왜 그 모양이냐? 인간의 혈기와 육적인 모습이 죽지 못하고 그대로 살아서 반항하는 가인의 모습을 지적하는 물음입니다. 이 물음은 겉으로는 경건한 것처럼 포장을 하는 우리 모두의 질문으로 받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네가 분하여 얼굴색까지 변함은 어찌 됨이냐? 라고 묻는 물음에 가인이 하나님, 제가 잘못 했습니다. 라는 고백만 했어도 은혜의 자리, 회복의 자리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마음, 은혜를 회복하는 마음, 제사가 회복되는 그런 신령한 것을 마음에 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신령한 것이 끊어지면 그때부터 불신앙의 길로 막 내리달리기 시작합니다. 가인이 불신앙의 길로 내리달린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볼 수 있는데, 가인이 동생 아벨을 들판으로 꾀어내어 당장 돌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08).

죽일 의도를 확고히 가지고 돌로 쳐서 죽였는데, 이는 가인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사탄에게 완전히 정복당해 있음을 증명하는 행동입니다. 믿음의 시기, 예배의 시기, 이거 무섭습니다. 동생을 죽이는 자리에까지 나아갔고,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시기와 질투의 노예가 되면 이런 결과는 분명 따릅니다. 교회에서도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듯 먼저 믿은 사람이 나중 믿은 사람의 모습을 보고 시기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더러는 기도 많이 하는 것, 헌금 많이 하는 것, 열심히 봉사하는 것, 목회자 섬기는 것, 믿음으로 살려는 것에 대해 질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믿었다고 또 기득권 유지와 체면 살리기 위해, 나중 믿은 사람이 앞서 갈 때 시기하거나 걸고넘어지는 비 시신사적 매너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는 혹 가인의 길에 서 있는 것은 아닙니까? 비록 육신의 살인은 아닐지라도 시기, 미움, 질투 등 가인의 길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가인의 최종적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남을 당했습니다(14,16).

 

요일 03: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2. 발람의 길(22~25, 31)

 

11 화 있을 진저 이 사람들이여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다는 의미가 민 22~25장에 자세히 나옵니다. 그러면 발람은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하였습니까? 발람(ה??,발라. 부패하게 하다 + ם?,. 백성)의 뜻은 하나님의 백성을 부패하게 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돈에 사로잡혀 있는 그 모습이 이름과도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거의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여리고 맞은 편 모압 국경지대 평지에서 진을 쳤습니다. 이때 모압에는 발락이 왕으로 있을 때입니다. 이 발락 왕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때로부터 모압 평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모든 세력을 물리친 일을 알고는 고민에 빠졌습니다(21:24,35).


이스라엘의 힘을 알게 된 모압 왕은 위세에 눌려 큰 두려움에 휩싸였고, 따라서 모압 왕 발락은 어떻게 하야야 이스라엘을 물리칠 것인가에 대한 묘책 찾기에 급급하였습니다. 발람은 이름대로 하나님의 백성을 실패하게 하는 자라는 뜻이고, 그의 아버지 브올은 멸망시키다. 는 베올에서 이름이 유래하였습니다. 발람과 브올 둘 다 복술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왔던 사람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발람은 이방 메소포타미아의 유명한 복술가(卜術家)로서, 유일신 하나님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을 이방의 신들 중 하나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발람이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을 모압 왕 발락이 알고는 그를 이용하여 이스라엘을 치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실행에 옮깁니다.

 

22:05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 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모압에서 발람이 거주하는 브돌과의 거리는 약 640km 정도가 되는 먼 거리입니다. 그럼에도 모압 왕 발락이 메소포타미아의 술사 발람을 부르려 사신들을 보낸 것은 당시에 주술사로서 발람의 명성이 상당히 넓게 퍼져 있는 증거입니다. 이에 발람의 거처에 당도한 모압과 미디안 장로들이 복채를 발람에게 바치면서 발락 왕의 말을 전합니다. 한 번만 오셔서 이스라엘을 저주 해 주십시오(22:06).

당시 고대인들은 복술가나 마법사들의 주술적인 주문(呪文)은 그대로 능력을 발휘하여 상대방이 저주를 받고 큰 피해를 입는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발람은 뇌물을 받고는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이렇게 말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립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음성이 발람에게 임합니다.

 

22:12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발람은 이튿날 아침 일찍 발락이 보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니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돌려보냅니다. 모압 왕 발락의 사신들이 돌아가서 발람의 말을 전하자 발락 왕은 더 많은 재물과 더 지위가 높은 사신들을 발람에게로 보냅니다.

이에 발람은 전과 같이 사신들을 대기시켜 놓고 하나님께 또 물어봅니다. 그런데 그날 밤 하나님의 음성이 발람에게 이렇게 임합니다.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함께 가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할지니라. 이에 발람이 아침 일찍이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의 고관들과 함께 모압 길을 향합니다(22:20,21).

 

발람은 겉으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따르는 것 같지만 실제 마음에는 물욕이 가득하게 들어 있는 물질주의자입니다. 발람은 결국 뇌물을 받은 보상으로 이스라엘에 치명적인 해가 되는 계략을 모압 왕 발락에게 한 가지 가르쳐 줍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 숭배와 음행에 빠지도록 하는 배교의 방책입니다(31:16~9). 인생은 잠깐 가는 세월에 그 길이가 길면 얼마나 길 것이며, 모아 놓은 물질을 얼마나 제대로 쓰보기나 하겠습니까?  이스라엘에 우상의 올무를 놓아 실족하게 하였던 발람, 불의의 재물을 손에 많이 넣기는 했지만 그것을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끝나고 말았습니다. 제대로 활용도 못해 보고 비참하게 죽었고(31:08), 그의 이름을 수식하는 모습만 추하게 남았습니다.

 

벧후 02: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 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3. 고라의 길(16:01~35).

 

11 화 있을 진저 이 사람들이여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다는 말씀을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민 16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고라는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였습니까? 고라(ח??)는 대머리라는 뜻으로서 아마 이름처럼 대머리 이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레위 지파 고핫의 손자로, 모세의 사촌입니다. 성막에서 주로 어깨에 메는 일을 하였는데 이 고라의 마음에 언젠가부터 교만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하여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대항하는 당을 지었는데, 이 고라의 불평불만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급이 250명이나 합류하였습니다. 대단한 위험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최고의 지도자가 되기 전까지 애굽에서 지낼 때 각 가문에서 나름대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모세와 아론이 지도자로 등장한 이후부터 절대적인 권위에 눌려 지내다 서서히 불만이 쌓여 갔습니다. 그리고 한 순간에 고라당에 동조하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공동체의 질서보다 자신들이 누리던 지위와 명예를 찾기 위하여 고라당에 가담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 임명하신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고라당의 지도자급 250명이 집단행동화로 나섰으니 이거 대단히 무서운 일입니다.

 

16:03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고라당의 불만이 무엇인지 짐작 되십니까? 모세가 지나친 월권으로 아론과 그의 후손에게만 제사장 직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택함 받은 대표라고 인정을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인정을 하기가 싫으니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을 인간의 힘으로 바꾸려고 시도를 합니다. 이는 직분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지만, 지도자의 영역을 침범하는 무서운 일입니다. 레위지파 소속 고라는 아론의 종교적 통솔권을 탐내었고, 르우벤 지파 소속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의 정치적 지휘권을 욕심내었습니다. 고라당은 모세와 아론에게 정치와 종교의 지휘권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하면서 성경까지 근거로 제시합니다.


19:0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분명히 맞는 말씀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언약에는 앞의 05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이 중요한 부분을 완전히 무시하고서 제사장 나라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본서의 저자 유다는 고라당이 모세에게 도전한 사건을 고라의 패역이라고 규정합니다. 고라당 사건의 심각성이 무엇입니까? 지도자 모세를 대적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도전한데 있습니다.

드디어 모세가 나섭니다. 우리가 스스로 제사장이 되어서 하나님께 분향을 한다면, 너희도 스스로 하나님께 분향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너희를 분명히 분향하도록 세웠는지, 레위지파 중 아론의 자손들만 세워서 분향을 하게 하신 것인지 판정을 해 보자고 제안합니다(16:16~17).

그리하여 아론에게 속한 제사장들과,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에 속한 족장들 250명이 서로 갈라서서 하나님의 판정을 기다립니다. 그 순간 땅이 입을 벌려 고라당에 속한 사람들과 물건과 가족들을 다 삼키고 말았습니다(35,49).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유다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구약시대의 악한 사람 셋 가인, 발람, 고라를 예로 들어 거짓 교사들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인 형, 발람 형, 고라 형의 거짓 교사들은 교회에 들어올 때 처음에는 조용하게 들어오지만 일단 들어와서는 요란하게 활동을 합니다.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신령한 것을 빙자하면서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이에 유다는 이런 사람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12절로 대신합니다.

 

12 그들은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나무의 열매는 그 나무를 평가하는 절대 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07:20). 거짓 교사들은 믿음의 길을 가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맺어야 할 믿음의 열매들이 없습니다. 뿌리까지 뽑혀 말라 죽어버린 나무와도 같기 때문입니다.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혔다는 말이 아주 무섭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키는(52:05) 표현으로서 거짓 교사들은 영생이 아닌 영벌의 심판만이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