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6년 말씀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념하는 에셀나무(창 21:32~34)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6. 8. 27.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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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심성을 닮은 나무를 말할 때 소나무를 듭니다. 무병장수를 의미하는 십장생에는 해····구름·소나무·불로초·거북··사슴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아들을 낳으면 뒷동산 기슭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고, 딸을 낳으면 앞뜰에 오동나무 한 주를 심었다고 합니다.

소나무를 심는 것은 아들이 장차 대들보 같은 인물로 살다 마지막에 소나무 관에 들어서 떠나라는 의미입니다. 또 오동나무를 심는 것은 딸이 장차 시집갈 때 오동장을 만들어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네 조상들에게는 이런 지혜로움이 있었습니다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식뿐 아니라 손자 손녀들까지 살피고 내다본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행적 가운데 에셀나무를 심은 일이 33절에 나옵니다아브라함이 향년 175세를(25:07) 살았으니 기록으로 남겨야 할 중요한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의 저자 모세는 아브라함이 에셀나무 심은 일에 대하여 특별한 비중을 둡니다. 어떤 신령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이 에셀나무를 심으면서 어떤 영적 의미를 전달하려 함입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념하는 에셀나무로 정했습니다.

 

 

1.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었습니다.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아브라함이 사는 브엘세바는 블레셋의 영역이 미치는 지역입니다. 브엘세바를 당시에는 남방이라고 불렀으며 가나안 사람이 애굽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치는 땅입니다.

이 브엘세바를 벗어나면 광야가 시작됩니다. 연간 강우량은 200mm쯤 됩니다. 사람이 겨우 살 수 있는 강우량 정도가 내리는 척박한 땅입니다.

브엘세바의 의미는 브엘과 세바의 합성어입니다. 가나안 땅의 최남단 지역 국경 도시(20:01, 삼상 03:20)라 할 수 있습니다.

 

브엘세바와 관련된 주요 사건들을 살펴보면 하갈과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하다가 사라에게 쫓겨나서 방황하던 곳입니다(21:14~19).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은 곳이고(21:30~34)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주요 활동을 하던 곳이며(22:19, 26:23~25, 28:10)

야곱이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으로 이사 갈 때 하나님께 예배드린 곳이고(46:01). 엘리야 선지자가 이세벨 칼날을 피해 도주하던 곳입니다(왕상 19:02~07).

아모스 선지자가 북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브엘세바로 가지 말라고 경고한 일이 있습니다(05:04, 05). 그만큼 브엘세바는 우상을 강하게 숭배하던 곳입니다.

 

고대에는 애굽이나 유다 산지를 통과하는 중앙산지 통로입니다. 남방(네게브) 땅의 수도로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이곳에 아브라함이 자리를 잡고 우선 우물부터 개발하여 점점 목축업을 할 수 있는 초원으로 만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주변에서 시샘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시기와 질투를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비멜렉 왕의 종들입니다. 이들이 먼저 우물을 빼앗았습니다.

 

우물을 빼앗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의 세력이 점점 커지자 견제하겠다는 심산입니다. 우물을 빼앗겼다면 생존권의 위협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우물 하나 개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빼앗깁니까?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힘들게 판 우물을 빼앗겼으니 현실로는 원망의 장소이며 고통의 장소입니다.

 

이곳에 아비멜렉 왕이 군대 장관 비골을 거느리고 찾아왔습니다. 아브라함에 대하여 자기들이 보고, 듣고, 느낀 현실을 그대로 이야기합니다(22). 당신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아브라함의 세월을 약 20년 전으로 돌려봅시다.

그랄 땅으로 이주하여 지내는 가운데 아비멜렉 왕에게 사라를 빼앗긴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하신 간섭으로 사라가 아비멜렉으로부터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이후 아브라함은 그랄 인근 지역 브엘세바로 옮겨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블레셋의 막강한 힘을 가진 남방 지역 통치자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입니다. 아비멜렉 왕이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6년 이상을 지켜보고 난 후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아비멜렉의 이런 고백은 아브라함이 어떤 환경에서든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잘 유지하고 지냈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의 결과입니다.

이에 정무적 판단이 뛰어난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화친을 청합니다. 자기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어보겠다는 뜻입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직 상호 불가침 평화 조약을 맺자는 손짓입니다. 아비멜렉 왕은 하나님의 간섭(20:03~07)을 직접 체험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이 볼 때 이방인입니다. 하나님의 배경과 막강한 재력에 대한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혹 만에 하나 미래에 일어날 전쟁을 방지하고자 화친의 손을 내밉니다.

 

23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 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2. 아브라함이 심은 에셀 나무는 화친의 증표입니다.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김해삼일교회 가족 여러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의 삶에는 세상 사람도 인정하는 형통함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평화 조약을 수락합니다. 동시에 과거에 아비멜렉의 종들이 자기의 우물을 강제로 빼앗은 일에 대해도 원상복구를 요청합니다.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에게 우리 블레셋 영역이 미치는 곳에서 판 우물이니 우리 것이라며 빼앗은 우물 말입니다.

 

20:15을 보십시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그랄 땅 일부를 주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땅을 주면 땅속에 있는 물도 준 것 아닙니까?

아브라함이 지금 그 우물을 내놓으라는 요청입니다. 광야나 사막에서는 우물이 제일 중요한 재산입니다. 물이 없으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생명 유지가 힘듭니다.

 

물은 자체가 생명줄입니다. 그러자 아비멜렉은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변명합니다. 누가 그리하였는지 모르는 일이라고 시침을 뗍니다. 그리고는 우물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에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화친하기로 하고 그 증표를 세웁니다. 양과 소를 아비멜렉에게 주고 상호 불가침 언약을 맺습니다(32).

아비멜렉 왕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을 떠나 자기들 본거지인 그랄 왕궁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브라함만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화친 증표로 기념식수를 하였습니다. 에셀나무 한 그루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에셀나무를 심었습니까?

광야에서 자라는 나무 중에 법궤와 성막을 만드는 일에 사용된 싯딤나무(25:10)도 있는데 말입니다. 이 싯딤나무야말로 최고로 단단한 나무입니다.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은 후부터 아브라함의 가정에도 그 지역에도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광야와 같은 삶에서 평화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모든 평화는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평안입니다.

 

에셀(אֵשֶׁל)은 연합, 도움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인명과 지명 양쪽으로 다 사용되는 말입니다. 에셀이 들어가는 인명과 지명을 보면 엘리에셀, 에벤에셀, 아비에셀, 하닷에셀 등이 있는데 이 에셀 즉 연합이 들어가면 유익한 쪽으로 연합이 진행됩니다

반면 에셀나무는 싯딤나무에 비하여 특별한 부분이 있습니다. 에셀나무는 광야의 모래 언덕이나 염분이 많은 늪지대에서 잘 자랍니다.

싯딤나무처럼 재질이 매우 단단하고 수명으로 치면 오래 삽니다. 땅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려 물을 흡수하는 강한 생명력이 있습니다.

흡수한 물 가운데 수분은 사용하고 염분은 나뭇잎을 통하여 배출합니다. 그래서 에셀나무 잎은 항상 하얀 염분이 묻어 있습니다.

 

에셀나무는 무더위에 시원한 그늘도 제공합니다. 그 나무 아래에는 기온이 10도 정도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거의 에어컨 역할 정도가 됩니다.

사람들은 이 나무 아래서 결혼식도 올리고, 중요한 계약도 체결하고, 경계나 이정표를 삼기도 하고, 제사를 지내기도 하는 특별한 나무입니다.

에셀나무는 상수리나무에 속한 나무입니다. 이스라엘 사회뿐만 아니라 중동지역 사람들까지 이 나무를 거룩한 나무 즉 신목(神木)으로 여겼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에셀나무를 기념으로 심은 것은 여러 의미를 담기 위함입니다. 아비멜렉과 맺은 언약의 공고성과 지속성의 의미를 부여하는 기념식수입니다.

 

 

3. 아브라함은 에셀나무를 통해 여호와 이름을 불렀습니다.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은 이유를 밝히는 구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은 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럴 때는 히브리어 원문 의미를 보아야 합니다.

영원하신(עוֹלָם 올람) 하나님((אֵל). 아브라함이 부른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한 번 따라서 합시다. 엘 올람. 옆에 있는 분에게 이런 인사를 합시다.

 

엘 올람. 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브라함이 왜 엘 올람이라고 합니까? 이 이름이 시사하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공적인 예배를 드렸다는 뜻입니다(12:08, 13:04). 아브라함이 하필 에셀나무를 심으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까? 두 가지 놀란 일 때문입니다.

 

첫째 놀라움은 아비멜렉 왕이 이방인인 자기를 찾아온 일이고 둘째 놀라움은 나그네인 자기가 블레셋의 권력자 아비멜렉을 책망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시는 사람은 광야와 같은 두려움 속에서도 굳건하게 살아갑니다. 결국은 웃음을 맞이하는 자리에 세워집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복이 많은 곳으로 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복이 없는 곳으로 가서 복을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동시에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에게도 동일한 명령입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맛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맛보는 평화입니다.

이후부터 가는 곳마다 에셀나무를 심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방에서 나그네가 된 나를 붙들어 주시고 복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시 127:0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아브라함이 우물가에 심은 에셀나무는 나중에는 9m 정도까지 자랍니다. 나무 그늘에 자기도 쉬고, 가족도 쉬고, 이웃들도 쉽니다.

그때마다 아브라함은 내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인가를 전하면서 찬양하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은 목적이 무엇입니까? 가깝게는 자기와 가족들을 위해서입니다. 더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브엘세바는 남북을 잇는 교통 요충지 중의 하나입니다. 북쪽 산악지역이 시작되는 지점이고, 남쪽 네게브 광야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아브라함이 우물가에 이런 나무를 심은 것은 미래에도 함께하실 하나님 은혜를 내다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곳에는 나그네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은 에셀나무를 통해 내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인가를 전하는 선교의 장()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도 내가 사는 곳, 내가 머무는 곳, 내가 섬기는 교회를 전도의 전략 요충지로 사용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소개하는 쉼터가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안식과 평화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미래의 삶은 고난의 가시밭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인 스피노자(Benedict de Spinoza, 1632~1677)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 말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스피노자가 왜 하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였는가? 입니다. 복숭아나무도 있고 감나무도 있고 밤나무 등 많은 나무가 있는데 말입니다. 서양에서는 일반적으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따먹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사과라고 생각합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의 행동이 기독교 신앙에서는 죄악이지만, 철학에서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도전하여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찾는 인간의 능력으로 여깁니다.

 

스피노자의 말을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에 종말을 선언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인간은 오늘 내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미래를 심고, 희망을 심고 생명을 가꾸자는 의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믿은 사람들을 좋은 쪽으로 잘 생각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용하고, 시비하고, 고통스럽게 하여 넘어뜨립니다. 어떻게 우리를 힘들게 고통스럽게 하는 지를 한 이야기를 통해서 전하겠습니다.

 

늑대 한 마리가 새끼 사슴에게 말을 합니다. , 너 왜 물을 흐려 놓는 거야? 그러자 사슴이 저는 아래쪽에서 물을 먹었는데요. 이 자식, 말이 많아, 또 늑대가 말을 합니다.

, 너 왜 작년에 우리 아버지 화나게 했어. 저는 작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이 자식, 어디다 대고 꼬박꼬박 말대꾸야, 그리고는 늑대가 새끼 사슴을 잡아먹었습니다.

이런 스타일이 우리를 상대하는 세상 사람들의 사고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일들로 인해 위축되거나 흔들릴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미래를 위해 나의 시간을 심고, 생각을 심고, 장점을 심고, 에너지를 심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미래를 심었던 것처럼 우리도 미래를 심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