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년 프랑스의 망명 귀족 출신인 뒤루아 드 쇼마레가 지휘하던 왕실 해군 소속 군함 메두사호가 서아프리카 세네갈로 항해하던 중 풍랑을 만나 난파되었습니다. 배에는 프랑스 군인들과 이주민들이 타고 있었는데 구명보트가 얼마 없어 승선자 149명은 뗏목에 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뗏목에 연결된 보트에 타고 있던 선장은 자신의 안전만 생각하고는 뗏목과 연결된 밧줄을 끊어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 바람에 149명은 뗏목에 의지한 채 세네갈 해안을 12일간이나 떠돌면서 굶주림과 공포에 떨다 아르고스 함대에 발견되어 구조되었는데 생존자는 15명이었습니다.
이 15명의 생존자 가운데 5명은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죽고 말았습니다. 10명의 생존자 중 코레아르와 사비니(의사) 두 사람이 프랑스로 돌아와서 난파선의 상황을 알렸습니다. 이 바람에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 두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난파된 지 이틀 만에 폭동이 일어났고,
셋째 날에는 배고픔에 죽은 동료의 시체를 먹는 증 이루 말할 수 없는 죽음의 사투를 벌였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들은 제리코라는 화가가 당시의 광란에 빠졌던 사람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생존자 두 사람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의 상황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제목이 메두사호의 뗏목인데 이 그림을 보시면 흐린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고, 돛을 단 뗏목은 강풍과 높은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두 부류의 사람들이 보이는데 터번을 쓰고 돛대를 붙들고 있는 절망의 무리와, 우측에는 마지막 필사의 몸부림을 치면서 희망을 붙들고 있는 무리입니다. 바람은 뗏목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밀어 붙이는 가운데 왼쪽 하단에 두 구의 시체가 보이며 그 중 하나는 바다로 서서히 미끄러져 갑니다.
특히 화면 왼쪽의 수염을 기른 생존자는 아들의 시체 옆에서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잡아먹지 못하게 방어를 하고 있습니다. 반면 화면 오른쪽의 한 흑인 남자는 큰 통 위에 올라가 수평선 너머 배를 발견하고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일어서서 손을 내밀어 구조를 요청합니다. 작가 제리코(T, Gericault, 1791~1824)는 뗏목에 탄 사람들이 표류 끝에 마침내 구조를 받게 되는 순간의 환희를 캔버스에 담으면서 이런 모습들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사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만나면 그냥 주저앉아 버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힘겹지만 다시 일어나 소망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열두 해나 혈루병을 앓으면서 절망이라는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한 불행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예수님께 나와서 절망이라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함을 받고 행복으로 새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여자가 절망이라는 큰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를 말씀으로 진단해 보겠습니다.
1. 이 여자의 고통스러운 처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혈루증(血漏症)은 자궁 안에 종기가 생기거나 어떤 이상이 생겨 불규칙적으로 피가 흐르는 만성 부인병에 속합니다. 이런 병은 종교생활 뿐 아니라 사회적 활동에도 완전한 제약을 받았으며 특히 이 여인의 병이 십 이년이나 되었다고 하는 것은 치유될 수 없는 불치의 암(癌)임을 암시합니다. 이 여인이 열두 해 동안이나 불치의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은 그 고통의 상태가 극심한 절망의 처지에 달했음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당시의 환경은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의원을 찾아 갈 수 없는 시대로서 이 여자가 자신의 혈루증 치료를 위하여 여러 의원을 찾아 다녔다는 것은 경제면에서 다소 부유한 사람이었음이 짐작됩니다. 그러나 혈루증을 앓는 이 여자, 많은 의사를 찾아다니며 치료를 해 보았음에도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했고(눅 08:43), 이로 인해 결국은 치료비로 재산만 다 날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이 여자는 몸과 마음이 함께 절망으로 떨어지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죽음만을 기다리는 처지이니 이 얼마나 고통스런 일입니까? 거기에다 공개하기조차 부끄러운 병이니 더욱 괴롭습니다. 이런 유출병 환자는 구약성경에는 나병과 더불어 부정한 병으로 간주되어 공동체에서 격리되어 지냈습니다.
레 15장에 의하면 전염성 때문에 공동체에서 격리되어 성 밖으로 나가서 살다 보니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떨어져 고립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처지이니 회당에 나가는 것도 금지되었고, 성전 예배는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혹 성안으로 살짝 들어와 지내다 누가 모르고 접촉을 하였으면 그때는 돌에 맞아 죽어도 어디 하소연 할 때도 없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먼저 내 쪽에서 상대를 향하여 나는 부정한 사람입니다. 나는 부정한 사람입니다. 하며 손짓을 해 주어야 생명이 안전합니다.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합니까? 예, 부정한 자로 진단받은 이상 이런 사람과 접촉하면 그 사람도 부정해지며, 또 부정한 사람이 사용한 모든 물건도 다 부정하다고 여기는 법조문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정해지지 않으려면 이런 사람과 접촉하지 말아야 하고,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접근하지 못하도록 알아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따라서 이 혈루증 여자는 부정한 자로 낙인이 찍혀 몸도, 마음도, 믿음생활도 함께 고난을 당하는데다 하나님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도 버림을 당하였습니다. 누가 가까이 오지 않아서 고독하고 괴로운 것이 아니라 누가 와도 피하여야 하는 고독 속에서 괴로워해야 하는 처지이니 이 얼마나 불행한 사람입니까?
사실 그래요. 이런 사람이 가까이 오면 그 몸에서 나는 냄새로 인해 상대방의 기분이 불쾌함을 느낍니다. 나쁜 인상도 줍니다. 혹 전염도 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절을 하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몸을 좀 청결하게 하면 안 되느냐고? 물론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 옛날 중동지방에는 물이 대단히 귀했고, 특히 일 년 중 건기 6개월 동안은 전혀 비가 오지 않는 특수한 지역입니다.
요즘이야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고, 목욕탕도 가며, 집에서도 언제든지 목욕을 할 수 있지만 그 때는 전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나이 드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옛날에는 한겨울 동안 목욕을 안 하고 지냈습니다.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하는데 그때는 다들 그러했습니다.
오늘의 여자가 그런 형편이에요. 옷도 귀한 때라 한 벌로 삼대를 입는 시절이었는데 얼마나 지저분했겠습니까? 옷을 철철이 갈아입던 때가 아니고, 게다가 피를 흘리고 사니 중동지방의 더운 환경에서 보면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목욕도 하지 않고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않는 사람이 선풍기나 에어컨도 없는 예배당에 들어오면 악취가 대단히 심하게 나는 것 잘 알지요? 예수님 당시는 이런 병은 이혼 사유가 되었습니다.
2. 혈루증 여자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믿음으로 나아왔습니다. |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SNS가 전혀 발달 안 된 그 시절에는 좋은 정보를 듣고 그 정보를 따라 움직인다는 건 대단히 중요합니다. 반면 들어야 할 좋은 정보를 듣지 못한다면 불행이고요. 지금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이지만 예수님께서 만병을 치유하신다는 소문은 이미 입에서 입으로, 지역에서 지역으로 전해지면서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다리는 메시야가 오셨다는 소문이 전국으로 나돌기 시작하였습니다.
조금 전 읽은 27절을 다시 보십시오. 소문을 듣고, 손을 대니, 라는 동사 2개가 나오는데 이 두 동사가 불치의 병을 치료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①예수의 소문을 듣고. 듣고는 청취하다. 안다. 깨닫는다. 는 의미로 혈루증 들린 여자는 예수님이 자신의 병을 고쳐 주실 분이라는 복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일단 치료에 있어서는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중요합니다.
그런 좋은 정보를 들을 수 있다면 그 귀는 대단히 복된 귀 아닙니까? 이 혈루증 여자는 좋은 구원의 정보를 듣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주님께로 나아왔는데, 이런 복음의 능력은 절망의 자리를 박차고 소망의 자리로 나오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②그의 옷에 손을 대니. 손을 댄 것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주님께서 기적을 베푸신 사람들의 성경 기사를 보면 반드시 듣고 와 믿고 라는 단어가 따릅니다. 먼저 들음이 없이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여기서는 믿음 대신 손을 대니 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만졌다는 말은 손을 대었다는 단순한 touch가 아니라 그 믿음의 중심으로 옷자락을 아예 잡아 당겼다는 그런 뜻입니다.
일부러 붙잡은 것, 즉 목적이 있는 행동으로서 혈루증 들린 여자는 자신의 절체절명의 문제를 놓고 예수님과 한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옷자락 한 가닥을 붙들고 끝까지 늘어졌다는 말입니다.
이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왜 그렇게도 강렬하게 만졌을까요? 만지기만 하면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 때문입니다. 주님만이 구원의 길임을 듣고 깨달은 후에는 구원의 주님을 만나고자 온갖 어려움을 무릎 쓰고 찾아 나왔습니다.
현실적으로 이 여자를 보십시오. 법적으로 부정한 여자이니 어느 누구하고도 접촉을 해서는 안 되는 가까이 하기에는 위험한 여자입니다. 사회적으로 제한을 받는 여자의 신분이지만 그는 예수님의 옷을 살짝만 이라도 만지면 치료받을 수 있겠다는 절대적인 믿음 하나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이런 믿음,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믿음으로 붇들은 이 여자처럼 믿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만지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기적의 문을 능히 열어주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가 교회에 올 때 늘 가는 곳이니 오늘도 간다는 생각으로 오셨다면 은혜 받는데 아무래도 힘이 좀 들지 않을까요? 반면 오늘 이 예배에 내 운명이 걸려 있다는 각오로, 문제의 해결을 받아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이곳이 나의 안식의 터전 은혜의 터전이라고 여겨 교회에 나오셨다면 이 분은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큰 은혜, 놀라운 은혜를 받을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혈루증 들린 여자의 구원의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
혈루증 들린 여자의 치료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댐으로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나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사람이 어디 이 혈루증 들린 여자만이겠습니까? 다른 많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이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대한 호기심으로 그냥 몰려와서 예수님의 옷깃도 스치고 또 만졌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혈루증 들린 여자는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 왔으며,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을 만질 때 주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그 옷자락에 능력이 있어서 십이 년을 앓던 혈루증이 나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여자가 손을 댄 옷은 남자들의 겉옷으로서 중동 지역에서는 낮에는 어깨에 걸치고 다니다 밤에는 잠잘 때 덮는 담요의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의 이 겉옷에서 특별한 능력이 나간 것이 아니라 오직 이 여자의 믿음이 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30절을 보시면 확연하게 밝혀집니다.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치유의 능력이 예수님께 있는 것이지, 옷이나, 옷에 손을 댄 행위 자체로 마술과 같은 어떤 이상한 효과를 내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 때문에 주님께서 일을 하시며, 내가 안고 있는 문제를 온전히 예수님께 믿음으로 맡길 그때부터 주님은 일하십니다. 여자의 신앙고백을 들어 볼까요?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 일러라.
이 여인은 자기 정체를 나타내기가 두려웠습니다. 만약 이 여자가 군중들 속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는 사람들 틈에 자기 몸을 숨기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아주 은밀하게 예수님 뒤편으로 다가가서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민감하게 이 사실을 아시고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엄하게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안을 주어 죽이려고 물은 것이 아니라 이 여자와의 믿음의 관계, 목자와 양의 관계를 바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혈루증 들렸던 여자가 믿음으로 옷자락을 만져 치료 받은 일을 아시면서도 누가 그렇게 하였느냐고 물으십니다(32). 몰라서 묻고 찾으십니까? 믿음의 체험을 간증하기 위해서입니다.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은 입술로 신앙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혈루증을 고침 받은 이 여자, 사회가 저버리고 공동체가 돌보지 않던 환자, 어느 누구도 반기지 않던 이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믿음으로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옷에 손을 대기도 했지만 그러나 정작 구원받은 사람, 복을 받은 사람은 혈루증 들렸던 한 사람뿐임을 기억하십시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우리는 일생을 사는 동안 누구의 손이라도 잡아야 하고, 누구의 옷이라도 붙잡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행복을 위하여 사랑의 손을 잡고, 출세를 위하여 권력의 손을 잡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기업가의 손을 잡기도 합니다. 이런 손을 잡아서 일이 잘되면 좋지만 일이 잘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려고 잡았지만 오히려 불행이고, 잘되려고 잡았지만 부도이고, 영광을 위하여 잡았지만 오히려 부끄럼입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믿음도 없이 그저 습관으로 교회에 나온다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던 호기심 많은 군중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께 시선을 두지 않고 주변의 꺼리들에 관심을 둔다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찾으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주님을 만나서 영과 육의 회복의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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