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론조사기관 설문 조사에서 한국인 1000명을 상대로 여러분은 언제, 얼마나 피곤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일주일에 무려 나흘을 피곤한 상태로 지낸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런 경우를 만성피로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밀린 일을 안 할 수도 없고, 이러다 말겠지 싶지만 계속 피로는 떠나지 않고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나는 피곤하다. 입니다. 직장인들은 과다한 업무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육체와 정신의 피로를 안고 탈진상태에 들어갔다고 봐도 됩니다.
한 때 조선일보에서 한국인의 만성피로 선진국의 2배라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성피로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미인데 사람은 휴식을 통하여 삶의 활력을 재충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휴가의 열쇠는 일단 잘 먹고 잘 쉬는 것 아닐까요? 오늘이 7월 마지막 주이니 지금부터 한 열흘 동안은 휴가로 바쁜 날들을 보낼 것 같습니다. 사람은 쉬어야 할 때 쉬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피로가 누적되어 일의 능률이 잘 오르지 않습니다. 휴가철을 맞아 잘 휴식 하시되 예배를 포기하는 휴가는 되지 마십시오. 영적 손해입니다.
예수님도 사람의 피곤한 모습을 아시고 휴식을 권장하셨으며, 휴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함으로 각 자 형편 따라 지혜롭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따라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된 휴식인지,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그 쉼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함께 은혜 받는 귀한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1. 사람은 누구나 쉼을 필요로 합니다. |
막 06: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막 06:07~31절을 보면 주님께서 열 두 제자를 둘씩 짝을 지어 보내실 때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들을 치료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각각 보고를 하는데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였던 여러 일들을 보고 받으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며 잠깐 휴가를 주셨습니다.
사람은 남녀노소 누구나를 막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사람에 따라 질병의 짐, 가난의 짐, 갈등과 고민의 짐, 세상의 짐 말입니다. 돌아보면 가장은 가장으로서의 짐을 지고 있고, 아내는 아내로서의 짐을 지고 있고, 자녀는 자녀로서의 짐을 지고 있고,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짐을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짐을 지고 있는 사람, 일을 하는 사람, 특히 정신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휴식을 절대로 필요로 합니다.
휴식이 없으면 모든 것이 쉽게 망가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의 생리적 구조를 약 하루의 ⅓을 잠을 자도록 만드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일주일에 주일을 통하여서 육신의 일을 하루 쉬게 하셨는데 이는 사람을 위한 특별한 배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의 악보를 보면 쉼표라는 것이 있는 것 잘 아시죠? 쉼표의 모양을 따라 길게 쉬는 것도 있고 짧게 쉬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온쉼표, 점2분 쉼표 2분 쉼표, 점4분 쉼표 4분 쉼표, 점8분 쉼표 8분 쉼표, 16분 쉼표 등인데 찬양을 할 때 그 쉼표의 모양을 보고 알아서 숨을 쉬라는 뜻입니다,
현악기도 줄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조금 느슨하게 풀어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 사용할 수 있고 제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운동 경기도 반드시 게임 중간에 휴식 시간이 있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도 중간 중간에 휴게소가 있듯이 인생행로에도 쉼표나 쉼터 같은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은 쉬어야 할 때입니다.>
방글방글 웃고 있는 아기를 보고도 마음이 밝아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식구들 얼굴을 마주 보고도 살짝 웃어주지 못한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문을 비추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하루가 궁금하지 않고 전화도 기다려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고 바쁘다는 말만하고 끊었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도 소리만 들릴 뿐 마음에 감동이 흐르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나오지 않고 슬픈 연속극을 보면서 극본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다가 반가운 얼굴을 발견하고도 궁금해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기 위해 한 번 더 뒤돌아보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아침과 저녁이 같고 맑은 날과 비 오는 날도 같고 산이나 바다에서 똑같은 느낌을 받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2. 예수님은 쉼이 필요한 우리를 부르십니다. |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한다는 말은 사서 고생하는 능동적인 고생을 의미합니다. 또 무거운 짐은 피동적인 고생으로서 원치 않는 환경 속에서 겪는 그런 고생입니다. 원하는 수고든 원치 않는 수고든 수고의 짐을 지고 사는 게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무거운 짐을 우리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을 뿐더러 누군가가 대신 져 줄 수도 없기 때문에 여기에 우리의 고민거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피곤하고 지친 우리 인생이 쉴 수 있는 곳,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그곳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참된 평안과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 0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본문 28절처럼 여기서도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초청하십니다. 그러나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지만 다 오지는 않는 것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기 때문입니다(마 22:14). 그러면 세상의 초청을 한 번 볼까요?
어느 신혼부부에게 축하 엽서가 왔습니다. 두 분 결혼을 축하합니다. 제 이름을 지금은 못 밝히지만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여기 연극 입장권을 동봉했으니 꼭 다녀오세요. 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자 신혼부부는 누가 이 연극 입장권을 보냈을까? 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 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털린 것입니다. 집을 비우게 하고 모든 귀금속을 가져갔는데 거기다 약을 올리는 메모까지 남겼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겠지?
초청자가 누군지 확인하지 않고 간 그 길은 도둑을 맞는 길이었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은 우리를 다시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이런 복된 초청을 받고도 무엇이 바쁜지 새벽 이른 시간에 출근하면서도 막 뛰어다니기까지 합니다.
걸으면서 아침을 먹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는 여성들도 많습니다. 예배는 뒷전일 때도 많고요. 사실 피곤할 정도로 일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어디 있겠습니까만 그만큼 일을 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하며 버티는 겁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을 얼마나 피곤하게 지냈습니까? 적당량의 일을 하십시오. 과중하다 싶으면 그때는 과감하게 줄여야지 그렇지 못하면 생명선이 끊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영국이 5대양 6대주를 누비고 다닐 때 수많은 배들을 바다에 띄웠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많은 배들이 침몰되곤 하였습니다. 배들이 자주 가라앉게 된 큰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짐을 너무 많이 싣고 다녔기 때문에 가라앉았다는 말입니다.
그때 사무엘 프림솔이 이를 연구하고 조사하여 영국 국회에서 한 개의 법안을 제출하여 통과시켰습니다. 그 이름은 적재 한계선이라는 법입니다. 일정한 짐을 실은 배가 일단 물 위에 띄워지면 그 배가 물에 닿는 부분에 줄을 긋고 그 이상은 절대 초과해서 짐을 더 못 싣게 하는 법입니다.
지금도 큰 배를 보면 배 아래에 노란 선, 하얀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선을 프림솔이 제안했다고 하여 Plimsoll line이라고 하는데 일단 이 선이 물에 닿으면 더 이상 짐을 실을 수 없습니다. 배가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가면 조그만 풍랑이 일어도 쓰러지고 뒤집혀집니다. 생명선을 유지하려면 사람마다 Plimsoll line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라 하시면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생명선이 유지 됩니다.
사 55:0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3.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쉼을 주십니까? |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 한다는 것은 많은 일들을 하여 육체적으로 곤하고 지친 상태이며, 무거운 짐을 진 자는 누군가에 의해 무거운 짐이 지워진 상태입니다. 어쩌면 염려의 짐, 탐욕의 짐, 야망의 짐, 경쟁의 짐, 죄의 짐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와 풀어야 할 짐, 예수님이 풀어주시는 짐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쉼은 죄악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바, 곧 영적인 평안의 안식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가장 괴롭게 하는 무거운 짐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로서,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괴로워하고 힘들어 합니다.
그리고 이 죄악의 짐은 우리 사람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도 벗어버릴 길이 없으니 이보다 더 고통스럽고 무거운 짐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이 무섭고 무거운 죄의 짐에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벧전 0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주님께서 주시는 쉼은 죄악으로부터의 해방과 함께, 이 세상의 모든 수고를 마친 후에 주시는 영원한 안식입니다. 세상에서의 안식은 일시적이고 불완전 하지만 그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더불어 누리게 될 안식은 영원한 즐거움의 안식입니다.
계 21:0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주님 외에 누가 이렇게 선언 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누구도 우리 짐을 대신 해 줄 분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모두에게, ①죄로부터 해방의 쉼을 주십니다. ②영적 갈증으로부터 쉼을 주십니다. ③질병으로부터 치료의 쉼을 주십니다. ④가난으로부터 쉼을 주십니다. ⑤절망과 눈물로부터 쉼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짐이 무거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 없는 것이 문제 아닙니까? 이제는 이런 피곤한 요소에서 완전히 해방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고통과 무거운 짐으로부터 해방을 받았으면 다시는 죄의 멍에, 고통의 멍에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굳건한 믿음의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시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 하시리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성경은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 그저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설교를 하는 목사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한 주간의 월요일이 되자 다음주일의 설교 제목과 내용을 열심히 기다렸지만 도무지 영감이 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아직 월요일이니까 수요일까지 시간이 있지 않은가 하며 또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수요일 저녁이 되어도 아무런 영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목요일이 되어도 역시 아무 설교가 생각나지 않고 그러다가 금요일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하나님이 좀 늦게 주시는가 보다 하며 또 기다렸으나 계속 영감이 떠오르지 않자 급기야 금요일 밤에는 철야를 하였습니다. 그래도 아무 설교도 생각나지 않는 가운데 토요일이 되면서 오늘은 하나님이 주시겠지 하며 기다렸으나 밤까지 무엇을 설교해야 하는지 영감이 통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주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예배 전까지는 주실 거야 하며 기다렸지만 예배 시간까지 아무 제목도 영감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었고 드디어 설교 시간입니다. 단상에 올라가면 분명히 주시겠지 하며 단상에 올라가니 정말 신기하게도 딱 영감이 내려왔습니다. 애야, 설교 준비는 미리미리 해야 하느니라.
이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계획 없이 산다면 더욱 무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줍니다. 우리의 인생살이는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꼭 하면서 살아갈 때 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며 진정한 쉼을 누리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 맡겼으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게 아니라 말씀과 기도로 체계 있게 살아야만 피곤하고 무거운 삶에 빠지지 않고 평강의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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