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3년 말씀

주님께서 택하여 주셨습니다.(요 15:15~1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3. 7. 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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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미국에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이름은 조지 워싱턴(1732~1799, Washington)입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몸이 너무 약해 사람들은 곧 죽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17세 때는 말라리아, 19세 때는 천연두, 20세 때는 늑막염, 22세 때 다시 말라리아, 35세 때는 급성 이질에 걸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습니다. 그러다 43세 때는 치아가 거의 못 쓰게 되어 상당한 고통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님은 아들에게 이렇게 믿음을 심어줍니다.

 

너는 하나님이 택한 특별한 사람이다. 긍지를 가져라. 워싱턴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나를 택하여 주셨다. 나는 하나님의 사명자다 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사명감을 상상함으로 모든 약함과 병을 극복하고 사람들 앞에서 존귀한 인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43세인 1775년에는 미국 혁명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세계 최강의 영국군과 전투를 합니다만 연전연패를 당합니다

그럼에도 워싱턴은 나는 하나님의 택한 특별한 사람이지 않는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명자야 하면서 사명감으로 끈기 있게 싸워 1781년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일약 국민적인 영웅으로 등장하면서 1789년에 그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의 자리에 나아갔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의지로 좋은 것을 선택할 수도 있고 나쁜 것을 선택할 수도 있으며, 강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약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의 만남은 행복의 보금자리에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 김해삼일교회 성도들은 특별히 두 가지 선택에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교회를 선택한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 수많은 교회들 중에서 내가 봉사할 수 있는 터전이 많이 있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성도들이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로 선택해 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별반 내세울 만한 것이 없음에도 그저 무조건적으로 나의 모습 그대로를 선택해 주신 일입니다.

 

 

 1. 주님께서 나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잘못과 연약함과 부족함과 죄인 된 모습을 아시면서도 일꾼으로 불러주셨다는 뜻입니다. 외형으로 보기에는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로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놓고 하나님의 섭리라 여기면서 감사하다가도 금세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해서 다투고 헤어지고 흥분도 합니다만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현재의 우리의 허물진 모습 그대로를 알고 택하셨으니 이 일이야말로 진정 은혜입니다. 사람의 선택은 늘 어떻게 변경이 될 줄 모르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변함없는 선택이기 때문에 영원한 승리와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43:0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여기 야곱이란 인간의 못된 심성으로 부모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잔꾀와 술수로 가득하였던 이름이며, 이스라엘이란 야곱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얍복강 가에서 그저 하나님을 향해 메어 달림으로 얻게 된 변화의 이름입니다(32:24~28).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이 두 이름을 부르는 것은 너의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모든 것을 다 아는 내가 너를 택하여 세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의 환경이 아무리 힘들어도 행복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신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의 조건이 되며,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이 사실 하나만 해도 얼마든지 감사 생활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민족들 가운데 특별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외형적 신분에 목을 매며, 이 신분 때문에 자신들은 우월하다는 선민의식을 가집니다. 그래서 2차 대전 때는 가스 사형실에서도 하나님의 선민답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죽어갔고, 어느 장소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돕도록 시멘트 역할을 합니다

 

옛날에는 예쁜 여학생을 놓고 남학생들 끼리 모여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쟤는 내꺼야. 내가 찍었으니 아무도 건들이지 마. 알았지? 마음에 두는 걸 소위 찍는다고 그럽니다. 그리고는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가서 프러포즈를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여학생이 남학생을 찍는다고 하네요. 여학생이 한 번 남학생을 찍으면 그 남학생은 꼼짝을 못한답니다. 꼼짝없이 붙들려 가는 거죠. 요즘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힘이 있는 것 같고, 여학생이 남학생을 찍으면 실패율도 무척 적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의 대상이 되었음에 감사하십시오. 내가 주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었음에 감사하십시오. 이런 감사야말로 진정한 행복입니다.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여 세워 주셨다는 의미는 무슨 일이든지 감당할 수 있는 힘과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만 알고 있어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뿐더러,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해 주신 이상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해 주시고 범사의 일들에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주님께서 나를 선택하신 목적은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주님께서 제자를 선택하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말해 줍니다. 한 마디로 믿음의 열매 맺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고. 05:01~0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은혜의 복을 주신 것은 가나안 땅에서 풍성한 믿음의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저들이 믿음의 열매가 없자 아주 엄한 책망을 하십니다.

 

05:0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예수님도 열매가 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는 이렇게 저주 하십니다(21:17~19).

 

21: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우리가 열매라고 하면 두 가지의 열매로 구분 할 수 있습니다. 인격의 열매와 사역의 열매인데 우선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는 인격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부터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입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이 바로 이 인격적인 열매 아닙니까? 이 인격적인 열매를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9가지 열매로 표현을 합니다.

 

0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다음으로 맺어야 할 열매는 사역의 열매입니다. 사역의 열매는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 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출발을 해야 합니다.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섬기고, 주님을 전해야 하는 일들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나를 구원하시고, 내게 소망과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입니다. 이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전도했습니까? 여러분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새 생명을 얻어 변화된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누구입니까? 이름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에 결산해야 할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선택을 통해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은 사역의 열매를 맺는 것인데, 나는 전도의 열매 맺는 위치를 떠나 방황하는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닙니까? 13장에 보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열매를 당연히 맺어야 함에도 맺지 않고 있음에 대한 비유로 주신 말씀입니다.

 

13:0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0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0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0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신앙이 성숙해지고,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내 한 몸을 던지면서 살아가는 곳에는 사역의 열매가 있습니다. 나를 일꾼으로 불러주신 주님의 뜻을 따라 일꾼의 위치를 떠나지 마십시오. 목적 있는 인생으로 지음을 받았으면 그 목적을 따라 열매 맺는 자리를 내가 계속 잘 지켜 나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격의 열매나 사역의 열매는 매일 매일의 열매를 통해서, 매년 마다의 열매를 통해서 일생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그런 열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3. 주님께서 나를 사랑의 도구로 쓰기 원하십니다.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 너희란 말을 보십시오. 너희가 누구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소수의 제자들, 곧 세워질 교회의 핵심 멤버들입니다. 이 소수의 무리 안에서 먼저 사랑의 관계가 맺어져야 함을 주님은 가르칩니다.

교회는 사랑으로 맺어진 공동체로서 너희로 표현되는 성도와 성도 사이의 사랑은 수평적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교회, 주변의 교회들을 보면 수평적 사랑의 관계가 많이 부족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주님과 나 사이의 사랑만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이웃과 단절되어 있으면서 하나님만 잘 섬긴다면 그것이 진정 복된 생활일까요? 주님과 나 사이에만 사랑이 오가고, 나와 다른 성도들 사이는 사랑이 끊어져도 괜찮습니까?

인간관계가 어떻든지 간에 헌금생활 잘하고, 기도의 자리에 잘 나오고, 성경만 많이 읽으면 형통할까요? 결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나와 이웃과의 수평적 사랑의 관계가 없다면 그것은 바로 주님과의 수직적 관계도 성립되지를 않습니다.

 

0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행복한 사회는 관계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갑니다.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창출해 나간다는 말입니다. 너와 나의 공동체 관계가 막힌 사회를 이기적인 사회라고 부르는데 이런 사회는 선진국으로 진입하지를 못합니다.

사실 행복한 사회를 이루어 가는 일에 제일 걸림돌 되는 자가 누구이며, 외국으로부터 비난을 당하도록 그 중심에 서는 자들이 누구일까요? 바로 여의도에서 금배지를 달고 폼을 잡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꼬락서니를 보면 정말 밥맛 떨어질 때가 많지만 희망 없는 그들을 택한 것이 우리의 무지함입니다. 다 자업자득인 거죠.

들의 더티한 모습들은 관심권에서 지우고 주님이 찾으시는 영혼들을 사랑으로 무장하고, 사랑으로 다가가야 합니다.17절 말씀이 바로 우리의 이웃을 향해 사랑으로 나아가라. 이웃과의 관계를 수평적 사랑으로 회복하라. 그런 뜻이에요.

 

우리가 결혼식에 더러 참여해 보지 않습니까? 많은 주례사를 듣게 되는데 그 주례사에서 공통점이 무엇이던가요? 두 사람이 서로 죽을 때까지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저는 그런 주례사를 들으면서 너무 아쉬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식 집례를 하면 신랑 신부에게 두 사람 서로 뜨겁게 사랑하되 사회에서 소금과 빛 된 역할을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꼭 권합니다.

그러면 믿음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왜 그리 힘이 들까요? 사랑의 문제를 놓고는 아무래도 내가 밑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나는 상대방에 비해 모든 면에서 우월하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 것이 손해라고 여기는 이기주의적 생각 때문입니다. 잘난 사람들로 가득한 교회일수록 사랑이 없는 교회일 것이며, 이웃을 생각하며 더불어 살아갈 때 건강한 사람, 건강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일에 유명한 작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 모세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1729~1786)은 키가 작고 꼽추였다고 합니다. 그가 총각이었을 때 어느 날 부유한 한 상인의 집의 잔치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그 집의 외동딸 프롬체라는 처녀를 보자마자 그만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 처녀를 좇아서 그녀의 방에 조용히 들어갔습니다.

물론 처녀는 본 척도 안 했고 아무리 말을 걸어도 말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모세 총각은 용기를 내어 물어봅니다. 아가씨는 결혼하는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남자와 여자를 짝지어 부부가 되도록 맺어주신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처녀는 대답하기를, 물론이지요. 믿고말고요. 이어서 모세 총각은 말합니다. 내가 어느 때인가 환상에서 이런 일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예쁜 소녀를 소개하면서 이 여자와 네가 앞으로 살아야겠는데 그런데 이제 아내로 짝 지어진 여자는 앞으로 꼽추로 태어날 것이다. 그러자 모세는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꼽추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 그러시다면 내가 대신 꼽추가 되겠습니다. 하고 간청을 하자 하나님은 그러면 네가 꼽추가 되라고 해서 자기가 꼽추가 되는 환상을 경험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프롬체는 그렇게 아름다운 사랑을 마음에 가지고 있으세요. 하고는 감동이 되어서 둘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대신 꼽추가 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주님 안에서 얼마든지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자에게 주어진 의무는 서로 사랑입니다. 상대가 나보다 못났다고 생각하면 결코 사랑할 수 없을 것이나, 나보다 상대나 이웃이 더 귀한 분임을 알고 다가간다면 주님 안에서 참 사랑을 얼마든지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되신 성도 여러분, 사명자의 위치에 서서 지금부터 열심히 믿음의 열매를 맺으면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