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2년 말씀

주님은 내 심령의 문을 두드리십니다(계 03:14~22 라오디게아).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2. 12. 8. 16:10
728x90

미국 뉴욕 맨해튼 섬에는 맨해튼 구() 북부에 흑인 지역 Harlem가 있습니다. 이 마을은 18세기에 네덜란드 사람들이 일구었는데 지하철 계획으로 땅값이 폭등했다가 폭락하자 흑인들이 싼 땅을 사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지역에 거주하던 백인들은 흑인들을 피하여 떠나버렸는데 이로 인해 좋은 집들이 텅텅 비면서 그 빈집들은 자연히 걸인들의 천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건물마다 낙서와 쓰레기와 무질서로 가장 추한 마을이 되어서 불명예의 할렘가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와 같이 집은 비워두면 더 더럽고 추하고 퇴락하게 마련입니다.

사람의 심령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할 주인이 다스리지 못하고 외적인 다른 요소가 들어와서 지배를 하면 그 사람의 가치관은 혼돈에 빠집니다. 그 예로서 마 12:43~45절을 보면 더러운 귀신이 한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그 사람이 심령을 지키지 못하고 비워두었습니다. 그러자 나갔던 귀신이 머물 곳을 찾지 못하고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오는 바람에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더욱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의 심령의 문을 두드리십니다(20). 왜 두드리십니까? 주님을 주인으로 영접하여 믿음생활을 더 잘 하라고 두드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이 변질되어 어쩌면 세속의 자리로 돌아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말씀을 이 시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는 시간이 되어야겠습니다.

 

 

 1. 라오디게아교회의 지리적 위치 및 문화, 종교의 배경입니다.



지리적으로
라오디게아는 빌라델비아에서 동남쪽
64Km 지점 라구스(Lycus) 계곡 서안에 위치한 산곡의 도시입니다.
맞은 편 10Km, 14Km지점에 히에라볼리와 골로새가 위치하고 있으며 도시 건립의 역사를 보면 B. C 241~246년에 수리아의 안티오커스 2세가 건립하고 그의 왕비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왕비의 이름을 따라 라오디게아라 명명하였습니다.

 

정치적으로 라오디게아는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또 북쪽 68Km 지점에 에베소라는 큰 도시가 있어서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이 편지를 쓰기 35년 전 A. D 62년경에 지진으로 도시가 황폐되었을 때 도시 복구를 지원하려는 황제의 선심을 사양하고 독자적인 힘으로 도시를 복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이곳은 모직 공업이 발달하면서 활발한 금융 거래가 발달되어 소아시아에서 가장 풍요로운 상업 도시가 되었습니다
.
또 명문의 의과대학도 있어서 이 대학의 안과에서 만들어 낸 안약은 유명하여 눈에 바르기만 하면 효과가 있어서 세계 전역에 안질 치료의 명성이 알려졌습니다. 다만 이곳은 물 사정이 좋지 않아 히에라볼리와 골로새로부터 항상 수로를 이용해 물을 공급받아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주변의 풍부한 경제적 여건들로 인해 라오디게아 시민들은 흥청망청 오늘만 유쾌하게 살면 그만이다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향락을 상징하는 대형 극장 3곳과 3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을 건립했는데 이런 현상은 쾌락을 사랑하는 방법의 표현입니다.

 

교회의 설립과 그 형편을 보면, 바울의 복음의 동역자 에바브라가 설립을 한 것으로 짐작됩니다(04:12,13). 그리고 골로새와 히에라볼리의 교회와 더불어 바울의 지도아래서 성장하였으며 4세기에 중요한 회의가 이곳 라오디게아교회에서 모였다고 하니 당시 이 교회의 위치와 그 중요성이 짐작됩니다.

 


 2. 라오디게아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아멘이시요. 문자적으로 아멘인 자를 의미하며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칭호로 나타나기도 합니다(65:16). 이는 하나님께서 진리이시며 신실하심을 나타내는데 이런 칭호가 그리스도에게 적용됨으로 라오디게아교회의 신실하지 못함에 대한 그리스도의 신실성을 부각시킵니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아멘이시요 와 동일한 사상을 내포하는 칭호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시기 위해 온전한 순종과 충성으로 구약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셨음을 나타냅니다(01:05,09, 02:13).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의 최고의 근원을 나타내는 이 칭호는 그리스도의 또 다른 칭호 즉 알파와 오메가에서 알파에 해당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피조물 가운데 처음이란 의미가 아니라 창조자이며 창조의 근본이심을 나타냅니다.



 3.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입니다.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모든 것을 보시고 세밀히 감찰하시는 주님께서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형편과 처지를 다 알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33: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 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14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 살피시는 도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 하도다.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이 열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죽은 상태를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차다는 말은 라오디게아의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약 14km 떨어진 골로새로부터 냉수를 공급받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며,

뜨겁지도 라는 말은 인접한 히에라볼리의 온천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서 이곳 히에라볼리의 온천수가 라오디게아 도시까지 약 10Km를 흘러 들어오는 동안 식어 버려서 차지도 뜨겁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물이 되고 마는 겁니다. 이런 물은 목이 마른 사람이 마셔도 구역질이 나고 토하여 낼 수밖에 없는데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의 신앙상태가 냉수도 온천수도 아닌 것처럼 미지근한 신앙에 있다는 말입니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잘 아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미지근한 물 정말 먹기 힘든 물로서 먹으면 오히려 메스꺼우니 토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 마디로 무기력과 무관심, 권태로움과 타성을 표현하는 말로서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무디어진 신앙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나타내지도 않은 미지근한 믿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무관심한 자들에게 대하여 적당주의를 빨리 청산하라는 경고입니다.

 


 4.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하여 주님은 징계하십니다.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히에라볼리로부터 끌어온 온천수와 골로새로부터 수로를 통해 가져온 찬물을 공급받는 과정에서 물이 미지근하게 됨으로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미지근한 영적 상태에 머물러 있는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을 거부하시고 버리시겠다는 책망이신데 버림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성경에서 보겠습니다.

 

삼상 16:0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 지라.


27:0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24: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16절의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는 말씀으로 그들의 미지근한 영적 상태를 17절에서 보겠습니다. 다함께 17절의 말씀 읽읍시다.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부요하여. 현재 완료형으로 이제 완전히 부요한 상태에 도달했다는 의미로서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은 스스로 더 이상 바랄 것이나 부족한 것이 없다고 여길 정도로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는 오히려 매우 빈곤하고 곤고한데 이런 모습은 서머나교회와는 대조를 이룹니다. 서머나교회는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였으나 영적으로 부요하였습니다.

 


곤고한 것. 곤고한 것은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약탈되거나 파괴당했을 경우로(137:08; 07:24) 그 어떤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죄의 법에 매여서 원하는 일은 되지 아니하고 원치 않는 일을 하게 되는 영적 결핍성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0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가련한 것. 칭찬을 받지 못하고 쫓겨나서 슬피 울게 되는 처지로서 이는 물질적 부와는 정 반대로 정말 가련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가난한 것. 가난은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이 금융업이 발달한 사회에서 물질적인 부를 축적한 것과는 달리 영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섬길 수 없는 상태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02:09).

 

눈먼 것.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보는 영적 맹인의 상태를 의미하는 말씀으로 실제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물질적 외형만 보았지 영적 빈사 상태에 이른 모습은 전혀 보지를 못하였습니다.

 

벌거벗은 것. 물질적 풍요로 인해 당시의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유명한 양모의 고가 직물을 구입해서 옷을 만들어 입었지만 주님의 눈에 드러난 영적 헐벗음은 가릴 수가 없었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은 실상이 이러함에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부요하다고 착각하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불신앙의 요소들이 우리의 삶에 들어 올 때 행여나 영적 미지근함에 빠지지는 아니합니까? 우리는 쉬지 않고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5.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한 주님의 권면입니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라오디게아 지방은 금이 많이 생산되는 곳으로서 경제적 소득이 높은 이 지역 사람들은 대부분이 어느 정도의 금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금으로 상징되는 귀한 믿음을 시련을 통하여 사라고 말씀하십니다.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라오디게아는 광택 있는 검은 양모 생산지로 유명한 고장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양모가 아닌 흰옷 곧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의의 옷을 입고 영적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 주님은 이 지역의 특산물인 안약을 사서 치유하라고 권면함으로서 그들의 영적 시각 장애를 치유하고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20 볼 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두드리노니. 현재형으로 지금도 계속해서 두드리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이런 말씀은 죄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인내와 사랑을 알리시는 모습으로 불신앙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초청과 약속의 말씀입니다(Mounce, Trench).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18,19절에서 권면을 하신 주님은 이제 주님을 영접하고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심령의 문을 열라고 하십니다. 문을 열기만 하면 주님께서 심령에 들어오셔서 영적 교제의 삶을 나누겠다고 하셨으니 문을 여는 것은 이제 나의 몫입니다. 이 시간도 주님은 내 심령의 문밖에 서서 심령의 문을 열기를 기다리시는데 문을 열기만 하면 냄새나는 방이든 누추한 방이든 들어오셔서 함께 거하시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가십니다.

 

헌트(Hunt, William Holman. 1827~1910. 영국 화가)20절의 말씀을 토대로 1904년에 그린 세상의 빛이란 그림이 있습니다(영국 런던 성 바오로 성당 소재).

 

헌트가 단단히 잠겨 진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을 막 완성하였을 때였는데 한 친구가 그림을 보고 나서는, 이보게, 헌트, 그림을 잘 못 그렸네. 문고리가 없지 않은가?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헌트는 나는 그림을 잘 못 그린 것이 아닐세. 그 문고리는 안쪽에 있다네. 라고 답했습니다. 문밖에 서서 문을 노크하며 기다리시는 주님의 안타까운 표정을 그린 이 그림은 문은 안에서 굳게 잠가 놓았기 때문에 문밖에서는 그냥 열 수 없습니다.

 

15:0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아마도 이 자리에 계시는 분 중에 더러는 주님께서 매우 오랫동안 심령의 문을 두드려 오셨던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심령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문을 열기만 하면 풍성한 복이 기다리고 있는데 왜 계속 망설이고 있습니까? 열기만 하면 주님께서 내 삶의 인도자가 되어 주십니다. 혹 세상일에 너무 분주해서 주님께서 문밖에 서서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내가 심령의 문을 열지 아니하면 주님은 돌아서십니다.

성도 여러분, 문을 두드리시는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얼마나 나와 가까이 계시는지를, 그런데도 내가 축복의 문, 은혜의 문을 열지 못하면 큰 복을 상실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것 하나는 알아야 합니다.
내 심령의 문을 두드리는 방문객 중에는 미혹하는 자도 있고, 이단자도 있고, 악한 영의 세력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심령의 문을 두드리는 자의 신분을 꼭 확인하고 문을 열어 주십시오. 그저 막 구분 없이 심령의 문을 열면 믿음을 도둑질 당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믿음의 승리자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심은 그의 왕적 지위를 믿음의 승리자에게 허락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과 더불어 왕노릇할 것에 대한 약속으로서 주님의 권면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동일하게 주님과 더불어 왕적인 통치를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20:04~06; 22:28~30; 08:17; 딤후 02:12).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본서에서 일곱 교회를 향한 서신의 결론적 어구로 계속 반복되는 말씀입니다. 귀 있는 자는 개체 교회 전체에 속한 청중들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 귀는 성령님의 권면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의미합니다(07, 11, 17, 29; 03:06, 13). 성도 여러분, 성령님께서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귀 기울여 들으십니다.

 

교회들에게. 복수로 각 교회들에게 보내진 서신 맨 끝에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이 문구는 이 편지들이 특정한 지역 교회에 보내진 것이 아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보편적인 교회를 향해 보내진 것입니다(Lenski, Hughes).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체질화되어 있는 병적인 요소가 하나 있는데 무엇인지 아십니까? 안일주의와 자기중심으로만 살려는 스타일입니다. 이 세상적인 불신의 스타일을 바꾸어야 합니다. 방법은 단 하나 주님께서 내 심령의 문을 두드릴 때 문을 열고 맞이하여 주님 중심으로 내 삶을 전환하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