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2년 말씀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고전 12:18~2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2. 12. 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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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몸의 지체들이 긴급회동을 하고 위장을 혼내주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손과 발 눈과 입이 종일 땀을 흘려서 먹을 것을 마련하면 위장이라는 밥통은 가만히 있다가 주는 대로 자기 배만 채운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제재 조치로 한 일주일 정도 일체 음식을 위장에 보내주지 않기로 하고 드디어 동맹파업을 하였습니다. 손도 가만히 있고, 발도 가만히 있고, 눈도 입도 가만히 있으니 편하기는 해서 좋으나 며칠 지나니 눈도 흐릿해지고 다리도 후들후들 떨리고 온 몸의 기운도 다 빠져서 영 맥을 못 추는 겁니다.

그래서 저 놈의 위장은 어떻게 하고 있나 하고 한 번 살펴보았더니 위장 혼자 신바람 나서 말하기를, 남들 다 잘 때 혼자 잠 못 자면서 들어오는 음식물 소화시키느라 죽을 고생 했는데 아 좋다. 평생 처음 한 번 실컷 쉬어 본다. 요즘 같으면 살 것 같다. 하며 연신 싱글벙글 하더랍니다.

 

5일제 근무의 정착과 더불어 이제 사람들 최고의 관심사 중 하나는 여행과 먹거리라고 합니다. 특히 건강을 위한 음식에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 예전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던 웰빙 음식이라는 단어도 생활 속에 정착하였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안락한 삶과 건강을 위한 일에 사람들은 극성이듯이 또 하나의 건강을 위한 관심을 가져야 할 곳이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신령한 공동체인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과 자신의 영적 건강을 든든하게 하는 일입니다. 성도로서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겠지요. 이 일이 우리의 우선순위임을 깨닫고 믿음의 에너지를 건강한 교회를 세우고 건강한 성도가 되는 일에 투입하여 살기를 축원합니다.

 

 

 1. 건강한 교회는 분쟁거리를 잘 차단합니다.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많은 사람들이 이상향의 교회를 찾는다고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하며 순례자의 길을 여행합니다. 그러나 이상향의 교회는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란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들 바로 죄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생활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라면 외부로부터 오는 어려움보다는 내부로부터 발생하는 분쟁인 것 같습니다. 이 분쟁이 성도들 사이를 갈등하게 합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할 때는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라고 찬송을 하지만 조금만 마음이 틀어지면 이런 찬송과는 달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폄하하고 뛰쳐나가는 일을 잘 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는 목적은 교회를 통해 아픔도 해결하고, 갈등과 분쟁도 해결하여 구원의 복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왜 천국의 생활을 미리 맛보라고 주신 교회를 통해 은혜보다는 분쟁이나 갈등의 현장이 많이 발생합니까?

건강한 교회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이 건강한 믿음으로 건강한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신학적인 측면에서 지상교회를 전투교회라 하는 이유도 사탄의 세력이 교회를 분쟁으로 끌고 가기 위해 틈을 노리기 있기 때문입니다.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지상교회, 사람이 모여 이루어 가는 공동체는 사탄에 의해 분쟁이 일어나고 때로는 분열이라는 원치 않는 취약점을 갖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다양성과 화평을 설명함에 있어서 우리의 몸을 비유로 들고 있습니다. 육신의 지체끼리는 서로 협력을 잘하며 살아가는데 주님 안에서 구원을 받은 성도끼리는 왜 그렇게 분쟁을 하며 사느냐고? 말입니다. 분쟁 이거 아주 무서운 겁니다.

그런데 분쟁은 사람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사탄이 교회를 해치려고 뒤에서 조정을 함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만일 사탄의 부추김에 영적 감각이 무디어져 놀아나는 자가 있다면 이는 대단히 불행한 삶 아닐까요? 왜냐하면 자기는 사탄에 의해 놀아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세상에 머무는 동안 네 가지의 조화를 주셨습니다. 자기 자신과의 조화입니다. 이웃과의 조화입니다. 자연과의 조화입니다. 하나님과의 조화입니다. 이 네 가지 조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네 번째의 하나님과의 조화입니다. 만일 이 조화가 무너지면 다른 조화는 별반 의미 없는 흔적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른 조화를 위해서는 우리가 많은 수고를 하면서도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는 믿음의 삶에는 적당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삶, 영적으로 끊어진 삶은 결국은 낙심과 방탕의 길입니다.

인류는 철이라는 원료를 통하여 바늘과 가위라는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재료는 같은데 하나는 잘린 것을 이어주는 도구이며, 다른 하나는 이어진 것을 자르는 도구입니다. 같은 원료인데 각각 다른 용도의 물건이 만들어졌다는 말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공동체에서 분쟁이라는 자르는 도구보다는 잘린 것을 잘 이어주는 바늘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만나면 끝이 나고, 신앙생활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이 난다는 사실을 아시죠. 건강한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조화를 이루는 자로 쓰임 받기를 축원합니다.

 

 

 2. 건강한 교회는 섬김이 잘 이루어집니다.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우리 몸의 지체들은 공동체의 감정을 가진 연합체로서 조직되어 서로 간에 섬기는 긴밀한 협력을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하나의 유기체로 지음을 받은 사람의 특성을 교회가 가져야 할 공동체의 특성인 섬김으로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믿음 생활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상대방을 배려하고 챙겨주는 섬김입니다. 의사 출신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공동체의 형제들을 물질로서 섬기고, 사랑으로 섬겼던 모습을 우리에게 소개를 합니다.

 

0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중직자가 되면 그 직분이 교회에 더 많이 봉사하는 자리입니다. 이제부터는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죽고, 더 많이 무시를 당해야만 하는 자리인데 저는 우리 교회 중직자들에 대하여 조금은 염려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더 열심히 일하고, 더 교회를 위하여 봉사를 합니다만 그러나 교회를 염려하는 그 마음이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불평으로 변질되는 것 같은 위험의 요소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섬김과 염려는 불평이나 원망의 거리가 아니라 자기희생입니다.
우리가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노력은 했겠지만 진정한 자기희생의 섬김은 많이 미흡하지 않았을까요?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것은 교회의 외적인 성장이 중요한 일이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인 면에서의 영적 건강을 회복하는 교회입니다.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을 잘 보십시오. 모두가 불완전하고, 미숙하고,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문제 덩어리입니다. 구원받기 이전에 가지고 있던 나쁜 습관들을 계속 가지고 있어서 주위를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일도 아주 많고요.

이것은 무얼 말해주는 것입니까? 사람은 나와 너를 막론하고 다 죄인임을 증명하는 것임과 동시에 예수님의 피로 정결하게 씻음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구성 멤버들에게 완벽을 바란다면 우리 모두의 지나친 욕심일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재판하는 위치로 만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섬겨주기 위한 지체로 만났으며, 저 연약한 분이야말로 내가 섬겨야 할 대상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섬기는 일에는 상대를 배척하는 마음이 아니라 배려하는 마음으로서 좀 힘들고 어려워도 서로가 서로를 잘 섬기는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많이 부족하고 연약하다는 생각이 듭니까? 더욱 관심을 기울여서 믿음의 자립을 하도록 섬겨주어야 할 사명이 내게 있습니다.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오늘부터 이런 생각을 가져 봅시다. 교회에는 어려운 분들도 있고, 병약한 분들도 있고, 밑바닥에서 일하는 분들도 있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연약한 분들도 있는데 이런 분들을 이제부터는 진심으로 섬기겠습니다. 라는 각오를.

건강한 교회로 가는 길의 지름길이 바로 이런 섬김의 마음을 가진 분들의 마음에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를 위하여 주님의 사람으로 공동체의 가족을 바라보는 마음을 가지기를 축복합니다.


 

 3. 건강한 교회는 아픔을 함께 나눕니다.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모든 지체는 제 각각 서로가 서로를 돌아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창조 하셨습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약하게 보이는 사람, 덜 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 별로 아름답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바로 그들을 우리가 성령님의 은혜를 따라 돌아보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아픔을 지닌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주린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 된 사람,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옥에 갇힌 사람인데 이런 사람들은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사명감과 의무감이 있습니다. 이런 의무감을 지체의식이라고 하고 다른 표현으로는 사랑의 케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공동체 안을 돌아보십시오. 건강한 분들보다는 병약한 분들, 밑바닥에서 눈물로서 나날을 보내는 분들, 말할 수 없는 육신적, 정신적 고통으로 아픔을 겪는 분들을 우리가 사랑으로 캐어하도록 주님께서 붙여주신 귀하신 분들입니다.

 

여러분은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로 살기를 원합니까? 이런 분들을 우선으로 배려하는 마음이 주님의 사람을 실천하는 마음인줄 아십시오.저는 주일날 우리교회 여성들의 화장한 모습을 보면서 아, 저 분은 얼굴 중에 가장 자신이 없는 부분을 특별히 신경을 쓰셨구나. 라고 느낍니다. 또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부분은 좀 예쁜 옷이나 장신구로 맵시를 내셨구나. 라고도 느낍니다. 저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인식할 것인데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약한 부분을 커버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듯이 우리가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를 지향한다면 아픔의 눈물을 가진 자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특히 공동체 안에서 약한 자를 무시하거나, 가난한 자를 홀대하거나, 무능한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소외시켜서는 아니 됩니다. 그들에게 더 깊은 관심과 더 따뜻한 사랑으로 다가가서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도록 사랑의 가교 역할을 해 주어야만 합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 누가 많이 아파하고 있습니까? 정신적으로 더 고통을 느끼는 것 같습니까? 내 일처럼 내 가족처럼 다가갑시다. 그리하여 영적인 힘을 한 번 실어줍시다. 왜 교회가 시험에 듭니까? 왜 교회가 분쟁을 합니까? 자기들 끼리끼리만 그룹을 형성하여 지내면서 귀족적인 신앙 스타일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호수에 물이 가득차면 하늘에 떠가는 구름이나 새들을 비취게 하는 아름다운 절경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가물 때에 호수에 있는 물을 다 뽑아내 보십시오. 거기에는 신발짝이나 폐타이어, 망가진 리어카, 온갖 폐기물 들이 드러나 흉측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마음에 사랑의 물을 다 빼 버리면 온갖 인간적인 요소가 다 나와서 정말 보기 흉합니다. 그러나 다시 그 마음에 이웃의 아픔을 돌아보는 주님의 사랑이 가득 채워지면 모든 인간적인 불신앙 요소들은 다 잠기고 은혜로운 모습만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을 보면 가끔 교회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이 교회 저 교회로 옮겨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유야 물어보지 않아도 나름대로 할 말이 무척 많지 않겠어요? 이런 사람은 항상 교회가 부패하였고 목사가 부패하였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 치고 정상적인 신앙인이 별로 없는 줄로 알고 그저 기도해 주시면 되지 그런 사람의 말 한마디 듣고 이리저리 흔들린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 됩니다. 그런 사람의 말이 성경보다 더 권위(?)가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바울은 그들도 비록 뜻은 달리하지만 주님 안에서 한 형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비록 아프지만 기도해 주어야 할 대상인줄 알고 기도만 해주면 됩니다.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사람의 몸은 어떤 부분이든지 신경과 혈관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 그래서 어느 한 지체가 아프면 모든 지체가 함께 아픔을 느낍니다. 또 반대로 어느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온 지체가 함께 영광을 받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혈관으로 연결되어 있는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따라서 한 성도가 고통을 당하면 온 교회가 함께 아파해야 하고, 한 성도가 잘 되면 온 교회가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우리가 신령한 세계의 공동체가 되었으니 당연히 하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 건강한 교회를 세우고 하나 된 것을 더욱 공고하기 하기 위해서는 나의 수고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수고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성령님께서 이미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우리가 힘써 지켜 나가는 일입니다.

 

04:0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건강한 교회를 이루고 지키기 위해서는 당신이야말로 우리교회에 꼭 필요한 분입니다. 라는 덕담을 자주 나누며 삽시다. 립 서비스가 아닌 진정한 공경의 마음으로 신앙의 공동체를 잘 이루어 갈 수 있도록, team work을 잘 이룰 줄 믿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덕담을 서로 간에 나눌 수 있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