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2년 말씀

우리 앞에 열린 문이 있습니다.(빌라델비아, 계 03:07~13)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2. 11. 24. 19:15
728x90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켄 블랜차드, 출판 21세기 북스 발매 2002.12.28)는 책이 있고 또 말이 있습니다. 칭찬은 하는 이나 듣는 이나 모두 기분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개념 없이 칭찬을 한다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결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칭찬의 가장 큰 목적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일깨워주는 것으로서 상대방이 깊이 간직한 장점을 찾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언어 습관 중의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칭찬이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바보를 천재로 바꾸기도 하는 이 칭찬은 잘 하면 보약보다 났습니다. 칭찬은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고 상대의 재능을 일깨우는 묘약으로써 자유기고가 정은 은 칭찬하는 방법으로 여섯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먼저 상대에게 관심을 가져라. 상대가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것에 대해 칭찬하라. 칭찬하기와 비위 맞추기를 혼동하지 마라. 한 번만 더 칭찬하라. 먼저 칭찬한 후에 지적하라. 할 수 있을 때마, 할 수 있는 곳에서 언제나 칭찬하고 동의하라.

 

빌라델비아교회는 서머나교회와 더불어 주님으로부터 책망은 없고 칭찬만 받은 교회입니다. 주님께 칭찬을 받았다는 것은 주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은 교회라는 뜻이요 주님께 인정을 받은 교회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선한 수고가 없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칭찬을 하지 않으시며 하늘나라에서의 상급도 준비해주시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 열린 문이 있습니다. 라는 말씀은 믿음으로 살려고 몸부림을 치는 우리 김해삼일교회를 위하여 주신 은혜의 말씀으로 알고 믿음으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 빌라델비아교회의 지리적 위치 및 문화, 종교의 배경입니다.



지리적면에서.
빌라델비아
(philadelphus)는 사데에서 동남쪽 50Km 지점 코가미스 계곡에 위치한 고원 도시입니다. 이곳은 미시아(Mysia)와 리디아(Lydia)와 부르기아(Phrygia)등 세 나라 접경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국경 도시입니다. B. C 140년 버가모의 왕인 앗탈루스 2(Attalus the second)에 의해 창건된 빌라델비아는 그 지리상 위치 때문에 동방의 관문이라 불렸습니다.


정치면에서. 빌라델비아는 형제 사랑을 뜻하는 명칭으로서 이 도시를 건설한 앗탈루스
2세가 자기 형제들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명명하였습니다. 이 도시의 이름의 의미가 좋아서 오늘날도 자주 쓰이며 아직까지도 터키에는 빌라델비아교회가 이슬람교도들이 있는 그곳에 남아 있습니다.

 

문화면에서. 이 도시를 건립한 동기가 헬라의 언어와 생활양식과 문명을 부르기아 미개지역에 전달하기 위한 문화 전달의 관문이 되기 위함입니다. 이 도시는 거대한 포도 재배의 산지로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Dionysus)를 주신(主神)으로 섬기는 우상 숭배의 중심지로 많은 신전과 종교 행사가 있습니다. 5세기에는 작은 아테네로 불렸으며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한 때는 경제적 부요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A. D 17년 대지진으로 인해 도시가 완전히 폐허 되었습니다.

이후 티베리우스 황제가 이곳에 대한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복구하였습니다. 이후 14세기 경 아시아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짓밟힐 때 이곳이 유일한 기독교의 보루가 되기도 했는데 이처럼 이 빌라델비아교회는 신앙 면에서 칭찬을 많이 받은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중앙아시아의 고원지대에 위치했기 때문에 외형의 부흥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성도들의 생계도 목축과 농업과 약간의 여관업 정도의 고달픈 생활이었습니다. 이 교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단지 암미아(Ammia)라는 여선지자가 교회를 관할하면서(A. D 100~160) 한 때 부흥을 이루었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신앙 면에서는 전도하며 봉사와 구제의 일을 하는 교회의 사명 감당하는 일에는 최선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형제 우애나 화목한 면에서는 모범이 되었지만 일곱 교회 중 가장 작은 교회로서 건물의 구조 및 성도의 수는 그렇게 많지를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2. 빌라델비아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07 빌라델비아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거룩하고.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 사용되었고(01:04; 51:05),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그의 신성과 메시야를 나타냅니다(01:24; 06:39). 거룩이란 분리를 뜻하는 말로 예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므로(01:01~03) 당연히 세상의 악과 오염과 부패로부터 분리되신 분이십니다.

 

진실하사. 진실이란 용어를 예수님께 적용하는 것은 예수님의 메시아를 부정하는 유대인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함입니다. 이 말은 세상에 자기를 메시아라고 속이는 자들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에 꼭 필요한 말입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 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10:07,09).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14:06; 04:12), 생명과 사망의 주관자요 구원의 열쇠 영생의 열쇠 천국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22:22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예수님 자신만이 절대 보유하고 행사하는 그의 주권과 왕의 통치권으로서 07절은 거룩하신 제사장 되시는 예수님, 진실하신 선지자 되시는 예수님,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왕 되신 예수님 바로 예수님의 3중 직분을 의미합니다.

 

 

 3. 빌라델비아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입니다.

 

08 볼 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국경 도시에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자유로운 왕래를 하던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에게는 쉽게 수긍이 되었던 이 열린 문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구원의 문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산상보훈에서 두 개의 문이 열려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한 문은 좁은 문이요 또 한 문은 넓은 문입니다. 좁은 문을 가리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고 넓은 문을 가리켜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은 가기가 힘들어 찾는 이가 적습니다. 반면 넓은 문은 가기가 쉽고 편해 많은 사람 곧 다수가 찾는데 이 두 문은 열려 있어서 사람들이 지금도 이 길로 가고 있습니다.

 

0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열린 문을 영적차원에서 봉사의 문이나 또 믿음의 문, 전도의 문, 기도 응답의 문, 사업 형통의 문으로 적용해도 될 것 같습니다. 복을 받을 수 있는 모든 문은 열려 있지만 그곳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아무래도 소수 아닙니까? 이런 문이 닫히지 않도록 하십시오. 닫히면 모든 복은 날아가고 맙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빌라델비아교회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교세가 많은 편은 아니고, 교회의 재정이나 사회의 영향력을 가진 유력한 인물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외견상 그다지 힘 있는 교회가 아니고 겉으로 드러나는 좋은 조건들을 갖추지 않았지만 큰일을 해 내었습니다. 대댜수 사람은 큰 것이나 큰 힘을 가져야만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보다는 밝은 미소, 따뜻한 한마디가 지친 인간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큰일의 출발점입니다.

 

내 말을 지키며. 어려운 여건에도 말씀을 잘 순종하고 실천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잘 이해하고 들으십시오. 교회 생활에서 주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고 노력하는 사람은 거의가 신앙 경륜이 오래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교회를 들락거리는 사람이나 교회 물을 많이 먹은 사람일수록 연륜만 내세우고 자랑할 뿐 순종하고 실천하는 의지가 미약하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지요. 주님께서 진실로 원하시는 사람은 작은 능력의 소유자라도 주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는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으며 로마제국은 황제 예배를 내세워 300년이나 기독교를 박해하였습니다. 박해가 계속되자 이를 감당하지 못하여 교회를 등지고 주님을 떠나는가 하면, 이교도와 타협하는 사람도 생기고 타락하여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권력도 재산도 명예도 가진 것이 없지만 작은 능력 즉 믿음 하나만은 굳게 붙들고 주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가 직면했던 도전은 밖에서 오는 황제 숭배나 핍박 같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부정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들은 혈통 면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였다고 주장하나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부정하고 기독교를 탄압하는 사탄의 무리였습니다(09).

 

사탄의 회가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을 했는가? 하는 것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짐작 할 수 있는 것은 자기네들끼리 당을 만들고, 교회와 성도의 흠집을 만들어 내고, 교회 성장을 방해하는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4. 빌라델비아교회가 말씀을 지킴으로 받는 보상이 있습니다.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성도들이 고난을 겪고 환난가운데 휩싸일지라도 주님께서 환난에서 지켜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련과 고난을 만날지라도 믿음으로 하늘나라에 예비해 놓은 상급을 잃지 않도록 현실에서 신앙 관리 잘하라는 말씀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1950,6,25)이 일어났을 때 U. N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군이 물러갈 것을 강력히 명령을 했습니다. 그러나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러자 627일 당시 사무총장 T. Lie가 유엔군 파병을 결의하려고 상임이사국 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사회 법은 회원국 한 나라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불가능합니다
. 이때 이사회의 회원국인 유엔 주재 소련 대사 말리크가 기필코 참여하여 거부권을 행사하려고 하였습니다. 북한은 이미 소련의 동의를 받고 남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소련 대사 말리크가 타고 갈 승용차가 갑자기 고장이 나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하여 어려움을 겪다가 겨우 차를 고쳐서 회의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30분이 늦어서 유엔군 파병이 가결되고 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0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당시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이 말씀을 잘 이해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빌라델비아는 잦은 지진으로 건물들이 폐허가 되었으며 파괴된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신전의 돌기둥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전 기둥을 본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은 성도들의 영예로운 지위를 말합니다. 더 나아가서 교회 안에서 더욱 귀히 쓰임을 받고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요동하지 않는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딤전 03:15).


12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주님은 세 가지 이름을 부여할 것이라고 약속하시는데 이 말씀 역시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에게는 친숙한 말입니니다. 빌라델비아는 과거 지진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을 때 티베리우스(Tiberius) 황제의 도움으로 재건된 후 네오 가이사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습니다.후에 베스파시안(Vespasian) 황제의 성을 따라 플라비아(Flavia)로 개명되었기 때문입니다(A. D 70~79).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그의 백성으로 영원히 인()쳐 주시겠다는 뜻이며,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천국의 시민권이 보장됨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의 새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영광에 성도들도 동일하게 참여하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굳게 잡아. 현재 명령형 시제로 이제까지 빌라델비아교회가 지켜온 믿음을 쉬지 않고 더욱 견고하게 유지 할 것을 명령을 합니다. 여기 면류관은 경기장에서 승리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으로서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말은 경기장에서 선수가 상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당부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도 더욱 신령한 무장을 통해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인내의 말씀을 지켜 마침내 승리해야 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0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본서에서 일곱 교회를 향한 서신의 결론 어구로 계속 반복되는 말씀입니다. 귀 있는 자는 개체 교회 전체에 속한 청중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 귀는 성령님의 권면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나타냅니다(07, 11, 17, 29; 03:06, 13, 22).

성도 여러분, 성령님께서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러면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귀를 가졌지만 듣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도 무슨 말씀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은 신령한 귀가 어두워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