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2년 말씀

인생은 짧고 복음은 영원합니다(벧전 01:23~2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2. 12. 22. 20:01
728x90

유대 미드라쉬(Midrash, 구전 전승으로 성경 본문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연구 방법)에 나오는 다윗 왕의 반지 이야기입니다.

다윗 왕이 어느 날 궁중의 보석 세공사를 불러 지시를 내렸습니다. 내가 항상 지니고 다닐만한 반지를 하나 만들고 그 반지에 글귀를 새겨 넣으라.

내가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위대한 일을 이루었을 때 그 글귀를 보고 우쭐하지 않고 겸손해질 수 있어야 하며, 또한 견디기 힘든 절망에 빠졌을 때는 용기를 주는 글귀이어야 한다.

 

세공사는 최선을 다하여 최고의 반지를 만들었지만,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떤 글귀를 새겨야 다윗 왕의 마음에 들지 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민하던 세공사는 지혜자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던 솔로몬이 말합니다. 이렇게 써넣으세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세공사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솔로몬이 다시 말합니다. 승리의 순간에 이 글귀를 보면 자만심이 가라앉게 될 것이고, 만약 절망에 빠졌다면 이내 표정이 밝아지고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지난 주간 우리나라를 5년 동안 이끌어갈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였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로 된 일이기에 신앙인은 지지해 주어야 합니다.

경제민주화, 사회복지, 반값 등록금 등 국민의 기대가 큽니다. 또 잠깐 지나가는 5년의 햇수를 길다고 여겨 그 밑에서 한자리할 사람들, 이권을 챙길 사람들(?), 꼴불견일 사람이 많이 등장할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짧은 권력 또한 지나가리라. 입니다. 국민이 조금은 더 행복 지수를 느낄 수 있도록 깨끗한 정치를 해 주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인생은 짧고 복음은 영원합니다.로 정했습니다.

 

 

1. 사람은 세상에 잠깐 머물다가 떠납니다.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4절은 나라가 멸망하여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는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지입니다(40:06~08). 베드로는 이 말씀을 인용하여 당시 핍박받고 흩어져 방랑하는 수신자들(01)과 세상 것들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위로합니다.

24절의 풀은 팔레스타인의 기후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풀은 생명 기간이 몇 주 지나지 않는 정도로 짧습니다. 우기가 끝나면 이내 말라버립니다(01:11).

 

이런 풀을 가지고 사람의 인생무상(103:15, 40:06)이나 단명에 비유합니다(6:30). 그렇다면 육체를 풀과 같다고 묘사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나 누리는 것들이 지극히 제한되어 오래가지 못한다는 의미 아닙니까?

세상의 것 즉 부귀영화와 같은 그 어떤 좋은 것들이라도 우리 곁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집니다. 이내 곁을 떠나버리는 것들 때문에 인생 가치관이 흔들려서 되겠습니까? 믿음의 손해, 인생의 손해를 봐서 되겠느냐 말입니다.

 

한때 천하를 호령하였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중국의 진시황제, 좁게는 현대 그룹의 신화를 이룬 정주영 씨도 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람의 육체와 영광은 싱싱하게 자라다가 서리만 내려도 시들어 없어지는 풀과 같습니다.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금방 떨어지고 맙니다. 풀을 왜 사람의 육체에다 비유합니까? 외형으로만 보면 사람은 그만큼 생명이 짧은 볼품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약 04:13 들어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우리 가운데 매우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고 있습니까? 곧 변할 것입니다. 젊음을 누리고 있습니까? 젊음도 머잖아 변할 것입니다.

혹 세상의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 지식도 변할 것입니다. 매력 포인트로 여겨지는 명예도 권세도 다 안개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아주 대단한 줄 알고 추구하다 끝에 가서 허무함을 느끼고 실성하는 사람을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세상 것은 모두 변하며 결국은 내 곁을 떠남을 기억하십시오.

 

고전 07: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그래서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세상일을 관찰하면서 이 세상 속에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구별하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만물을 깊이 보면 볼수록 다 변하는 것임을 더욱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한 말은 모든 일은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가? 그들은 없다고 말합니다. 다만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만이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주장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나의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질입니까? 순간의 쾌락입니까? 명예입니까? 인생은 걸어가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영원한 생명 가치에 관심을 두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2. 도울 힘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시 146:0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0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여기 귀인이 누구입니까? 영향력 있는 사람 혹은 탁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힘 있는 사람이라도 배경으로 삼지 말라고 권합니다.

왜냐하면, 월등한 존재처럼 보여도 알고 보면 별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권력이나 재물이 영원하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는 권력의 실세들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곧 정부 인수위원회 명단이 발표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명단에 들어간 사람들은 또 점령군처럼 정부의 각 부서 실세들을 후려치면서 피눈물 흘리게 할 것이고, 새삼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란 다 이렇습니다. 내가 신뢰하던 사람이 때로는 나에게 배신의 아픔과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교회에서는 대부분 가깝게 지내며 신뢰했던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잘 받습니다.

그래서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을 의지하면 상처받기 쉽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내가 사랑을 베풀어 주어야 할 대상입니다. 나보다 믿음이 좋아 보여도 그들은 내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을 주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십시오. 그래야 뒤탈이 없습니다.

 

그러면 상처를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절대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에 주저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권력이 자기에게 행복을 준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말씀마저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삼상 15:22~3).

 

시 146:0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풀과 같은 육체의 삶을 너무 신뢰하지 말고 그것들을 너무 자랑하지 맙시다. 의지할 가치가 없는 것을 의지하면 그것이 쓰러질 때 나도 같이 쓰러집니다. 자식도, 물질도, 친구도 하나님처럼은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천국의 소망을 가진 성도는 아이들이 소꿉놀이하는 것 같은 세상일에 너무 큰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안개와 같은 세상 것을 너무 사랑하면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놓쳐 버릴 수도 있습니다.

 

요일 0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삼상 17장은 다윗과 골리앗이 싸우는 배경과 그 과정을 소개합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골리앗은 건강한 신체와 어릴 때부터 단련된 용사의 힘 그리고 굉장한 크기의 칼과 창과 단창을 가진 자입니다.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은 양을 칠 때 필요한 막대기와 물매와 돌 다섯 개가 전부입니다. 골리앗과 다윗 양자를 비교하면 객관성으로 볼 때 골리앗이 유리합니다.

마침내 판이 벌어졌습니다. 골리앗은 완벽하게 무장한 자기 능력을 믿고 나왔고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왔습니다. 결국 이 싸움은 골리앗과 다윗이 아니라 골리앗과 하나님의 싸움입니다. 이에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나아가며 말합니다.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3. 말씀과 복음은 영원합니다.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사람은 풀과 같은 육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의 생명을 가진 영생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영원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상실하고 지옥의 형벌을 받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고 사망은 영벌입니다.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고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된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06:23).

 

그렇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유한합니다. 영원히 의지하고 믿을 것이 하나도 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오직 주님께서 주신 복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불가능이 없는 능력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에서도 큰 능력과 권능을 나타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성공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는 우리의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신비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회사는 성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 심령에 떨어질 때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활에 옮겨 실천해야 합니다.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 또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말씀을 떠난 세상 것들은 우리를 거듭나는데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엇으로 이해합니까? 생명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성경을 영의 양식으로 삼고 있습니까?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 영원한 천국 백성의 구분법을 아십니까?

 

중국이 서방 세계를 향해 문을 열기 전, 그러니까 문화혁명(1966~1976) 때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정보원에게 한 중국 간첩이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미국 정부 기관에서 일하며 미국인 행세를 했습니다. 우선 그의 생김새가 영락없이 서양인의 모습입니다. 거기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였고 자연스러운 미국 사람의 행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를 정보요원이 수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를 추적하는 중에 유럽 여행 중 한 시내버스 곁에 서서 일종의 테스트를 하였습니다. 휘파람으로 미국 국가를 불렀더니 아무 반응이 없는 겁니다.

 

미국은 각국에서 온 민족이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미국에 살고 있어도 내가 미국인이라고 느끼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다만 두 가지 경우 자기가 미국에 사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첫 번째 경우는 미국에서 명절이나 휴일이 되면 TV에서 풋볼을 보는 일입니다.

미식축구가 미국 사람의 공통 분모인 셈입니다. 축구 시합을 앞두고 미국 국가를 부를 때 듣고 내가 미국인이지 하고 처음으로 느끼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정보요원이 미국 국가를 불러보았는데도 이 사람은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다음에는 중국 국가를 휘파람으로 불렀더니 탁 쳐다보는 겁니다. 그다음에는 발로 장단까지 맞추자 이 사람이 틀림없이 간첩이라고 확신하고 체포하였다고 합니다.


미국인으로 가장하였지만, 이 사람의 혈관에는 중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중국인의 리듬이 계속 살아 있었습니다. 그가 미국인이 될 수 없던 근본 이유가 있습니다.

비록 미국인처럼 행동하고, 미국인이 사는 스타일을 모방했지만, 미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같습니다.

성도처럼 얼마든지 모방할 수 있습니다. 남이 교회에 가니 나도 가고, 찬송하니 나도 따라 부르고, 헌금하니 나도 따라 하고, 봉사하니 나도 따라 할 수 있지만, 말씀으로 거듭나지 않았으면 그는 아직 구원받은 성도가 아닙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김우수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1957~2011.9.25).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자입니다. 54살인데 결혼도 하지 않은 독신으로 자녀도 부모도 친척도 없습니다. 공부도 많이 하지 못하여 중화요리 집에 취직하여 오토바이를 타고 짜장면을 배달하던 사람입니다.

한 달에 70만 원 받는 것이 전부입니다. 재산이 없어 겨우 한 명 누우면 꽉 차는 쪽방에서 혼자 잠만 자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작년 923일 중화요리 집에서 짜장면을 배달하던 중 승용차와 충돌하며 병원에서 실려 간 지 25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조문을 갔습니다. 정계 거물들이 그의 장례에 참여하였습니다. 그의 죽음이 왜 온 국민의 관심을 끌었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매월 5~10만 원을 어린이 재단을 통하여 소년·소녀 가장을 도왔습니다. 2006년부터 쉬지 않고 도왔습니다.

보험 4천만짜리에 들었는데 그가 죽으면 그 돈을 타서 어린이를 돕게 하였습니다. 어린이 재단 후원회장 최불암이 상주 역할을 맡아 장례를 주도하였습니다.

그의 영정 앞에는 그에게 도움을 받은 아이들이 애도하는 편지가 쌓였습니다.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영정 앞에서 말했습니다. 기부나 봉사는 돈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잘 보살펴 드립시다.

고인 앞에 선 이 대통령도 말했습니다. 고인은 가진 그것을 나눔으로써 그것이 더욱 커지고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진정한 나눔의 삶을 실천으로 보여 주었다.

 

, 김우수는 온몸을 다해 이웃사랑을 실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이기에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면 바로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들고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자는 영원히 그 나라에서 빛날 것입니다. 이 복음이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가치가 있습니다. 이 복음에 내 삶의 에너지를 기울이며 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