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부경찰서는 1월 22일 천도제 기도비를 마련하기 위해 3년 동안 약 172억 원의 병원 공금을 빼돌린 서울 중구 소재 한 대학병원 경리과장 최(53.여) 모씨와 판돈을 받아 챙긴 무속인 김 모(51.여)씨를 특정 경제 범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남편과 부모가 다치는 등 집안에 우환이 계속되자 점집을 찾아 무속인 김 씨와 상담하는 가운데서 남편 전 부인의 천도제를 지내지 않으면 당장 남편에게 화가 미친다는 말을 듣고 전 재산 5억 원을 들여 천도제를 지냈습니다. 이후에도 무속인 김씨가, 기도를 멈추면 큰 화가 올 수 있다는 말을 하며 미혹하자 결국은 병원 공금에 손을 대면서 그 횡령액이 무려 172억 원 까지 되었습니다.
최씨는 병원 일일운용자금을 부풀려 신청하거나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하는 진료비의 일정액을 출금하는 방식으로 3년 간 약 172억 원 까지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무속인들은 사기를 쳐서 떼돈을 벌면 우선 집을 사고 부처님을 모시는 짓거리를 많이 한답니다. 즉 무속인이 스님으로 탈바꿈하는 것이죠. 동시에 굿도 천도제로 역시 탈바꿈하는데 천도제란 죽은 사람의 넋을 극락세계로 갈 수 있도록 부처에게 비는 행위입니다.
굿과의 차이점이라면 굿하는 과정에 스님이 와서 염불을 첨가하면 천도제가 되고 무속인 혼자하면 굿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무속인 김씨는, 무속인협회에도 등록되지 않은 사이비 무속인으로 동자보살을 사칭해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점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무속인이야 하루에도 평균 4명 정도가 사기혐의로 구속된다고 하니 말할 나이야 없지만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무려 30년이나 근무하며 성실하다고 평가를 받은 경리과장이 이런 대형 사고를 쳤으니 이게 될 법이나 한 일입니까? 최씨가 53세이니 그야말로 행복한 인생 마무리를 위한 틀을 잘 잡아 놓아야 할 시점에서 이렇게 여지없는 인생실패를 하였으니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회복할 길이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참으로 멋진 생활을 시작했고 그 과정이 아름답다 할지라도 혹 그 마무리가 형편없다면 그 사람의 생활은 오히려 실패한 것 아닙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웃시야 왕이 대단한 성공을 거둔 후에 마지막 인생 마무리에서 믿음의 실패를 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크게 성공을 한 후에 왜 이런 결과가 오게 되었는지를 말씀으로 강론하려 하오니 심령의 문을 열고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1. 교만한 자리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
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웃시야 왕은 통치자로서 막강한 권력을 구축하였고 그 세력을 국내외에 펼쳐 나가는 승승장구(乘勝長驅)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의 마음이 교만해 지기 시작했는데 16절을 보십시오.
저가 강성하여짐으로 인해 그의 마음이 교만해졌다고 했습니다. 즉 잘 될 때,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될 때 목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교만의 극치로서 지금까지 거대하게 구축해 놓은 모든 일들이 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된 것이라 믿는 자세인데 이런 자세가 곧 패망의 길입니다.
교만이라는 말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거만한 자세로 우쭐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만 그러나 16절에서 웃시야 왕의 교만은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교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교만이란 자기 위치를 떠난다는 의미입니다. 구체적으로 유 01:06; 벧후 02장 04절을 보면 자기의 위치를 떠난 그를 타락한 천사 곧 사탄이라고 설명합니다.
사 14:12~15절을 보십시오. 처음에 루시퍼라는 천사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특권과 함께 영광을 누리고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점차 교만하여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는 마음을 품게 되자 그만 하늘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 쫓겨난 천사의 우두머리가 사탄이 되었습니다.
사 14: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 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믿음의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실패하는 원인들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이 영적 교만에 빠졌거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을 때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하나님을 찾다가도 조금 살 만하면 그때부터 하나님을 저버리게 되는데 이것은 자기가 잘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실패하는 것도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앞서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보다는 그 모든 것들이 자신에 의해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처음에는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으나 왕이 되어 권력을 가지면서부터 교만하기 시작했는데 결국 그 교만은 왕의 자리를 이탈하여 제사장의 자리까지 침범하게 됩니다(삼상 13:08~14). 사울 왕의 교만이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여 고유의 직분을 이탈함으로서 마지막엔 그의 아들들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2. 기도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0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지난주일 말씀드린 대로 스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웃시야 왕에게 영적 감화력을 준 왕의 교사요, 선지자요, 고문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이런 스가랴의 지도로 웃시야 왕은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도 웃시야의 기도를 통하여 형통함을 허락하셨습니다. 영적인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내 곁에 있다면 그야말로 축복 중에 축복이 아닐까요?
05절 말씀을 보십시오.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종 스가랴가 사는 날 동안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기도의 생활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웃시야 왕의 곁에 있는 영적 지도자 스가랴가 떠나고 난 이후부터 기도의 생활에 균열이 생기면서 마지막엔 기도의 생활을 제대로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유다 왕국의 7대 왕 여호사밧 때의 한 사건을 혹 여러분은 기억하십니까? 모압, 암몬, 마온의 연합군이 유다 왕국을 쳐들어 왔을 때의 일입니다.
대하 20:03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04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여호사밧 왕은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매어 달림으로 그 문제를 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마치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는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걱정과 두려움을 해결해 주실 줄 믿고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제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비록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불편하게 걸어 다니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매일 기도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 중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는데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하였습니다. 마침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은 아이젠하워 사령관의 총지휘 하에 대규모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북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노르망디 해안은 험한 절벽이었고 상륙작전 전날 밤은 폭우 안개 등으로 도저히 작전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접한 지도자들은 이 중요한 작전의 성공을 위해 각각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합의하고 기도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루스벨트 대통령도, 영국의 처칠 수상도, 아이젠하워 사령관도 모두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기도했는데 특히 루스벨트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17시간이나 꼼짝하지 않고 기도를 드린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서 이 상륙작전이 성공하였습니다.
렘 29: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3. 직분을 월권하였기 때문입니다. |
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 지라.
웃시야 왕의 마음이 교만하고 기도의 생활이 끊어질 때 그는 행하여서는 아니 될 제사장의 직분까지 행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대부분 열왕들은 교만하거나 영적으로 타락하게 되면 이방의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런데 웃시야 왕은 특이하게 성전에 들어가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드리려 하였습니다. 일국의 왕인 최고의 통치권자가 향단에 분향하려 하는 일이 죄가 됩니까?
예, 당연히 죄가 됩니다. 그것은 레위 지파 중 아론 자손의 제사장들만이 맡은 하나님 앞에서의 고유의 임무이기 때문입니다(민 18:01~07).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은 왕, 선지자, 제사장 등 이 3직분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어서 그 어느 누구도 그 직분자가 아닌 이상 참견할 수도, 행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대한 제사 의식에 아무런 권한이 없는 웃시야 왕이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여 제사장 아사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향단에 분향을 하려 합니다.
18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하나님께 대한 교만의 극치요, 불신앙적 태도요, 큰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졌다는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불경 아닙니까? 아마 웃시야 왕은 평소에 내가 이 나라에서 최고인데 라는 의식 때문에 제사장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자세를 가졌던 것 같으며, 또한 웃시야 왕은 당시 이방의 왕들이 제사장직을 겸하고 있는 것을 봄으로서 그것이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나라를 굳건히 하는데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발상은 사람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17절에서 대제사장 아사랴가 용맹한 자 팔십 인을 데려 왔다고 했습니다. 아사랴는 제사장들과 더불어 웃시야 왕의 월권행위를 막고자 이렇게 실력 저지를 하는 겁니다.
제발 성소에서 나가 주십시오. 하며 왕에게 요청할 때 향단에서 분향을 하려던 웃시야 왕이 뭐라고 말을 했을 것 같습니다. 야, 이놈들아 너희가 뭔데 천하가 우러러 보는 이 왕의 성소 분향을 방해한다는 말이냐? 그러자 제사장 아사랴는 왕에게 이렇게 경고를 합니다.
18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웃시야 왕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날 것이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웃시야 왕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 분향하려 하자 마침내 하나님께서 간섭하십니다.
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 지라.
제사장들이 율법의 규례를 상기시키면서 망령된 일을 지적하였음에도 웃시야 왕은 도리어 분노하면서 분향하는 일을 계속하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쳐서 웃시야 왕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생하게 되었다면 이제는 더 이상 회복할 길과 되돌릴 길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말이에요. 성도 여러분, 사람이 모든 것이 잘 되어 나갈 때 사실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하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실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잠 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결론으로 웃시야 왕의 마지막 생애입니다. |
21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
이스라엘에서 나병이란 저주와 징벌의 표상이었으며 성전생활에서도 쫓겨남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웃시야 왕이 하나님의 징계로서 나병 환자가 되었는데 그 결과는 어찌되었습니까? 혹 왕이라고 예외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다시는 성전에 들어올 수가 없었고, 왕의 자리에서도 하야하여 죽는 날까지 홀로 격리된 별궁에서 살다 죽었는데 죽은 후에도 열조의 묘실에는 묻히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왕족에게서, 가족에게서, 백성에게서 버림을 당하였으며 그 막강했던 통치권은 아들 요담에게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인생 관리, 축복 관리 잘 해야지 안일하게 소홀히 여기다 보면 이렇게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웃시야 왕은 16세에 왕위에 올라 52년간이나 나라를 대단히 잘 다스린 왕으로서 영원히 이스라엘 역사에 남을 위대한 왕이 될 뻔 하였습니다만 마지막에 부려서는 안 될 욕심 하나를 부리다 인생 마무리에 실패하였습니다. 더 이상 기회가 없어졌기에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카세트 플레이어나 CD 플레이어, DVD 플레이어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뒤로 가기(backward)입니다. 보통 모양은 이렇습니다. ◀◀. 이미 들은 음악이나 영화도 이 버튼만 누르면 지나간 소리나 장면을 재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 버튼이 없고 앞으로 나가는 ▶ 버튼만 있습니다. 인생의 시계는 단 한번 멈출 것인데 언제 어느 시간에 멈출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도 나의 시간이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야속하게도 그 인생 시계가 멈출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생 시계가 멈추기 전에 인생 마무리를 믿음으로 잘 하여야 합니다. 시간이 모자라는지 아시지요. 시간이 임박함을 알고 믿음으로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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