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1년 말씀

믿음이 흔들리면 인생도 흔들립니다(시 42:01~11).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1. 3. 19.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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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제자 중에 증삼[曾參 B.C. 505~436]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신임받는 언행이 신중한 효자였습니다.

그러나 집안은 가난했으므로 어머니가 베틀로 옷감을 짜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이 증삼이 노()나라의 비()라는 곳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한 날은 그의 어머니가 베를 짜고 있는데 이웃 사람이 황급히 달려와서 말합니다.

증삼이가 무서운 살인을 저질렀으니 피신하십시오. 그 말을 들은 증삼의 어머니는 믿지 않고 베틀에서 옷감 짜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조금 후에 친척 한 분이 와서 같은 말을 합니다. 이번에도 증삼의 어머니는 우리 증삼이가 그럴 리가 없다며 베틀에서 계속 옷감을 짰습니다.

친척이 나간 후에 또 한 사람이 달려와서 말합니다. 당신 아들이 살인죄로 체포되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증삼의 어머니는 베틀에서 내려와 그 자리를 피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증삼이가 돌아와 새파랗게 질려 있는 어머니를 찾아왔습니다. 어머니,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사람을 죽였는데 그 흉악범의 성과 이름이 저와 같아서 사람들은 제가 살인한 줄로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안도의 숨을 쉬며 너를 믿었지만 여러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내 마음도 흔들리더라. 헛소문이 무섭네.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증삼살인(曾參殺人)입니다. 어떤 문제의 본질이 사실과 다르더라도 여러 사람이 왜곡하여 전달하면 그 왜곡이 사실처럼 그런가 하여 마음이 흔들린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성도의 가장 큰 가치성은 서로 신뢰하는 일입니다. 서로 믿어주는 일이 무너지면 인간관계 자체가 파산되기 쉽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입니다. 이 신뢰가 무너지면 사람은 인생이 흔들립니다. 믿음이 흔들리면 은혜의 샘이 무너집니다.

오늘 우리 김삼일 가족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무너진 믿음을 구축하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믿음이 흔들리면 인생도 흔들립니다..로 정했습니다.

 

 

1. 시편 기자의 믿음이 흔들립니다.

 

0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 도다.

 

시편 42편 저자는 표제에 자기를 고라 자손이라고 밝힙니다. 고라 자손은 레위 지파 출신으로 성전에서 봉사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내용을 보아 한때는 성전에서 찬양대의 직을 맡아 봉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까닭인지는 몰라도 고향을 떠나서 좀 외롭고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06절의 요단 땅과 헤르몬 그리고 작은 언덕 정도의 미살산 등을 보십시오. 이곳은 팔레스타인 북동쪽입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그렇게 먼 곳은 아닙니다.

 

본문의 저자 고라 자손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 왜 고달픈 지역에서 생활하는지 그 까닭은 알 길 없습니다. 이유를 밝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달픈 현실 앞에서 지난날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성전에 올라가 제사하던 때가 그립다고 고백합니다. 봉사하던 때가 더욱 그립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고향으로 돌아갈 형편이 못 되는가 봅니다. 그저 안타까움의 눈물만 짓고 있습니다. 거기다 신앙의 대적자들이 자기의 믿음을 놓고 계속 조롱합니다.

 

03…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믿음의 대적자들이 자기를 놓고 하는 말입니다. 매우 힘든 처지에 놓인 자기를 향해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네가 왜 그 모양 그 꼴이 되었느냐? 너는 아무래도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자인 것 같다.

이런 조롱과 비방 앞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 제가 지금 믿음이 흔들립니다. 인생 전체가 기우뚱거립니다. 내 영혼에 낙심이 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0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내 마음이 상하는 도다. 우울하고 슬픈 감정의 상태, 마음의 상처로 인해 심령이 파선된 상태입니다. 누구나 이런 상황은 만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만날 수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불편한 자로 인해 힘들고 교회 밖에서는 이웃으로 인해 상처받을 때가 있습니다혹 마음이 낙심될 때도 있다는 말입니다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상처가 있고, 성도 간에도 이웃 간에도 나름대로 상처가 있습니다.

 

사실 그 상처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잘 모르고 있을 뿐이지 모두가 상처는 있습니다함께 있는 사람 늘 만나고 교제하는 사이에도 상처가 있습니다. 억울한 소리를 듣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할 때는 마음의 상처가 더욱 큽니다.

 

로마의 황제 시저의(Ga·ius Julius, Caesar B.C. 100~44 B.C.) 인물 가운데 군단장 출신 데키우스 브루투스(Decius Junius Brutus)가 있습니다.

이 브루투스가 14인의 황제 암살단에 가담하여 칼을 휘두르자 시저가 칼을 맞고 쓰러지면서 외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브루투스, 네가. 브루투스 너마저 나를. 브루투스가 자기를 배신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 브루투스가 시저를 죽인 암살단에 가담한 후에 평생을 죄책감으로 몸부림쳤다 합니다.

 

 

2.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0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불안해하는가(הָמָה 하마). 솟아오르는 바다의 쓰나미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영혼이 이리저리 밀려다니고 요동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불안한 환경을 만날 때 무엇으로 해소하려고 합니까? 돈으로 해소할 수 있습니까? 재물로 해결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불안한 마음을 술로 해소할 수 있습니까? 술은 불안한 마음을 잠시 잊게는 할 수 있어도 근본 해결은 아닙니다. 술꾼은 아실 것입니다.

술이 깨면 더 깊은 좌절과 근심과 불안을 낳게 할 뿐 그 무엇으로도 마음의 근심과 불안을 해소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심리 상태도 아실 것입니다.

흔들리는 믿음과 불안과 고통을 해소하는 길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 외에는 달리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불안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יָחַל 야할) 두라.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그분을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는 불안이 엄습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소망을 두는 자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마음이 불안해집니까?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보다 사람의 생각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결과가 안 되는 일만 나타납니다.

 

3종류의 바보가 있습니다. 안 될 일을 된다고 믿는 바보, 될 일인데도 안 된다고 해서 진짜 안 되게 하는 바보,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모르는 바보입니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잊고 살아갑니까? 세상 방법을 따르다 보니 바보가 되었습니까? 교회의 일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성도로 인해 이루어져 갑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크게 보는 동안 불안은 계속 존재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흔들리는 인생, 무기력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시 146:0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0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0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 앞에 뛰어넘어야 할 신앙의 장애물이 많습니다. 결국은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 장애물을 뛰어넘을 힘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바로 하나님을 소망하는 데서부터입니다. 좀 바르게 믿으려고 하면 할수록 사탄의 걸림돌을 만납니다.

시험의 자리에 들고 결국 낙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초점이 흐려지면 당연히 시험이 오게 마련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더욱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키엘케골(덴마크, Soren Kierkegaard, 1813~55)은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낙심과 절망은 믿음에 큰 손해를 끼칩니다.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절망을 능히 극복합니다.

 

시 121:0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0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믿음으로 기도하면 흔들림이 멈춥니다.

 

0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시편 42편 기자는 원수의 비난과 조롱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바꾸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고 계속 현실 속에서 망설였습니다. 그러자 주위에서 뭐라고 합니까?

 

10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존재를 알기 위한 질문이 아닙니다. 네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구나. 라는 비방의 물음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버려서 그 모양이지 하는 손가락질입니다. 우리가 이런 비방을 사람에게 들을 때가 있습니다. 또 자기의 무능 때문에 절망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언제 무능력에 빠졌는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난 아마 하나님이 버리셨나 봐?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계속 있을 수 있어 하는 사람 말입니다.

 

본문 기자도 지난 시간을 기억하면서 04절에서 괴로워합니다. 이 괴로움은 잃어버린 물질이나 명예 자존심이 아닙니다.

지난날 하나님의 전에서 누리던 신령한 은혜를 상실한 것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일입니다.

내가 전에는 제사의 자리에 나갔는데, 내가 전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전을 출입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그런 자리가 사라졌으니 지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흔들림에서 회복하는 길은 오직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내가 기도해야 합니다. 신령한 은혜의 복을 잃어버렸습니까?

그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머물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갈망하기를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기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호 06:0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사탄이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망설이게 하는 것과 서서히 포기하게 하는 것입니다.

과감한 결단력을 우리의 마음에서 지우고 망설임을 심어주는 것, 이것은 사탄의 표가 나지 않는 강력한 무기요 악성 바이러스입니다.

한 사람이 망설임으로 전염되면 그것은 가정으로 이웃으로 확산합니다. 신앙의 공동체 전체를 침체의 늪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의 삶은 연습이 아닙니다.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주저앉아 있을 시간도 없습니다.

탕자의 심정으로 기도하며 돌아가야 생명의 길이 보입니다. 인생이 바로 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령한 은혜의 길이 열립니다. 믿음의 기도만이 흔들림을 멈추게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시편 42편에는 일인칭 대명사(, , )가 직접 간접으로 33번이나 나옵니다. 계속 나를 강조하면 무엇이 나옵니까? 하나님 없는 교만의 모습입니다.

기자는 지금 자기의 무능력을 고백합니다. 동시에 한없이 흔들립니다. 사실 초점을 연약한 자기에게 맞추면 항상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신령한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환난을 겪고 있습니까? 두려움이 임함으로 염려하고 있습니까?

모두가 떠나 버리고 홀로 외로움의 자리에 놓여있습니까? 믿음이 흔들리고 낙심과 절망의 환경을 만났습니까? 좋은 생각을 품으십시오.

 

즐겁게 평안을 회복합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에 불안의 요소가 도사리고 있어도 나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좋은 일이 크게 일어날 것임을 믿으십시오. 믿음으로 밀고 나가십시오. 그대로 될 것입니다.

 

시 107:30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 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