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1년 말씀

내가 원하고 주님도 원하시면 됩니다(막 01:40~4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1. 1. 2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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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속하는 면적 4.42의 섬 소록도(小鹿島)를 몇 번이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섬 전체는 기복이 작은 구릉성 산지로서 최고 높이가 118m이며 해안선의 드나듦이 많아 깊숙한 만()과 돌출한 곳()이 교대로 이어집니다. 위에서 보면 어린 사슴이 한발을 들고 막 뛰려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소록도(小鹿島)라 불립니다.

 

일본 강점기 시절 나병 환자들을 강제로 수용하면서 일반인과는 멀어져 버린 비운의 땅 소록도를 우리 믿음의 가족 가운데 다녀오신 분이 있습니다.

녹동항에서 불과 300m 거리로서 이제는 소록대교가 개통되어 차로 갈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단 두 개의 번지만이 있습니다. 1번지와 2번지입니다.

 

1번지에는 소록도 병원 직원들이 살고, 2번지에는 환자들이 삽니다. 섬 안쪽의 2번지는 지금도 출입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섬에는 도양읍사무소 출장소, 식당, 매점 3, 경찰초소, 우체국, 교회 5, 성당 2, 원불교, 녹초 소록분교 등입니다.

그리고 중심지에는 6천 평 넓이의 국내 최대의 중앙공원이 있으며 나무로는 특별히 황금편백과 실편백, 히말라야시다 등이 장관을 이룹니다.

 

최고의 볼거리는 구라탑 뒤쪽 언덕에 있는 메도 죽고 놔도 죽는 바위라 불리는 바위입니다완도에서 옮겨온 바위입니다. 소록도의 환자들이 이 바위를 메어 오다 허리가 부러져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목도를 놓았다가 매 맞아 죽은 사람들도 숱하여서 붙여진 한 서린 바위입니다.

 

그중에 약 70년 전 쇠약한 병자들을 강제로 내몰아 36개월여 동안 만든 공원이라는 푯말은 정말 찾는 이들에게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제가 이곳을 몇 번 찾으면서 느낀 좋은 점이 있습니다. 주민 대부분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소망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소록도의 주민들을 떠올리면서 같은 처지의 나병으로 예수님께 나와 치료받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강론하겠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내가 원하고 주님도 원하시면 됩니다.로 정했습니다.

 

 

1. 나병 환자는 그 시대에 버려진 인생입니다.

 

40 한 나병 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나병(癩病)은 의학이 발달하지 않는 시절에는 대단히 무서운 병입니다. 이 병은 1871년 한센(Hansen)이 처음으로 발견하였습니다. 이 병의 잠복기가 수년으로부터 약 20여 년 정도가 되기 때문에 만성 전염병이라고 합니다.

이 병은 처음에는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아픔도 없습니다. 얼마쯤 지나면 등에 분홍색의 작은 혹 비슷한 것이 발발하여 점점 자색으로 변합니다.

 

동시에 피부도 점점 두꺼워 지는데 혹이 전신에 퍼지면 얼굴은 사자 얼굴처럼 변하고 혹도 고통과 함께 서서히 증가합니다. 이 병이 전염된 부분은 감각이 없어지고 심해지면 육신의 부분 손가락, 발가락, 코끝 등이 문드러져 나갑니다.

더 심해지면 손발 모두가 잘려 나갑니다. 걸렸다 하면 격리 치료가 필요한 이 나병 환자는 추한 존재로 구별하여 상대도 하지 않습니다.

 

더러는 나병 자체를 무서운 죄를 지은 결과로 오해도 합니다. 예수님께 찾아 나온 이 사람을 보십시오. 무척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 불행한 사람입니까?

육신도 육신이거니와 당시 문화권에서는 사람 취급을 안 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픔을 도려내는 나병 환자 한하운의 시가 있는데 그중 한 편을 제가 인용하겠습니다.

 

[손가락 한 마디]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 터를 가려서 깊이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얼마나 불행한 사연입니까? 나병이 이러하기에 예수님께 나온 이 사람 역시 슬픈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임은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당시 팔레스타인에는 나병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들을 더러는 깊은 협곡이나 동굴에 들어가 살게 하고 음식을 던져주었다고 합니다. 만일 식량조차 공급받지 못하면 그대로 굶어 죽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생사를 걸고 나와 구걸하면서 목숨을 유지했습니다. 사람과 사회로부터는 완전히 단절을 받은 불행한 처지입니다.

가정에서 버림받고, 동네에서 추방되고, 성전에도 들어가지 못했으니 이 얼마나 불행한 처지입니까? 완전히 버려진 인생 무진 인생입니다(13).

 

오늘날과 달리 당시는 치료 약도 없고 치료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나병 환자가 발생하면 그 환자를 격리하는 것이 유일한 대책입니다(13:45~46). 유대인은 나병 환자가 사람에게 2m 이내로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까지 정해 놓았습니다.

사람이 혹 몰라서 가까이 다가올 때도 나는 부정합니다. 부정합니다. 하면서 먼저 소리를 크게 외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혹 접촉이 되면 돌아 맞아 죽을 수 있습니다.

 

레 13:45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어쩌다 나병 환자가 거리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돌을 던져서 멀리 쫓아 버렸습니다. 또 죽은 자로 취급당하여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니게 했습니다.

나병 환자들은 성문 내에 들어올 수 없어서 주로 성문 밖에서 움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더러는 동굴 속에서 같은 환자끼리 모여 집단생활을 하였습니다.

 

 

2. 나병 환자는 예수님의 뜻을 구합니다.

 

40 한 나병 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한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나왔다고 했는데 아마도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씀드린 대로 나병 환자는 마을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정한 병으로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에 들어갔다가는 돌에 맞아 죽을 수 있습니다.

비록 나병 환자이나 그래도 남들처럼 듣는 귀는 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용기를 내어 담대히 예수님께 찾아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께 나와 꿇어 엎드렸습니다. 구약시대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다(04:16). 라는 각오로 나온 것 같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죽을 각오가 필요합니다.

 

이순신 장군 어록에 이런 말이 있지요.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치열한 전투에서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 나병 환자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기구한 운명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메시아로 믿고 나왔습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주님 앞에 꿇어 엎드리어 한 말이 무엇인지 보겠습니다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이 나병 환자는 주님을 향한 아주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이 사람의 고백은 예수님 혹시 저를 고칠 수 있으면 고쳐 주십시오. 라고 하는 반신반의의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슬프고 고통스러운 병을 고칠 수 있는 분임을 믿습니다. 대신 예수님께서 자기를 고쳐 주실 마음이 있느냐에 초점을 둡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 뜻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주님 뜻은 상관하지 않고 무작정 나를 고쳐 주시옵소서. 해결해 주시옵소서. 복을 주시옵소서. 라며 기도할 것이 아닙니다내 뜻도 중요하지만 먼저 주님의 뜻 즉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나병 환자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불쌍히 여겨만 주시면 된다는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삼일 가족도 기도할 때 이 부분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간혹 기도하는 모습이 주님을 종 부리듯이 합니다.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주님은 언제나 나의 뜻에 응답해주셔야 한다는 자세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십자가를 앞두시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눅 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우리 모두 기도 응답을 원하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기도하신 그 모습으로 나아갑시다. 우리의 기도에 얼마든지 응답하실 것입니다.

나병 환자는 자기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와 엎드려 간구한 것처럼 주님께 나온 사람은 모두가 불행을 극복하였습니다.

 

중풍병자, 지체 부자유자, 맹인, 언어 장애자, 청각 장애자를 비롯하여 심지어 죽을병을 앓는 자들도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예수님을 믿고 나오는 자를 실망하지 않게 하셨습니다방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은총도 베풀어주셨습니다그러므로 주님께서 원하시면 저의 문제도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렇게 믿고 매어 달려야 합니다.

 

 

3. 나병 환자는 주님께서 원하시므로 치료받았습니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 대부분 말씀으로 고쳤습니다. 예를 들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05:34). 그런데 4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몸을 만지며 말씀으로 고치셨습니다.

사람들은 혹 전염될까 봐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열두 제자조차 얼굴을 외면하나 예수님은 접근할 뿐만 아니라 손을 대시면서 고쳐 주십니다.

 

터치하시면서 고쳐 주시는 주님의 사랑, 모두가 외면할 때, 모두가 고개를 돌릴 때, 모두가 싫어할 때 예수님은 다가가 손을 대며 고쳐 주십니다.

사람은 외면을 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고 터치하시며 부드러운 손길로 위로해 주십니다. 말만이 아니라 몸소 사랑으로 더러운 환부를 만져서 새롭게 하십니다.

 

김삼일 가족이 주님 은혜를 받는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주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 일입니다. 주님께 반드시 나아가야 고침과 위로의 은혜를 받습니다여러분은 미래를 향해 어떤 비전을 품고 있습니까? 모든 일에 형통하기를 원하십니까? 예 그렇게 되기를 저도 원합니다.

미래를 향한 꿈은 내가 도달하려는 높이까지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거리까지 갈 수 있습니다내가 살펴볼 수 있는 깊이까지만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꿈을 꾸는 정도까지만 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허락하셔야 가능합니다.

 

주님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모험의 신앙을 원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09:23).

이 말씀을 믿고 나아가는 자를 좋아하십니다가슴으로 하는 기도, 주님께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고 애절한 기도를 드리는 자가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만지셨다는 것은 굉장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에는 환자에게 손을 대면 그 사람도 함께 부정하게 됩니다. 성전에도 못 들어갑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이 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셨습니다.

대었다(ἅπτομαι 하프토마이)는 단어는 강력한 용어입니다. 그냥 살짝 댄 정도가 아니라 꽉 붙잡고 어루만진다는 단어입니다.

 

아픈 곳을 골고루 만져주고 상처 난 곳을 뜨겁게 어루만져 주시는 스킨십을 통해 고독과 쓰라린 한 많은 상처를 쓰다듬어 주십니다.

이렇게 자기를 만져주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만지는 과정에서 이 나병 환자는 그의 마음이 다 녹아 눈물이 범벅 되었을 것 같습니다.

기독교는 만져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종교입니다. 손을 다정하게 잡아주고,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고,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Touching Love라고 합니다. 참 좋은 말이지요? Touch 해주시는 주님, 얼마나 따뜻하고 섬세한 사랑입니까?

성도 여러분, 주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주님께서 이렇게 우리 손을 꼭 잡아주시고, 멍들고 상처받은 심령을 쓰다듬으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하노니 네 간구하는 대로 될지어다. 내가 원하노니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내가 원하노니 네 소망대로 될지어다. 내가 원하노니 네 비전대로 될지어다. 아멘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예수님은 나병 환자였다 고침을 받은 이 사람에게 율법이 정한 명령을 따라 제사장에게 가서 감사의 예물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정상인이 되었음을 확인받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야만 공동체의 생활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침을 받은 자가 먼저 할 모세의 법(13~14)제사장에게 먼저 판정받고(13:16~17), 산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드리고(14:04), 팔 일 후 재차 흠 없는 어린 수양 둘과 암양 하나를 드림으로(14:10) 이루어집니다.

 

나병 환자였던 이 사람은 이제 얼굴이 회복되었습니다. 사회생활의 회복, 종교 생활의 회복, 가족과 더불어 지낼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남들처럼 세수도 하고, 머리 빗질도 하고, 화장도 하고 당당하게 동네 출입하며 성전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는 사람이(05:12) 예수님을 만남으로 자기의 한 맺힌 문제가 풀렸습니다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나의 막히고 닫힌 문제,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문제, 도무지 풀기 어려운 문제가 예수님으로 인해 다 시원하고, 깨끗하게 해결되기를 축원합니다.

 

사 41: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