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1년 말씀

신령한 복을 구합시다.(창 35:09~1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1. 1. 2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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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대표하는 나라, 또 유럽의 기독교를 대표하는 나라 하면 그래도 영국을 듭니다. 그런데 이 영국에 믿음의 비상이 걸렸습니다. 영국의 자선단체 Tear Fund2006년 집계한 통계에 의하면 영국 성인 중 일 년에 한 번도 교회에 가지 않는 사람이 59%, 일 년에 한 번 가는 사람이 62%, 한 달에 한 번 가는 사람은 15%, 매주 가는 사람은 10%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교회들이 자체 집계한 출석률을 보면 2011년에는 4% 미만으로 추정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1980~2009년까지 30년 동안 9천여 교회가 문을 닫았으며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매주 평균 4개 교회가 문을 닫고 있어 매년 220개의 영국 교회들이 폐쇄되고 있다고 합니다

문 닫은 교회들은 주로 술집, 디스코장, 식당, 주택, 공장, 사무실, 창고, 심지어 이슬람의 모스크로 팔려 갑니다. 더욱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것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오래된 건물의 외양은 그대로 두어야 하므로 외형은 교회이면서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내석 옆에 각종 술이 진열되었고, 존 웨슬리가 방문해서 설교했다는 웨슬리 채플교회 안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의자와 맥주를 당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있고, 천주교 교회 건물이 이슬람 사원으로 된 모습, 교회 내부가 중국식 식당으로 된 교회의 모습(강단과 파이프 오르간이 그대로 있음)


교회에 성령님이 떠나고, 축복이 떠나고, 성도들이 떠나니 문을 닫거나 팔리기도 해서 술집이 되고, 서점이 되고, 식당이 되고, 이슬람 사원이 되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나타납니까? 그 찬란한 영국 교회들에서 말입니다. 다른 것 아닙니다. 겉모습의 물량주의 복만 사모하고 구하였지 신령한 은혜는 등한히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 야곱을 보십시오.

그는 자신의 구하던 것을 얻되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고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명예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비록 차자(次子)로 태어났으나 장자만이 받는 복을 그렇게 사모하더니 그대로 되었고, 원하는 처녀와 결혼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더니 그것도 이루었고, 부자가 되기 위해 온갖 몸부림을 치더니 마침내 부를 이루었습니다.

자기 소망을 다 이루었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오늘 우리는 그 성공 비결을 믿음으로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옆에 있는 분에게 손을 잡고 이렇게 격려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신령한 복을 구합시다.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1. 신령한 복을 갈망하였습니다.

 

25: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 온대


야곱은 어머니의 복중에 있을 때부터 신령한 복을 사모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뱃속에서부터 그렇다는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 사실을 성경에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이후 해산하는 과정에서 야곱이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25:24). 지극히 짧은 시간적 차이를 묘사한 말입니다.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형인 에서와 시간적인 차이는 얼마 되지 않은 가운데서 동생이 되었는데 이스라엘의 제도상 장자와 차자의 차이는 그 격차가 대단히 큽니다.

모든 권한과 재산권은 장자에게 집중이 되다 보니 동생의 처지에 놓인 야곱은 그것이 대단히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나 현실 제도는 받아들여야지 않습니까? 야곱은 세월이 흐르면서 비록 장자는 되지 못했지만, 장자권 속에 들어있는 신령한 축복은 가질 수 있을 줄 믿고 서서히 사모하기 시작했습니다.

 

25: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 죽을(34 팥죽) 쑤었더니.

 

야곱이 왜 팥죽을 끓입니까? 먹고 싶어서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야곱이 팥죽을 끓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야곱은 일찍부터 어머니를 통하여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신령한 은혜가 장자권을 가진 자에게 있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차자입니다. 차자인 이상 장자는 될 수 없으나 그 장자의 명분은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에서의 장자권을 사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자권은 외형의 특권과 내적 특권으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외형의 특권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승계하여 가문의 대소사를 처리할 수 있는 주도권(27:01~45; 대하 21:03)과 다른 형제에 비해 유산의 두 몫을 분배받을 수 있는 자격(21:15~17)입니다.


내적 특권으로는 가정의 대표자로서 모든 일을 수행함과 동시에 의무와 책임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은 부모님의 노후와 미혼 가족들을 부양하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언약 관계에서 신령한 복의 계승자가 되는 일입니다.
지금 야곱은 장자권에 들어있는 세상의 특권이 아니라 내적 특권 속에 들어있는 신령한 복을 차지하기 위해 죽을 끓이고 있습니다. 이런 야곱의 속셈을 알 수 없는, 에서는 그 장자권의 가치를 소홀히 여기고 한 끼 식사의 포만감을 위하여 장자권을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25: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12:16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마침내 야곱은 장자권을 에서에게 합법으로 샀으며, 이후 아버지를 속이면서 축복 기도를 받았고(27:15~33) 마침내 장자권의 신령한 복을 소유하였습니다. 물론 야곱의 거짓말과 행동은 어떤 경우에도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복을 원하고 바라는 그 태도와 정신을 오늘 우리는 본받을 수 있습니다

 

 

 2. 신령한 복을 제단 생활로 이루었습니다.

 

14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면서 장자권의 복을 받고 난 이후 형, 에서의 위협을 피해 하란(밧단 아람)의 외갓집으로 피난길에 오릅니다. 창세기 28:10~22절을 보면 괴나리봇짐 하나에 지팡이 하나만을 잡고 혈혈단신 하란으로 가던 도중 벧엘이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노숙하다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는 놀라운 임마누엘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데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지라.


야곱은 잠이 깨고 난 이후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집에만 계시는 줄 알았더니 이곳에도 계시는구나. 그리고는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는 간단한 제단 신앙을 쌓았습니다.

 

28: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이후 야곱은 목적지 밧단 아람 외갓집에 무사히 도착하여 20년의 세월을 지내면서 자기가 원하는 신붓감을 만나게 됩니다. 상대가 있으면 뭐합니까? 지참금이 있어야지. 그리하여 결혼 지참금 대신 무려 14년을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의 집에서 머슴살이로 노력 봉사하였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참고 노력하였습니다. 그곳의 20년 세월은 장인 되는 라반과의 재산권 문제로 서로 속고 속이는 생활함으로써 믿음의 사람답지 않은 불신의 생활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생활을 청산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많은 갈등 끝에 야곱은 조용하게 하란을 떠나옵니다. 장인 되는 라반에게 알리지도 않고 말입니다(31:20~23).


31:24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하나님 뜻을 따라 믿음의 자리로 돌아가는 야곱을 하나님은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이후 창 35:14절을 보면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처음 만났던 벧엘에 이르러 돌기둥을 세우고 전제 물(포도주, 독주)을 부어 다시 제단을 쌓았습니다.

창세기 28, 31, 35장 경우는 야곱이 고향 떠나 나그네로 떠돌던 시절 생활이나 환경이 안정되지 못했던 어려울 때의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때를 따라 제단을 쌓아야 할 때를 만나면 반드시 제단을 쌓는 생활, 요즘으로 말하면 예배를 드려야 할 환경을 만나면 마땅히 예배 생활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복 주심을 제단에서 사모하십시오. 복을 주어도 못 받는 이가 있고, 안 주어도 침노하여 빼앗는 사람이 있습니다(11:12). 에서에게는 장자권의 복이 있지만 빼앗기고 말았으나, 야곱에게는 장자권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침노하여 그 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르우벤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자로서 복을 넷째 동생 유다에게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면 사업이 복을 받고, 예배를 잘 드리면 자녀들이 복을 받고, 예배를 잘 드리면 형통하게 됨을 아시지요? 아무리 바쁘고 어렵고 힘들어도 예배 생활만은 승리합시다.

 

 

 3. 신령한 복을 기도로 이루었습니다.

 

32: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창세기 32:25절은 야곱이 집안 식구들은 데리고 20년 만에 밧단 아람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야곱에게 청천 벽력같은 급보가 전해집니다

장자권을 빼앗긴 형에서가 약 20년 전의 일을 잊지 않고 400명 장정을 이끌고 다가온다는 소식입니다.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서 야곱은 이런저런 전략을 세운 후 마지막에 얍복 강변에서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립니다. 이때의 장면을 천사와 씨름이라 하였습니다(32:24~29).

 

12:03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04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천사와 야곱의 씨름, 이것은 하나 마나 한 씨름이지만 그러나 야곱은 천사를 이겨야만 당면한 문제가 해결된다는 절박함 때문에 밤이 새도록 천사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야곱은 허벅지 뼈가 어긋나기까지 씨름을 하는 중에 결국 판정승을 거두게 되었는데 이는 기도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말입니다.

만일 그날 밤 얍복 강변의 기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야곱의 생애는 어쩌면 에서의 칼에 의해 막을 내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성공하며 또 현실의 어려운 문제를 풀어 가는 비결이 무엇인가를 보게 됩니다.

 

어떤 위기 상황을 만날 때 대부분 사람이 취하는 태도는 다음과 같은 반응들입니다. 놀라고 당황합니다. 걱정하고 절망합니다. 인간의 방법을 찾습니다. 방법을 동원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해결이 안 되면 절망하고 포기합니다. 이거 다 불신앙입니다. 우리에겐 기도라는 위대한 성공의 방법이 있습니다. 야곱이 바로 이 방법으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야곱은 놀라운 기지와 재능을 가진 사람입니다.

임기 웅변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신의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의 현장으로 나아갔습니다. 기도만이 해결의 길이며 하나님과 만남이 사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문제의 해결을 원하십니까? 지금 기도하셔야 합니다.

 

32: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뀜은 그 삶과 신분과 인격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합니다. 이 이름을 주신 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란 왕비, 싸운다. 라는 뜻의 사라와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엘이 결합한 형태로서 하나님과 씨름하여서이긴 자라는 뜻입니다. 즉 기도로 신령한 복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 시간 우리도 허물 많은 모습을 벗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으로 인해 새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20101029일 오후 1시 인천행 지하철 객차 안에서 한 걸인이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팔꿈치만으로 움직이며 구걸을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구걸을 마치고 마지막 칸에서 벌떡 일어서자 이 모습을 본 기호(畿湖)일보 취재진이 사진으로 촬영하여 111일 자 지면으로 보도했습니다.

신문에 따르면 20대 후반 건장한 남성이 반신불수 장애인으로 행세하며 구걸하던 중 일어서서 돈을 세다 황급히 객차 앞칸으로 뛰어갔고 결국 인천 주안역에서 내려 도망쳤습니다.

짝퉁 거지입니다. 현장서 이를 지켜본 한 60대 승객은 반신불수인 줄 알고 사정이 딱해 보여 적선했는데 완전히 사기당한 기분이라며 씁쓸해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이 혹 이런 짝퉁 거지처럼 짝퉁은 아닙니까? 짝퉁 믿음은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외식으로서 작은 일 하나만 만나도 잘 흔들립니다

오늘 말씀 중에 야곱이 얍복 강변에서 처절한 기도를 통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모습이 나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복된 생활 누리기 원합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의 생활을 회복하십시오. 예배를 소홀히 여기면 신앙의 위기가 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령한 기도의 몸부림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