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기 어느 수도원에 신부복을 입은 낯선 구도자 한 사람이 찾아와 문을 두드립니다. 그러자 수도원을 지키던 사람이 나와서 구도자에게 물었습니다. 누구를 찾으십니까? 낯선 구도자가 대답하기를 예, 저는 평화를 찾습니다.
바로 이 낯선 구도자가 저 유명한 신곡을 쓴 단테(伊, Dante, 1265~1321)였습니다. 평화를 찾습니다. 라는 이 요청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찾고 있는 인생 주제 아닐까요? 이 인생 주제처럼 평화를 찾아서 누리면 좋겠지만 인생 그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는 진정한 평안을 찾지 못하고 누리지도 못합니다. 왜냐고요? 하나님이 평안을 허락하지 않는 한 광풍이 몰아치는 이 세상을 평화의 터전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35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날 저물 때에 즉 해가 지기 전 주님은 제자들에게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십니다. 여기 저편은 갈릴리 바다의 맞은편에 있는 가파른 언덕으로서 이곳은 막 05:01절의 내용과 연결시켜 보면 이방인의 땅 거라사 지역입니다. 그런데 이곳까지 주님을 모시고 가는 동안 배가 순항을 하지 못하고 대단히 위험한 큰 광풍을 만나고 맙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고통 속에서 주님께 이 상황을 아뢰고 있습니다.
38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 하시나이까 하니.
큰 광풍으로 인한 고통의 문제, 죽음에 직면한 문제를 당하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또 우리의 현실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제를 만나게 될 때 주님은 어떤 말씀을 주실는지? 또 어떻게 믿음으로 풀어야 하는지를 여러분과 함께 말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인생은 누구나 큰 광풍(狂風)을 만납니다. |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큰 광풍이 일어난다는 말은 회오리처럼 밀어닥치는 바람을 최대한 확대 표현한 말로서 현장감과 긴박감을 더하는 마가의 문장 기법입니다. 갈릴리 호수, 바다(긴네렛. 민 34:11, 게네사렛. 눅 05:01, 디베랴. 요 06:01)는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담수호입니다.
호수의 둘레가 약 53km이고, 남북으로 21㎞, 동서로 11㎞이며 면적은 대략 166km²에 이르는 대단한 크기입니다. 대체로 고요하고 음산한 기후를 이루고 있는 이 바다에 가끔 무서운 풍랑이 일어나 호수에서 조업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지중해 수면보다 약 200m 아래 위치하고 있는 이 바다에 헤르몬 산에서 요르단 계곡 쪽으로 이상기류가 흐를 때 그 기류가 급강하여 바람과 무서운 풍랑을 일으킵니다.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미완료 시제로 물결이 배를 계속해서 때려 경황이 없는 상태가 진행되는 장면입니다. 이 같은 위험 상황은 극에 달하여 제자들이 타고 있던 그 배가 곧 파선 직전을 맞이합니다. 이런 현장을 마태는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마 08:24), 누가는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 지라(눅 08:23)고 기술합니다. 한 마디로 위기의 현장이라는 말이죠.
광풍, 물결, 배 이런 것들은 굉장한 상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배를 타고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이요, 광풍을 만나고 배가 파선에 처하는 어려움은 인생에서 경험하는 많은 어려움과 아픔과 시험과 고난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 일이 하루아침에 만사형통 하지를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에게도 환난과 시련 그리고 역경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만일 그런 사실들을 잊어버리고 교회에 나오면,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다 잘 된다고 하더니만 별 수 없네 하면서 낙심의 길에 들기가 쉽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우리 신앙인의 인생 항해에도 시련과 고난과 광풍 같은 일들이 얼마든지 찾아 올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흔히 말하기를,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고난과 시련이 물러가고 또 풀기 어려운 문제도 당장 해결될 것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큰 광풍과 같은 일들이 우리의 인생길에도 얼마든지 찾아오는데 어떤 일들인지 먼저 몇 가지 살펴볼까요?
경우에 따라 사람을 통해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직장에서 뜻하지 않는 파도를 만나기도 하고, 가정에 감당 못할 시험이 밀려오기도 하고, 물질로 인한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병마의 파도를 만나기도 하는데 이런 인생의 파도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가 있습니다.
건강을 자신하는 사람에게도 뜻밖에 중한 질병이 찾아오고요, 사업이 안전한 궤도에 오른 사람에게도 먹구름이 덮이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행복한 가정을 설계하여 오순도순 살아가는 그 누구의 가정에도 졸지에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야만 시험에 안 듭니다.
2. 큰 광풍을 만날 때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 하시나이까 하니.
제자들은 이 풍랑과 파도를 이기기 위하여 스스로 무척 애를 썼지만 건너편 목적지까지 도달하기엔 역부족이었고 오히려 방향감각까지도 상실하였습니다. 지금 배가 큰 광풍에 흔들립니다. 비바람이 칩니다. 배 안에 물이 가득 찼습니다.이제 자신들의 힘이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에 도달하였으므로 마침내 예수님을 깨우면서 자신들의 처지를 아뢰고 있습니다.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 하시나이까? 지금 이 배가 가라앉았습니까? 아닙니다.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배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다급한 외침은 선생님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잠만 잘 것이 아니라 함께 풍랑을 헤쳐 나가도록 같이 노를 저읍시다. 라는 그런 뜻 같습니다만 주님은 평안히 주무십니다.
제자들은 지금 배 안에서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큰 광풍으로 인해 요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모습은, 그렇게 되면 아니 되겠지만 우리 역시도 믿음의 현실에서 시련과 환난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이요, 그로 인해 신앙도 흔들릴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여러 가지의 일들로 예컨대, 직장의 문제, 가정의 문제, 자녀의 문제, 교회의 문제로 흔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때문에 신앙의 균열이 생기고 믿음에 회의가 일어나서 주님을 원망하며 믿음을 송두리째 던지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를 잘 살펴보십시오.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 하나는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 항해에 분명히 동행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절대로 인생 파선을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마 28:20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어떤 한 소설가가 여객선을 타고 여행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 한 가운데서 풍랑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무섭게 바람이 몰아쳐 옵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갑판위로 뛰어 올라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 하나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깡충깡충 뛰어놀며 재미있게 갑판을 오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소설가가 어린 아이의 손을 꼭 붙들고 얘야, 너는 저 풍랑이 무섭지 않니? 그러자 어린 아이가 아저씨, 제가 지금 선장실에서 나오는 길이예요. 우리 아빠가 선장이에요. 그런데 우리 아빠의 얼굴을 보니 얼굴이 편안했어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아셨죠? 아저씨.
여러분 두려우십니까? 불안하십니까? 주님 곁으로 오십시오.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아무 일 없다 하시면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찬송가 401장, 주의 곁에 있을 때 맘이 든든하오니, 주여 내가 살 동안 인도하여 주소서. 주여, 주여, 나를 인도하소서. 빠른 세상 살 동안 주여 인도하소서.
3. 큰 광풍을 만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잠잠하라. 바람을 향한 현재 명령형으로 지금 당장 그 부는 것을 그치라고 말씀하십시다. 고요하라. 풍랑이는 바다를 향한 완료 명령형으로 더 이상의 활동을 중지하고 그냥 그 상태로 조용히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 졌습니다. 마치 언제 풍랑이 있었느냐는 듯이 완전히 평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자연 현상을 꾸짖고 타이르는 주님의 이 음성이 내게 들려올 때 나의 모든 문제가 풀려짐을 믿습니다.
영적인 능력이 물질세계를 다스리는 이 영적 파워, 예수님의 이 능력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이게 바로 기적이고, 이게 바로 믿음의 능력 아닙니까?주님께서 갈릴리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신 이 명령이 큰 광풍을 만난 우리의 인생 문제위에 함께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눅 07: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판기처럼 대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앞에 서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기도라는 동전을 집어넣고 원하는 것을 마구 누릅니다. 곧 원하는 대로 응답되기를 기대하나 자판기처럼 응답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당황해서 더 많은 동전을 넣고 세게 누르지만 주님은 그래도 침묵하십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판기가 고장 났을 때처럼 흥분하고 마구 두드리며 날뜁니다. 그리고 실망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원하는 대로 응답하시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합니까? 기도해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면 어떻게 대합니까? 주님께서 주무시면 어떻게 대합니까?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님의 침묵 앞에서 매우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이럴 때도 견디는 것입니다. 주님은 침묵하실 수도 있고, 주님은 응답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를 돌보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 끝까지 주님의 뜻이 나타날 줄 믿고 기다려야만 마침내 나의 인생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주님 앞에 내어놓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능력 그리고 자신의 유능한 지혜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될 것 같으면서도 잘 해결되지 않고 해결의 실마리가 계속 보이지를 않으니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문제로 인해 슬퍼하며 괴로워합니까? 그것을 붙잡고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한 번 주님 앞에 내어놓읍시다. 기도해 봅시다. 내게 있는 문제라고 내가 다 해결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그 분이 나를 찾아주셔야 되며, 그 분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셔야 모든 문제가 잠잠하고 고요하게 해결됩니다.
이제 우리가 구해야 할 일은 환경을 잠잠케 해 주시옵소서, 풍랑을 꾸짖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 속에서도 안식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어떤 풍랑 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제게 굳센 믿음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크리스마스를 맞아 모처럼 고교 동창들끼리 모여 파티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친구들이 갑자기 화제를 종교문제로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종교학과를 다니는 삼자가 미자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과 부처님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한참을 진지하게 생각하던 미자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응, 그건 무엇보다도 헤어스타일 아니겠니?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만난 사람과 만나지 못한 사람의 차이입니다. 생명의 주님을 통한 기적과 능력을 체험하였느냐? 않았느냐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외형적인 차이, 그저 그것으로만 보일 것이고 진정한 주님을 만난 사람은 은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부활하시고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으며,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가진 믿음은 살아 역사하는 힘이 있어야 하고 생명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기독교는 생명이고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좀 더 권위 있는 사본(시내, 베자, 바티칸)에는 어찌하여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라는 말의 의미는, ①풍랑의 위기를 만났을 때 예수님에 대하여 원망 어린 말투로 구원을 요청한 사실에 대한 책망이며(38절),
②예수님께서 바다를 잔잔하게 한 기적을 보여주신 후 제자들이 이런 기적을 체험한 만큼 이제는 믿음을 굳게 가지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바람을 통하여 잠잠하라 하시고 바다를 향하여 고요하라 하시면서 제자들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은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야가 바로 주님 자신이심을 깨닫게 하려 함입니다.
이때는 주님의 공생애의 초기였으므로 아직도 제자들의 믿음이 정립되지 않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독립시키기 위한 투사로 오셨다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데에 한계가 있고 기간도 정해져 있습니다.
한계가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무한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여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인생의 어리석음 아닙니까? 천년만년을 살 것처럼 이 세상의 것들을 쌓아두고 욕심을 부리지만 주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안전히 준비해도 그거 다 바다에 던져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운행하는 인생 배에 주님이 동행하십니까? 지금 당장 풍랑이 일어나서 혼란이 오고, 당장 문제가 나를 괴롭혀 고통이 오지만 주님은 주무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침묵하실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나의 인생 배에 타고 계시는 한은 이 배가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염려놓으십시오. 사방의 어떤 어려운 난관이라도 넉넉히 이길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롬 0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은혜의 강단 > 2011년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을 사랑하면 행복은 떠납니다.(요일 02:15~17) (0) | 2011.02.19 |
---|---|
이제 영적 슬럼프를 탈출합시다.(왕상 19:01~18) (0) | 2011.02.13 |
내가 원하고 주님도 원하시면 됩니다(막 01:40~45). (0) | 2011.01.29 |
신령한 복을 구합시다.(창 35:09~15) (0) | 2011.01.22 |
종말을 준비하고 살아갑니까?(벧후 03:03~13) (0) | 2011.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