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있는 출석 성도 250여 명의 Christ church unity에서 일하는 Will Bowen 목사가 2006년 7월, 여름 독서클럽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인간이 겪는 모든 불행의 뿌리에는 불평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같은 해 불평 없는 세상(A Complaint Free World)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세상에 만연한 불평을 근절하자는 의식 개선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부정적인 말이 부정의 생각을 부르고 이것이 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했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불평을 멈춰야 한다는 그런 프로그램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73편부터 83편에 이르기까지 열한 편을 보면 아삽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 말은 아삽이 기록한 시편이라는 말입니다.
아삽은 성전에서 찬양하는 무리의 리더입니다(대상 25:01~02). 지금의 찬양대 지휘자에 해당합니다. 찬양하는 일에 봉사한 것으로 보아 레위 지파에 속한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대하 05:12). 아삽은 다윗과 동시대 인물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아삽이 한 날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자기의 신앙 경험으로 볼 때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은 범사에 형통해야 하는 일입니다. 반면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자기의 신앙 경험과는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악하고 불의한 자가 번창하고 선하고 의로운 자가 고난을 받는 현실입니다. 아삽은 이런 충격적인 일을 02절에 기록했습니다.
0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믿음의 사람에게 왜 고난이 다가옵니까? 신앙의 회의를 느끼게 하는 일이 왜 일어납니까? 여기에 대한 답이 오늘 말씀에 나옵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성전으로 가지고 오면 해결됩니다.」로 정했습니다. 김삼일 가족 모두 신앙의 고민거리가 해결되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아삽은 불평거리를 사람 앞에 토하지 않았습니다. |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우선 아삽에게 큰 충격을 준 현실의 혼란과 부조리입니다. 그 요소가 무엇인지 03~08절에 나열해 놓았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읽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0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0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0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0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0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0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안 믿는 사람 즉 악인은 하는 일이 계속 잘되고 믿는 사람은 더 잘 안되는 현실의 모순 같은 현상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아삽은 하나님이 살아계십니까?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하고 반문합니다. 반면 신앙의 회의론자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어, 없단 말이야. 하면서 더욱 하나님을 조롱하고 신앙인을 무시합니다.
아삽은 마침내 결심합니다. 나름의 굳은 결심입니다. 어떤 불평거리를 만나도 사람과 상대하여 말하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사람과 입 맞추는 불평 생활을 접겠다는 결심입니다. 해야 할 말과 안 해야 할 말, 하나님 앞에 이야기할 말과 사람 앞에 이야기할 말을 구분하겠다는 각오입니다.
누구나가 이런 것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실 안 믿는 사람은 고난과 의심과 불평거리가 생기면 분별없이 막 쏟아냅니다.
신앙인도 분별없이 함부로 말을 하다 보면 자기가 쏟은 말에 스스로 올무에 걸릴 수 있습니다. 또 실족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15절을 보면 아삽은 그 마음에 있는 의심과 불만을 입으로 발설하지 않겠다고 고백합니다.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겠다고 자기를 담금질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현실의 일에 대한 불평의 마음이 강하게 일어났으나 이 불평을 사람을 상대하여 말하지 않겠다는 각오입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게 마련입니다. 가령 좋은 말을 하게 되면 좋은 영향을 끼치고 사나운 말을 하게 되면 사나운 영향을 끼칩니다.
약 03:0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좋은 영향력을 나타내기 위해 말을 하면 상상할 수 없는 창조의 힘을 발휘합니다. 나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말을 하면 상대방에게 심각한 피해를 줍니다. 일평생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무엇이든지 계속 파괴하는 입술입니다. 무엇보다 신앙인의 입술이 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담임 목회자의 입술이 변해야 합니다. 좀 절제 있고 세련된 모습으로 변해야 합니다.
잠 20:19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절제되지 않은 말은 혼돈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은 공동체의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도 있습니다. 교회의 분위기를 해칠 수도 있습니다.
내가 흘린 부정적인 말 한마디가 신령한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신령한 공동체를 잘 지키기 위해 말을 가려 하는 지혜가 더욱 필요합니다.
2. 아삽은 불평거리를 성전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
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아삽은 현실의 신앙의 부조리와 악인의 형통함을 놓고 홀로 고뇌하는 모습을 표현하였습니다. 그 답을 얻기 위하여 무척이나 고심하고 있습니다. 사실 악인들의 형통함 때문에 신앙인의 마음이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신앙인도 세상 유혹에 100%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악인들의 형통 때문에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경험과 지식으로만 이해하면 더욱 혼란만 가중됩니다.
아삽은 현실 문제로 깊이 고심했습니다. 모든 불평거리를 성전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께 아뢰어 기도로 풀겠다는 의지입니다.
성소 즉 성전은 세속의 것을 내려놓고 와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입니다. 문제를 가지고 와서 해결 받는 곳입니다. 찬양하며 기도하는 곳입니다.
사 56:0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김삼일 가족 여러분, 진리 위에 굳게 서십시오. 말씀 위에 서십시오. 혹 나에게 신앙의 갈등이나 불평거리가 그럴 가능성이 있으면 성전으로 가지고 오십시오.
다른 곳으로 가지고 가면 안 됩니다. 혹 잘못하면 개인이나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요소로 바뀔 가능성도 있습니다. 성전으로 가지고 오십시오. 조용하고 평화롭게 해결될 것입니다. 아삽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성전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을 들었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지혜로운 제사장으로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받기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고민하고 갈등하던 것을 깨달았느냐는 말입니다. 이제까지 풀리지 않던 문제가 성전에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풀렸다고 했는데 어떤 면에서 풀렸는지 그 시점을 한 번 볼까요?
7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아삽이 성전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깨달은 것은 악인들은 세상에서는 형통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마지막에 소망이 없다는 점입니다.
아삽도 한 때는 하나님께서 언제까지 악인들의 형통을 보고 계실 것인지를 궁금해했습니다. 그 형통이 길어지자 거의 실족할 뻔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깨달음이 왔습니다. 악인들의 그 형통함 뒤에는 지옥의 삶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 92:07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 하리이다.
잠 11:07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
이제는 악인의 형통이 더 이상 부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불쌍해졌습니다. 아삽과 같은 고민을 하박국 선지자도 겪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따지듯 물었습니다.
합 01:13 주님께서는 눈이 맑으시므로, 악을 보시고 참지 못하시며, 패역을 보고 그냥 계시지 못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배신자들을 보고만 계십니까? 악한 민족이 착한 백성을 삼키어도, 조용히만 계십니까?
합 02:0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진다. 끝이 곧 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니 비록 더디더라도 그때를 기다려라. 반드시 오고야 만다.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새번역).
예,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살이에 때로는 원치 않는 불평의 일들이 계속 일어납니다. 이런 일들로 인해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좀 더 냉정하게 돌아보면, 좀 더 양보해 보면, 좀 더 마음을 넓혀보면, 별것 아닌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혼란하게 합니다.
살다 보면 왜 불평거리가 없겠습니까? 그 불평거리를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오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하여 해결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 아삽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복인 줄 알았습니다. |
28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내게 복이라(טּוֹב 토브). 여기 복은 물질의 복이 아닙니다. 즐겁다. 유쾌하다. 선하다 등의 영적 복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 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형통의 복 물질의 복을 따릅니다.
아삽은 이런 여러 불평의 문제 거리를 성전으로 가지고 와서 기도로 진단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도 하나님을 모르면 이내 멸망하게 됨을 깨달았습니다.
아삽은 세상 어떤 형통과 물질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복이 최고인 줄 알았습니다. 신령한 복이 복중의 복으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염려 거리가 무엇입니까? 교회에 대한 불평거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원망 덩어리가 무엇입니까? 그 해결을 찾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시골(미국)서 올라온 두 사람이 한 교회에 나갔습니다. 일 년이 되도록 누구 하나 자기들을 가까이하거나 인사를 나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한 사람은 다음 주일까지 교인들이 먼저 인사하지 않으면 교회를 다니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였습니다. 또 한 사람은 다음 주일까지 교인들이 나에게 인사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인사를 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정한 교인들은 그 주일이 되어도 역시 한 사람도 이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대로 한 사람은 그날부터 교회를 그만두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자기가 먼저 다니면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교회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교인들이 자기에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은 이 사람이 출세하여 나중에는 세계의 거부가 되었고 무려 2천여 명을 전도하였습니다. 석유왕 록펠러(1839~1937)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여러분, 이 진리를 확실히 믿습니까? 하나님은 자기를 가까이하는 자에게 하늘의 복과 땅의 기름진 복으로 채워주시는 분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하나님과 가까이하십시오.
내가 먼저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하나님은 나보다 먼저 가까이 와 계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다가도 멀어지는 사람이 있고 가까이 다가가기를 기피 하는 분도 있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믿기를 원합니까? 이런 믿음은 좋은 믿음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노랫말처럼 하나님을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시 145: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하시는 도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어느 화가가 알렉산드로스(Αλέξανδρος) 왕의 초상화를 부탁받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대왕의 이마에는 흉한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화가는 왕의 상처를 그대로 화폭에 담아 손상을 입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상처를 그리지 않으면 초상화는 진실치 못한 그림입니다.
화가의 신망도 여지없이 땅에 떨어지고 맙니다. 화가는 고민 끝에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왕이 이마에 손을 대고 쉬고 있는 모습을 그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웃의 상처를 보았습니까? 그 허물을 가려 줄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습니까?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
살다 보면 말 못할 속사정과 고통 그리고 아픔의 문제가 얼마든지 발생합니다. 그러나 그런 때를 만날수록 믿음의 시각으로 판단하십시오.
사람의 생각을 따라 풀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아삽은 현실의 불평거리를 놓고 갈등하였지만, 성전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해결함을 받았습니다.
벧전 04:0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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