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 924

산 소망을 품고 삽시다(벧전 01:03~09).

1951년 1월 23일 압록강 강변까지 진격했던 유엔군 소속 해병대 군인들이 중국군의 개입으로 인해 부득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은 전진보다 후퇴하는 작전이 제일 어렵습니다. 많은 군인이 포위 속에서 쫓기다가 희생당하였는데 피곤함에 지친 군인들이 잠깐 바위틈에 은신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 비참한 모습을 본 한 종군 기자가 미군 병사에게 물었습니다. What can I do for you? 내가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미군 해병대의 군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Give me tomorrow 내일을 주십시오. 우리에게 필요한 말입니다. 돈도 명예도 필요는 합니다. 이보다 더 필요한 것은 내일입니다. 내게 내일을 주십시오. 미래를 주십시오. 소망을 주십시오. 이것이 그의 외침이었..

다시 복을받는교회를 세웁시다(롬 12:01~13).

우리는 하나님 은혜로 새 성전을 마련하여 예배를 드립니다. 전 김해삼일교회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복을받는교회를 더욱 아름답게 다듬고 세우기 위하여 주인의 마음으로 섬기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어떤 자세가 주인의 마음입니까? 주인은 자기 집이 허술하고 정돈이 좀 덜 되어 있어도 짜증을 내지 않습니다. 집안일을 정리하다 못마땅하다고,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이웃에게 안 좋은 소문 내지 않습니다. 가족끼리 좀 불편하다고 가출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진정 좋은 교회가 되기를 원하시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교회로 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좋은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어떤 계획을 품고 있습니까? 교회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어떻게 복이 ..

서로 위로하고 격려합시다(히 10:19~25).

미국의 한 세탁소 사과문. 아파트 근처의 한 세탁소에서 불이 나 세탁소 전부가 탔습니다. 이 때문에 큰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아파트 벽보에 이런 사과문이 붙었습니다. 주민 여러분, 불이 나서 옷이 모두 타 죄송합니다. 옷을 맡기신 분은 의류 수량을 신고해 주십시오. 이런 공고가 붙은 후 한 주민이 사과문 아래 이렇게 글을 적었습니다. 사장님 저는 양복이 한 벌이지만 배상받지 않겠습니다. 그 많은 옷을 어떻게 배상하시겠습니까? 용기를 내십시오. 다시 일어나십시오.  그 주민의 글로 인해 여러 사람이 배상받지 않겠다고 나섰습니다. 그 후 누군가가 위로의 금일봉을 전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계속 금일봉을 보냈습니다. 얼마 지나 아파트 벽보에 또 한 장의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주민 ..

하나님 악인이 왜 형통합니까? (렘 12:01~17)

여러분의 깊은 관심사 중 하나를 질문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은 형통합니까? 예라고 하면 이 말은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어 형통한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핍박받아서 괴로운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예로 사도 바울이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다시 반대로 질문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은 불통합니까? 예라고 하면 이 말도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어도 형통치 못한 사람이 있고 예수님을 안 믿고 살아도 형통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논의 자체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영생의 세계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잠깐 사는 세상에서 한 단면만 보고 형통하다 형통하지 못하다는 말은 논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불황을 이기는 믿음이 있습니다(합 03:16~19).

코로나19 사태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세계 경제가 암울합니다. 늘 불황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으나 지금은 경기가 매우 안 좋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걱정합니다. 한숨을 짓습니다. 그런데도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사는 양극화 현상이 계속 벌어집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황은 당연한 일입니다. 생산이나 소비 등의 경제 활동이 침체하면 이를 불황이라 합니다. 이런 불황이 계속 이어지면 소비가 감퇴하고 실업자가 증가하며 주가(株價)는 내리막길입니다. 동시에 투자도 위축되고 일반 서민층은 계속 불안감이 밀려옵니다. 우리 사회가 불황과 호황이 반복되어야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데 불황만 이어지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우리의 삶도 매우 피곤합니다. 이제 불황은 세계화입니다. 모두에게 영향을 끼칩니..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평가 기준( 삼상 16:06~13).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나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선망의 대상 되기를 원합니다. 박수갈채 받기를 원합니다. 이런 다양한 기대는 사람의 기본 욕구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높은 인격과 소양을 쌓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관심을 끌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은 그런 믿음의 사람이 있는지를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 시대마다 사람을 찾으십니다. 꼭 필요한 사람을 불러 사용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관심권에 들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막 10:46~52에는 여리고의 맹인 바디매오가 믿음의 몸부림을 침으로 주님의 관심권에 들어갔음을 소개합니다. 바디매오는 믿음으로 주님의 관심권에 들었습니다. 믿음으로 놀라운 복을 받..

[맥추감사주일] 마음껏 찬양하며 감사합시다(사 12:01~06).

가나다라마바 감사. 가. 가족이 있음을 감사합시다. 인생 최고의 선물은 가족입니다. 나. 나부터 감사합시다. 내가 먼저 감사하면 세상이 나를 반깁니다. 다. 다시 감사합시다. 고수란 반복에 능한 자요 또 감사하면 행복이 배가됩니다. 라. 라이프스타일이 감사가 되게 합시다.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마치는 하루, 또 인생은 복됩니다. 마. 마음껏 감사합시다. 이왕이면 넘치는 감사를 합시다. 바. 바로바로 감사합시다. 감사를 미루면 행복은 줄어듭니다(페북에서 정은일 목사). 감사할 줄 모르면 행복은 오지 않습니다. 감사는 복을 받는 일의 마중물입니다. COVID-19로 인해 온 세상이 3년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빠르면 올여름부터 코로나 면역력 유효기간이 소멸하여 또 소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합..

본보기와 깨우침을 잘 받읍시다(고전 10:01~11).

저명한 역사가요 평론가인 Herbert George Wells(英 1866.9.21.~1946.8.13.)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우는 가장 뚜렷한 사실은 역사를 통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역사는 되풀이된다. 사람이 과거의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지난날의 실패와 오류와 비극이 오늘과 내일이라는 역사의 장에서 그대로 반복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광야 생활 40년 기간에 대한 요약입니다. 요약의 목적은 신령한 교훈을 받기 위함입니다. 지난날 흔적을 돌아보고 그 흔적에서 교훈을 받는다면 이는 대단히 귀한 일입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매우 인상 깊은 단어 두 개를 사용합니다. 그것..

당신은 매우 불행합니다[큰아들 눅 15:25~32].

우리 모두 행복을 구합니다. 복된 삶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사람은 행복을 찾아 헤매는 나그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행복을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찾아다녀도 끝내 찾지 못한 채 삶을 마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이런 비극을 맞이해야 합니까? 아무래도 행복의 조건을 외부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행복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내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이 올 수도 있고 떠나갈 수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 앞부분 11~24절 보면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작은 아들의 이야기 일명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지난 두 주일간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

당신은 매우 행복합니다 2. [작은아들 눅 15:20~24]

지난 주일에 이어 말씀을 올립니다 4. 아버지는 울며 돌아오는 탕자를 맞아주십니다.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작은아들은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18). 나를 대신해서 돌아가는 일을 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새로운 생활을 열지 못합니다. 일어나야겠다는 상상과 소원이 그 사람의 길을 열지 못합니다. 그러면 탕자의 열어가는 새 삶이 무엇입니까?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에 있습니다. 결단을 아버지의 집으로 옮기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망설이는 고민을 많이 하였겠습니까? 내가 돌아가면 과연 아버지께서 받아 주실까? 혹시 문을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