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29일~2008년 2월 29일까지 SBS에서 32부작으로 “심리극장 천인야화”를 방영하였습니다. 현대인이 안고 있는 마음의 문제를 치유하는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표방하여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7월 27일 오후 8시 50분 심리극장 천인야화에서 절대 부적을 만들거나 굿을 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한 전직 무속인(巫俗人)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무속인 집안에서 태어났고 신내림을 받은 후 10여 년 동안 무속인으로 살아왔다는 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점을 치는 일도 다 장사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 속성을 간단하게 설명했습니다.
점을 보러 온 사람들은 어항 속의 물고기다. 이미 점을 믿을 준비가 돼 있는 그들에게 살이 끼었다거나 삼재(三災)가 끼었다는 식으로 미끼를 던진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반드시 다시 점을 보러 오게 된다. 그렇게 한 번 점에 빠진 사람은 계속해서 점을 찾게 될 때 일부 점술가들은 장삿속으로 이용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돈이 없을 것 같으면 부적 한 장을 50만 원에서 30만 원짜리로 하고 돈이 좀 있는 것 같으면 굿을 하도록 유도하는데 그것도 천차만별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는 5천만 원짜리 굿을 두 번 해 봤는데 한 명은 대령의 부인이고 다른 한 명은 바람을 피우던 여자라 가능했다고 했습니다.
이어 유도(誘導) 질문을 잘하면 용한 점쟁이라 한다. 자기 미래를 알고 자기 앞길을 안다면 로또 당첨이나 땅 투기로 대박을 냈다는 점술가가 왜 없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평화와 안정을 구합니다. 염려 없이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도 세상 곳곳에 불안과 염려의 요소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까? 그만큼 사회가 불안정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잡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갖 염려와 두려움, 고통, 괴로움이 우리 앞에 놓여 있어서 우리는 세상을 힘겹게 살아갑니다. 고난 풍파가 쉬지 않는 고해와 같은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북이스라엘 제9대 여호람왕 때 활동하던 엘리사 선지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근심과 염려의 현실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절망하지 않아도 됩니다.」로 정했습니다. 은혜의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엘리사의 사환은 두려운 현실을 보고 절망에 빠집니다. |
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아람(시리아) 군대가 엘리사 선지자를 체포하려고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엘리사가 현재 머무는 도단성까지 침략해 왔습니다. 엘리사가 아람 나라의 모든 정보를 미리 알고 대처하기 때문에 엘리사를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엘리사는 체포된 것이나 다름없는 위기 상황을 만났습니다. 도단성은 계곡 위의 넓은 평지에 있어서 사면의 공격을 방어하기가 무척 힘든 구조입니다.
내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엘리사의 사환은 아람 군대가 왜 도단성을 포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까닭을 모르니 두려운 현실 앞에서 탄식하며 절망에 빠집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말합니다.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두려워하지 말라. 엘리사가 사환에게 하는 말입니다. 동시에 우리도 받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왜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염려에 사로잡힙니까? 믿음의 눈이 감겨 있어서 그렇습니다.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염려 대왕이 찾아옵니다.
남 왕국 히스기야 왕 때도 앗수르의 대군이 몰려왔습니다. 그때도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히스기야 왕이 담대하게 외칩니다. 역대하 32장 07절입니다.
대하 32:07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08 우리와 함께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히스기야(제13대 B.C.728~687) 왕의 담대한 메시지를 들은 유다 백성이 안심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말씀을 믿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 환경 때문에 염려의 포로가 되어갑니까? 세상 환경이나 사람을 보고 염려하기보다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밤 사경쯤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을 찾아오실 때였습니다. 베드로가 믿음의 눈이 열려서 주님을 알아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이에 예수님께서 오라 하시자 베드로가 즉시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가는 중입니다(마 14:25~29).
마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작은 믿음을 꾸짖으신 말씀처럼 우리도 현실을 불신앙의 눈으로만 판단하면 역시 염려와 두려움에 갇힐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그 정체는 고통스러운 환경보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불신앙입니다. 그 어떤 두려움과 염려도 믿음의 자리에 서면 지워집니다.
2. 믿음의 눈이 열리면 절망의 환경도 극복합니다. |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지금 엘리사의 종 눈에는 도단성을 둘러싼 아람 군대만 보입니다. 아람 군대를 파송한 이 나라는 시리아로도 불리는 당시 막강한 나라였습니다.
당시 중동 지역의 패권을 놓고 이스라엘을 자주 침략한 나라입니다. 오늘 이 아람의 군대가 침략하게 된 상황을 정확히 알려면 08절부터 보아야 합니다. 아람 왕 벤하닷(왕하 06:24)이 이스라엘을 침략할 때마다 이스라엘에서 미리 방비하므로 실패하였습니다(10).
아람 진영에서는 아무리 은밀하게 전략을 짜도 이스라엘 공격에 실패하자 혹 우리 가운데 간첩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11).
그러자 아람 왕의 책사가 말합니다. 이스라엘 진영에는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가 영안이 밝아서 우리의 전략을 미리 알고 방비하기 때문입니다.
이 보고를 받은 아람 왕이 엘리사를 잡으려고 도단성을 침략하여 완전히 에워싸버렸습니다. 이 두려운 상황을 본 사환이 말합니다. 선생님 우리가 이 일을 어찌하여야 합니까?
완전 절망 상태에 빠져 버립니다. 마침내 엘리사가 사환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17).
즉시 사환의 영적 눈이 열립니다. 사환은 하나님의 군대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 보호하고 있는 능력을 체험합니다. 하나님의 군대 앞에 맞설 자가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모든 일이 풀립니다.
믿음의 3대 조상 야곱이 밧단아람의 20년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의 일을 아십니까? 야곱이 갈르엣을(창 31:47) 떠나 요단강 북쪽 지류 얍복강을 향했을 때입니다.
20년 전 고향을 떠나서 밧단아람으로 갈 때 벧엘에서 함께 했던(창 28:12) 하나님의 천사들이 귀향길 여정에서 다시 야곱에게 찾아왔습니다.
창 32:0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 지라. 0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지난날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신 일을 상기시켜 줍니다(창 28:15; 31:13). 라반의 갖은 속임수에서 보호하셨듯이(창 31:42) 에서의 손길도 지켜주실 보증입니다. 이는 내가 너를 그 땅으로 돌아가게 하리라는 약속(창 28:15)을 재보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군대를 어떤 형태로 만났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이전처럼 꿈을 통해 만났거나(창 28:12; 31:11) 엘리사의 사환이 영안(靈眼)이 열려 본 것처럼 되었든지, 아니면 아브라함이나 롯처럼 현현한 천사를 본 것 같은 형태일 것입니다(창 18:02; 19:01).
믿음의 가족 여러분, 일단 믿음의 눈, 영의 눈이 뜨이면 그때는 풀리고 해결됩니다. 아람 군대와 같은 절망스러운 환경도 물러갑니다. 풀리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군대 천군 천사는 오늘 우리의 현실에도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의 환경, 헤아릴 수 없는 압박의 사업장, 고통스러운 일터에서도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우리를 천사를 보내어 둘러 진치고 있습니다.
히 0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3. 절망을 해결하는 길은 오직 기도입니다. |
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 지라.
도단성은 계곡 위의 넓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람 군대는 밑에서 성을 에워싼 형태입니다. 엘리사의 일행이 아람 진영으로 내려왔다는 뜻입니다. 18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입니까? 아람 군대가 눈이 어둡게 된 일입니까?
눈이 어둡기 전 엘리사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한 일입니다. 기도하므로 아람 군대의 눈이 어두워지고 결국은 이스라엘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엘리사는 전쟁 포로들을 죽이지 않고 음식으로 접대하고 돌려보냈습니다. 화평으로 전쟁을 해결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참 선지자가 있음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23 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 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기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오늘 우리의 현실에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세상과의 싸움 마귀와의 전쟁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무기입니다. 우리가 육의 눈을 가지느냐 신령한 눈을 가지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안목이 달라집니다.
대처하는 자세도 다릅니다.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육의 눈으로 아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반면 엘리사는 신령한 눈으로 아람 군대를 둘러싼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습니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현실을 불신앙으로 보면 동서남북이 꽉 막혀 있는 것만 보일 것입니다. 두려움과 불안한 환경만 보일 것입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눈을 하나님께 맞추어 봅시다. 불신앙을 신앙으로 전환해 봅시다. 엘리사가 사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다는(16) 말씀을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읍시다.
현실의 나를 둘러싼 어떤 불편한 환경들이 있습니까?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절망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그 대적들만 바라보고 있으면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그만 주저앉게 될지도 모릅니다.
절망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비결은 기도를 통해서 먼저 영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엘리사의 사환이 영안이 열려 하나님의 불 병거와 불 말을 보면서 두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기도 없이 문제를 풀기를 원합니까? 신령한 눈이 열리지 않습니다. 두려움과 절망이 물러가지 않습니다. 두려움과 염려의 포로가 될 것입니다. 기도를 앞세우고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 권세를 능히 이기고도 남습니다.
근심하는 사람, 두려워하는 사람, 고통당하는 사람, 한숨짓는 사람, 이 모두가 다 정상입니다. 여러분 중에 근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뉴스에서나 들을 수 있는 우울한 소식들,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염려의 상황이 여러분의 가족 중에, 일가친척 중에 다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근심과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염려 없이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근심이, 염려가, 두려움이 없습니까?
저도 근심과 염려 그리고 두려움을 만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유한한 존재인 사람은 불안한 세대에 살고 있기에 모두가 염려 속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인사법에 그동안 별일 없으시죠? 조심하세요. 살펴 가세요. 라는 말이 모두 염려와 근심을 곁들인 인사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하여 때로는 곁에 있는 사람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해주지 않습니까? 그런 말을 해주어도 문제는 항상 만납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배후에서 나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일입니다. 연약한 자기의 능력만 믿고 나아가는 불신앙이 문제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시 121:0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0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0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0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겁에 질려 있는 사람이나 불안에 떠는 사람에게 두려워하지 마세요. 염려하지 마세요. 라는 말씀보다 더 좋은 메시지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이, 국가 지도자가 쉽게 말하는 염려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는 말은 믿을 수 없습니다. 신빙성이 없습니다. 정치인이나 경제 관료의 말은 도무지 현실과는 거리가 먼 믿을 수 없는 말장난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서민들의 염려와 근심 그리고 한숨은 더욱 깊어 갑니다. 이처럼 불신앙으로 오는 두려움과 근심과 염려는 절망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 믿음의 가족도 근심에 사로잡혀 절망과 두려움을 느낍니까? 외롭고 쓸쓸함을 느낍니까? 눈물로 한숨지으며 괴로워하십니까? 바로 이때가 주님께로 가까이 갈 때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버림받았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망했다고 해도, 우리에게 실패했다고 해도 나의 손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만 있으면 그때는 희망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무슨 일로 고민합니까?
무엇이 근심거리입니까? 가정 문제입니까? 신앙의 문제입니까? 사업 문제입니까? 개인 속사정입니까? 부질없는 생각과 헛된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의 품으로,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빌 04:0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0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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