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사랑은 물음표(?)가 아니라 느낌표(!)라는 말이 있습니다. 들어 보셨습니까? 아십니까? 무슨 말이냐고요? 왜 날 사랑해? 날 얼마만큼 사랑해?
이렇게 물음표 달지 말고 나는 너를 사랑해! 네가 곁에 있어서 행복해! 고마워! 이렇게 상대방이 내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인생의 행복을 지탱하는 가장 큰 동력이 무엇입니까? 서로 신뢰할 만한 사랑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사는 동안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무엇일 것 같습니까? 사랑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 가장 듣고 싶은 단어도 사랑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가장 하고 싶은 것도 사랑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 아무리 반복해도 싫증 나지 않는 것이 역시 사랑입니다.
사랑은 아무리 많이 받아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사랑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탈 나지 않는 그야말로 만병통치약 아니겠습니까?
사랑은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 생명줄과 같습니다. 만일 사랑이 없는 가정, 사랑이 없는 우정, 사랑이 없는 공동체라면 그것은 얼마나 불행한 삶이겠습니까? 그러한 삶을 산다면 이는 지옥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목숨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그 사랑을 실천만 한다면 어떤 불행한 요소들이 있어도 능히 치료할 수 있는 묘약이 될 것입니다.
오늘 제가 사랑을 주제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본문을 읽을 때 이미 감을 잡으셨지요? 잘 알고 있는 주제이기에 혹 식상(食傷)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주님 사랑은 평생을 말하고 실천해도 부족합니다. 이 사랑을 따라 사는 삶이 제일 귀합니다. 제일 행복합니다.
육신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잘 먹어야 하고 마음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잘 받아야 합니다. 영혼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더욱 사랑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예수님 사랑 안에 거합니까?」로 정했습니다.
1. 예수님 사랑을 벗어나면 위험합니다. |
0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아무리 사랑하는 애인이라도 이런 경우에는 갈아 치우라는 글이 잡지에 실렸습니다. 그 항목을 제가 한번 나열해 보겠습니다.
①자주 전화를 해주지 않을 때 ②데이트 중에 돈을 아까워할 때 ③가끔 꽃을 선물해 주지 않을 때 ④나의 부탁은 웬만해서 들어주려고 하지 않을 때
⑤옷을 입어도 세련되어 보이지 않을 때 ⑥땀에 흠뻑 젖은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 때 ⑦가까이 있어도 불편할 때 ⑧나에게 말을 많이 함으로 불쾌하게 느껴질 때 ⑨멀리서도 눈에 확 띄지 않을 때 ⑩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지 않을 때.
10가지 항목 중에 내가 해당하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이해타산의 사랑으로 살려면 혼자 지내는 것이 훨씬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열 가지 조건 갖춘 사람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에 속한 사랑은 대부분 이해타산에 속합니다. 나에게 이익이 좀 될 것 같으면 사랑하고, 나에게 해로우면 즉시 사랑을 거두어 드립니다.
이런 환경에 갇혀 있으면 상처를 입기가 쉽습니다. 심리학 차원에서 보면 사랑의 상처를 많이 겪을수록 자기에 대하여 부정적일 때가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넌 거부당했어, 거 봐 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야, 넌 안 된다고, 넌 못해, 넌 틀렸어, 아무도 너를 원하지 않아,
이런 부정의 말들을 듣다 보면 정신력이 허약해져서 웬만한 일에도 넘어집니다. 이와 같은 분들이 교회에 출석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한 달에 한두 번은 틀어져서 이 사람 저 사람 심방 명분으로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정말 못 말릴 사람이 되겠죠? 이런 스타일 정말 피곤합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은 주님 사랑 안에서 머물고 놉시다. 벗어나지 맙시다. 세상에 속한 사랑은 이해타산적인 삶이어서 작은 일만 만나도 넘어지기 일쑤입니다.
맞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 사랑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예수님 사랑 안에 머물 때 안정된 삶이 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의 가족 간에 연합을 전제로 실천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영접하여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입니다. 예수님 사랑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주님께서 원하시는 아가페 사랑은 가치성을 상실하여 버립니다.
요일 0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해타산에 빠진 사랑은 주님 사랑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아가페(ἀγάπη) 사랑은 조건 없이 상대방을 사랑하고 존중합니다.
이런 사랑은 상대방 외모 성격 등과는 무관하게 상대방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깁니다. 상대방의 행복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2. 예수님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이 무엇입니까? |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즘 젊은 연인들 대화 중 가장 정겨운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만났다 헤어질 때 하는 말인데요. 자기 내 생각만 하고 내 꿈 꿔 알았지? 하는 말입니다.
꿈속에서도 내가 당신 안에서 당신만 생각할 터니 당신도 나만 생각하고 내 안에 있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정겹고 사랑스러운 말입니까?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계십니까?
생명의 주인 되신 주님께 붙어 있어서 그분과 끊임없이 사랑의 교제, 말씀의 교제를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즉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부부간에 고백 중 최고의 고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당신이 내 안에 있고, 나는 당신 안에 있다는 다소 좀 가장 된 것 같지만 그런 고백입니다.
가끔은 요. 내 안에 주님 사랑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대신 세상 것이 가득 채워져 신령한 감각이 완전히 무디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계속 영적 무감각의 생활만 할 것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자기를 돌아보고, 말씀으로 심령을 다듬어야 합니다. 그럴 때 무디어진 심령이 회복됩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주님 사랑 안에 들어가면 구원이 있습니다. 은혜가 있고,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만사형통의 복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물이 귀해서 오염된 물로 생활하던 아프리카의 콩고 사람이 어느 날 미국을 방문하여 호텔에 묵게 되었습니다. 여장을 풀고 세면장으로 가서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것 아닙니까?
콩고인이 너무나 신기하게 여긴 나머지 저 수도꼭지 하나만 있으면 평생 물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간신히 하나를 구해 가져갔다고 합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여러분의 생각에 맡깁니다.
수원지와 연결돼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수도꼭지가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도 복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놀라운 사랑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신앙의 세계에서 신학을 논한다면 바울신학이 우선입니다. 이 바울신학에서 최고 강조점이 무엇일까요? 그리스도 안에, 즉 엔 크리스토스(ἔν Χριστός)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며,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참 평안을 누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승리를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걱정이 없습니다. 염려가 사라집니다. 따라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부르는 찬송이 있는데 455장입니다. 같이 1절만 불러 볼까요.
➀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➁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➂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시네.…
➃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예수님 밖으로 나가렵니까? 인생 실패가 옵니다. 주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인생의 고난과 환난과 풍파가 다가옵니다. 더욱더 크게 더욱더 깊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주님 안에 있기만 하면 든든한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골 02:0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0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3. 주님 안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랑의 가치는 서로가 좋은 말을 해주면서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잠 25:11)라고 하였습니다.
상대의 단점은 감추어 주고 장점을 드러내 주는 것, 서로를 위해서 복을 빌어주며 살아가는 이것이 서로 사랑함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축복이라는 말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때로는 이 축복을 받기 위하여 얼마나 열을 냅니까? 머리를 같다 내밉니까? 사모하는 측면에서 보면 좋은 현상입니다.
그런데 축복이란 상대방을 향하여 좋은 말을 해주는 데 가치가 있습니다. 만일 성도 간에 단점을 들추고 이 사람 저 사람 걸고넘어집니까?
혹 이간질을 한다면 이는 사랑의 걸림돌입니다. 또 그런 말 중 하나를 듣고는 카더라, 그렇단다, 하는 하더라. 방송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사십시오.
미국 캘리포니아 산(産) 삼나무는 130m까지도 자랄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튼튼한 나무라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의 튼튼함에 비해 뿌리는 의외로 얕게 뻗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튼튼하게 자랄 수 있는 이유는 삼나무들 뿌리가 서로 얽혀 강력한 그물망(네트워크)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삼나무 버팀목 원리를 가정과 직장과 교회 생활에 적용해 보면 어떻습니까? 먼저 나의 주변에 있는 분들이 어떤 일로 괴로워하는지를 알아보십시오.
사람은 사는 날 동안은 너나없이 크고 작은 문제들이 따릅니다. 사람에 따라서 자기가 짊어진 짐이 무거워 쓰러지기 직전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이 사랑으로 다가가십시오. 버팀목이 되어 주십시오. 이 또한 얼마나 보람된 일이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분명히 그는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서로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하며 함께 성장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지체(肢體)들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책에서 본 글인데 공감이 가는 글이라 소개합니다,
①네 원수를 친구처럼 사랑하라. 그러면 너는 하나님의 친구가 될 것이다. ②네게 무관하고 낯선 사람일지라도 사랑하라. 그러면 하나님 가까이에 있게 될 것이다. ③네 마음에 끌리지 않는 사람도 사랑으로 받아들이라. 하나님께서 너를 영접하실 것이다.
④너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라.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을 넘치도록 부어 주실 것이다. ⑤너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을 초청하라. 하나님께서 네게 하늘 영광 문을 넓게 여실 것이다.
주님의 사랑으로 주변 사람들의 아픔과 외로움에 다가가십시오. 진실한 친구가 되어 사랑을 나누십시오. 주님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 된 뿌리는 흔들리지 않고 뽑히지도 않을 것입니다.
시 133:0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三浦能者(미우라 아야꼬)는 작가가 되기 전 구멍가게를 했습니다. 그런데 장사가 너무 잘돼서 나중에는 트럭으로 물건을 공급할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퇴근한 남편이 아내에게 여보! 우리 가게 장사가 너무 잘되는 바람에 이웃 가게들이 문을 닫을 지경이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깝소. 이것은 하나님 뜻에 어긋나는 게 아니겠소. 하고 아내에게 이웃과 물질 공유를 의논했습니다.
이 말에 자극받은 미우라 아야꼬는 상품을 다 갖추지 않고 손님이 오면 이웃 가게로 보내어 주곤 했습니다. 이웃과의 관계도 더욱 사랑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소설을 써서 응모하였는데 그것이 당선되므로 가게에서 번 돈보다 몇백 배의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 유명한 빙점(氷點)이라는 소설입니다.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는 삶, 서로를 사랑하는 삶. 사랑을 나누는 삶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삶을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웃을 향한 사랑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욱 커집니다. 더욱 많아집니다. 이웃과 사랑을 나눕시다. 소외되고 약한 자와 사랑을 나누며 삽시다. 성도 간에 이 사랑과 믿음으로 삽시다.
요 15:0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 말씀이 응답받는 삶의 비결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가 한순간이라도 그 나무에서 떨어져 있다면 말라져서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지는 마지막에 불에 던져져 태워질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비유입니다. 예수님을 떠나 생활하는 것은 기도 응답을 받거나 기적을 체험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열매도 맺지 못할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은 세 가지 차원에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목적에서의 성공입니다. 두 번째는 과정에서의 성공입니다. 세 번째는 결과에서 성공입니다.
이 세 가지 성공과 목적과 과정과 결과에서의 성공이 온전한 성공입니다. 이런 성공은 예수님 안에 거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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