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를 하는 한 부부가 아침에 함께 차를 타고 직장으로 출근하는데 아내가 한참을 가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어머, 전기다리미를 안 끄고 나온 것 같아요. 남편은 놀라서 차를 돌려 집으로 갔습니다. 가보니 전기다리미는 꺼져 있었습니다.
다음 날도 아내는 남편과 함께 한참 차를 타고 가다가 여보, 오늘도 전기다리미를 깜빡 잊고 끄지 않은 것 같아요. 하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귀찮고 짜증 났지만, 혹 불이 날까, 봐 겁이 나서 집으로 차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이날도 전기다리미는 안전하게 꺼져 있었습니다.
사흘 째 되는 날도 차가 출발한 지 10분쯤 지나자, 아내가 또 소리를 지릅니다. 여보, 전기다리미를 끄고 나왔는지 안 끄고 나왔는지 통 기억이 안 나요. 남편은 차를 도로변에 세우고 트렁크를 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있다. 전기다리미.
이분 건망증이 상당히 심한 사람이죠? 예,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감사하다가도 금방 잊어버리고 불평하는 때가 있습니다.
인생길 가다 보면 평탄한 길이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광야 길과 같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가는 때도 만납니다.
그런 일을 만날 때 삶의 시각을 조금만 더 긍정의 생각으로 바꾸면 어떻겠습니까? 얼마든지 승리의 삶, 풍요로운 삶, 행복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2024 한 해를 돌아보는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베푸신 은혜를 기억합시다.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오늘을 은혜의 주일 되게 합시다.
믿음으로 동참하시는 분께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복이 임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래서 말씀 제목을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로 정했습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1. 우리 믿음의 가족은 하나님께 즐거운 감사를 합시다. |
0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여러분이나 저나 이 말씀 앞에서 늘 부담스럽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 인색함이 없는 예물을 즐겁게 드리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물을 드리는 일에 어쩌면 인색함과 억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 앞에 서면 부담이 옵니다. 다소 기도 죽습니다.
인색함과 억지를 제어하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즐겁게 드리는 일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어떤 일을 당하든지 간에 조건 달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강도 높은 감사의 메시지를 받으면 가책받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마 목사인 제가 가장 많은 가책을 받을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지 못할 때가 자주 있고 즐겁게 드려야 함에도 환경이 여의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을 훈련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하며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색함 없이 기쁨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가령 젊은 나이에 깊은 병을 안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이 있습니까? 치료보다는 오히려 병이 점점 깊어 갈 때 그 입에서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까?
아니면 무거운 십자가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할 어린 장애인 자녀로 인해 씨름하는 부모님 입에서 제대로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까?
아니면 이력서를 수십 통 써서 취업하려 회사마다 넣어도 면접 한 번 제대로 못 본다면 그 입에서 과연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까?
사실 이런 환경을 만나면 범사에 감사하고 즐거운 예물 드리는 일은 매우 부담스럽습니다. 어쩌면 오늘 말씀은 적당히 보고 넘어가는 것이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해를 결산하는 추수감사주일 앞에서 내가 힘들다고 적당히 넘어가면 과연 괜찮은 일이겠습니까? 아무래도 아니지요.
우리에게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엡 05:20)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죄에서 건져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까? 내가 혹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잃었습니까? 그래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이름만으로도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왜 우리가 범사에 항상 감사합니까? 천지 만물의 주인 되신 전능자 하나님께서 항상 감사하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것은 비현실의 일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고 회피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 믿음으로 그의 옷자락을 붙드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우리 가정에 베푸신 은혜, 가족에게 건강을 허락하신 은혜가 얼마나 귀합니까? 물론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가운데 개인별로는 슬픔과 고통과 고난을 겪는 분도 있습니다.
사업의 부진으로 힘들게 지내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롬 08:28)를 바라보십시오. 지금의 아픔이 지난 후 유익하게 해 주실 줄 믿으십시오.
우리 믿음의 가족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말 못 할 아픔의 순간이 많았을 것입니다. 속깨나 썩이는 분들로 인해 상처난 부분도 역시 많았을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지난 시간에 얽매여 괴로워하지 맙시다. 믿음으로 자기를 다듬읍시다. 그러면 그 아픔들이 치료될 것입니다.
저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보면서 올 한 해를 돌아봅니다. 돌아보니 정치 경제 등 사회 상황을 보면 올해가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어려운 일이 올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인내로 새로운 한 해를 내다보아야 합니다. 오늘보다 내일 올해보다 내년이 더욱 잘 열리기를 기도로 준비합시다.
2.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생활의 근거가 있습니다. |
0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생활 자체가 감사의 근거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구원의 감격이 사무쳐 있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생활이었습니다. 바울이 감사의 생활을 잘 이어가게 하는 에너지가 무엇입니까?
바울이 감사하는 조건은 환경의 조건이 아닙니다. 신령한 요소입니다. 속사람을 하나님과 어떻게 신령한 교제를 나누느냐? 에 두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처한 현실 환경과 건강 문제, 재산, 명예, 지위, 성공 등과 같은 것들을 가치 기준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초월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모든 일이 잘 정리되고 안정되어야 감사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세상의 좋은 환경을 감사의 조건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고후 11: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은 로마에서 생활 대부분을 감옥에서 지냈습니다. 환난과 핍박과 고난의 생활로 엮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감사의 생활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육신이 건강하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즐거워합니다. 반면 병들고 몸이 괴로운데 무슨 감사를 하느냐며 감사 생활을 접을 때가 있습니다.
또 사업이 잘되어 흑자를 내면 하나님께 감사 생활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사업이 부진해서 큰 손해를 보면 그만 감사를 접어버리기를 잘합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바울이 감사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건강해서 혹은 사업이 잘되어서 감사의 생활을 합니까?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감사의 생활입니다.
고후 12장에 보면 오히려 그의 육체 가운데 찌르는 사탄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이 육신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어떤 응답을 받았습니까?
고후 12:0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0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0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 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바울은 건강하므로 감사와 기쁨의 생활을 한 것은 아닙니다. 육신으로는 감사 꺼리보다 건강이 여의치 못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물론 몸이 건강하면 매우 좋은 일입니다. 가정이 평안하면 더욱 좋은 일입니다. 평안하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정에 베푸신 큰 은혜요 복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바울의 경우는 독신의 은사를 받아 홀로 지냈습니다. 가정에서 오는 아늑한 기쁨은 누리지 못했습니다. 복음의 순례자로 곳곳을 다니며 안전히 쉴 곳이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감사가 떠나지 않은 것은 세상 환경을 감사의 조건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줄 믿으면 감사가 나옵니다. |
11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를 마치고 고린도에 전도하러 갔을 때입니다. 그곳에는 죄악의 세력이 강성하였고 전도할 기회도 무척 많았습니다.
그러나 강렬하게 대적하는 유대인들로 인해 바울이 복음의 상당한 위축감을 느꼈습니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행 18:0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마침내 바울은 고통스러운 환경을 만나도 복음 전하는 일에 위축됨을 벗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바울처럼 주님께서 찾아오시고 함께 하십니다.
세상의 풍랑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의 환경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 풍랑이 없을 것이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그 풍랑에서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사 43:01….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0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지금의 경제가 우리에게는 지난 시절 IMF 때와 같을 정도로 힘겹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기업들이, 사업들이 대단히 위기를 겪습니다. 정치는 그야말로 큰 위기입니다. 이럴 때 우리 믿음의 가족은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기도로 나아갑시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마음을 크게 넓힙시다. 부드러운 심령을 가집시다. 감사는 +와 같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면 하나님의 복이 더해집니다.
원망과 불평은 -와 같아서 이미 가진 것까지 없어집니다. 힘들수록, 어려울수록 더욱더 애써 감사할 거리를 찾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할 거리가 생기도록 노력합시다. 복이 많아지는 기적을 체험합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일을 만듭시다. 그리스도인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불평은 뚝 하고 원망도 뚝 하며 삽시다.
감사와 불평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면 할수록 불어납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불평은 하면 할수록 불평의 일이 쌓여갑니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갑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라는 말 들어 보셨지요?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님도 들어 보셨을 것이고요.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닙니다.
복은 감사할 때까지 복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감사는 마음으로 표현하고 행동으로도 표현하여야 진정한 감사가 됩니다. 감사를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John Newton(영국 1725~1807)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젊은 시절 방탕하던 삶을 살다가 나중에는 노예 무역선의 선장까지 한 극악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대상 17:16~17절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늘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나 같은 죄인 살려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려주신 그 은혜 너무 감격합니다. 하였습니다. 그 감격으로 주를 찬양하는 중에 찬송시를 썼습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305장입니다.
1.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아멘.
성도 여러분, 가끔은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불평할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연약한 사람끼리 모였으니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불평거리 때문에 감사할 거리를 잃어버리고 불평 공장을 가동하지 맙시다. 왜 많은 사람이 감사의 생활에 접근하지 못합니까?
좀 넉넉한 사람의 환경과 자기의 약한 모습을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면한 고난의 일들이 크게 보일지라도 감사의 제목만은 굳건히 붙들어야 합니다. 신앙의 손상을 당하면 안 됩니다.
미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언어 50개를 선별했는데 그중에서 댕큐가 28%로 1위였다고 합니다. 감사의 생활이 몸에 배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성인이 되면 평균 2만 6,000개 정도 단어를 익힌다고 합니다. 그중에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언어가 감사합니다. 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언어도 감사합니다. 입니다. 이스라엘의 격언 중에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혀에 붙기 전까지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리키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롬 0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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