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부흥하는 교회 든든한 교회가 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진정 믿음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라면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부흥에 관해 관심이 큽니다. 부흥이라는 한글 단어가 성경에 얼마나 나오는가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곳만 나옵니다.
합 03:0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국가의 위기 앞에서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올린 기도문입니다. 교회마다 부흥을 위한 표어(標語)를 정할 때 많이 사용하는 성경 구절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말하는 부흥은 사람의 수적인 증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쇠잔한 것을 다시 회복하게 하는 소성(蘇醒)을 의미합니다.
가뭄에 단비가 내리듯이 메마른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살게 되는 것이 참 부흥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부흥을 꿈꿉니다. 이런 부흥을 마음에 담고 교회를 섬겨나갈 때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갑니다. 지금은 11월 늦가을이니 이내 겨울이 됩니다. 교회를 돌아보기 좋은 계절이고 슬럼프도 회복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든든히 서가는 교회를 세웁시다」로 정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 모두가 건강한 교회관을 세우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1. 든든히 서가는 교회는 한 사람의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예루살렘교회가 성장하던 당시, 복음을 박해하던 중심인물이 사울입니다(행 07:58). 이 사울 때문에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였습니다(행 07:59~60).
사도 외에 대부분 성도가 예루살렘교회를 떠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였습니다(행 08:01). 이 불행의 역할을 한 사울에 대해 살펴봅시다.
먼저 출신 성분을 봅시다. 사울은 길리기아 다소(행 21:39)에서 태어난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 유대인입니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가끔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이는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이들은 외국에 살면서도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잘 지킨 신실한 유대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바리새파에 속하여 당대의 최고 랍비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엄격한 율법을 수학하였습니다(행 22:03). 율법에는 학문이 박식합니다.
당시 로마제국 체제에서 로마 시민권까지 가졌으며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지식인(intelligent)층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유대교를 향한 열정을 교회를 박해하는 일에 기울였습니다. 대제사장의 위임장을 받아 다메섹으로 피난한 성도들을 체포하는 선봉장 역할을 했습니다(행 09:01~02). 기독교를 아예 말살하려는 일에 열정을 기울였습니다.
이 젊은 청년 사울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 유대교를 향한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행 09:03~05).
살기등등한 사울이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삶의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사울을 아는 그 어떤 사람이 보아도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이 부분을 잘 보십시오. 유대교 신봉자들이 바울의 전도 메시지에 반감을 일으킵니다. 그럴수록 바울은 더욱 힘을 내기 시작합니다. 바울의 복음 소식을 듣는 청중들의 반감에 개의치 않고 더욱 영적 힘이 가중됩니다.
본서 저자 누가는 영적인 힘이 계속 증가하는 바울의 모습을 조명합니다. 성령님에 사로잡힌 사람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히 11:38). 이어지는 바울의 전도 열정을 보겠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0절의 설교와 표현만 다를 뿐 그 내용은 같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언하는 바울의 일관된 메시지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 평생 주제이었습니다(고전 02:02).
유대인들을 당혹하게(συγχέω 싱케오) 했다는 문맥을 봅시다. 바울의 전도 메시지로 인해 유대인들이 큰 혼란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전도 메시지를 들은 유대인들의 반응은 즉각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로 변합니다. 이어지는 23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는 계략을 볼 수 있습니다.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 바울이 변화됨으로 교회가 든든히 세워졌습니다. |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여러 교회가 든든하게 서 갔습니다. 계속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또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일을 확인하는 중요한 부분이 바로 그리하여, 라는 접속사입니다.
그리하여(οὖν 운), 라는 이 접속사의 전후를 보십시오. 바울이 다소로 피신한 것과 본 절이 깊이 연관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본서 저자 누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국 바울이 전도 폭발을 일으키고 고향 다소로 피신함으로 문제가 수습되었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과 기독교인 간의 마찰이 해소되었다 뜻입니다. 전도자 바울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곳곳에 계속 세워지고 부흥을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훼방하기 위해 나선 사람이 바울 아닙니까? 바울이 이제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크게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전도자 바울 때문에 교회가 든든하게 전진하고 있습니다. 기적 중의 기적이고 역사 중의 역사입니다.
어떤 학자는 사도행전의 두 가지 큰 사건이 있다면 하나는 오순절 성령님 강림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오순절 사건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을 복음으로 흔들어 놓은 사건입니다. 반면 사울의 회심은 로마제국을 복음으로 변화시킨 일의 출발점입니다.
사울의 놀라운 변화를 놓고 한 신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울을 바울로 바꾸셨다. 그리고 바울은 세계 역사를 바꾸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바울 한 사람의 회심을 통해서 모질게 핍박받던 교회가 다시 안정을 찾고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가치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옆에 있는 분과 인사를 이렇게 나눕시다. 나만 변화되면 됩니다.
예, 나만 변화되면 교회가 평안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면 교회가 평안해집니다. 가정이 평안해집니다. 직장도 평안해집니다.
그러면 든든한 교회를 계속 이루어 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변화된 사울, 그는 장래의 진로를 놓고 주변 가족이나 친척들과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아라비아 광야로 가서 삼 년의 연단을 보낸 후(갈 01:16)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습니다.
갈 01: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나를 통해서 부흥의 물결이 일어나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조용히 변화되십시오. 시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의논할 일이 있습니까?
역시 시끄럽게 하지 맙시다. 기도하면서 주님을 만나 해결책을 찾으면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마음에 품은 것을 이루기 위하여 조용한 아라비아 광야를 택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믿음의 승부를 건 셈입니다.
우리도 문제를 안고 조용히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해결하면 됩니다. 바울이 가서 삼 년을 수련한 아라비아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메섹도 아라비아에 속한 곳인 만큼 다메섹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일 것입니다. 장소보다 하나님을 만나서 은혜받고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능력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3. 각자 믿음의 분량대로 일하면 부흥이 옵니다. |
롬 12:03….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든든히 서가는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믿음의 분량대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이 말은 교회 안에서 다양하게 주어진 은사와 직분을 따라서 자기의 장점을 믿음으로 감당한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내가 교회에서 섬기는 일을 하기를 원합니까? 봉사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자기 분수를 알고 섬기면 됩니다. 나는 아무 존재도 아닌 줄을 아시면 됩니다. 대단한 내가 아닙니다. 그저 약한 죄인의 모습을 유지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무리 모두에게 믿음의 분량만큼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면 제각기 맡은 신령한 달란트가 있습니다. 그 재능대로 섬기고 봉사하면 됩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분량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교회나 교회 밖에서 너무 넘치지도 않고 너무 모자라지도 않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덕을 세울 수 있습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이 말은 믿음의 분수대로 이런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에서 질서를 이루기 위해서 무엇부터 해야 합니까?
각자 자기 위치에서 자기 자리를 지킬 때 유지되는 줄 기억하십시오. 교회는 신령한 공동체입니다. 신령한 공동체인만큼 신령한 질서도 있습니다.
고대 헬라의 세계에서는 질서를 나타내는 말을 코스모스(κόσμος)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질서 정연한 우주를 보면서도 역시 코스모스(κόσμος)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공동체도 질서정연한 우주처럼 코스모스(κόσμος)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양한 직분과 다양한 달란트와 함께 신령한 질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교회 안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재능과 은사를 확인하십시오. 배치된 자기 자리에서 재능과 은사를 성실히 감당하십시오. 그러면 가장 은혜로운 교회, 질서 정연한 교회,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가끔 교회 생활에서 누가 좀 뭐라고 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잘 안되면 금방 토라져서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평 뚝 원망 뚝 아닙니까? 그런 사람은 굳게 선 사람이 아닙니다. 든든한 사람이 아닌 미성숙한 신앙인입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은 모두 든든한 교회를 이루어 가는 일에 잘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믿음과 소망이 흔들림 없기를 바랍니다. 이랬다저랬다, 안 해, 관둬, 교회 떠난다. 이런 소리하는 미성숙한 사람의 자리에서 제발 탈출하십시오.
몽니를 부리면서 나는 이 교회에서 별로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야 하면서 열등의식 가지지 마십시오.
큰 은사를 받은 사람만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재능과 은사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면 이는 다 교회에 필요하고 유익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어떤 은사가 있습니까? 긍정의 측면에서 귀하게 여기십시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가족 여러분, 바로 우리 교회가 든든히 서가는 교회의 주인공 되십시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성도 여러분이 모든 사람 앞에 명품 신앙인으로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누구나가 가보고 싶은 교회, 와서는 서로 마음이 같이 되는 교회, 그리고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분위기를 나누어주는 교회와 성도로 말입니다. 이렇게 되기를 결단합시다.
참된 교회, 건강한 교회 3대 표시가 무엇입니까? ①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히 전파하는 것과 ②정당한 성례의 집행과 ③적절한 권징을 시행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의 도리를 알게 합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합니다. 건강한 교회를 이루어 가는 기초입니다. 동시에 영성 운동의 원동력입니다.
들려진 말씀이 내 삶에 적용되지 못하면 이는 맛을 잃은 소금이요, 생명 없는 마네킹에 불과합니다. 내 심령이 든든하고 교회가 든든하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도는 말씀을 증명하는 목회자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 본보기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설교하고 말씀을 가르칠 때 연약하고 허물 많은 사람의 모습으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받아들였습니다.
살전 0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스피노스 조디아티 목사(30년 목회를 한 잡지 pulpit 발행인)는 살아 있는 교회와 죽어가는 교회를 다음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①살아 있는 교회는 교실, 주차장 등 늘 공간의 문제가 있으나 죽어가는 교회는 공간을 염려하지 않는다. ②살아 있는 교회는 항상 변화하나 죽어가는 교회는 늘 똑같다.
③살아 있는 교회는 아이들과 청소년들 소리로 시끄러우나 죽어가는 교회는 죽은 듯 조용하다.
④살아 있는 교회는 활동이 많아서 언제나 예산을 초과해 쓰기에 빚을 내어야 하나 죽어가는 교회는 은행에 잔액이 많다.
⑤살아 있는 교회는 새 얼굴이 많아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워 애를 먹으나 죽어가는 교회는 해를 거듭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⑥살아 있는 교회는 주는 자로 가득히 차 있으나 죽어가는 교회는 팁을 내는 자로 차 있다.
⑦살아 있는 교회는 배우고 봉사하기 위해 바쁘고 그러나 죽어가는 교회는 편안하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살아 있는 교회 같습니까? 살아 활동하기 때문에 일거리를 놓고 모이라 하고 바쁘게 시키는 겁니다.
든든히 서가는 교회는 아무 어려움이 없는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환난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오히려 이겨 나가는 교회를 뜻합니다. 이런 교회가 좋은 교회라면 우리 모두 다 이렇게 만들어 가는 일꾼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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