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건강한 교회라는 말을 가끔 합니다. 교회마다 자주 우리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구합니다.
그러면 건강한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출석하는 성도 수가 많고 재정 규모가 든든하여 외형으로 확장된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까?
진리에서 이탈한 모임들도 출석 수와 재정이 든든한 곳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건강한 교회는 외형의 확장을 절대 표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이 지향하는 사랑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건강한 교회의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복음의 증인 역할을 감당하는 데 있습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삶의 한 모퉁이에서 생각지도 않은 고난을 만날 때가 있지요? 그럴 때마다 고난의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몸부림을 칩니까?
고난에 처할지라도 건강한 교회를 만나기만 하면 풀립니다. 건강한 교회에 출석만 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풀리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만나면 건강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건강한 교회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동시에 우리 믿음의 가족 모두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일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말씀 제목을 「건강한 교회를 세웁시다.」 이렇게 정했습니다. 이 일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1. 건강한 교회가 무엇입니까? |
엡 0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건강하다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면 건강의 개념의 기본 의미가 무엇일 것 같습니까? 한마디로 표현하면 균형 잡힌 상태를 말합니다. 만일 몸이 불균형 되었다고 한다면 이를 우리는 건강을 잃었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원리를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건강하다고 말할 때는 외형이 아니라 신령한 차원에서 하는 말입니다.
교회도, 소속한 구성원도 균형이 잘 잡혀 있어야 합니다. 만일 한쪽으로 치우쳐 살면 그것은 대단히 불안정한 생활이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신령한 균형이 잘 잡혀야 합니다. 교회에서 계속 사랑을 받는 일로 즐거워하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 하는 만큼 나도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좋은 교인으로, 직장에서도 좋은 직장인으로, 가정에서도 좋은 가족으로, 불신자를 만나서도 좋은 시민으로 살아야 균형 잡힌 성도라 불릴 수 있습니다.
밖에 나가서는 덕을 잃고 교회 안에서만 교인 노릇을 한다면 아무래도 신령한 균형을 잃은 성도일 수 있습니다. 병든 성도의 인상을 주게 됩니다.
이와 같은 신령한 균형을 상실한 모습이 우리의 몸에 아주 깊이 배어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살면서 가끔 집을 옮기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이사(移徙)하는 일 말입니다. 그리하여 가까운 교회에 등록하여 믿음 생활하는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에 등록한 후의 나오는 말입니다.
내가 이 교회에 정말로 잘 왔다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이 많을 때 바로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신령한 균형이 잡혀 있지 않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고통과 시험도 올 수 있습니다. 혹 신앙에 상처를 입는 일도 나타날 것입니다.
균형 잃은 교회는 생명이 자라지 않습니다. 성장이 없습니다. 건강한 교회에서 건강한 교인이 태어납니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 원리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영적 상태를 보완하지 않으면 병든 신앙이 됩니다. 곁에 있는 사람도 함께 병들게 합니다. 예수님은 건강 상태를 놓고 눈(目)을 비유해서 말씀하십니다.
마 0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눈(目)이 성하다는 말은 Single Focus라는 의미로 한 가지를 주목하는 것을 말합니다. 눈이 나쁘다는 말은 Double Focus입니다.
세상도 보고 신령한 것도 동시에 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균형 잡힌 생활은 양다리 걸치기가 아니라 Single Focus입니다.
건강한 교인이란 주님만을 바라보는 상태를 말합니다. 세상과 동시에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건강한 교인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0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건강한 교회는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 안에서 일을 이루어 나갑니다. 세상과 타협하여 세속의 물결을 끌어들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여러 일로 방황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런 메마른 사람이 우리 교회로 들어올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신령한 건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해야만 그 영혼을 건강한 영혼으로 돌려놓을 수 있습니다.
2. 서로를 위한 사랑의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믿음의 가족 여러분 교회 안에서 이일기 목사를 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 들기도 하고 좋아서 좋은 말을 해 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마음에 안 들고 아주 못마땅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찡해지는 감동이 올 때도 있을 것입니다.
또 때로는 목사님이 오늘 왜 저런 설교를 하시지? 그것도 얼굴에 인상까지 써가면서 하며 기분 나쁘게 혹은 불안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내가 모처럼 어려운 시간을 내어서 왔는데 목사님 설교가 영 나하고 안 맞는 구먼. 하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목사가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고 나쁘고, 이 두 가지 일에 너무 기복이 심하면 안 됩니다. 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는 신령한 차원에서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명과 행복, 인생의 신령한 의미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존재임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지도자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심령의 문을 닫아버리면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여러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영혼도 병들어 감당할 수 없는 시험에 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교회의 지도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우선순위의 일입니다.
히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장로님 집사님 다 같아요. 마음에 좀 안 든다고 또 못마땅하다고 뒤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불평을 오염시키며 흔들지 마십시오.
그렇게 완벽하게 잘합니까? 돌아보면 허물 정말 많이 있습니다. 허물투성이에요. 무엇보다 우리 모두 신령한 품성으로 끊임없이 성장해야 합니다. 발육이 부진한 자녀를 둔 가정을 보십시오. 그 부모나 가족이 얼마나 고통을 겪습니까?
신령한 면에서 발육 멈춘 성도가 있는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를 비롯하여 여러 성도가 상처를 입습니다.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목사로부터 아이까지 모든 성도가 신령한 일에 끊임없이 자라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야 합니다(엡 04:13).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욕되게 하는 실수를 하면 안 됩니다. 교회 안에는 교인답지 못한 교인도 있습니다. 나를 실망하게 하는 교인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 역시도 혹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목사의 설교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개인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평가할 수도 있지만 한 개인의 행위를 가지고 교회 전체를 매도하여 악평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사람의 생각으로 혹 이런 악평을 하지 않습니까?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다느니, 이 교회는 다닐 곳이 못 된다느니, 이런 교회가 어떻게 교회냐? 세상에 이런 교회 처음 봤다, 이 교회 아니면 어디 교회가 없나 하면서 함부로 욕하는 일,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 하나는 기억하십시오. 주인의 마음을 가진 성도는 잘못된 일을 볼 때마다 이것이 노출될까 쉬쉬하며 덮습니다.
반면 나그네 성도는 허물을 마음대로 들추며 막무가내로 욕을 합니다. 교인답지 못한 교인이 교회에 있을지라도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함부로 비방하지 마십시오.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 다 듣고 계십니다.
우리의 주변을 보면 가끔 교회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이 교회 저 교회로 옮겨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유야 물어보지 않아도 나름대로 할 말이 무척 많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교회가 부패하였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런 사람치고 정상 신앙인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기도만 해 주면 됩니다. 그런 사람 말 한마디에 이리저리 흔들리면 안 됩니다.
미국에 이민하여 사는 분 가운데 22년 동안 108번 교회를 옮긴 장로가 있었습니다. 이민 교회의 특성은 이합집산이 심합니다. 따라서 한 교회를 오랫동안 다니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장로는 매우 별난 사람이었습니다.
평균 1년에 약 5번 정도로 교회를 옮긴 셈이고 평균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교회를 바꾼 셈입니다. 문제는 얼마나 교회를 옮겨 다녔느냐가 아니라 교회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이분은 한 번도 교회에서 만족해 본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교회를 옮겨 새로 등록한 날부터 목사와 교회의 단점을 찾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마치 자기가 예언자나 된 것처럼 자기 눈에 보인 허물을 떠벌리고 얘기하며 또한 108가지 교회의 단점을 낱낱이 노트에 적어서 마치 보물처럼 간직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런 것은 아무리 보관을 잘해도 보물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지나간 분 중에 꼬투리 될 만한 일을 매사에 메모해서 가지고 다닌 분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안 해도 주님께서 목사의 그런 약점과 결점을 모르시겠습니까?
다 훤히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교회의 약점이나 목사의 단점을 놓고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중보기도 하십니다.
또 교회는 성령님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서 모든 약점과 결점을 능히 커버 될 수 있도록 힘쓰십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약한 교회가 아닙니다.
물론 여러 면에서 미비 되어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강하신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붙드시는 이상 세상 그 어떤 요소도 감히 흔들지 못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 계신 우리 여러분이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가는 사명을 주십니다.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란 건물의 아름다움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에 속한 구성원이 좋으냐? 안 좋으냐에 달려 있습니다. 성도의 행복과 인생의 의미는 건강한 교회를 찾았느냐? 건강한 교회에 다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통해 은혜를 받았느냐? 삶의 의미를 발견했느냐? 뒤돌아보아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왕 교회를 다닐 바에야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에 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바로 이런 교회가 되도록 여러분이 잘 가꾸시기를 축원합니다.
3. 나눔과 베풂이 있어야 합니다. |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우리가 행복하다는 개념은 어떤 가치에 대한 소유를 말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가졌느냐? 남이 안 가진 것을 내가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하는 소유의 문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행복을 히브리인의 사고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의 사고(思考)가 아무래도 소유 아닙니까?
그런데 히브리인의 사고는 여러 가지의 소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남에게 베풀어야 할 환경을 만났을 때 얼마나 많이 베풀고 잘 썼느냐를 중요시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의 행복을 소유의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인의 사고인 나눔과 사이에서 충돌을 일으키는 겁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 행복은 무엇인가 나누어 주는 데에 있다고 여기십시오. 주변을 돌아보고 위로를 베풀고 물질을 베풀고 이웃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는 일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새 가족이 들어와서 제대로 정착하려면 우리의 마음이 먼저 주고자 하는 마음, 베풀고자 하는 마음으로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 마음을 굳게 잠가놓고 있으니, 새가족이 들어와서도 쉼을 얻지 못하고 적응도 잘못하는 것 아닙니까? 다 내 책임입니다.
내가 먼저 내 할 수 있는 사랑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있습니까? 얼마나 상대에게 좋은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겠습니까?
나의 좋은 장점과 교회의 좋은 장점이 있는 데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합니까? 만일 새가족이 교회를 떠난다면 바로 나의 책임으로 통감합시다. 모든 사람에게 위로를 베풀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 놓고 넉넉하게 삽시다.
그런데 아직도 여러분이 편협한 상태에서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기존 성도끼리는 어찌 그리 주고받음이 잘 이루어집니까? 형님 아우 하면서 말이에요. 물론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새 가족에게 그런 사랑이 잘 전달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새가족이 왔을 때 그다음 주일에는 전화번호 집 인적 사항 등을 알고 있습니까? 제가 간단히 주보와 올려놓는데 그 내용을 메모해 놓고 계시느냐 말입니다.
자기 책임감이 있으시다면 한 번 정도는 새가족을 초청하여 차라도 나누는 교제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양질의 서비스도 제공하십시오.
일 년이 넘도록 책임을 맡은 분들 가정에 성도들이나 새가족이 발걸음 한번 하지 않고 있다면 그 가정의 부부가 책임이 큽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이런 일이 잘 안되니 저 혼자 무척 힘이 듭니다. 교회 안에 있는 기존 회원끼리는 잘 어울리면서 새 가족에게는 별로 잘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확 바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열심으로 바꿉시다.
적어도 새 가족에게 예배 시간에 그들과 동석해 주는 친절이 필요합니다. 또 예배 후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라는 찬양을 마친 후 그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에 손을 잡은 상태에서 나의 따뜻함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편에서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한 주간 동안 한 번 정도라도 전화를 걸어 내 위치를 밝히면서 앞으로 같이 신앙생활을 잘해보자는 말도 건네어 보십시오. 뒷문을 막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의 도리를 알게 하고,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건강한 교회를 이루어 나가게 하는 기초입니다. 동시에 영성 운동의 원동력입니다.
우리는 예루살렘교회가 성령님의 하나 되게 하심을 따라(엡 04:03) 유무상통하면서 성전에 모이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힘썼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성도의 교제를 나누면서(요 13:34) 자기 소유의 재산을 팔아 서로 통용하는 공동체 삶도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온 백성에게 칭찬도 들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약점을 보완합시다. 사람에게 인정받읍시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공동체를 만듭시다. 이 일에 앞장을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생명력으로 연결된 유기체입니다. 성도 모두가 사랑의 고리로 꿰어져야 합니다. 지금 부흥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이 부흥의 파도가 우리 교회에 밀려오기를 소망합시다. 복을 퍼 담을 수 있는 믿음의 그릇을 내가 만듭시다. 받은 복으로 나누는 삶을 잘 실천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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