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2일 밤 서울 강남의 한 집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주차된 차량은 불에 타서 뼈대만 남았습니다.
불이 옆집으로 언제 번질지 모르는 긴급한 상황에서 화재 현장 바로 옆집 주민 30대 남성 김 모 씨가 집안 가득한 연기를 뚫고 간신히 탈출하였습니다.
김씨 품에는 개 한 마리가 안겨 있었는데 김씨는 집 안에 가족이 남아 있으니 구해 달라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탈출한 김씨의 어머니 안 모 씨 품에도 개 한 마리가 안겨 있었고, 안씨도 거동이 불편한 노모가 못 나오고 있다고 주변에 알렸습니다.
안씨 모자는 강아지 한 마리씩 안고 건물 밖으로 대피했지만 90세 노모는 계단 난간만 붙잡은 채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족보다 개를 먼저 챙기는 모습이 어떻게 보입니까?
요즘은 효도계약서 쓰는 것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효도계약서란 부모님이 자식에게 집을 사주거나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자식은 부모님에게 봉양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일종의 각서(覺書) 형태를 말합니다.
민법상 자식에게 조건 없이 증여한 재산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돌려받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섣불리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줬다가 나중에 홀대받거나 버림받을 것을 우려한 부모님이 안전장치로 효도계약서 쓰기에 나선 것입니다.
2015년 12월 말경 대법원이 효도 계약을 어긴 아들에게 부모님이 물려준 재산을 돌려 드리라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이 50·60대의 송년·신년 모임에서 화제가 되자 이미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준 부모님들도 효도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합니다.
효도계약서 작성 시 꼭 유의해야 할 점은 계약서에 부모님에게 불효 시 물려준 재산을 반환한다는 문구를 넣으면 됩니다. 여러분도 잘 판단해 보십시오. (^^.)
오늘 말씀은 예수님은 부모님께 어떻게 효도 했느냐를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말씀 제목을 「예수님처럼 효도합시다」로 정했습니다.
1. 당연한 효도가 점점 실종되어 갑니다. |
엡 06:0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십계명의 둘째 돌판 첫째 계명에 부모님에 대한 효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엡 06:01 절에서 출 20:12 절을 인용하여 자녀들아 하고 부릅니다.
부모님을 통해서 태어난 이상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호칭입니다. 자녀들아, 이렇게 부른 후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도리라고 말합니다.
순종하라(ὑπακούω 휘파쿠오)는 말은 복종하다 라는 뜻으로서 현재 진행형입니다. 한두 번 순종하다 그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선으로 할 일을 부모님에 대한 효도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효도가 점점 실종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아도 효도는 흘러간 이야기 정도로 여깁니다. 사회가 점점 고령화되면서 당연한 노인들의 봉양 문제가 부각하고 있습니다. 애완견보다 못한 처지로 몰리고 있습니다.
국가 사회보장이 완벽하지 못하다 보니 각 가정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할 몫이 큽니다. 최근의 효도 현황을 봅시다. 재산을 미리 자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가 그 자녀들이 서로 봉양을 외면하는 바람에 힘들게 지내는 부모님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인들 사이에서는 죽기 전까지 어느 정도의 돈을 수중에 가지고 있어야 대접받는다는 이야기가 정설이 되었습니다.
돈으로 효를 산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공동체에도 부모님께 불효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불효에 대한 징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법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신 21: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이렇듯 패역한 자녀에게는 매우 혹독한 벌이 주어졌습니다. 구약의 법을 따른다면 우리 가운데 살아남을 사람은 별반 없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 죽임을 당해야 할 것이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그런 엄한 벌이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경제가 좋아져서 웬만하면 먹고사는 문제로 염려하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가난에서 다 벗어났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 옛날 슬프게 지내던 시절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 삽니다. 옛날 그 시절 우리의 부모님은 최선을 다해 우리를 양육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님의 그 은혜를 잘 모릅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라는 심순덕의 시가 있어서 제가 읽어 드립니다. 철없던 시절 어린 마음에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해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2. 예수님의 효도를 보겠습니다. |
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님은 어린 시절 대부분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지냈습니다. 공생애에 나서기 전 약 30세까지 호적상의 부모님에게 잘 순종하였습니다.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효를 압축해 놓은 말씀입니다. 어쩌다 한 번 순종하신 것이 아니라 순종이 삶의 방식 곧 삶의 방식이었음을 나타내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은 일생을 효도하며 사셨습니다. 자기를 겸허하게 낮추시고 부모님께 지속해서 순종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명 십계명 중에 특별히 제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출 20:12) 말씀을 잘 지키셨습니다. 예수님은 51절 이후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받으실 때까지(눅 03:21) 약 18년 동안 갈릴리 나사렛에서 부모님과 동생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아버지 요셉의 가업인 목수직을 이어 동생들을 보살피고 어머니를 봉양하였습니다(막 06:03). 성경에 아버지 요셉에 관한 행적이 별반 나오지 않습니다. 이로 보아 18년 어간에 죽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후에 예수님은 어머니와 동생들 등 가족을 책임지고 부양(扶養)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소년 시절 부모님에 대한 순종과 효도는 도덕이 땅에 떨어진 것 같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효도의 모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 부모님을 통하여서 이 세상에 왔기 때문에 부모님에 대한 은혜를 효로 보답하여야 합니다. 혹 나는 불효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까? 그러면 예수님의 효도하는 모습, 순종하는 모습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나도 부모님을 잘 섬기는 자리, 효도하는 자리에 있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합시다. 굳센 각오도 합니다.
순종과 효도, 이런 좋은 습관은 어릴 적부터 익혀야 하며,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마음도 어린 시절에 싹이 터야 평생을 이어갑니다. 어렸을 때 받은 감동이 평생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에는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사제관계, 부부관계,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등인데 사제관계는 배움의 관계고, 부부관계는 사랑의 관계고, 부모와 자녀 관계는 은혜의 관계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것이 부모님의 은혜요, 나의 나 됨이 부모님의 은혜입니다.
이웃이나 주변과의 관계는 끝나면 그것으로 정리가 되지만 부모님과 자녀 관계는 영원히 단절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잘 유지하여야 합니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예수님처럼 잘 유지했던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을 소개하겠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수많은 사람 앞에서 정견(政見) 발표할 때 상대편 후보가 나와서 링컨을 향해 비웃는 투로 말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가 구두 수선공으로 일한 것을 아시오? 내가 지금 신고 있는 이 구두가 당신 아버지가 고쳐준 구두요. 그러자 그곳에 있는 청중 모두가 이 말을 듣고 와 하고 웃었습니다. 링컨은 잠시 침묵한 후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아버지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구두를 수선해 주는 수선공이었습니다. 나도 어렸을 때 그 일을 열심히 배웠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 아버지가 고쳐준 신발을 신은 분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구두가 낡아 떨어지거든 내가 고쳐드리겠습니다. 우리 아버지만 한 기술은 없지만 그래도 옆에서 배운 실력으로 고쳐드리겠으니 나를 찾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이 에이브러햄 링컨의 인격에 감동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직업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기를 비방하는 후보에게도 인격으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아버지 요셉의 직업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배워서 가정에 도움이 되도록 활용하였습니다.
3.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효도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
요 19: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사랑하는 제자 요한과 어머니, 이모 등이 십자가 아래 서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모친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입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요 19:26). 여기 아들입니다 라고 말한 아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까? 요한입니까?
대부분 주석가는 후자로 해석합니다. 즉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때문에 사랑하는 제자를 아들의 자리에 세워주십니다.
이어지는 27절 말씀을 잘 보십시오. 그 제자 요한에게 네 어머니라 하시니 그때부터 그 제자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평생 모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모친에 대한 사랑과 공경을 끝까지 하셨고, 요한에게 어머니의 장래를 부탁하는 과정에서 마리아도 많은 위로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왜 『여자여(γυναί)』라는 호칭을 사용하십니까? 어머니에게 왜 존칭어처럼 보이지 않는 용어를 사용하느냐 말입니다.
우선 한글 의미로는 여자여 라는 말이 비하(卑下)의 호칭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에서 이 말은 비하의 의미가 아니라 존칭어입니다.
오히려 슬픔을 위로하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이때 슬픔에 찬 마리아에게 어머니, 하고 부르셨다면 그의 마음이 더욱 격동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슬픔에 가득 찬 어머니에게 여자여, 라고 부르심으로 자기가 메시아이심을 상기시키고 어머니의 슬픔을 자제시키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처절한 십자가의 고통 중에도 자기를 키워주신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합니다. 이 장면은 효의 절대 가치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왜 모친을 동생들에게 부탁하지 않고 요한에게 부탁하십니까? 요한이 제일 믿음직했기 때문이고 이때 동생들은 믿음이 없기(요 07:05) 때문입니다. 반면 가톨릭은 예수님의 동생들 존재 자체를 부정합니다. 구원의 길을 열어주는 하나님의 어머니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외에 다른 아들을 전혀 낳지 않았습니까? 성경 여러 곳에서 마리아가 아들을 낳았다고 증명합니다. 맏아들(마 01:25), 그의 동생들(마 12:46), 그 형제들, 누이들(마 13:55, 56), 주의 형제 야고보(갈 01:19) 등입니다.
그런데도 가톨릭은 이들은 마리아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사촌들이다. 라고 변명합니다. 억지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기독교처럼 실질 효도를 강조하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십계명 중에 인간에게 주신 계명이 효도로부터 출발합니다.
사실 효도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먼저 부모님이 자식의 마음을 헤아려 알아야 하고, 자식도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아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가장 가려운 부분을 긁어 드리는 일부터 시작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효자와 불효자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효자는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울고 불효자는 돌아가신 다음에 우는 차이가 있습니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모시면서 울고, 마음이 아파서 울고, 힘들어서 울고, 부모님 사랑 깨달아서 웁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돌아가신 다음에 철이 들어 우는 불효자 되지 마십시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순댓국집에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어른의 손을 이끌고 느릿느릿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두 사람의 너절한 행색은 거의 걸인의 수준입니다.
조금은 퀴퀴한 냄새가 나는 듯합니다. 주인아저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향해 소리칩니다. 이봐요.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 다음에 와요.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앞 못 보는 아빠의 손을 이끌고 음식점 중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그때야 이들이 음식을 먹으러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어 아저씨 순댓국 두 그릇 주세요. 응, 알았다. 근데 얘야 이리 좀 와볼래? 계산대에 앉아 있던 주인아저씨는 손짓하며 아이를 불렀습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음식을 필수가 없구나. 거긴 예약 손님이 앉을 자리라서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주눅이 든 아이는 주인아저씨의 말에 금방 시무룩해졌습니다.
아저씨 빨리 먹고 갈게요. 오늘이 우리 아빠 생일이에요. 아이는 찬 손바닥에 꽉 쥐어져 눅눅해진 천 원짜리 몇 장과 한 주먹의 동전을 꺼내 보였습니다.
알았다. 그럼 빨리 먹고 나가야 한다. 잠시 후 주인아저씨는 순댓국 두 그릇을 갖다주고는 계산대에 앉아서 물끄러미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아빠 내가 소금 넣어 줄게,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금 대신 자기 국밥 그릇에 수저를 가져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국밥 속에 들어있던 순대며 고기들을 모두 떠서 앞 못 보는 아빠의 그릇에 담아 주었습니다. 아빠 이제 됐어. 어서 먹어. 근데 아저씨가 우리 빨리 먹고 가라 했으니 어서 밥 떠. 내가 김치 올려줄게. 수저를 들고 있는 아빠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히 고입니다.
예수님은 목수인 아버지를 공경하였습니다. 당시에 목수는 비천한 민중의 직업이었음에도 예수님은 목수 일 하시는 아버지를 잘 받들어 섬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시든지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존중해 주고 잘 받들어야 합니다.
부모님 모시는 것은 십자가 멍에입니다. 아픔이 있고 눈물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이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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