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결혼정보회사에서 20~30대 미혼 남녀를 상대로 결혼하면 시부모님과 같이 살겠느냐고 설문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자의 93.4%, 남자의 43.6%가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겠다는 응답입니다.
이기주의에 길든 젊은이들은 부모님 곁을 떠나야만 자유로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식을 낳아 맡길 때가 없거나 아쉬운 일이 생기면 부모님을 찾아옵니다. 급할 때는 부모님을 이용하려는 마음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삼일 가족은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사실 부모님의 존재를 늘 인정하는 것이 공경입니다.
여러분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모습은 내가 부모님의 자녀 됨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데 있습니다. 매일매일 쇠하여 가는 부모님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이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효도에 소홀합니까? 오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믿음 핑계하며 효도하지 않는 예수님 당시의 사람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 제목을 「나는 부모님을 잘 공경합니까?」로 정했습니다. 은혜의 말씀으로 들리기를 바랍니다.
1.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따릅니다. |
0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일찍부터 유대인이 지키는 장로들의 전통(개역성경. 遺傳)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유대인은 율법서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기록된 율법 외에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구전(口傳) 율법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유대교는 문서화 된 율법은 원리만으로는 복잡한 현실 생활에 제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보다 더 상세한 규범이 필요하다. 이런 견해입니다.
그리하여 랍비들이 고대의 전승 자료들을 중심으로 세세한 생활까지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장로들의 전통(傳統)입니다.
이 전통은 외형상으로는 별문제가 없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을 하나님의 계시와 같은 수준으로 여기므로 성경 이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의 목적과 정신을 버리고 외형의 세부 규칙을 상세히 규정한 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순종과 사랑에 위반입니다. 사람의 위선과 교만을 덧칠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사람은 완전한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랍비들은 율법의 정신은 지우고 그 형식을 지켜 구원받는다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율법의 외형 문자에만 매달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런 전통들을 집대성하여 문서화 한 것이 바로 탈무드(Talmud)입니다.
탈무드는 내용상 율법의 세부 규정을 담은 미쉬나(예식서)와 예식서를 풀이한 게마라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탈무드는 입으로 떠돌던 구전을 여러 편집자에 의해 정리되었습니다. 그래서 편집자들 처지에 따라 여러 종류의 탈무드가 만들어졌습니다.
조금 전 읽은 05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거칠게 항의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식사할 때 손을 씻지 않았으니 이는 장로들의 전통을 범했다는 겁니다.
물론 더러운 것보다는 정결한 것이 좋지요. 손만 씻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터인데 씻지 않으므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일을 빌미로 예수님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모래바람이 심하게 부는 곳입니다. 당연히 먼지도 많이 일어납니다. 유대인의 식사 모습이 우리와는 다릅니다.
우리는 식사할 때 숟가락을 사용하나 유대인은 숟가락이 없이 손으로 떡을 떼어서 먹었습니다. 손을 씻지 않으면 손에 묻은 땀과 먼지가 뒤엉켜 음식과 함께 입으로 들어갑니다.
식사 때에 손을 씻는 일은 위생상 좋은 일입니다. 예수님도 깨끗이 씻어야 하는 바리새인의 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묻는 것은 왜 당신 제자들이 전통을 어기느냐? 어떻게 가르쳐서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는 겁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게 항의하는 속내가 무엇입니까? 손을 안 씻은 이유보다 이미 제자들이 중한 죄를 지었으니 당신이 그 책임을 지라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과 논쟁하는 일이 어디 한두 번입니까? 그럴 때마다 장로들의 전통을 근거로 논쟁하였습니다. 장로의 전통 중 먹는 일에 대해서는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않습니다. 둘째 시장에서 돌아왔을 때 물을 몸에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않습니다. 셋째 잔이나 주발, 놋그릇 등을 씻지 않으면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법은 성경과 관계없는 일입니다.
2. 유대인들은 불효를 고르반으로 합리화합니다. |
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고르반(κορβᾶν). 헌물, 제물로서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고르반으로 선포되면 그 헌물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향한 용도 외에 쓰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에 출 20:12 말씀을 인용하여 네 부모를 공경하라(마 19:19)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다시 11절을 보십시오.
장로들 전통에 의해 제5계명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음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장로들의 전통에 의하면 부모님보다 하나님이 더 크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공경해야 할 재물도 하나님께 드리면 부모님 공경은 생략해도 된다는 논리입니다. 예수님 당신도 장로들 전통을 빙자하여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불효가 자주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자면, 자기 재산을 놓고 고르반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께 드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가져와야지 않습니까?
그런데 고르반이라고 선언은 해 놓고 지극히 작은 부분만 드린다든지 아니면 말만 선언하고 실제로 드리지 않고 있다가 자기를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고르반을 악용하여 부모님 섬기는 일을 생략하는 불효입니다. 고르반을 선언하고 고르반 약속을 안 지키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을 향한 고르반 약속도 깨뜨리는 것이고 동시에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제5계명도 어기는 죄입니다.
한 마디로 장로들의 전통은 성경의 법을 무시하면서 만든 인간 악법입니다. 이런 일을 주로 사회지도층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행하였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이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예수님은 11절을 통해서 잘못을 지적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 말씀을 폐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주님과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행전 0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아시죠? 이 부부가 자기들 재산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는 고르반 선언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얼마를 숨겨두고 하나님께 가져 나오는 바람에 하나님을 속인 죄로 죽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고르반을 선언하고 불신앙으로 무너진 사건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이 고르반 선언이 나쁘다는 의미입니까? 아닙니다. 일찍부터 유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받들고 지키기 위해서 전통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믿음 생활을 더 잘해 보려고 고르반이라는 제도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전통에 더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생각으로 바꾸었습니다. 주님께서 준엄하게 책망하실 일입니다.
마 15:0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무슨 말입니까?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는 제5계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계명으로서 고르반을 절대 갖다 붙여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성도가 교회에서 일한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에 소홀히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혹시 헌금한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용돈의 액수가 줄어들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부모님을 섬기고 효도할 시간이 없다고 변명해도 안 됩니다.
3. 나는 부모님을 잘 공경합니까? |
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사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버리는 어리석음을 떨쳐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부모님 공경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긍휼의 사랑에 감사하며 응답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이미 큰 사랑을 받은 일에 대한 은혜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에 이기주의의 계산이 조금이라도 들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님이 내게 수고하셨으니 내가 공경해야 하고, 부모님이 내게 해 준 것이 없는데 내가 무엇으로 공경을 한다는 말인가? 하고 투덜대기를 잘하는데 그게 아니란 말입니다.
마 15:0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가장 큰 메시지는 부모님에 대한 효도의 절대성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은 효의 상대성으로 접근합니다.
요즘 현실을 보십시오. 또 세상의 종교들도 보십시오. 자녀가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으므로 일어나는 사회 비난이 일정 수준을 넘어선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공경입니다. 또한 공경하는 것은 부모님의 권위를 높여드리는 일입니다. 우러러보는 마음을 가지는 일입니다.
흔히들 가장 힘들고 어려운 관계가 고부(姑婦) 관계라고 합니다. 고부간의 갈등은 어찌나 어려운지 요단강을 건너야 해결된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유대인은 결혼하면 부모와 한집에 잘 살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어느 편이 나빠서가 아니라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속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속담에 고부가 한집에 사는 것은 고양이 두 마리를 한 가방 속에 넣어 기르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경건한 어머니를 둔 자는 전혀 가난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가 여러분의 곁에 있기만 하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버지가 그 곁에 있을 때 자녀는 전혀 가난하지 않습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갈 힘을 제공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아는 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비록 아는 것이 많지 않은 부모님 밑에서 자라났다고 할지라도 믿음의 사람은 의로운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가진 것이 없고, 지위가 높지 않을지라도 덕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은 후대를 믿음으로 잘 양육해서 가문을 세우는 일입니다.
세상 이치를 보면 늘 푸를 것 같은 청춘도 사라집니다. 사랑도 시들고 우정도 때가 되면 퇴색됩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남모르는 사랑은 그 모든 것보다 오래 지속됩니다.
어버이날이라고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드리고 선물하나 사 드리면 그만입니까? 거기가 용돈이나 조금 드리면 효도를 잘한 것으로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이런 물량주의 정신은 고쳐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선물을 해드려도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감사와 공경이 없으면 무슨 효도가 되겠습니까?
얼마 전 서울에서 여러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70이 넘은 남자 노인이 혼자 오피스텔에서 살다가 죽은 지 5일 만에 발견되었습니다.
오피스텔은 혼자 살기에 편한 주거 공간입니다. 그 노인이 자녀가 없어서 혼자 산 것이 아닙니다. 혼자 사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자녀들은 생활비 제때 드리고, 때가 되면 선물도 해 드리고 또 아버지를 살기 편리한 오피스텔에 잘 모셨다고 생각했겠지만 불효였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새 중에 어미에게 효도를 가장 잘하는 새가 까마귀라고 합니다. 그래서 까마귀는 언제나 어미 새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줍니다.
만일 어미 새가 늙어서 털이 다 빠져 날지를 못하면 그때는 어미 새를 등에다 업고 다니면서 먹을 것을 찾아 봉양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미물(微物)의 짐승도 어미를 알아보는데 어찌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부모님을 잘 몰라본다면 되겠습니까? 다음부터가 아니라 오늘부터 효도의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근래 자식에 대한 유행어가 있습니다. 아들은 낳으면 1촌, 대학 가면 4촌, 군대 갔다 오면 8촌, 장가가면 사돈의 8촌, 애 낳으면 동포, 이민 가면 재외 동포가 된다는 말입니다. 점점 부모와 자식의 사이가 멀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자녀에게 재산을 안 주면 맞아 죽고, 반만 주면 쪼들려 죽고, 다 주면 굶어 죽는다는 말 말입니다. 재산 가진 부모님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줘도, 물려주지 않아도 죽을 신세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세상에 수십만 마디의 말이 있어도 그중에 가장 고상하고 좋은 말이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크고 귀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천 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십니다.
또 자녀를 위한 일이라면 손발이 다 닳아도 몸 아끼지 않는 것이 부모님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은 부모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고 늘 마음을 평안하게 해드리기를 바랍니다.
잠 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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