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1년 말씀

바울이 살아나니 모두가 살아납니다(행 28:01~1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1. 10. 23. 19:29
728x90

우리는 너무도 아름다운 것을 그냥 지나치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나 반짝이는 하늘의 별을 보십시오. 이런 아름다움을 어느 화가가 그대로 표현하겠습니까? 날마다 아름다움을 뿜는 자연을 보고도 우리는 그냥 지나쳐버립니다.

삶의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기 강단에 반 컵 물이 있습니다. 반이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반이 차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생각하는 대로 느껴집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어 가시는 방편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좀 넉넉한 마음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러한 사고력을 가졌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이후 그의 마음에는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겠다는 각오를 새겼습니다. 세상을 정복하려면 당시의 세계 중심인 로마로 뛰어들어야 합니다(행 19:21). 하나님은 복음의 꿈을 품은 사람을 통화여 그 일을 이루십니다(행 13:22).

바울은 안타깝게도 1~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유대교도의 고소로 가이사랴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예수님을 전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로마로 가서 맘껏 복음을 전하려는 바울의 계획이 중단된 체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을 지냅니다. 이에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활용하여 총독 베스도에게 자기의 재판을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받도록 상소를 청합니다(행 25:10~11). 바울의 청을 받은 총독 베스도는 즉시 허락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배경에서 바울이 미결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가는 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탄 배가 아드리아해에서 광풍 유라굴라를 만나 열나흘이나 표류합니다. 죽음을 만난 환경과 같습니다. 

거의 배가 파선 직전에서 멜리데라는 한 섬을 만나 구조를 받게 됩니다. 그때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은 책임자 백부장을 비롯하여 총 276명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와 바울의 지혜로 구원받고 3개월을 그곳에서 머뭅니다. 그동안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바울이 살아나니 모두가 살아납니다.」로 정했습니다.

 

 

 1. 하나님께서 먼저 바울을 살리십니다.

 

0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바울 일행 276명을 싣고 떠난 배 이름을 아십니까? 대부분 사람이 알렉산드리아 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배의 이름은 디오스구로입니다. 쌍둥이 형제라는 뜻입니다. 제우스 신의 쌍둥이 아들 Castor와 Pollux 신을 당시 뱃사람들이 수호신으로 여기고 뱃머리에 조각해 놓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배란 애굽 북부 지역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출발한 배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27:23~25절을 보면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이 말씀대로 로마로 가는 도중 배가 열나흘이나 표류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멜리데 섬을 만나 구조받았는데 이는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증거입니다. 멜리데는 지중해의 시실리 남쪽 약 98Km, 아프리카 북동쪽 약 320Km 지점에 있는 섬으로 전체 길이가 약 29Km 되고 너비가 15Km 정도 되는 섬입니다. B.C. 218년 로마가 제2차 카르타고 전쟁 초기에 이곳을 점령하고 행정관을 파송하여 다스렸습니다.

 

04 원주민(βάρβαρος). 말을 더듬는, 야만인 이런 뜻입니다. 개역 성경은 토인(土人)이라 하였는데 야만스럽다고 무시하는 표현입니다. 멜리데란 이름은 페니키아 사람이 붙인 말로서 피난처라는 뜻입니다. 멜리데에서 276명이 구조를 받은 자체가 피난처로 불릴만한 이름입니다.

276명 가운데는 상인들, 로마 군인들, 죄수들도 있었으니 원주민도 처음에는 난감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비가 오고 날도 추우니 원주민들은 조난자들을 위해 친절히 불을 피워 줍니다.

 

그런데 03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위해 밖에 나가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다 불을 계속 피우는데 끔찍한 일이 일어납니다. 하필 나뭇단에 들어가 있던 맹독을 가진 독사가(ἔχιδνα 에키드나) 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원주민들이 바울을 놓고 이렇게 평가합니다.

이 사람은 정말 살인을 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신의 공의가 결국 죽이는 도다(04). 원주민들은 악한 짓을 하고 들키지 않아도 그들이 믿는 신의 공의가 독사를 통해 물려 죽는다고 여겼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이런 식의 사고입니다. 특히 미신과 점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현장을 놓고 멜리데 원주민들처럼 생각합니다. 배를 타고 가다가 침몰 직전에 몰렸으니 그게 다 자기 업보(業報) 아니겠는가? 바다에서는 겨우 살아나왔는데 육지에서 뱀이 무는 것을 보아 역시 이 사람은 죄인이야.  

김삼일 가족 여러분, 살다 보면 이와 비슷한 환경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언행을 신중히 하여야 합니다. 한국인은 벌초 문화가 있지 않습니까? 벌초를 하다 뱀에 물리거나 벌에 쏘여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 넘어져 다리가 골절되고 뇌진탕을 입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에 걸리는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당신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 그런 거야. 회개해야 한다고. 또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당신 무엇인가 잘못해서 그런 거야 잘 생각해 봐. 이런 말 하면 시험 들기 알맞습니다.

 

특별한 경우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05절 제대로 보십시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 독사를 불더미에 툭 쳐서 떨어 버리자 뱀은 타 죽고 바울의 손은 조금도 상함이 없고 죽지도 않습니다. 무슨 일이든 그 결과까지 보아야 합니다.

그 결과의 시간은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 자연의 원리로 보면 바울은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크게 하실 일이 있기 때문에 바울이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살려주십니다. 바울은 특별한 목적을 띠고 로마를 방문하기 때문입니다.

 

 

 2. 바울이 살아남으로 복음 전파의 기회가 열립니다.

 

0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03….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문장 구조를 보십시오. 독사가 오랫동안 바울의 손에 매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원주민들은 바울이 즉각 부어오르거나 아니면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즉각 대처하지 않습니까? 이런 뱀에 물리면 대부분 죽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으로서는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마땅히 대응할 방법도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의사 누가도 즉각 대책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이상이 나타나지 않자 이번에는 원주민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θεον) 하더라. 그들은 바울이 즉시 죽을 줄로 알았는데 죽지 않고 살아 있자 한참 생각한 후에 한 말입니다. 헬라인이나 로마인의 신에 대한 관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많은 신을 믿고 섬겼고 신들은 계보와 등급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 신이 누구입니까? 제우스(Zeus)입니다. 로마 신화에서는 주피터(Jupiter)입니다.

원주민들은 바울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달리 해명할 길이 없어 신(神)이라 칭합니다. 바울을 신의 심판을 받은 자라고 단정했다가 이제는 신으로 고백합니다.

 

세계에서 최고로 많은 신을 섬기는 나라가 어디일 것 같습니까? 일본입니다. 약 8백만 정도의 신을 섬기는 한 마디로 온갖 잡신을 섬기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도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민간 신앙을 연구한다며 무속(巫俗)인을 인간문화재 수준으로 대접하니 말입니다.

바울의 1차 선교 현장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 이르렀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혹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멜리데 원주민들과 전혀 다르게 행동하였습니다(행 14:11~18).

 

당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장애인을 향하여 바울이 큰 소리로 명령합니다.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그 말을 들은 장애인이 즉각 일어나 걸었습니다. 그러자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소리를 지릅니다.

신들이 사람의 형상을 입고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습니다. 한 분은 제우스 신이고 한 분은 헤르메스 신입니다. 라고 외칩니다. 왜 바나바를 제우스로 표현합니까?

아마 바나바가 큰 체구를 지녔을 것이기에 그렇게 불렀을 것이고 바울을 헤르메스로 표현한 것은 언어를 지배하는 신 헤르메스로 인식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리가 특별 행동을 합니다.

 

행 14: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제사장이 가져온 황소와(ταυρους) 화환들을 보십시오. 제사장이 직접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인정하고 섬기기 위해서 가지고 온 정성의 예물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멜리데의 원주민들은 바울을 신이라 하면서도 예물 드리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을 경배의 대상이 아닌 신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의미에서 신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인해 멜리데에서 제일 높은(πρωτω 프로토) 사람 보블리오가 바울과 함께 일하는 누가와 아리스다고를 집으로 초청하여 극진하게 접대합니다(행 27:02). 바울은 보블리오의 접대를 받으면서 그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있음을 보았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죽을 수도 있는 병입니다.

바울은 이 현장을 복음 전하는 기회로 알고 안수기도를 하여 낫게(ἰάομαι) 합니다. 이로 인해 사흘이나 그 집에 머물렀습니다. 이 일이 바로 복음의 문이 열리는 현장입니다. 바울이 독사에 물리는 사건 때문에 이런 자리에까지 왔습니다.

 

 

 3. 바울로 인해 모두가 살아났습니다.

 

0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사도행전 저자가 누가임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의사 출신인 누가는 의약품보다 더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소개합니다.

바울의 안수로 보블리오의 아버지 열병과 이질이 떠난 것도 사람의 의술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임을 밝힙니다. 기도의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보블리오의 부친이 고침을 받았으니 이 뉴스는 섬 안에 금방 퍼져나갔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병자들도 찾아와서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09절의 고침을 받고라는 고침(θεραπεύω 데라퓨오)은 의학 용어입니다. 바울의 능력을 통하지 않아도 될 가벼운 병은 누가도 함께 치료하였다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바울의 이적으로 고침을 받은 것을 의학상 완치 판정을 밝히는 문구입니다. 멜리데 섬 전체에 예수 바람이 강하게 불었습니다. 예수님의 계절이 임하게 하였습니다.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사랑의 가치는 주고받는 데 있습니다. 대접이란 치료에 대한 사례보다는 고마운 일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현입니다. 멜리데 주민 모두가 특별 은혜를 받고 마음이 감동되어 겨울이 지나도록 3개월간 276명 모두를 잘 보살펴 주었습니다.

배를 수리하는데도 협력하였고 멜리데를 떠날 때는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 항해에 필요한 식량과 각 필수품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자 바울 한 사람에 의해 모두가 생명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돌보시고 은혜 베푸시는 신실한 증거입니다(행 27:24).

 

인생살이의 행복은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부정직한 사람과 어울리다 보면 당장은 경제 유익이 될지는 모르지만 자기도 부정직해집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성도를 만나도 질이 좀 안 좋은 성도를 구분하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어울리면 불신앙을 배우기 쉽습니다.

여러분께 다시 말씀드립니다. 교회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내뱉는 사람, 목회자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 성도를 비난하는 사람과는 친구 관계를 맺지 마십시오. 손해 봅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 탈선행위 심각한 문제 아닙니까? 대부분 친구를 잘못 만나서 일어난 일입니다. 친구 때문에 인생 망치는 일 허다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동행하십시오. 믿음이 좋아질 것입니다. 경건한 사람과 동행해 보십시오. 말씨가 달라질 것입니다.

입술에 감사가 있는 분, 입술에 찬양이 있는 분, 입술에 사랑이 있는 분과 일주일만 지내보십시오. 먼저 자신에게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은 나 때문에 이웃 사람의 삶이 달라지는 일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살리셨고, 바울은 멜리데의 추장 아버지를 살렸고, 멜리데의 주민들은 바울 일행을 살렸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바울이 멜리데에 교회를 세웠고, 보블리오 추장은 멜리데의 초대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멜리데는 바울로 인해 주민을 구원하는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롬 0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이 말씀이 바울에게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뱀을 손으로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한다는 말씀은 의학의 차원이나 자연법칙에 맞지 않습니다.

다만 믿는 자에게는 이런 기적과 표적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항상 그렇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궁금해서 혹 시험해 보기를 원합니까? 할 수 있으면 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는 것이지 하나님을 시험하는 그런 불신앙에는 이런 표적이 따르지 않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는 은혜의 종착역이 아니라 은혜의 샘물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의 종착역이란 은혜가 끝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 흘러가야 합니다.

바울은 생명을 살리는 복음의 통로 은혜의 통로 역할을 하였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울에게만 머물지 않고 계속 흘러갔습니다. 276명이 타고 있던 배에 흘러갔습니다. 멜리데 원주민들에게 흘러갔습니다. 이제 로마에까지 가서 그 은혜를 흘러넘치게 하려 합니다.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살리십니다. 여러분을 통해 온 세계를 살리려는 하나님의 뜻 때문입니다. 김삼일 가족 모두 은혜의 종착역이 아니라 생명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