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1년 말씀

하나님의 사람은 선한 싸움을 합니다(딤전 06:11~14 ).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1. 11. 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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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왕(Alexander. 마케도니아 B.C. 356~323)이 페르시아를 정복하기 위해 전장에 나갔을 때의 일입니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적군의 수가 아군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 순간 병사들은 이제 우리 삶이 끝나는가 보다 하며 겁에 질리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알렉산더 왕은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 올릴 방도를 찾아야 했습니다.

이에 겁에 질린 병사들 앞에 알렉산더 왕이 나타나서 큰 소리로 말합니다. 내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 신의 계시는 이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우리가 승리할 것이고 뒷면이 나오면 페르시아 군대가 이길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알렉산더 왕이 동전을 높이 던졌습니다. 숨이 멈출 것 같은 긴장 속에서 땅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왕이 들어보니 앞면이 보입니다. 그러자 병사들의 환호성이 터집니다.

곧장 병사들은 사기충천하여 용감히 싸워 승리를 일구어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한 장군이 알렉산더 왕에게 물었습니다. 전쟁이 동전 앞면이 나온 것처럼 이렇게 승리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알렉산더 왕이 대답합니다. 사실 그 동전은 앞뒤가 같은 앞면이었다네. 전쟁의 승리는 마음먹기에 달렸지.

 

여러분은 김해삼일교회 일에 동참하기를 원합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할 수 있다는 마음의 각오가 있습니까? 내가 참여하면 잘 될 것 같은 감이 옵니까? 그러면 잘 됩니다.

아니면 이번에는 잘 안될지도 몰라. 이런 생각입니까? 그러면 잘 안 됩니다. 긍정의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들은 지금 복음의 전략과 교회의 확장이라는 두 가지의 주제를 안고 있습니다.

복음의 전략을 잘 세워야 하고 교회의 부흥을 위해 내가 직접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하나님의 사람은 선한 싸움을 합니다」로 정했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으로 선한 싸움을 합니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로 시작하는 문장구조를 보십시오. 여기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호칭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이 호칭은 주로 구약시대의 선지자나 특별한 인물에게 붙었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신 33:01), 하나님의 사자(삼상 02:27), 엘리야(왕하 01:09), 다윗(대하 08:14), 선지자(대하 11:02) 등에게 붙여진 호칭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대단한 호칭을 디모데에게 붙입니다. 디모데야 너는 어떤 존재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며,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이런 뜻입니다. 너는 세상 사람처럼 그런 시시한 사람이 아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고 평생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살라는 격려입니다.

 

그러면 제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특별한 호칭이 디모데 외에 또 받은 사람이 있을까요? 직접 적용된 경우는 없고 간접으로 적용되는 사람은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에게 적용되었습니다. 그러면 디모데가 목사이니 혹 목사들만 받는 호칭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는 일 차별 있습니까? 없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아 봉사하는 일도 차별 있습니까? 없습니다. 자기가 게을러 직분을 차 버릴 뿐입니다.

교회를 운영하는 당회가 사람 차별하여 직분 맡기고 안 맡기고 안 합니다. 당회는 할 수만 있으면 일꾼을 많이 세웁니다. 디모데후서 03장 17절을 보면 말씀을 가르치며 복음 전하는 자에게 이 호칭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딤후 0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믿는 날부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에게 이 호칭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호칭은 사람의 관점으로 줄 수 없습니다. 사람이 보는 관점은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나름대로 짐작만 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평가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사명을 맡겨 사용하시는 사람,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그 사람의 말은 하나님의 말과 같아야 하고, 그 사람의 모습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모습이 나와야 합니다. 누가 이런 모습을 나타내 보일 수 있습니까? 순교자 스데반처럼(행 07:56) 하나님과 사이에 믿음의 열린 창이 있는 사람입니다.

 

행 0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믿음의 비밀(딤전 03:09)과 믿음의 창문이 있는 분은 세상 유혹을 잘 헤쳐나갑니다. 믿음의 시험은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도 적용되는 말이 있습니다.

유치원생. 울면 진다. 초등학생. 코피 나면 진다. 중학생. 많이 맞은 쪽이 진다. 고등학생. 넘어지면 진다. 사회인. 때리면 진다. 그리스도인. 낙심하면 진다. 도중에 포기하면 진다. 그러나 김해삼일교회를 중심으로 말씀과 더불어 복음 전하는 일에 마음 쏟는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2. 좋은 전략으로 선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선한 싸움을 싸우라.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이 들으면 이 문구가 혹 이해하기 곤란할 수 있습니다. 싸우라고 하였으니까요. 우리나라 조폭 같은 싸움꾼들 주로 어디에 삽니까?

여의도와 서초동에 삽니다. 그쪽 사람들 조심해야 합니다(?). 싸우라(αγωνιζου 아고니주). 바울이 이 말씀을 기록할 때는 올림픽 같은 운동 경기가 고린도를 중심으로 처음에는 2년, 나중에는 4년 단위로 열렸습니다. 바울이 싸우라고 권하는 뜻은 그때의 경기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싸우라는 의미는 육체의 싸움, 병기를 가진 싸움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애쓰라. 믿음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힘쓰라. 선한 싸움을 잘하라. 그런 말입니다. 

 

고전 0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전쟁의 탁월한 전략을 보겠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요단강 동쪽에 머물고 있습니다. 목적지가 눈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이 그냥 비어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이스라엘보다 더 많은 숫자, 더 좋은 무기, 더 좋은 방비를 갖춘 원주민 일곱 족속이 버티고 있습니다. 일찍 철광산을 개발하여 신무기인 철제 무기와 전차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이스라엘은 청동제 무기와 원시 수준의 무기입니다. 특별한 전략이 없으면 가나안 정복은 불가능한 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특별한 전략을 펼치십니다.

 

이런 환경에서 여호수아의 전략이 빛을 발합니다. 여호수아가 먼저 공략한 성이 어디입니까? 여리고 성입니다. 왜 여리고부터 공격합니까? 가나안은 남북으로 이어진 지형으로 그 가운데 있는 곳이 여리고입니다. 여호수아 전략은 가나안의 중앙부에 위치한 여리고 성을 먼저 공략하였습니다. 

다시 내륙으로 들어가서 가나안을 남북으로 분리하여 남북 연합을 차단한 전략입니다. 그렇게 한 후 먼저 남쪽을 정복하고 다시 북쪽을 정복하였습니다. 다 하나님의 역사로 된 일입니다.

 

싸움에는 다양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병기를 사용하는 육체의 싸움도 있고 신령한 무기를 사용하여 영혼을 구하는 믿음의 싸움도 있습니다. 싸움이라고 할 때는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상대를 이기기 위한 전략과 전술입니다.  전략은 나아가야 할 길의 목표를 어디로 정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고 전술은 정해진 그 목표에 어떤 방법으로 갈 것인가를 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전하는 저의 메시지 핵심이 선한 싸움으로 교회를 확장하는 전략입니다. 곧 펼쳐질 동상동에서 복음의 전략과 전술을 잘 세워야 합니다. 전략은 목회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공되어야 합니다. 아동 사역, 청소년 사역, 노인 사역의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무료 칼갈이 전도도 홍보를 하여 다시 하려고 합니다.

 

또 층별로 여유가 있는 공간을 활용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누구를 데리고 오든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리겠습니다. 주방 시설이 필요합니까? 4층 식당 시설 마음껏 이용하십시오.

휴식할 수 있는 공간도 365일 언제든지 제공하겠습니다. 손님을 모셔와도 됩니다. 노숙자자 의지할 곳 없는 사람도 데리고 오면 임시 거처를 제공하겠습니다. 샤워 시설을 이용할 때 물 많이 쓴다고 전기 많이 쓴다고 눈총 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김장철에 배추 가지고 와서 물을 쓰셔도 됩니다.

세운 전략을 잘 추진하는 전술도 중요합니다. 선한 싸움의 전략과 전술은 함께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16)

 

 

 3. 나는 선한 싸움을 신실하게 감당하겠습니다.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너 하나님의 사람아. 우리 교회 성도에게 절대 필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문제를 해결되고 상황을 반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모두 한곳을 향하여 갑니다. 통행의 수단으로서 길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답게 사는 길을 갑니다. 오직 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법궤를 실은 수레를 끌며 블레셋 아스돗에서 벧세메스를 향해 송아지를 떼어놓고 대로로 가던 암소 두 마리처럼 우리도 곧은 길 믿음의 길을 나가야 합니다(삼상 06:01~12).

 

삼상06: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이 명령을 지키라.

 

13 명하노니(παραγγέλλω 파랑겔로). 동사로서 이 단어는 공관복음에서는 오직 예수님께서 명령하실 때 사용되었고 공관복음 밖에서는 주로 사도들이 사용하였습니다.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닌 그만큼 무게 있는 단어입니다.

 

14 명령을(εντολην 엔톨렌) 지키라. 이 단어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11절과 12절에 언급된 명령을 다시 확인시키는 장면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님께서 오시(επιφανειας 에피파네이아스)는 그날까지 선한 싸움을 잘하라고 명령합니다. 그 명령을 반드시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잘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덕목 두 가지를 안내합니다. 흠이 없는 생활과 책망받을 것 없는 생활입니다. 이 부분을 좀 더 확장하여 11절에서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누구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 아닌 예수님의 성품을 말합니다.

우리는 선한 싸움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혼을 사랑하여 세우는 전략과 전술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한 싸움의 대상이 세상과 어둠의 주관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엡 0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면 우리 교회를 해하는 대상과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나의 감정을 건드리는 사람입니까? 악한 영 사탄과 그에 미혹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탄과 그의 조종을 받는 권세와 싸우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으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권합니다.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잠 24:06).

 

선한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조절일 것입니다. 성령님의 아홉 가지 열매 중의 절제가 바로 이 조절을 뜻합니다. 선한 싸움은 자기를 잘 조절할 때 승리합니다. 선한 싸움의 기본이 자기조절입니다. 

믿음의 선진들 역시 자기를 잘 조절할 때 승리하였습니다. 반면 자기조절이 안 될 때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그랬고, 삼손이 그랬고,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실패한 현장을 보면 언제나 조절의 결여입니다. 먼저 나를 조절하는 힘을 구하는 게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모두가 조절하는 힘을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한 싸움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교계에서 기독교를 말할 때 개신교(Protestant)라고 부릅니다. 저항자라는 뜻입니다. 무엇에 대하여 저항한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 16:16~18). 라고 고백한 베드로의 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를 반대하는 세력입니다. 대제사장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자신의 업적과 노력만으로도 천국에 갈 수 있고 또 천국도 살 수 있다고 믿는 자들에 대한 저항입니다.

한 마디로 면죄부를 사야 연옥에서 지옥으로 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이방 종교 로마 가톨릭에 대한 저항입니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선한 싸움을 할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감동으로 전략과 전술을 받으면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동참하기만 하면 선한 싸움에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을 받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헌신의 자리에 나오면 가능한 호칭입니다. 이 호칭 따라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