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1년 말씀

형제끼리 잘 지내야 합니다(옵 01:10~1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1. 10. 9.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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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육신의 형제끼리 나누는 정은 세상 그 어떤 사람과의 사랑보다 두텁다는 뜻입니다. 육신의 형제뿐만 아닙니다. 이웃 간에도 잘 지내야 합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이웃사촌입니다.

세상에는 약 206개 나라가 존재합니다. 현재 유엔[United Nations. 國際聯合]에는 193개국이 가입되어 있고 참관 회원국(Observer State) 교황청 바티칸과 팔레스타인을 합쳐 195개입니다.

우리나라는 1991년 9월 17일에 가입했습니다. 유엔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다수 국가로 인정받아 올림픽에 참전하는 국가까지 확대하면 206개 국가이고 월드컵 출전 국제축구연맹(FIFA) 국가까지 하면 211개국이 됩니다.

이 많은 나라 가운데 같은 민족이면서 분단되어 살아가는 나라는 남북한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남북한 관계는 더욱 잘 지내야 할 사이입니다. 형제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치 구조와 경제 등 국력에서 차이가 크다 보니 잘 지내기보다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입니다. 넓게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을 돌아보면 남북으로 나누어 지내면서 서로 침략하던 때가 더러 있었습니다.

오바댜는 오늘 말씀을 통해 에돔에 대해 경고합니다. 형제국가끼리 잘 지내야 하는데 왜 그렇지 못하고 유다를 침략하여 고통을 주느냐고 경고합니다.

어느 나라보다도 더 잘 지내야 할 사이인데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형제끼리 잘 지내야 합니다」로 정했습니다. 형제 사랑 실천을 배우는 시간 됩시다.

 

 

 1. 형제국가끼리 잘 지내야 합니다.

 

10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본서가 기록이 된 연대는 먼저 저자 오바댜가 어느 시대 선지자인가부터 규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01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기록 연대의 견해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략하여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던 당시(B.C. 586년)를 기록 연대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고 오바댜 처음 설교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에돔은 유다의 모든 대적을 대표하는 민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사 34장, 겔 35장). 이 에돔이 유다의 몰락을 보면서 의기양양하며 마음껏 조롱하였습니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에돔의 이런 행위에 대하여 책망하였습니다(애 04:21, 22).

 

사실 형제국가가 어려움 당하면 먼저 안타까운 마음부터 들어야 합니다. 에돔과 유다가 어떻게 형제국가가 됩니까? 두 나라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에서와 야곱은 이삭의 쌍둥이 아들이고 어머니는 리브가입니다(창 25:23~26).

그러면 에서가 왜 에돔으로 불립니까? 에서가 팥죽 한 그릇 때문에 장자권을 야곱에게 판 이후로부터 붉다는 의미의 별명으로 에돔이라 불렸습니다(창 25:30).

현재 에돔과 유다의 관계를 봅시다. 이삭으로까지 그슬러 올라가면 뿌리의 관계입니까? 가지의 관계입니까? 뿌리의 관계입니다. 뿌리로 보면 평화의 길이 열리고 가지로 보면 남으로 보입니다.

같은 뿌리의 국가로 보면 상대가 어려움을 당할 때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에돔은 그런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유다 왕국의 멸망을 즐겼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남북 왕조 때도 형제 나라끼리 침략하던 일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 전쟁 후유증이 어떠했습니까? 무엇보다 국력 쇠퇴를 가져왔습니다. 이방인들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나타났습니다. 세상 그 어떤 일보다 형제끼리 싸우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은 벌이지 말아야 합니다.

에돔은 에서의 후손입니다.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과는 가까운 형제 나라입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만 해도 하나님에 의해 이스라엘의 형제국가로 인정되었습니다

 

신 23:07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음이니라.

 

그러나 에돔은 이스라엘의 진로를 방해하였습니다. 최악의 적대 관계로 만들었습니다. 10절을 잘 보십시오. 오바댜는 에돔에 대한 메시지에서 네 형제 야곱에게 포학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포학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포학(חָמָס 하마스 暴虐)은 폭력, 난폭, 부당행위라는 말로서 모든 불의한 행동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에돔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런 불의를 행한 이유로 멸망을 선고받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과거에는 서로 침략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는 때입니다. 에돔도 곧 멸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그런데 에돔은 유다의 멸망을 내심 즐겼습니다.

도와야 할 의무가 있어도 돕지 않습니다. 오히려 난폭한 공격을 하여 재물을 약탈해 갔습니다. 머지않아 자기들도 멸망할 것이란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꼭 중국이 대만을 박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2. 형제국가에 악을 행하면 행한 대로 보응을 받습니다.

 

15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오바댜는 형제국가 유다에 악을 행한 에돔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심판을 어떻게 행하실지 그 원칙을 선포합니다.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벌할 날이란 하나님께서 벌하시는 날 바로 여호와의 날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여호와의 날이 여러 곳 나오는데 한결같이 무서운 심판을 뜻합니다.

 

욜 02:01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습 01:14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구약성경에서 여호와의 날은 빛이 차단된 어둠의 날입니다(암 05:18~20).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를 심판하는 날입니다. 맹렬히 노하여 죄인을 멸하는 날입니다(사 13:06~09).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형벌이 집행되는 날입니다.

15절은 그날이 가까웠다고 선언합니다. 시간상으로 보면 제일 가까운 날은 에돔이 멸망하는 날이며 넓게 적용하면 인류 전체가 멸망하는 날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서 제1 수신자는 에돔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제2 수신자는 누구입니까?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형제국가를 억울하게 하였거나 형제를 억울하게 한 일이 있습니까? 먼저 우리 자신부터 냉정하게 돌아봅시다.

없습니까? 다행입니다. 그러면 혹 형제간에 억울하게 한 일은 없습니까? 없다면 그것도 다행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전하는 말씀에 아멘 할 수 있습니까?

 

엡 0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인류 전체에 임할 만국을 벌할 날은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오바댜가 예언한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2600년 동안 여호와의 큰 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믿음의 감각이 살아 있으면 느낄 수 있고 믿음이 감각이 죽어 있으면 느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와 우리의 시간표는 차이가 납니다. 시간 개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시간표가 다름을 사도 베드로가 이렇게 안내합니다.

 

벧후03:0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김삼일 가족에게 물어봅니다. 2001년 9월 11일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 펜타곤에 벌어진 항공기 자살 테러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이 사건으로 3천 명이 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 후 교회는 한동안 전도하지 않아도 꽉 찼다고 합니다.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이 교회로 왔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난 후 여러 해가 지나자 교인들이 다시 반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임박성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설 때 어떤 선언을 하시는지 제가 성경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여호와께서 그날에 만국을 벌한다는 말은 아무도 심판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권력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 여호와의 날을 맞게 됨에 대한 선포입니다.

 

 

 3. 악인은 심판 후에 영원한 고통을 당합니다.

 

16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 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15절까지는 이인칭 대명사가 에돔에게만 적용되었습니다. 그러나 16절에서 갑자기 이인칭 단수가 너희라는 복수로 바뀌어 나옵니다. 우리도 에돔과 같은 죄를 지으면 에돔처럼 된다는 뜻입니다.

성산에서 마신 것 같이. 마신다는 의미는 흥청망청 지내는 생활의 표현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과 수치를 이렇게 당한다는 선언입니다(합 02:15, 16). 에돔의

모습을 보십시오.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략에 빌붙었습니다. 형제국가를 침략하여 고통을 안기고 승리에 도취 되어 있습니다. 도에 넘치는 행동을 서슴없이 합니다.

바벨론의 이스라엘 침략에 숟가락을 얹고는 하나님의 성산 예루살렘에서 승리를 만끽하는 축하주까지 마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형제국가를 침략한 에돔의 죄, 약탈을 일삼은 죄를 모르시겠습니까? 그 대가(代價)가 어떠한지를 선언하십니다. 너희가 내 성산에서 축하주를 마신 것처럼 갚아 주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오바댜를 읽으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세밀하게 에돔 사람의 사상과 행동을 달아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에돔의 중심에 있는 교만을 아십니다. 예루살렘 시민의 재물 약탈 사건도 아십니다. 도망하는 유다 사람을 잡아 원수에게 넘겨준 일도 아십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사악한 행위를 한 에돔에게 선언하십니다.

머잖아 너희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을 침략한 모든 사람이 심판의 잔을 마시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산이 어디지요? 시온산(17)입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의 별명입니다.

에돔은 예루살렘을 침략한 그곳에서 승리에 축하주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본래 있던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소멸하고 맙니다.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에돔이 추구하던 쾌락이 모래성처럼 무너짐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잔을 비켜 가는 것은 불가능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싫다고 해서 그 심판이 소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러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지옥을 믿지 않는다. 심판도 받지 않는다. 두렵지 않다.

이렇게 말한다고 심판이 피해 갑니까?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그 누구도 변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해갈 수 있는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서 건져줄 구원자도 필요합니다. 그 피난처와 구원자 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입니다.

 

롬 05:0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이제부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모든 일에 대하여 행한 대로 갚으시는 공의의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채찍을 면할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대상에 오른 자가 누구입니까? 에돔입니다.

이 에돔은 역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현재 에돔이란 나라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람은 역사의 흔적을 통해 변화와 도전을 꿈꿉니다. 도전하는 사람만이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형제를 억울하게 한 에돔의 모습이 내 속에 있는가 돌아보는 시간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한 남자가 새로운 마을에 이사를 한 첫날, 짐 정리가 끝나기도 전에 마을 전체에 정전이 되었습니다. 남자는 더듬거리며 수북한 짐 사이에서 양초와 성냥을 겨우 찾았습니다.

그때 밖에서 똑똑하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한 어린이가 인사와 함께 말을 건넵니다. 아저씨 양초 있으세요?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남자는 이사 온 첫날부터 나에게 양초를 빌려달라니 만일 지금 양초를 빌려주면 앞으로도 계속 이것저것 빌려 달라고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앞에 있는 어린이에게 양초가 없다고 했습니다. 어린이를 돌려보내려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 이 어린이가 소리칩니다. 아저씨 잠깐만요. 이사 온 첫날부터 정전 때문에 불편하실 것 같아서 제가 양초를 가지고 왔어요. 하면서 양초 2개를 내밀었습니다. 얼마나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입니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타인과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는 제사장처럼 됩시다. 끊어지고 멀어진 관계를 연결하는 역할이 김삼일 가족의 할 일입니다. 제사장 된 우리는 이웃과 이웃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형제를 돌아보는 좋은 마음을 가집시다.

아직 없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형제 사랑을 다시 점검합시다.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아멘입니까?

제사장의 목표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를 올리는 데 있고, 제사장의 삶은 하나님을 향한 거룩에 있습니다. 이 삶을 통해서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 회복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