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퀸스대학교(Queen's University) 심리학자 팀이 평범한 하루 일상을 보내는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하나의 생각을 끝내고 다음 생각할 때까지를 조사한 연구인데 평균 6천 번쯤 생각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중 90%가 부정(否定)의 생각이고 또 90%는 전날과 같은 생각이라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사람이 하루 약 4만 가지 정도를 생각한다는데 숫자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하루 동안 의도를 가지고 생각하는 것도 있고,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생각이 선하지 못한 것과 관계가 많다고 합니다.
문제는 내 마음을 스치는 좋지 못한 생각이 적절히 중단되면 좋겠는데 계속 악인의 길을 기웃거리는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에게도 하루에 수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또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 떠오르는 생각을 구분해 보십시오. 용기와 격려를 뒷받침하는 생각과 좌절과 낙담을 주는 생각 이 두 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 마음을 스쳐 가는 생각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 안 좋은 감정을 유발하는 일입니다.
결국은 악인의 꾀를 쫓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인격과 성격으로 자리 잡고 마침내 불행한 인생길에 접어듭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심령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인의 꾀에 빠져 불행의 길을 갈지 모릅니다.
시편 1편은 150편 전체를 여는 장으로 시편 전체의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시에는 01~03절까지 의인의 길을 소개하고 04~06절은 악인의 길을 소개합니다.
복을 받는 사람은 나름대로 특징이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항상 복 받는 말을 합니다. 긍정의 사고력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항상 이웃을 축복하며 삽니다.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나름대로 특징이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항상 덕 안 되는 말을 합니다. 부정의 사고력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항상 이웃을 시기하며 삽니다.
01~03절 말씀은 오래전(2009.4.26.) 당신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전했고 오늘은 「악인의 길은 멸망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1. 악인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
0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악인들은(רָשָׁע 라샤). 이스라엘 사회에서 악인이라고 할 때는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악인이란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죄인으로 입증된 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떠나 자기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길은 항상 죄로 연결됩니다.
세상 사람 모두 죄인 아닌 사람 없습니다(롬 03:10, 23). 우리 모두 죄의 씨를 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행하는 일이 죄 아닌 것이 없다. 이렇게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쫓아다니는 죄인이 아니라 죄를 피해 다니는 죄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자신이 받은 복을 베풀며 삽니다. 복 있는 사람은 그 삶의 자세와 태도가 건강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삽니다. 구약성경을 좀 예리하게 읽으셨으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의인으로 인정한 세 사람을 보셨을 것입니다. 누구인지 아시죠? 노아 다니엘 욥입니다.
겔 14:20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들 세 사람 모두 죄가 전혀 없는 사람입니까? 의인이 아닙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원죄가 있고, 살아가면서 짓는 자범죄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을 의인으로 인정한 것은 그 시대의 그 어떤 사람보다 의로운 자였다는 의미입니다. 시편 기자가 여기서 말하는 악인은 어떤 사람일 것 같습니까?
고의성과 상습성을 띠고 계획을 세워 죄를 짓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죄에 내어 주고 다른 사람도 죄의 길로 인도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악인이라고 할 때 바로 이런 사람을 말합니다.
악한 주제를 한번 정하면 생각 속에 집을 지어 주고 계속 양육하다 때가 되면 입으로부터 본격 출격시킵니다.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서 오만불손(傲慢不遜)한 생활을 합니다. 그러고도 자기가 악인의 길을 가는지 모릅니다.
잠 04:19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여러분은 악인의 삶과 의인의 삶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도덕과 윤리의 차이입니까? 아닙니다. 그 심령에 주님께서 거하시느냐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인본주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삶을 삽니다. 하나님 말씀은 나의 발에 등이요, 길에 빛입니다(시 119:105) 라고 고백합니다.
이 빛을 따라가지 않고 곁길로 나가는 자가 악인입니다. 악인은 큰 흉악한 죄를 지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표와 방법이 잘못된 사람입니다.
악인은 하나님 말씀 따라 살지 않고 자기의 생각이나 의지와 욕심의 길을 걷는 곳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인본주의 방법으로 복을 추구하는 삶의 자세를 01절은 악인의 꾀로 표현하였습니다.
2. 악인은 의인의 모임에 들지 못합니다. |
0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의인들의 모임(עֵדָה 에다). 의인의 모임이란 하나님의 심판 또는 판단 앞에서도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자의 모임을 말합니다. 이들은 악인의 행동과는 구별되어(01, 02) 거룩한 곳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며 찬양하는 일을 주목적으로 삼습니다(시 111:01, 118:19, 20). 의인의 모임이란 죄가 없는 자의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구별된 자의 모임입니다. 모임이란 단어의 본 의미는 장소입니다.
그러면 구약시대 의인의 모임 장소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소나 성전을 뜻합니다. 범위를 좀 넓히면 오늘의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령한 상징으로 마지막 때 모든 성도가 모일 새 예루살렘을 뜻하는 곳으로 적용해도 됩니다.
악인은 바로 이런 신령한 곳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제일 불행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의인의 공동체인 교회에 들지 못하는 일이요 떨어져 나가는 일입니다.
이 일이 최고 불행입니다. 악인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의 공동체를 수시로 조롱하고 멸시합니다. 불쾌감을 주는 말과 낯 뜨거운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더욱 의인의 공동체를 폄훼합니다. 악인이 의인의 모임을 함부로 욕해도 됩니까? 이런 자에게는 심판이 기다립니다.
05절 앞부분 잘 보십시오. 악인을 위해 하나님께서 심판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행동에 계속 침묵하시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악인의 마음 상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전 08:11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의인의 삶과 비교가 되는 악인의 행동에 대한 묘사입니다. 솔로몬은 의인의 모임에 들지 못한 악인의 특징을 또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잠 04:16). 예수님도 의인의 모임에 들지 못한 자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공동체 생활을 하다 가끔 이탈하는 자를 볼 수 있습니다. 온갖 불평을 늘어놓으며 이를 박박 가는 곳으로 가는 자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봅시다.
교회에 문제가 있다고 악평하며 교회에 책임을 막 돌립니다. 교회 성도가 정말 잘못했다고 봅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의인의 모임에 들지 못하도록 간섭하신 일로 여기십시오. 교회의 원리는 하나님은 마지막 날까지 악인도 의인의 모임에 머물게 하십니다(마 13:30).
그런데도 끝까지 회개의 자리로 오지 않으면 그때는 가라지를 뽑아내 버리듯 악인을 의인의 모임에서 뽑아 버립니다. 마 13장을 아십니까? 일명 천국 비유장인데 이 가운데 48절 기억하십시오.
마 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어부가 좋은 고기는 그릇에 담고 별 가치가 없는 고기는 내버리듯 예수님은 악인을 의인의 모임에서 퇴출하신다는 뜻입니다. 또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도 의인의 모임을 박차고 나간 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심판의 가위로 제거해 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요 15:02).
3. 악인의 길은 결국 멸망입니다. |
0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אָבַד 아바드). 죽다 사라지다 이런 뜻입니다. 시편 01편 기자는 여기서 선택받은 백성의 영원한 복과 악인의 멸망을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의인이 가는 길과 악인이 가는 길의 기준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람의 기준이 아닙니다.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인정하시면 의인의 길이 되고 인정하지 않으시면 악인의 길이 됩니다. 06절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주권 사상 구절입니다. 악인의 길은 망한다는 말은 악인의 최후를 말합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소멸해 버리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의 길을 인정하신다는 표현은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인도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이야말로 사람이 지향하는 궁극 목표입니다. 반면 악인의 길로 나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냥 버려두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시면 어떻게 됩니까?
즉각 심판이 임하는 때도 있고 때로는 악인에 대해 심판이 길게 지체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자에게 즉각 멸망을 내리지 않고 시간을 지연시키십니까? 솔로몬이 악인에게 멸망이 즉각 시행되지 않는 일을 이렇게 해석하였습니다.
잠 16:0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따라 만물을 지으셨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만물과 그것을 통해 발생하는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라는 예정 속에서 성취되어 갑니다.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다는 말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 때까지 악인을 심판의 재료와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뜻입니다. 사람에 대한 절대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따라서 그분을 향한 삶의 태도와 방향에 따라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고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결정됩니다.
악인의 길은 결국 망한다는 사실을 솔로몬이 기록한 잠언으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잠 02:22),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고(03:33),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고(05:22),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고(10:06),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고(11:07), 악인은 입으로 그의 이웃을 망하게 하고(11:09), 악인은 불의의 이익을 탐하고(12:12), 악인은 남의 재앙을 원하고(21:10), 행악자는 장래가 없습니다(24:20).
시 146:09절은 하나님께서 이런 악인의 길을 굽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멸망의 함정에 빠뜨려 무너뜨린다는 뜻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06절 같이 읽읍시다.
06절은 05절의 악인에 대한 결론이며 01편 전체의 결론입니다. 시편 01편 기자는 의인이 승리하는 것과 악인이 패망하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이냐 아니냐에 달려있음을 선언합니다. 06절 시제를 잘 보십시오.
현재형이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형입니다. 누구든지 오늘 말씀을 듣고 악인의 길에서 과감하게 탈출하여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의 길로 갈 것을 안내하는 메시지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옛날 어느 곳에 점을 잘 보는 점쟁이가 있었습니다. 점쟁이의 말은 대부분 거짓말이지만 누구도 미래를 모르니 다급한 일을 당하면 점쟁이를 찾았습니다. 마침 용하다고 소문이 난 점쟁이 소식을 왕이 듣고 그런 일은 다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일이니 그 점쟁이를 잡아 오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잡혀 온 점쟁이를 향해 백성을 속이며 돌아다닌 네 죄를 아느냐며 엄히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그래, 너는 뭐든지 잘 알아맞힌다고 하는데 네 죽을 날이 언제인지 말해 보아라.
왕은 점쟁이가 오늘 죽는 것을 알아맞히면 그것이 너의 운세이니 죽으라 하며 사약을 내릴 것입니다. 못 맞히면 그동안 자기 죽을 날도 모르면서 혹세무민하며 다닌 죄를 물어 역시 사약을 내릴 계획입니다.
점쟁이가 제 죽을 날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나 오랫동안 점을 치며 거짓말과 임기응변으로 살아온 점쟁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왕이여 제 죽을 날은 잘 모르지만 제가 죽으면 사흘 후에 왕께서 돌아가실 운세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왕은 난감했습니다. 점은 믿지 않지만, 점쟁이 말이 은근히 마음에 걸려 사약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점쟁이가 죽으면 왕 자신도 사흘 후에 죽을까? 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도 혹 죽음의 길에 처해 있습니까? 믿음의 지혜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길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셨으면 자기를 돌아보십시오. 혹 악인의 길로 달려가고 있습니까? 천천히 차차 돌아서겠다고 말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의 길로 돌아서십시오. 악한 자의 집은 멸망이 기다리기 있습니다(잠 14:11). 오늘 메시지를 새겨들으셔서 의인의 길로 함께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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