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1년 말씀

무너진 예배를 회복합시다(애 01:01~11).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1. 3. 1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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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향한 핍박이 주님 때로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일어납니다. 지금은 물리력을 동원한 핍박보다 이방 신과 이단을 신봉하는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형태는 각기 다르지만 다양한 기독교 박해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기독교인 수가 점점 줄어갑니다.

동시에 이방 신을 섬기는 종파나 이단은 한국교회에 서서히 침략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변 환경에서도 오늘 예배의 현장에 나오신 김삼일 가족 여러분, 반갑습니다. 함께 가볍게 인사 나누십시오. 

계속되는 코로나19 환경에서 잘 지내셨습니까? 코로나19가 쉽게 해결된다고 그 누구도 장담 못 합니다. 이런 현실을 빙자하여 예배의 불참을 코로나19로 합리화하면 안 됩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분위기가 어떻습니까? 일부 기독교인이나 기독교를 빙자하여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 때문에 교회를 향한 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김삼일 가족은 우리나라에, 우리 교회에, 우리 믿음의 가족들 일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애가(哀歌)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기록한 메시지입니다. 성경 제목처럼 예루살렘의 황폐를 애곡(哀哭)한 눈물의 서정시입니다.

 

특별히 01장은 여호와 하나님 이 일을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라는 비애(悲哀)의 기도로 구성된 애가입니다. 슬픔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이런 제목이 붙게 된 것은 본서의 출발이 슬프다 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곧 멸망하게 될 예루살렘을 내다보는 예레미야의 애끓는 심정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루살렘이 회복되기를 소원하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그 슬픈 심정을 오늘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무너진 예배를 회복합시다.」로 정했습니다.

 

 

 1. 공 예배가 점점 무너져 가는 현실입니다.

 

01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같이 되었고….

 

오늘 말씀의 주제는 유다 왕국과 그 수도 예루살렘에 임하는 재앙이 얼마나 참혹한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어 그 파멸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힙니다.

슬프다(אֵיכָּה 에크). 이 장탄식은 비극의 상황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사 01:21) 용어입니다. 예루살렘은 민족 종교의 구심점이고 상업 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참혹하게 황폐해진 도시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파멸의 상황을 더욱 고조시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남편과 자식을 잃은 과부로 비교합니다. 그 옛날 좋았던 시절을 회상함과 현재의 한탄스러운 상황을 애도하는 모습입니다.

 

예루살렘은 에돔이나 모압 블레셋 등 주변 나라가 가져오는 공물(貢物)로 인해 한때는 부가 넘쳐나는 도시였습니다. 당연히 시민도 떵떵거리며 사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떠나 교만한 마음을 품고 사치와 향락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주인에서 종으로 추락하는 것과 같은 포로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제단 쌓는 일을 등한히 하고 형식의 제사에 사로잡히니 그 향락의 날은 그만 비극의 현장, 죽음의 현장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말씀을 잃어버리고 제사가 무디어지면 신앙은 무너집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현장을 무너뜨리면 외식과 형식만 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만날 때 책망하신 주제가 무엇입니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입니다.

 

마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마 23:15, 23, 25, 27, 29).

 

현재 저와 우리 여러분이 함께 느끼는 안타까움이 무엇입니까? 코로나19(COVID-19)로 인해 공 예배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일입니다. 공 예배는 적어도 우리 교회에서는 주일 낮예배 오후 예배 수요일 예배를 들 수 있습니다.

공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 김삼일 가족에게 주신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방식대로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합니다. 

우리 교단의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님께 합당하고 거룩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순교까지도 불사하였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예배드리는 일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습니다. 여러분 01절 말씀을 잘 보십시오.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이탈한 일과 하나님을 향한 제사를 중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현실에 적용하면 어떻겠습니까? 지금 이 시대가 바로 예루살렘이 폐허가 된 그때와 같다고 여기지 않습니까? 

코로나19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중단되고 기도가 중단되고 찬양이 중단된 현실을 여러분은 어떻게 느낍니까? 감각이 별로 없습니까? 김삼일 가족 여러분, 온전한 예배 드리지 못함을 가슴 아프게 여기십시오. 식사의 교제가 중단됨도 탄식하십시오. 자리가 비워가는 아픔을 탄식하여야 합니다.

마음에 탄식이 오는 분은 하나님께 코로나19 질병 멈추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에 새로운 각오도 해야 합니다. 예배를 생명처럼 여기겠습니다. 빈자리 채우겠습니다. 이런 각오 말입니다.

 

 

 2. 예배가 무너지면 심판이 임합니다.

 

05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01절을 참고하면 예루살렘 성내를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04절에는 시온의 도로도 슬퍼한다고 했습니다. 시온의 도로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모든 도로를 말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인격체가 아닌 도로가 어떻게 슬퍼합니까? 이 말은 의인법(擬人法) 형태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예배드리러 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일종의 시의(詩的) 표현입니다.

 

한 때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려는 순례자들로 인해 시온의 도로는 메어 터졌습니다. 특별히 유월절 절기가 되면 각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이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당연히 시온을 향한 도로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 대부분이 지금은 포로로 잡혀가고 성전도 파괴되어 예배드리러 오지 않습니다. 시온을 향한 모든 도로는 을씨년스러운 적막감만 맴돕니다. 잡초만 무성합니다. 이런 현장을 예레미야가 볼 때 안타까운 눈물밖에 더 있겠습니까?

 

예배 현장이 중단되고 말씀 공급이 중단되고 기도가 중단되면 하나님께서 곤고하게 하십니다.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困苦)하게 하셨다는 부분을 보십시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죄는(פֶּשַׁע 페샤) 여러 형태가 있는데 여기서 죄는 하나님을 향한 반역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에 주저합니까? 곤고라는 심판을 만납니다.

곤고(יָגָה 야가)하게 하셨음이라. 괴로워하다, 몹시 슬퍼하다. 고통을 겪는다. 이런 뜻입니다. 곤고가 임하는 그 종착점은 포로 신세입니다(신 28:36, 63~68). 슬픈 탄식입니다. 결국 곤고는 하나님의 심판을 뜻하는 무서운 용어입니다.

 

05절 마지막 부분 보십시오.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죄는 어른이 지었지만, 곤고함을 당하는 일은 어른뿐만 아니라 어린 자녀도 같이 당합니다.

예레미야의 견딜 수 없는 안타까움과 탄식의 눈물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상황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예배의 현장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웃도 예배의 현장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나 때문에 어린 자녀가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시온의 대로를 활짝 열어야 합니다. 

그 길이 막혀 있으면 빨리 보수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시온의 대로가 열리면 사랑과 평강이 임하고 세상 정욕으로 대로가 열리면 멸망이 덫이 임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눅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여러분 우리 모두의 삶이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을 오아시스가 있는 엘림으로 인도하셨듯이(출 15:27) 우리도 그런 복된 곳으로 인도해 주셔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시온의 대로만 열려 있으면 언제든지 신령한 복의 터전으로 인도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코로나19를 핑계로 믿음의 울타리를 무너뜨리지 마십시오.

계속 코로나19를 핑계로 예배의 현장에 들어오지 않으면 곤고의 심판이 옵니다. 예레미야가 전하는 메시지 한 부분을 소개하겠으니 김삼일 가족 여러분 귀 기울여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렘 25:05 그가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자의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준 그 땅에 살리라.

 

 

 3.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려면 하나님께 매어 달려야 합니다.

 

11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이으려고 보물로 먹을 것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09절 보십시오. 예레미야가 여호와여….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제사가 끊어진 불행의 현장을 고백합니다. 자신이 처한 환난을 하나님께서 감찰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당시 상황으로 보아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 처지를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현장을 보고도 멸망의 원인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깊은 죄악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예레미야는 홀로 민족의 죄를 짊어지고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하고 심판을 거두어 달라는 기도를 올립니다. 혼자서라도 기도하는 것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홀로 매어 달려도 민족 전체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이상 해결의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심판만 가중될 뿐입니다. 예루살렘 성 완전 멸망 직전 상황을 보겠습니다.

 

10 대적이 손을 펴서 그의 모든 보물들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들을 막아 주의 성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령하신 그 성소에 그들이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보물을 빼앗겼다는 부분을 보십시오. 이는 B.C. 586년 바벨론 군대가 침략하여 성전에 있는 값비싼 장식품을 모조리 강탈하여 바벨론으로 옮겨간 일을 말합니다(렘 52:17~23).

이스라엘 백성도 제사장 신분이 아니면 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방인(異邦人)이 감히 거룩한 성전을 마구 짓밟고 기물을 빼앗아 갔으니 이스라엘 민족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만난 셈입니다. 이런 비극의 현장을 해결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시온의 대로부터 회복하는 일입니다.

 

시 84:0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0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많은 교회가 주일에 드리는 예배를 인터넷 영상으로 대신합니다. 성도들은 각 가정에서 예배에 임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이제 국가 차원의 비상사태가 선포되지 않는 한 주일 오후 예배와 수요일 예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혹 점심이 걱정되십니까? 오후 예배 때까지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예배를 위해서 조금의 배고픔은 오히려 즐거운 일 아닙니까? 집에서 예배드리는 일 여간 쉽지 않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세계 교회 대부분이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고도 위기를 감지하지 못합니다. 세계 모든 교회가 이스라엘 멸망 직전 같은 상황을 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배 감각이 무디어지는 일 절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초종 재종(初鐘 再鐘)이란 말 들어보셨습니까? 지금은 이런 말이 사라졌지만 제가 사역할 초기에는 교회에서 이런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예전에는 교회마다 마당에 종각을 세우고 종을 매달아 놓았습니다. 종을 달 형편이 안 되는 교회는 대포를 쏘고 나면 남는 큼직한 탄피를 구해서 교회 처마에 매달아 놓고 종 대신 두드렸습니다.

대부분 교회가 오전 예배를 11시에 드렸는데 10시 30분에 종을 칩니다. 교회 올 시간 되었으니 준비하라는 뜻의 초종입니다. 그리고 10시 55분 한 번 더 칩니다. 예배 시작한다는 재종입니다.

 

새벽기도회는 대부분 교회가 4시 30분쯤 종을 칩니다. 시골에서는 이 새벽 종소리 듣고 일어나서 밥 준비하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제가 청년 시절 나름의 열정이 조금 있었던 탓인지 교회 종을 치는 것이 무척 즐거워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쳤습니다. 제가 이런 실수도 했습니다.

새벽기도회는 한 번 치는 것을 모르고 재종까지 친 일입니다. 그때가 그립습니다. 그때의 열정을 회복하려는 마음으로 오늘 말씀 준비했습니다. 예배는 생명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武汉)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 폐렴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일명 코로나19라고 합니다. 호흡기를 통하여 감염되는 증상으로 2020년 일본 도쿄 올림픽이 연기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에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가 pandemic으로 선언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한다는 의미의 세계 대유행이란 뜻입니다. 2021년 2월 말에는 전 세계 확진자가 1억 2천 명을 돌파하였습니다. 그러자 최근에는 전문가 그룹에서 이 pandemic이 endemic(주기별 유행 감염병, 풍토병)으로 전환될 것을 예측했습니다. 그 위험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감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에 엄중히 권고합니다. 이 코로나19를 과학과 의학의 근거로 접근하시고 보완하십시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할 때 피해가 가장 적은 치료법을 택합니다.

과잉치료를 하는 것은 악행 금지 원칙에 위반되는 비윤리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방역기준도 마찬가지입니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어느 정도 가능한 예측을 하여야지 일이 터질 때마다 거의 상황대처만 하다 보니 국민 불안심리가 일어납니다. 잘못된 정보와 부적절한 언어사용으로 국민 분열시키지 마십시오.

 

예를 들자면 종교 활동은 예배와 소모임, 식사 교제, 찬양 등 다양한 활동이 있습니다. 여러 형태의 활동을 구분하지 않고 종교 관련이란 말로 싸잡아 발표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방역 당국은 종교 활동 중 어떤 활동을 통해서 어떻게 감염이 되었는지 정확한 원인과 대처 방법을 국민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미 2021년 2월 1일 질병관리청은 실제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드리는 예배는 감염 위험이 거의 없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니 방역 활동 잘하는 교회에 복음 전파 지장 되는 일 삼가십시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제가 코로나19에 대하여 설명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병이 아니라 지금의 독감처럼 우리 주변에 정착하게 될 병임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코로나19 끝나면 보자. 끝나면 교회 나오겠다. 이런 말 하지 마십시오. 영원히 안 하겠다, 영원히 안 나오겠다는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은 지금부터 믿음으로 예배를 잘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신령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일이 진실한 신앙인의 분기점입니다. 예배의 열정을 가슴에 품고 사는 자에게 하나님은 이런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①하나님께서 사자를 앞서 보내어 길에서 보호해 주시고(출 23:20), ②원수의 원수가 되어 주시고(출 23:22), ③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시고(출 23:25), ④병을 제하여 주시고(출 23:25), ⑤장수의 복을 넉넉하게 주시리라(출 23:26).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