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0년 말씀

민족 말살 정책을 이겨 낸 산파들(출 01:15~22)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0. 6. 2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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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여행을 하면 거의 들르는 코스가 있습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둘러보는 일정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 건축물로서 그 가운데 쿠푸 왕의 대피라미드는 무게가 2.5t쯤 나가는 사각형 돌이 약 300만 개가 사용되었습니다또 이 피라미드 앞에 있는 스핑크스 얼굴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쿠푸 왕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 하고 몸은 사자의 모습입니다.

길이 73m 높이 22m의 엄청난 크기의 스핑크스는 몸통은 평지를 파내어서 만들었고 상체와 머리는 석회암 언덕을 깎아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코와 턱수염이 전쟁으로 사라져서 좀 흉물처럼 보이지만, 역시 그 규모가 대단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를 봅시다. 그 웅장한 피라미드나 스핑크스를 만든 최첨단 건축기술은 조금도 나오지 않습니다. 일절 침묵합니다. 대신 모세는 이스라엘이 고역에 시달렸다는 고통의 흔적을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모세는 출애굽기를 통해서 세상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보잘것없는 히브리인 두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비중 있는 인물로 등장시킵니다.

왜 비중이 있는 인물이냐 하면 이스라엘이 번성하도록 역할을 하였고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를 출생하게 하는 디딤돌 역할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민족 말살 정책을 이겨 낸 산파들로 정했습니다. 함께 말씀에 경청하여 은혜받는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1. 이스라엘이 남아학살 정책 앞에 놓였습니다.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본래 유목민 출신(47:06)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지내는 동안 18왕조 투트모세 때 종의 처지로 전락하였습니다. 바로 왕은 이스라엘을 고통스럽게 하는 정책을 펼칩니다.

이스라엘의 정신과 문화를 파괴하려는 정책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미래의 위험요소로 판단하여 강제노동에 투입합니다. 정치의 위험요소는 줄이고 경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정책입니다. 바로 왕이 이런 정책을 펼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0절은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합니다.

첫째 이유는 애굽에 들어와 있는 소수 민족 이스라엘의 숫자가 많아지고,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다 전쟁이 일어날 때 뒤통수를 치는 것은 아닐까의 염려입니다. 적과 내통하고 합세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의 위험요소입니다.

 

둘째 이유는 국가에 특별 위기가 닥칠 때 애굽을 떠나 이스라엘의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가면 잃게 될 어마어마한 노동력 상실의 염려입니다.

그런데 12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갔습니다. 오히려 애굽 사람이 이 일로 인해 근심에 잠깁니다. 비록 유목민 생활을 하다 노동 현장에 투입되었지만, 인구와 그 영향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이에 정치의 위기감을 느낀 바로 왕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였습니다.

남아학살 정책입니다. 이전 노동력을 착취하는 정책보다 더 강력한 남아학살 정책을 선포하였습니다. 그 방법이 어떠한지 15, 16절을 보겠습니다.

 

바로 왕은 자기를 대신할 수 있는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불러 명령합니다. 히브리 산모의 출산 과정에서 딸이면 살리고, 아들이면 죽이라. 생명의 주관자인 하나님께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만 다스릴 수 있습니다. 만일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면 그에 따르는 하나님의 징계가 따릅니다. 율법서에 나오는 살인자 사형 제도가 그 한 조처입니다.

바로는 남자 숫자를 줄여 정치의 위협을 줄이고 여자는 위협이 되지 않으므로 숫자를 유지하여 노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정책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처한 슬픔과 비극의 현장입니다. 오늘 말씀을 우리의 삶에 믿음으로 적용한다면 우리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이런 비극은 우리나라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적용할 때 혹 이에 비교할만한 비극 같은 것은 당할 수 있습니다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을 피할 수 없다면 긍정으로 받아들여 믿음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끔 빵 대신 벽돌을 던지기도 합니다. 이런 환경을 만날 때 어떤 사람은 원망하면서 그 벽돌을 차다가 발가락이 부러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벽돌을 주춧돌삼아 아름다운 집을 짓기도 합니다. 고난은 맞서서 이겨야 합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등장하여(08) 폭정을 행할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을 기억하셨습니다. 그에 대한 대비책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출 02: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출 06:05)

 

 

 2. 산파들은 애굽 왕의 권세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습니다.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남아학살 정책,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이스라엘을 서서히 고사시키려는 바로 왕의 정책을 어떻게 뛰어넘어야 합니까? 사람의 방법으로는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고통은 극에 달하였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이스라엘의 씨를 말리는 정책을 어떻게 이겨나가야 합니까?

이스라엘은 민족의 대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의 손길만 바라봅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손길이 작동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하려는 바로 왕의 악한 계교를 보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 현장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남아학살 정책을 펼치는 바로 왕의 계략을 두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들어 해결하십니다. 위기의 현장 탈출을 펼쳐주십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17절의 절체절명(絶體絶命) 위기를 반전시키는 그러나. 라는 접속 부사를 보십시오. 그렇지마는 이런 뜻인데 17절 이전의 모든 위기를 풀어가는 신호탄입니다. 그러나 가 어떤 구체성을 띠고 진행되는지 그 과정을 봅시다.

 

두려워하여(יָרֵא 야례). 무서워하다. 경외하다. 이런 의미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경외합니까? 십브라와 부아 두 산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십브라와 부아를 보십시오. 무서움을 따진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현실의 바로 왕 권세가 더 두렵습니다.

그런데도 십브라와 부아는 현실의 두려움을 믿음으로 감당하기로 하였습니다. 장차 누리게 될 미래의 소망을 바라보며 현실의 두려움에 맞서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경외심을 갖는 것이 이스라엘 정신입니다(19:14).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입니다.

 

잠 0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고대 전제 군주 국가에서 왕의 명령(命令)은 국법과 같습니다. 그 명령을 어긴 자의 댓가는 죽음입니다. 그런데도 두 산파는 바로 왕의 권세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습니다(10:28). 이들 두 산파에게서 우리는 믿음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됩니다.

바로 왕이 내리는 명령이 무엇입니까? 딸이면 살려두고, 아들이면 그 어머니가 모르는 상태에서 목을 눌러 질식사시키라는 명령입니다. 사산하였다고 속이라는 명령입니다.

 

십브라와 부아 두 산파는 하나님이 두려워 아이의 생명을 감히 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두려워서 바로 왕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러자 바로가 두 산파를 불러 심문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는 심문입니다. 이에 두 산파가 지혜롭게 대답을 합니다.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지혜로운 변명입니다. 애굽 여자는 분만의 진통이 있어도 하루 이틀 걸리는데 히브리인 여자는 애굽 여자와 달리 매우 건강합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이미 순산하여 죽일 기회가 없습니다. 라는 거짓말입니다.

거짓말 상황이 생명의 가치를 위한 사례이고 이런 예가 성경에 몇 번 있습니다. 라합의 거짓말도 생명 가치를 위한 거짓말입니다(수 02:01~06).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는 거짓말과는 다릅니다. 이런 거짓말은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람에게 특별 목적을 위하여 허용됩니다. 악용하지 마십시오.

 

 

 3. 하나님을 경외한 두 산파는 복을 받았습니다.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 지라.

 

불의는 언제나 반대급부(反對給付)가 따릅니다. 예를 들면 눈 감아 주면 얼마를 주겠다. 이렇게 해 주면 저렇게 해 주겠다. 불의를 따르는 것은 세상에서는 지름길로 보입니다.

그럴지라도 믿음의 용기가 있으면 불의를 따르지 않습니다. 두 산파의 이름을 봅시다. 십브라와 부아입니다. 십브라(שִׁפרָה)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이고 부아(פּוּעָה)는 찬란함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이름만큼이나 복된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바로 왕이 회유한 명령을 과감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 명령을 거절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일이지만 믿음으로 감당하였습니다.

 

믿음의 길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소신을 밀고 나가는 일입니다. 그 일에 때로는 목숨을 걸기도 해야 합니다. 믿음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자가 진정한 사명자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일 것 같습니까?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하여 사명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두 산파를 통하여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성도는 합법의 권위에 의한 권세자의 명령에는 마땅히 순복해야만 합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권세자를 통해 세상의 공의와 질서를 세워가십니다(13:01~07). 성도는 합법으로 세워진 권세자의 명령이라도 그 명령이 하나님의 법을 거스를 때는 과감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행 0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김삼일 가족 여러분,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삽니까? 자신과 가정만 넉넉히 보호할 수 있고 세상의 조건을 누릴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죽어도 상관없습니까?

십브라와 부아 두 산파는 그렇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가치관이 있었습니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더 중요한 가치관이 되었습니다. 이런 삶을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그들의 집안을 흥왕(עָשָׂה 아사)하게 하신 지라. 흥왕하게 하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삼하 07:11). 하나님께서 불의에 따르는 반대급부를 물리친 두 산파의 집을 흥왕하게 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산파의 가정에 복을 주셔서 가업을 번영하게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가정은 점점 흥왕하게 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매우 위험한 환경일지라도 염려하거나 두려워 마십시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인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공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전능자이신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37:28).

 

히브리인 두 산파가 세상 권력자에게는 원수와 같은 존재이지만 하나님께는 아주 사랑스러운 일꾼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실 일꾼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더욱 왕성하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혹 삶의 위기를 당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두 산파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든지 입을 수 있습니다. 왕성하게 해 주시는 복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독일 나치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집에 독일 수색대가 찾아와서 말합니다. 이 집에 유대인이 숨어 있지? 빨리 내놓으라.

그 사람 집에는 유대인 한 사람이 숨어 있습니다. 유대인을 빨리 내놓으라며 다그치는데 참으로 곤란합니다. 거짓말을 해야만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거짓말을 안 하고 어떻게 살리는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책이 안 나옵니다. 나치 수색대가 이번에는 총을 빼 들고 협박합니다. 유대인을 속히 내놓아. 그때 이 사람에게 번뜩 한 지혜가 스쳐 갔습니다.

즉시 책상을 꽝 치면서 여기는 유대인이 없소 하였습니다. 하도 강하게 나오니 알았다며 나갔습니다. 그가 말한 여기는 유대인이 없소. 라는 말은 책상 위에 유대인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거짓말 가책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혜를 찾은 결과입니다.

 

세상에는 고통이 많습니다. 이는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살이가 살기 편하고 행복하면 대부분 사람이 천국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현재의 고난이 없이 그저 평안하게만 지냈다면 출애굽 명령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버려두고 거친 광야로 나갈 수 있겠습니까? 애굽에서 고통을 당했기에 하나님의 출애굽 명령이 떨어지자 모세를 따라나섰습니다. 애굽의 미련을 접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두 산파가 민족 말살 정책에 믿음으로 맞서서 이스라엘도 구하고 하나님의 큰 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복을 받는 믿음의 길 걸어가기를 축원합니다.

 

벧전 05:0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