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0년 말씀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기대가 있습니다(요 15:01~0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0. 5. 16. 12:51
728x90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량함을 입은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기대치(期待値)를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짐작 정도는 하십니까?

구약시대는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 말씀이 많이 나오고 신약시대는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기대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함께 천국 백성 된 여러분 하나님의 기대, 예수님의 기대치를 알고 그에 합당한 생활 할 수 있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은 하나님의 기대, 예수님의 기대에 대한 자신의 수준이 어떠한지를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그 기대치에 대하여 제대로 맞출 수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믿음 생활에서 우선순위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하나님은 오늘 나에게 바라시는 게 무엇일까? 예수님은 오늘 나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일입니다. 구약시대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어떤 기대를 하시는지 성경으로 남겼습니다.

내가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다. 그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다. 이렇게 한 목적은 좋은 포도 맺기를 원함이었다(05:01, 02).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기대를 하십니까? 이 일에 대하여 좀 더 구체성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제목을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기대가 있습니다이렇게 정했습니다.

 

 

  1. 믿음의 열매 많이 맺기를 기대하십니다.

 

02 무릇 내게 붙어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오늘 말씀을 보시면 반복되는 단어를 볼 수 있습니다. 열매라는 단어로서 6번 나옵니다(02, 04, 05, 08). 이 열매에 대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가지치기를 당하고 원 둥치에 붙어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반면 주님 안에 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고 나옵니다. 그러면 여기서 열매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문자 자체로만 보면 포도 열매지만 사람을 열매에 비유하였으니 이는 우리의 신령한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기독교인다운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이를 바울은 성령님의 아홉 가지 열매로 설명하였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0:22, 23).

 

이런 신령한 열매는 주님 안에서 그 가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런 열매의 모습이 우리에게서 나타나면 기독교의 수준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가치를 떠난 외형의 열매는 세상 사람도 얼마든지 맺을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기독교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기초 율법에 관한 일입니다. 주로 죄짓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욕심부리지 말라. 이런 정도입니다.

열매를 맺게 한다는 말은 우리가 얼마나 구제와 봉사 활동을 많이 했는지, 우리가 이웃에게 얼마나 따뜻한 말을 해 주었는지, 사회정의를 위해서 얼마나 많이 투쟁했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도덕과 윤리에 속한 열매가 아닙니다.

기초 율법에 관한 일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세상을 좀 책임감 있게 사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일도 중요하고 또 실천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한다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합니까?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는 05절로 연결하면 됩니다. 결국, 열매를 더 많이 맺는다는 뜻은 윤리와 도덕의 차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신령한 열매를 상징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기대는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삶을 가꾸어야 합니까?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핵심은 원 둥치에 단단히 붙어있는 삶입니다. 예수님과 하나 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정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04절에서도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이 되어 있지 않으면 가지치기를 당합니다.

 

가지치기 당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가 됩니까? 육신은 그대로인지 몰라도 그 신령한 삶은 완전히 황폐해진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자가 누구입니까?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이 남긴 서신을 정리한 요한신학의 핵심이 무엇입니까예수님 안에서입니다기독교를 세계화하는데 가장 크게 쓰임 받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이 남긴 서신을 정리한 바울신학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Χριστός ἐν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결단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였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주님 안에 거하는 삶입니까?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향한 기대가 있습니다. 신령한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이 일에 우리의 믿음의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0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신자들은 어떤 기념할 만한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퍼포먼스를 종종 연출합니다. 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을 때나 세계 대회에서 우승할 때, 때로는 프로 축구 선수가 골을 넣을 때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많은 사람 앞에서 귀한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면 이는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리머니를 해야만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집니까? 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 중에도 신자가 있을 것인데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겁니까이런 영광은 자칫 세상의 영광이 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기대하십니다. 그 영광 돌리는 방법은 믿음의 열매 맺는 일에 있습니다.

 

영광(δοξάζω 독사조). 영화롭게 하다. 라는 의미로서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신다, 찬양을 받으신다.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은 언젠가는 없어질 것으로 인해 영광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영광을 받으십니까? 이 부분을 잘 이해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되는 일은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할 때 받으십니다. 선한 일에 힘쓰며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때 받으십니다.

 

0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청지기입니다. 선한 청지기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사모합니다. 자신에게 특권은 없고 반드시 감당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잘났다고 우쭐하거나 교만하지 않습니다겸손한 자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렇듯 우리의 생활에서 겸손한 자세로 믿음의 열매를 맺어 나갈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러한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여러분, 함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찬양을 불러 봅시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온 맘과 뜻 다해 주 사모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예수님 찬양받으소서. 예수님 찬양받으소서. 죄 사했네. 우리 위해 성령 주셨네. 예수님 찬양받으소서. 위로의 성령님이시여 위로의 성령님이시여 우리 안에 계셔서 인도하시네. 위로의 성령님이시여.

 

신자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습니다. 신자의 신령한 열매야말로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기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 믿음의 가족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까? 예수님의 기대치에 맞는 삶, 영광되는 삶을 지금부터 결단하여야 합니다.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신령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이런 모습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3. 신실한 제자가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0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신자는 교회에 출석하는 날부터 믿음의 진보를 위해 달려가야 합니다. 삶의 목적도 신령한 목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영광을 누리는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위한 삶으로 바뀌는 것을 제자의 삶이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제자라는 말을 합니다. 제자훈련, 제자공부, 제자코스 등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보다 예수님이 우리를 제자로 인정해 주시느냐입니다.

 

제자(μαθητής 마데테스). 예수님 당시의 제자는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학생과 스승의 관계가 아닙니다. 스승의 정신, 스승의 철학, 스승의 삶을 이어가는 자입니다. 스승은 아무나 제자로 삼지 않습니다

제자는 일단 스승 밑에 들어가면 그 스승을 닮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제자는 스승을 닮은 분신(分身)이란 의미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제자입니다. 무려 335회 나옵니다. 이 가운데 진정한 제자로 쓰인 단어가 08절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구분하면 열두 제자, 칠십 제자, 그 외 관심을 가지고 따르는 자입니다. 이들을 때로는 통칭해서 제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제자는 열두 제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추종하다 떠난 자들은 편의상 제자라고 불렀지만(06:66), 실제는 그냥 무리입니다(08:34). 제자란 기분 따라 왔다가 기분 따라 떠나는 자가 아닙니다. 지켜야 할 자리를 지키는 자입니다. 깊은 훈련과 검증을 거쳐야 신실한 제자가 됩니다

 

많은 사람이 기독교인으로 불려도 어쩌면 무리 속에 있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의 이익 거리를 만나면 얼마든지 떠납니다. 교회도 그냥 막 옮겨 버립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 열두 제자를 훈련 시키신 주제가 흔들리지 않는 제자도입니다. 흔들리지 않아야 세상도 구하고 교회도 살립니다.

 

06: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광장에 보비라 불리는 개 조각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유명한 광장에 개 조각상을 세워 둔 이유가 있습니다. 보비라 불리는 떠돌이 개 한 마리가 바짝 마른 상태로 동네를 돌아다닙니다.

이 보비를 조크라 하는 한 노인이 발견하였습니다그런데 먹지 못해 너무 불쌍합니다. 그래서 식당에 가서 저녁 한 끼를 사다 보비에게 먹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서로 정이 들었는데 얼마 후 그만 조크가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조크의 장례식을 치르는데 보비가 계속 따라다닙니다. 매장하는 인부들이 보비를 쫓아내도 가지 않습니다. 장례식이 끝났습니다그런데도 보비는 움직이지 않고 밤낮으로 노인의 무덤을 지킵니다.

보비가 무덤을 떠날 때는 매일 오후 먹을 것을 찾아 나설 때입니다. 보비의 행동에 감동한 마을 사람이 보비를 위하여 무덤 곁에 작은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보비는 무려 14년 간 노인의 무덤을 지키다 죽었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보비를 노인의 무덤 옆에 정성껏 묻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에든버러 광장에 보비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짐승도 자기에게 베푼 사람을 평생 잊지 않고 이렇게 감사하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제자의 길을 가는 자에게 어떻게 요구하시는지 성경을 같이 읽겠습니다.

 

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어느 여자 권사님이 공주병보다 더한 왕비 병에 걸렸습니다. 그분은 늘 자녀에게 내가 이쁘지 라며 세뇌 교육을 합니다. 하루는 그분께 수능을 앞둔 아들이 있는데 요리를 맛있게 해 먹이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들아, 엄마는 얼굴도 완벽한 데다 음식도 잘하지 않니? 이를 사자성어로 뭐라고 하지? 그러자 아들은 자아자찬(自我自讚) 이렇게 답합니다. 그러자 엄마는 그것 말고 있잖아? 엄마가 아들에게 기대하는 말은 금상첨화(錦上添花)입니다. 이에 아들은 과대망상(誇大妄想)이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엄마는 아니 그것 말고 금자로 시작하는 말 있잖아? 아들이 말합니다. 금시초문(今始初聞).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믿음의 위치를 잊어버리고 착각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최고의 일꾼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기대하시는 메시지를 심령에 담아야 합니다

심령에 말씀이 담겨있지 못하면 믿음의 길에서 무너지기 쉽습니다. 이 시간부터 믿음의 열매 더 많이 맺읍시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삽시다.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의 삶을 삽시다. 이 세 가지 삶이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일입니다

 

고후 0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