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0년 말씀

위기에서 보호하시는 하나님(삼상 29:01~11)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0. 5. 2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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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오늘 여러분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심판하기 위하여 블레셋 모든 부족을 일으켰을 때의 일입니다. 이때 다윗은 사울 왕의 박해로 인해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 정치 망명을 하여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무리 힘든 일을 당해도 유다 땅에 머물라(삼상 22:05)는 갓 선지자의 메시지를 받은 이상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선지자가 전해준 이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선지자의 말을 이탈하여 블레셋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과연 블레셋에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14개월은 좋았지만 이내 생명의 위기를 만납니다. 다윗뿐만 아니라 따르는 모두가 위기를 만납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의 위기를 벗어나는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위기에서 보호하시는 하나님이런 주제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은혜의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다윗은 적대국 블레셋으로 망명합니다.

 

삼상 27:02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오늘 메시지는 사무엘상 27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사울 왕과 다윗의 관계 잘 아시지요? 통치의 관점에서 보면 군신(君臣) 관계입니다.

사사로운 관계로 보면 장인과 사위 간이 되고요. 그런데도 사울은 온 백성의 지지를 받는 다윗을 시기한 나머지 십 년이나 삼천 명 특공대를 조직하여 추격하였습니다.

이렇게 쫓기는 상황에서도 다윗은 원수 사울을 죽일 두 번의 기회를 안납니다. 그러자 측근들이 강력하게 사울을 제거하자고 합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왕을 해칠 수 없다며 막아섰습니다(24:06, 27).

그런데도 사울은 집요하게 다윗을 추격하며 죽이려 합니다. 사울 본인은 그렇게 하려는 마음이 없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 충동질하기 때문입니다(24:09; 26:19).

오죽하면 다윗이 사울과 거리를 두고서 어찌하여 제가 왕을 해치려 한다는 사람의 말 듣지 마십시오. 왕의 곁에 저를 해치도록 충동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런 말 듣지 마십시오. 했겠습니까?

 

다윗이 십 년 세월을 유랑할 때 그 은신처 주변에는 다윗을 밀고하는 십 광야의 사람과 엔게디 동굴 주변 사람이 있었습니다(23:19; 24:01; 26:01).

반면 온갖 박해를 받는 다윗을 지지하며 따라다니는 군사 육백 명과 그에 딸린 가족까지 있었습니다. 다윗은 현실을 돌아볼 때 이스라엘 내에서 도피 생활을 더는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면 정치 망명밖에 더 있습니까? 이때 다윗이 사울에게서 벗어나 망명할 수 있는 곳은 두 곳입니다. 자신에게 호의를 가진 모압(22:03, 04)과 좀 까다롭지만, 거리 면에서 가까운 블레셋입니다.

그러나 최종 판단을 부하 육백 명과 딸린 가족을 생각할 때 조금은 위험하지만, 블레셋을 망명지로 선택합니다(01). 이는 이스라엘에 정변이 일어나면 속히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다윗은 오랜 기간 사울에게 쫓기면서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졌습니다. 이스라엘에 머물다가는 언제 사울의 손에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블레셋으로 명명하였습니다.

따르는 군사가 육백 명 정도이니 이는 이십 세 이상 전쟁을 수행할만한 남자(01:03)입니다. 따라서 그에 딸린 가족까지 계산하면 그 인원은 천 오백 명 정도는 되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망명한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적대국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막대한 타격을 가했던 사울과 다윗에 대해 강한 증오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울과 파워게임을 하는 다윗이 망명해 오니 반길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도 이런 상황을 잘 알았기에 블레셋 가드로 도피해 들어갔을 것입니다.

 

가드는 블레셋의 오대 도시 중 하나입니다(05:08; 11:22; 13:03). 다윗이 사울로부터 피신하고 있는 십 황무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37km 지점에 있습니다.

이 가드는 다윗이 전에 사울의 견제를 받을 때 잠시 피난한 적 있습니다(21:10~22:01). 그때 그곳 사람이 아기스 왕에게 다윗은 골리앗을 죽인 명장 아니냐며 은근히 제거하자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이 위기를 알아차리고 미치광이 흉내를 내어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다시 아기스 정권에 정치 망명을 합니다그러면 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아기스가 다윗의 망명을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아기스는 대적 사울로부터 핍박받고 있는 다윗을 활용하려고 마음을 먹습니다. 다윗의 군사력을 이용하여 자기의 정치와 군사력을 확충하려는 계산 아래 다윗의 망명을 받아들입니다.

 

 2. 다윗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출전합니다.

 

삼상 29:02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다윗이 블레셋의 가드로 망명한 지 14개월이 지났을 때입니다(27:07).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블레셋이 일명 아벡 전투(04:01~11) 이후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계속 패하자 이번에는 방백 회의를 열어 전면전을 준비합니다(18:06, 30).

이에 가드 왕 아기스가 다윗에게 너도 수하의 모든 사람과 함께 이스라엘을 치는 전쟁에 참여하라고 통보합니다(삼상 28:01). 아기스의 요구는 당연한 일입니다.

아기스도 사실 이런 전쟁을 대비하여 다윗을 자신의 수하에 두었습니다(27:06, 12). 아기스는 다윗의 본심을 검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입니다.

 

이런 상황 앞에서 다윗은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께서는 저의 마음을 잘 아시잖습니까? 무슨 뜻입니까?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 좀 적당한 답변입니다. 다윗이 지금 심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런 정도로밖에 답할 수밖에 없는 그의 마음 충분히 이해됩니다.

아기스의 요구대로 동족 이스라엘을 공격하면 하나님 뜻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일찍이 사무엘이 하나님의 뜻을 (삼상 16:01~13) 따라 다윗에게 기름 부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민족의 반역자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만일 다윗이 내 입장이 곤란해서 이스라엘과 전쟁에 참여할 수 없다고 거부하면 어떻게 됩니까?

지금까지 아기스가 베풀어 준 호의에 대해 배반자로 전락합니다. 당연히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따르는 모든 부하와 그 가족들도 죽음에 놓일 것입니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전쟁 참여의 조건을 거는 장면을 보십시오.

네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참여하면 그때는 너를 영원히 나의 경호 대장으로 삼겠다는 조건입니다. 최측근으로 삼는다는 조건 앞에 다윗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입니다.

 

이런 일을 겪는 것 다 다윗의 판단 잘못의 결과입니다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의 손길을 믿고 이스라엘 땅을 떠나지 말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당장 안전과 유익을 위해 우상의 나라 블레셋으로 망명한 것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옛적에 아브라함이 곤경을 당한 일 기억하십니까? 기근을 피해 언약의 땅 가나안을 등지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아내까지 빼앗기는 쓰라린 일을 경험하였습니다(12:10~20).

 

삼상 29:02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다윗은 마음이 불편하지만, 아기스의 통보를 받고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동참합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블레셋 편이 되어 이스라엘과 싸우는 전쟁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러 가는 전쟁입니다.

다윗이 지금까지는 사울에게 쫓기면서도 사울을 죽이려 한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사울과 전쟁을 하러 갑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하나님께 맡기고 은혜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문제를 풀어가시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피할 길을 열어주십니다.

 

삼상 29:04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다윗이 아기스와 함께 전쟁에 출전한 것을 본 블레셋 방백들 모습을 보십시오. 아기스에게 거칠게 항의합니다. 아주 강력한 반발입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14개월 동안 나름대로 검증해 보았다고 하지만 블레셋의 다른 네 방백은 아기스에게 다윗을 즉각 거주지 시글락으로 돌려보내라고 요청합니다.

04절을 통해서 블레셋의 정치와 행정 구조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블레셋은 에그론, 아스돗, 가사, 아스글론, 가드로 이루어진 연방 체제입니다.

이 가운데 한 명이 왕이 되고 나머지는 방백이라 불렀습니다(삼상 06:16, 17). 방백(שַׂר 사르)은 왕 다음 우두머리로서 왕보다는 낮은 계급이며 이 다섯 방백 가운데 한 명이 블레셋을 대표하는 왕이 됩니다.

 

그러므로 왕일지라도 절대 왕권을 갖지 못하고 방백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따라야 합니다. 방백들의 제의를 무시하고 통치권을 행사하면 분쟁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아기스는 왕이지만 결국은 가드의 방백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다른 방백들이 아기스에게 다윗의 참전 문제에 대해 거칠게 항의합니다.

 

29:03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히브리 사람이라는 표현을 보십시오.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가나안 아모리 족의 땅 마므레에 거할 때 처음 사용된 말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을 무시하며 부른 칭호입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가나안 원주민의 관점에서 볼 때 메소포타미아에서 건너온 이방인이었습니다(14:13).

지금 방백들이 아기스가 추천한 다윗을 놓고 히브리 사람들이라고 무시합니다. 이런 보잘것없는 자들이 무슨 전쟁을 할 수 있느냐는 무시입니다만일 전쟁을 치르다가 혹 우리에게 칼을 돌려 겨누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느냐?

그래도 다윗 하면 옛날 골리앗을 물리친 장수 아니냐? 이스라엘에서는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하던 그 인물 아니냐(29:04, 05)?

 

다윗이 사울과 화해하기 위하여 많은 블레셋 병사의 머리를 그에게 예물로 바칠 수도 있으니 절대 전쟁에 참여시키면 안 된다는 항의입니다실제 아기스가 다윗을 믿는 만큼 다윗은 그에 맞는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아기스 몰래 그술, 기르스, 아말렉 등 이스라엘 적대 세력을 침노하였습니다(27:08, 12).

아기스만 몰랐지 다윗이 행한 일을 다른 방백들은 알고 있습니다이에 아기스가 다윗에게 사정을 말합니다. 내 생각에는 네가 나와 함께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좋으나 다른 방백들이 너를 싫어한다. 그러니 너는 근거지 시글락으로 돌아가서 블레셋의 방백들 눈에 거슬러 않도록 조심하라고 권합니다. 그러자 다윗이 아기스에게 강력한 항의를 합니다.

 

08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김삼일 가족 여러분은 다윗이 아기스에게 내 주 왕이라고 호칭하며 항변하는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다윗의 속셈이 아닌 것을 아시지요?

다윗이 이렇게 강력하게 항의하는 것은 블레셋 방백들의 의심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고 아기스가 한 말의 진실성을 시험해 보기 위함입니다. 이때 다윗이 아기스의 말을 듣고 그저 잠잠히 있었다면 아기스는 다윗을 제외한 다른 방백들의 말(04, 05)을 참말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강력히 항의하는 모습으로 아기스를 내 주 왕이라고까지 높이며 항의하는 겁니다. 다윗의 이런 말투는 상대를 속이려는 술 수 수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참여해서는 안 될 전쟁이기에 피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삼상 29:10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아야 할 사람에게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의 장면을 보십시오. 다윗이 곤경에서 벗어나는 장면을 보십시오. 아기스가 블레셋의 다른 방백들 눈에 띄지 않도록 새벽에 살짝 떠나라는 장면을 보십시오. 다윗의 처지에서는 전쟁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자연스럽게 전쟁의 길을 벗어납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특별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불쌍히 여기시고 깊은 수렁과 같은 현장에서 건져 주시는 은혜입니다.

만일 다윗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참여하였다면 어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이스라엘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위하여 블레셋 방백들의 마음을 충동시키셨고 마침내 다윗을 전쟁에서 빠지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곤경을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을 그 중심을 보아야 합니다. 물론 성경에는 이 현장을 놓고 기도한 장면이 안 나옵니다. 그러나 다윗의 시편 사상을 볼 때 하나님께 분명히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윗의 앞날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위에 세워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현실을 돌아봅시다. 혹 다윗이 처한 것과 같은 고통의 현장에 놓여 있습니까?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로 풀어갑시다. 우리 함께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 돌리는 복을 받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