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0년 말씀

누가 진리이고 누가 거짓입니까?(렘 28:01~1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0. 5. 3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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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에서 사회복지가 가장 잘 구축된 나라는 스웨덴입니다. 워낙 복지 규정이 잘 되어 있다 보니 2013년부터는 이민자 수가 출생자 수를 웃돌았습니다.

이처럼 이민자들이 급격히 늘자 스웨덴은 2015년 이민법을 한층 강화하고 난민 심사도 더욱 꼼꼼히 합니다. 이 가운데 일부 시 의회는 구걸 금지법을 도입하였습니다.

구걸 금지법까지 등장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 것 같습니까일은 하지 않고 구걸만 해도 먹고 살 수 있으니 너도나도 정부의 예산만 축내는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도 스톡홀름 서쪽 소도시 에스킬스투나시에서는 201981일부터 거지면허증을 발급하게 되었습니다. 시 당국이 발급하는 면허증입니다.

시내에서는 누구든지 250크로나를 내고 구걸해야 합니다. 구걸 행위를 계속하려면 3개월마다 250크로나를 내고 면허증을 갱신하여야 합니다. 만일 경찰서에 250크로나(31천 원)를 내지 않고 구걸하다 체포되면 4천 크로나(5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합니다. 면허증 없으면 가짜 거지인 셈입니다. 매우 재미있는 나라입니다.

 

대부분 참기름을 파는 가게마다 문에 이런 글이 붙어 있습니다. 진짜 참기름만 팝니다. 얼마나 가짜가 많으면 이런 글을 써 붙여 놓겠습니까?

가수 신신애 씨가 부른 세상은 요지경이란 노래 있지요?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라.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산다. 야이야이 야들아~ 내 말 좀 들어라~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입니다. 오늘 말씀 이야기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본문을 보면 두 선지자가 나옵니다. 예레미야와 하나냐입니다.  이 가운데 하나는 진짜 선지자이고 하나는 가짜 선지자입니다. 그러면 예레미야와 하나냐 중 누가 진짜 선지자이고 누가 가짜 선지자입니까?

우리는 당연히 예레미야로 압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은 예레미야가 가짜이고 하나냐가 진짜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누가 하나님의 진리의 종인가를 정확하게 판단합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누가 진리이고 누가 거짓입니까?로 정했습니다. 말씀 듣는 가운데 분별력 생기기를 바랍니다.

 

 

 1. 하나냐의 예언, 진리입니까? 거짓입니까?

 

03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곳으로 되돌려 오리라.

 

북 왕국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김 결과 앗수르로부터 멸망을 당했습니다. 유다 왕국 역시 우상의 길로 치닫다 멸망의 지경에 놓였습니다.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 예루살렘에는 유명한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와 하나냐입니다01절에 하나냐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 하나냐가 유다가 멸망하기 8년 전 어느 날 성전에서 여러 제사장과 사람들 앞에서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라고 몰아세웁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하는 중동지역의 정세 흐름은 북방의 앗수르를 무너뜨린 바벨론이 강대국으로 등장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강대국은 남방의 애굽입니다.

 

남북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는 유다는 바벨론 파와 애굽 파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왕궁의 권력층 대부분이 애굽 쪽으로 마음이 기울여졌습니다. 애굽과 손을 잡고 바벨론의 침략을 막아보겠다는 계산입니다.

반면 이사야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가 끊임없이 애굽과 손잡으면 안 된다. 지금이라도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낫다는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이렇게 국론이 분열되는 상황에서 예레미야가 등장하여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생명을 보존하는 길이라고 선포합니다(21:08, 09). 그러나 왕과 권력층, 백성 모두가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을 거짓이라고 몰아세우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거짓으로 미혹하는 자들은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 아닌가?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다. 바벨론이 우리를 심판하는 일을 절대 없을 것이다. 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거짓 무리의 대표 하나냐가 예레미야를 면박합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빙자한 예언인데 02절을 봅시다.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었다(02). 그러니 바벨론을 두려워하지 말라. 먼저 포로로 잡혀간 여고니야 왕과 백성들, 빼앗긴 성전 기물도 다 돌아오게 될 것이다. 너희는 절대로 바벨론 포로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예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예언하는 하나냐의 모습을 봅시다. 진짜입니까? 가짜입니까? 진리입니까? 거짓입니까? 말씀을 끝까지 읽어보면 하나냐는 자칭 선지자, 가짜 선지자로 판명 납니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 말을 들은 예레미야가 하나냐를 거짓 선지자라고 책망합니다(06~09). 그러자 하나냐가 이번에는 예레미야에게 인격 모독과 폭력을 행사합니다(10).

이때 예레미야는 조국의 멸망을 상징으로 보여주기 위해 나무로 만든 멍에를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일종의 멍에 퍼포먼스(performance) 입니다.

이런 모습으로 바벨론에 끌려간다는 상징인 셈입니다. 그러자 하나냐가 예레미야의 목에 메고 있는 멍에를 꺾고는 말합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끌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의 목을 꺾으심으로 이미 빼앗긴 것 모두가 돌아올 것이다. 라고 장담합니다.

 

02, 04절 말씀 보십시오. 하나냐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냐가 하나님을 빙자하여 지어낸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냐의 마지막 삶을 보면 거짓임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함부로 갖다 붙이면 3계명 위반입니다. 요즘 그런 목사 많습니다. 받은 은사가 없는 데도 은근히 자신이 뭘 받은 것처럼 꾸며 말합니다.

남의 은사는 은근히 깎아내립니다. 거기다 자기는 특별 예언의 은사, 예언 기도의 능력이 있다고 암시합니다. 이런 일 다 하나냐와 같은 거짓 죄입니다.

 

 

 2. 예레미야의 예언, 진리입니까? 거짓입니까?

 

09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받게 되리라.

 

멍에 퍼포먼스를 한 예레미야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줄과 막대기로 멍에를 만들어 메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하고 다닙니다(27:02).

이런 모습은 유다와 주변 여러 나라가 바벨론에 멍에를 메듯 포로로 끌려간다는 예언입니다. 당시 하나냐를 비롯하여 여러 거짓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왕에게 유다 왕국 안전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왕과 대다수 백성이 이런 꾐에 깊이 빠져 버렸습니다(27:14). 불행의 메시지보다 희망의 메시지가 더 좋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레미야의 멍에를 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우스꽝스럽습니까? 그러나 예레미야는 왕을 비롯한 권력층의 많은 사람이 자기의 행위를 조롱해도 개의치 않습니다. 자존심 상해하지 않습니다.

지금 가는 길이 하나님 말씀이 인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06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레미야가 하나냐의 말에 대해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동의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뜻이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전해야 진리의 선지자입니다.

 

06….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가 예언한 말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곳으로 되돌려 오시기를 원하노라.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냐가 예레미야의 목에 걸고 있는 멍에를 꺾어버립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번에는 쇠로 만든 멍에를 만들어 목에 걸게 하십니다.

바벨론의 세력은 유다나 애굽의 세력으로 꺾을 수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유다의 왕과 모든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 분명한 사실임을 확인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14절은 모든 백성이 쇠 멍에에 메워 바벨론 왕을 섬기게 될 것을 다시 확인합니다. 여기서 하나냐가 전하는 메시지와 예레미야가 전하는 메시지를 비교해봅시다.

 

완전 반대입니다. 둘 중 하나는 진리이고 하나는 거짓입니다. 하나냐에 앞서 많은 거짓 선지자가 우리나라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평강이 임할 것이다. 라고 외치며 백성을 미혹하였습니다(08:11). 그리고 하나냐가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거짓을 외칠 때 유다는 바벨론에 이미 두 번이나 공격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사람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쓰던 많은 기물이 탈취당했습니다. 이제 바벨론이 세 번째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때입니다. 곧 유다가 황폐화가 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가 전과 같은 일은 없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런데도 왕과 권력층 및 대다수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듣기보다 자기들이 듣기 좋은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런 달콤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때가 거짓이 들어오는 공간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에 거짓 메시지가 들립니다김삼일 가족 여러분,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 꼭 옳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고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를 구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 얼마나 관심이 있습니까?

아직도 내 소원과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을 고집합니까? 마귀가 틈을 탈 공간이 넓어질까 조심하십시오11절 보십시오.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거짓을 듣고 더는 논쟁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더는 논쟁할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위협을 노리는 무리와 진리를 부정하는 사람 앞에서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자기의 길로 갔습니다.

 

 

 3. 진리와 거짓은 삶의 열매로 확인합니다.

 

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예레미야를 비난하면서 우리 조국 유다는 염려 안 해도 된다고 큰소리쳤습니다. 2년만 지나면 모든 일이 풀린다고 장담했습니다.

물론 하나냐의 말대로 된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할렐루야입니다. 정말 하나냐 말대로 2년 동안에 그대로 되었습니까? 포로로 잡혀간 왕과 백성과 빼앗긴 성전 기물들이 다 돌아왔느냐 말입니다.

여기서 2년만 지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은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의 포로 기간을 이미 70년으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렘 29:10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결국, 예레미야와 하나냐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거짓으로 판명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냐의 예언대로 되었습니까? 17절이 결론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선지자 하나냐가 그해 일곱째 달에 죽었더라.

2년 안에 바벨론 왕의 목이 꺾인 것이 이 아니라 2달 만에 자기 목이 꺾이고 말았습니다하나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았음에도 예언자의 자리에 섰습니다.

하나냐가 거짓 예언하는 장소를 보십시오. 어디입니까? 성전입니다. 성전이니 제사장들도 함께 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예레미야가 예언한 유다의 멸망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이때가 B.C.5938월 경입니다.

 

하나냐가 국가의 대위기 앞에서 왜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거짓 메시지를 전합니까? 거짓 예언을 해도 탄로가 나지 않을 것 같아서입니까? 우리는 이 부분에서 분명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름 추정을 해 보겠습니다. 아마 하나냐는 조국 유다가 자신의 예언대로 회복되기를 원한 것 같습니다.

자기 민족의 처지가 안타까웠기에 어떻게 해서든 회복되는 것을 보고 싶어서 그런 메시지를 전한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을 개인의 영웅 심리라고 합니다.

믿음 세계에서 영웅 심리 이것 위험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라 사람의 관점으로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것 위험합니다. 하나님께 맞추어야 할 시선을 사람에게 맞추는 심리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냐의 일을 좀 좋게 봐서 국가의 애국심으로 인정한다 해도 분명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남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말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는 일은 거짓으로 판명나면 죽음으로 연결되는 무서운 일입니다. 하나냐는 결국, 하나님의 징계로 인생의 막을 내렸습니다.

이 하나냐가 어떤 모습으로 죽었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침묵합니다. 그의 죽음이 어떤 것이든 그 사건을 통해 예레미야는 진리의 선지자요 하나냐는 거짓 선지자로 판정이 났습니다.

 

예레미야는 자기의 목에 멍에를 4년이나 메고 다녔습니다. 그 불편함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의 뜻을 유다 백성이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멍에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힘든 일이지만 믿음으로 감당하였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 주변에는 가짜의 세계로 유혹하는 손길이 많습니다. 때로는 달콤한 말로, 때로는 빠른 성공과 엄청난 부귀영화로 유혹합니다.

그럴수록 바른길과 진리의 길을 가야 합니다. 적당히 죄와 타협하는 것은 진리의 길이 아닙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사람의 인기를 구하였던 하나냐는 영원히 거짓 예언자로 낙인찍힌 채 불행한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예레미야는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었지만, 나중에는 온 백성에게 존경받는 선지자로 자리매김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합니까? 진리의 길입니까? 거짓의 길입니까? 어느 쪽이든 내가 결정하는 대로 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요일 0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나는 진리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나는 진짜 그리스도인인가 아닌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를 확인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내 속에 주님께서 거하실 수 있는 경건의 자세, 말씀을 사모하는 자세가  되어 있느냐? 일입니다. 경건한 자세를 지키는 곳에 세상의 욕망이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오늘 나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주님 말씀하시면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마음가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진리의 길을 가는 진짜 성도를 찾으십니다.

가짜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보석같이 아름다운 진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면을 그리스도의 말씀과 은혜로 단장하여 자신을 진짜 성도로 잘 가꾸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