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9년 말씀

믿음의 눈이 다시 열려야 합니다(창 32:01~3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9. 12. 7.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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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서 설교 주제가 가장 많은 인물이 야곱입니다. 이 야곱은 이삭의 쌍둥이 아들 가운데 작은 아들입니다. 둘째였기 때문에 장자권의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장자권을 사모하여 쟁취하려고 목숨을 건 모험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에서의 장자권을 교묘하게 팥죽 한 그릇에 사들였습니다. 더 나아가 아버지 이삭이 연로하여 임종 때가 가까워져 오자 어머니 리브가와 짜고서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가 받을 복을 가로채었습니다. 뒤늦게 에서가 야곱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야곱을 죽이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리브가는 야곱을 결혼 핑계로 친정 밧단 아람으로 보내기로 합니다. 야곱아, 외갓집에 얼마간 가 있다가 에서의 화가 풀리면 그때 돌아오너라. 그렇게 해서 야곱이 고향을 떠나 외갓집으로 갔습니다.

야곱은 속히 돌아올 줄 알고 갔는데 인생이란 게 그리 만만합니까? 외갓집이 있는 밧단 아람에서 무려 20년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그동안에 야곱은 결혼도 하고 열두 아들과 딸 하나를 얻었으며 재산도 크게 불어났습니다. 이렇게 밧단 아람에서 자리 잡고 지낼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31: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그 날로 모든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아내와 자녀들과 그동안 모은 재산을 가지고 고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과정도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복수하려는 에서와의 사이에서 믿음의 눈이 열렸다가 감기고 또 감겼다가 다시 열리는 혼란을 겪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야곱은 결국 문제가 해결되어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믿음이 눈이 다시 열려야 합니다로 정했습니다. 은혜의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야곱은 믿음의 눈이 열렸습니다.

 

0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야곱이 밧단 아람(갈르엣)을 떠나 요단강 북쪽 지류인 얍복강을 향해 출발했습니다(31:47). 고향이 점점 가까워집니다. 그럴수록 야곱의 마음은 더욱 무겁습니다. 20년 전 아버지와 에서를 속인 일이 생생하게 떠 오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야곱을 위로하십니다. 01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천사들이 야곱을 맞이합니다. 고향을 떠나올 때 벧엘에 나타난(28:12) 그 천사들이 귀향길 여정에서 다시 야곱에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지난날 하나님이 함께하신 일을 상기시키시는 은혜의 회복입니다(28:15; 31:13). 야곱이 믿음의 눈을 뜨고 보니 그 천사의 수효가 얼마나 많은지 하나님의 군대라고 칭하였습니다. 천군만마의 힘을 확인하고는 그 지명을 마하나임으로 명명합니다.

 

마하나임(מַחֲנַיִם). 마하나임은 복수형으로 두 진영(two camps)이란 뜻입니다. 천사는 신령한 존재로 육신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야곱에게 특별히 보여주십니다. 그만큼 야곱의 마음이 중압감에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야곱이 보고 있는 천사는 한둘이 아니라 큰 무리입니다

마하나임 뜻 그대로 천사가 두 진영을 이루어 야곱의 일행과 가축을 앞뒤로 에워싸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도 감히 해할 수 없는 보호입니다. 성경에 보면 천사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는 구절이 많습니다. 제가 915일 주일에 김삼일 가족을 돕는 천사가 있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천사에 대해 자세히 설교하였습니다. 천사는 구원받은 김삼일 가족 모두를 지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34:0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 도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믿음의 눈을 열어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군대 천사를 보게 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언약의 재확인 때문입니다. 20년 전 하나님이 벧엘에서 야곱이 외로운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그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친히 유일하신 하나님의 칭호 여호와를 사용하면서 아브라함 때부터 맺은 언약을 야곱에게 상기시켰습니다. 비록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은 세상을 떠났으나 언약의 계승자 이삭이 살아있고 장차 야곱 자신을 통하여 그 언약을 성취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야곱은 장차 구원 얻을 자의 조상으로서 믿는 자를 대표해서 받은 언약입니다. 

그 언약의 당사자 야곱이 지금 언약을 이루어 나갈 고향으로 돌아옵니다만 20년 전 에서의 일로 중압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안심시키기 위해 천사들을 동원하여 믿음의 눈을 보게 하셨습니다

02절 말씀을 동시에 김삼일 가족을 위한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한 하나님의 군대로 보는 믿음의 눈을 여십시오. 믿음의 눈이 열리면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답답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면 됩니다. 아멘입니까?

 

 

 2. 그런데 야곱은 믿음의 눈이 감겼습니다.

 

0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로 천군을 만난 감격을 마하나임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위하여 천사를 동원하신 것은 언약의 계승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에게는 아직도 풀지 못한 걱정거리가 하나 있습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일입니다. 20년 전에 고향을 떠날 때 어머니 리브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27:45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이 말은 당시의 상황이 절박하였음을 증명합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아무런 연락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에서의 분노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는 정황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에서가 사는 곳으로 종들을 보냅니다. 형이 아직도 분노를 품고 있는지, 내가 형을 만나도 괜찮을지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종들이 돌아와서 상황을 보고합니다. 에서가 사백 명 군사를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오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이때 야곱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야곱은 지금 패닉 상태에 처했습니다.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일행과 양과 소와 낙타를 둘로 구분하였습니다.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얼마나 두려우면 이런 계획을 세웁니까? 야곱은 하나님의 군대가 자신과 함께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본 믿음의 눈이 감기고 말았습니다

두렵고 답답하고 미칠 지경입니다. 믿음으로 반응하여야 할 현장을 사람의 생각으로 바꾸어 버린 결과입니다. 그러면 문제가 무엇입니까? 에서가 사백 명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는 것이 문제입니까? 물론 그 일이 문제인 것은 맞습니다. 이보다는 하나님의 군대를 신뢰하는 믿음 상실이 문제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군대와 에서의 군대 사백 명이 싸우면 누가 이깁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군대가 이깁니다. 하나님의 든든한 배경이 있는 한 누가 야곱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면 그 어떤 세력이 몰려와도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어도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하면 그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심히 흔들리고 있습니다.

야곱에게 믿음은 있지만 작은 믿음에 불과합니다. 믿으면서도 현실의 의심이 그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하나임 군대를 보고도 두려워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의 군대를 말하면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두려워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세상을 살면서 불행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두려움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고 일을 그르칩니다. 우리가 두려움에서 해방만 되면 어떤 상황이 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서 얻는 복 중 하나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면 마음의 평안을 지킬 수 있습니다. 반면 두려움 있는 곳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불신앙입니다.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3. 야곱은 다시 믿음의 눈이 열립니다.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은 에서가 사백 명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자리로 바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군대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였더라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믿음을 잃어버리니 그 믿음의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길이 안 보이면 답답하고 고통이 오기 마련입니다. 야곱은 뒤늦게 하나님께 맡기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04:16) 기도의 자리에 들어갑니다.

 

24절을 전후로 야곱이 다시 믿음의 눈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야곱과 천사가 씨름하는 장면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모든 일행과 소유를 얍복강을 건너게 한 후 혼자 나루터에서 밤을 지새웁니다. 외롭고 힘들 때는 아내와 같이 있으면 좋을 텐데 혼자 있습니다.

이때 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야곱은 자기를 노리는 자객(刺客)인가 싶어 엉겁결에 강렬하게 저항합니다. 그냥 엉겨 붙은 씨름을 하는 겁니다. 여기 씨름(אָבַק 아바크)하는 현장을 잘 보면 단순한 씨름이 아닙니다. 씨름이란 단어가 먼지를 일으킨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먼지가 일어날 정도로 격렬한 몸싸움을 한다는 뜻입니다.

 

야곱의 입장에서는 손을 놓으면 죽을까 봐 온 힘을 다해 붙들고 씨름합니다. 그러자 상대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제압합니다. 비로소 야곱은 깨닫습니다. 상대는 단순한 자객이 아닌 특별하신 천사 곧 하나님으로 말입니다(30). 그래서 말합니다. 내게 축복을 해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 손을 놓지 않겠소.

 

12:04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야곱이 복을 달라고 간절히 메어 달릴 때 천사가 뭐라고 말합니까?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28).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뀝니다

이후 창세기 33장을 보면 야곱의 드라마틱한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토록 중압감을 주는 에서의 문제가 단번에 풀리는 장면입니다. 에서와 야곱이 화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창 3303, 04절입니다.

 

33:0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0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

 

전날까지만 해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가족과 가축을 방패막이로 앞세운 야곱 아닙니까? 그런 그가 이제는 에서를 만나기 위하여 가족들 앞서 걸어갑니다. 동시에 에서도 달려옵니다. 서로 얼싸안고 안부를 나누며 웁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야곱의 믿음이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에게 믿음이 회복되니 하나님의 은혜가 에서에게 임하였습니다. 야곱의 믿음 사이즈가 커지니 문제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믿음 사이즈가 작으면 하나님은 안 보이고 현실만 보입니다. 반대로 같은 상황이라도 믿음 사이즈가 크면 두려움을 넉넉하게 극복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가장 두렵고 답답한 일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우리를 답답하게 합니까? 가정의 문제입니까? 사업의 문제입니까? 아니면 사람의 문제입니까? 왜 우리의 마음이 답답하고 두렵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에 거센 비바람이 몰려올 수 있습니다. 큰 파도가 이는 세상에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뜨고 하나님만 바라보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세상의 풍랑과 고난의 바다에 빠지지 않고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입술만의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군 천사들이 나와 함께한다고 확신하는 그 믿음의 사이즈를 키우시기 바랍니다. 문제와 씨름하지 말고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씨름하시기 바랍니다.

 

91: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김삼일 가족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능력이 있어서 교회에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에 심어짐으로 마침내 큰일을 할 줄 믿고 심어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특별히 건강한 교회관을 가지고 사람을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있는 어느 교회라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든지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문제없는 교회 없습니다. 바로 그런 교회에 내가 심어졌습니다. 잘 다듬고 잘 해결하라고 심어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야곱과 같이 믿음의 눈이 잘 열리기를 바랍니다. 고달픈 문제도 잘 풀리기를 축원합니다.